실외는 물론이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여전히 대부분 쓰고 있습니다. 실내에서 벗어도 된다고 규제를 완화 하였음에도 나 역시 실내도 물론이고 밖에서도 습관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닙니다. 왠지 그게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인듯 합니다. 안전을 생각하기에 먼저 집에서 나갈 때부터 몸에 배인듯이 마스크를 준비하여 나가서는 자연스럽게 착용을 하고 있지요. 일본도 그런 모양 입니다. 실내에서도 규제가 풀렸는데도 여전히 쓰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이런 점을 눈여겨 본 외국인들의 의아함을 풀어 주려는듯, 미국의 NYT(The New York Times)에서 관련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 내용은 오늘 어느 국내 언론사를 통해서도 소개가 되었지요.
관련 내용을 NYT의 원문 기사를 찾아서 그 일부분을 원문에 번역을 곁들여 소개합니다. 제목은 이렇습니다.
'Asia is loosening rules on masks. Here's why people still wear them.'
'아시아에서는 마스크 착용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그 이유를 알아 보고자 합니다.'
소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음의 기사 내용은 이러합니다.
'Many other countries dropped pandemic mask requirements months ago. But in places like South Korea, which got rid of its rule this week, masks remain common.'
'많은 다른 나라들은 몇 달 전에 팬데믹에 대처하기 위한 마스크 착용 규제를 철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에 규제를 해제한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마스크 착용 하는 것이 공통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귀찮고 불편한 마스크 착용을 해제 하였는데도, 그런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외국 사람들은 좋아라 하고 벗고 다니는데도, 왜 한국은 유별나게 쓰고 다니느냐 하는 시선인 것이지요. 사고 방식과 관점, 그리고 문화 의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은 그렇고 한국 그리고 일본은 그 나름대로 민족적인 특색이 있는 것이지요.
또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Some people in South Korea and Japan have also taken advantage of the fact that they don't have to wear makeup or smile when they wear a mask.'
'한국과 일본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마스크를 쓰면 얼굴 화장을 꼭 하지 않아도 되고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사실에 대한 잇점을 또한 누리고 있습니다.'
'Taking them off therefore comes with some inconvenience. In Japan, some have masks "kao pantsu," or "face pants," meaning that unmasking would be as embarrassing as taking off underwear in public.'
'그러므로 마스크를 벗는 것이 약간의 불편함을 가져 오는 것이지요. 일본에서 어떤 사람들은 "가오 빤스'나 "얼굴 팬츠"라는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런 것들은 마스크를 벗는 것이 마치 공공의 장소에서 속옷을 벗는 것과 같이 창피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일본 말로 '가오'(kao)는 얼굴을 뜻하지요. 그리고 빤스는 팬티를 말하는 일본말 이지요. 그러니까 '가오 빤스'라고 써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는 것은, 마스크를 벗는 것이 마치 속옷을 벗고 다니는 것같은 부끄러움을 뜻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옛적에는 다방에서 일하는 마담을 '가오 마담'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말입니다. 일본어 잔재의 한 현상이지요. 얼굴이 예쁘고 상냥한 여자를 그 다방의 대표적인, 그러니까 간판급의 여인으로 내세워서 손님들을 많이 끌어모으려는 일종의 상술(商術)이었습니다. 다 지나간 이야기네요.
나부터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 더 편리한것 처럼 느껴집니다. 우선 얼굴 모습에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내 얼굴 표정 전체를 사람들에게 가릴 수 있는 잇점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세수를 대충해도 되는 것 같고, 머리가 헝클어진 상태이면 모자를 쓰고 밖에 나가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얼굴을 가리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요. 사람은 서로 얼굴과 얼굴을 대하면서, 그러니까 대면 하면서 살아야지요. 마스크로 가려져서 눈길만 바라 보면서 대충 눈 짐작으로 사람을 식별해야 하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봅니다. 비정상적이지요. 마치 중동 지역의 여인들이 의무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눈길만 보아서는 그 여인의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수가 없지요.
우리가 정말 얼굴을 가려야 할 경우는 이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서 얼굴에 그 은혜의 광채가 ;빛을 발 할 때 말입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보아서 얼굴을 가리게 되는 그런 경우 말이지요. 모세가 그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십계명의 두 돌판을 받아 올 때, 그의 얼굴은 광채가 빛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가 넘쳐 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의 얼굴에 만면 했던 것이지요. 정작 모세 본인은 그 광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광채를 보고 두려워 했지요.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두려워 하더니"(출애굽기35:29,30).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산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며 산다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따라서 산다면, 예수님의 성품이신 온유와 겸손을 늘 행하며 산다면, 그런 모습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얼굴을 은혜의 빛으로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형상을 직접 뵈옵고 예수님도 그 모습을 직접 뵙는 것입니다. 얼굴도 보고 그 몸의 모습을 직접 뵙는 것입니다. 못 자국난 모습도 물론 보게 되지요. 지금은 그저 얼굴에 수건을 쓰고 상상으로만 뵙고 있지만, 그 때는 사실적으로 뵙게 되는것 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13:12).
우리 모두가 장차 저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면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곧 천국의 복음이십니다. 그 복음을 믿어야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마가복음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