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여행 일정이 오늘이 마지막이라 좋다. 더 이상이었다면 버거웠을 것이고, 어제 마쳤다면 너무 정신없이 찍고 다녔을 것이다. 나는 인솔해서 제주에 올때마다 아쉬운 마음으로 제주와 작별을 할 수 있게 한다. 아니 아쉬운 작별을 하면 좋겠다. 그래서 그 아쉬움이 살면서 제주를 기억하게 하면 좋겠다. 우리가 걸었던 길과, 마주하고 걸었던 바람과 하늘과 억새와 웃음소리가 어렵고 힘들때 마다 귀퉁이에 서서 그 고비를 함께 넘겨주면 좋겠다.
아침 식사 전 큰 가방은 모두 밖에 줄을 세워두라는 요청을 했었다. 날다가 올레길을 걸으며 터득된 몇가지의 원칙 중 마지막날의 짐빼기다. 짐이 미리 빠져나가지 않으면 계속 늦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짐을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 미리 빼두기를 어려워한다. 누구도 가져가지 않을 것인데도... 오늘도 한명이 누가 가져가면 안되니까를 말했다. 그래도 큰소리로 가방 밖에 한줄로 세워둬야 촬스가 바로 짐을 정리하기 좋다고 반복하며 외친다.
칫솔을 빼뒀다 양치하고 작은가방에 넣으면 되는데, 나도 케리어에 치솔이 있어 이닦기를 포기한다. 대신 커피로 가글을ㅋㅋ. 오늘은 당근 수프다(뒤에 매일 따끈한 밥을 먹는 녀석은 스프와 빵을 먹는 아침이 속을 느글거리게 했다고 함ㅎㅎㅎ. 참고!참고!). 첫날부터 꽂았던 화병에 동백이 살짝 피어나고 우리도 얼굴들이 피었다. 촬스 차에 짐을 싣고 우리는 보목포구를 통해 소천지까지 걸을것이다. 그러면 촬스는 걷는 동안 소천지에서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오늘은 바람이 조금 있다. 그 조금의 바람으로 파도는 생각보다 크다. 처음 올레길을 걸을때 어느날의 파도가 놀라웠다. 그날 파도를 눈이 아프게 즐기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기사님이 그러셨다. 제주의 바람은 동쪽에서 서쪽, 남쪽에서 북쪽이 아니라 종잡을수가 없는 바람이라 바람이 일면 절대 바다에 배를 띄우지 않는다 하셨다. 오늘도 그렇다. 서 있는 자리에서 바람보다 파도는 장관이다. 한참을 걷다가 모두 모여 나쁜 것은 날려버려!!를 외치고 단체 사진도 찍는다. 그런데 이미 도착했어야 할 곳이 아직이라 아이들에게 소천지를 검색시킨다. 어라!! 반대쪽이다. 누군가 아무 생각도 없이 재지기오름쪽으로 걸어서 그냥 따라 걸었던 것이다. 이제 왔던만큼을 더 걷고, 그곳에서 20여분을 더 걸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 둘 지쳐한다. 좀 많이 걷고 있는 것이다. 겨우 섶섬 앞 섶섬지기 전망대에서 잠시 쉰다. 그런데 다시 소천지까지 걷는 길이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촬스에게 전화를 해서 조금 남은 길을 좀 태워달라 요청한다. 촬스가 온다. 고맙다. 소천지 앞에 내려줘서 잠깐 다시 길을 잘못 들었다가 돌아와 솔숲을 지나고 걸어 내려간다. 바윗길이 쉽지가 않다. 초록이 현서랑을 데리고 안올줄 알았는데 뒤에서 따라온다. 현서까지 모두 와서 편안한 마음으로 소천지에서 느긋하게 쉰다. 침묵의 시간도, 왁자하기도 푸른 하늘과 바닷빛과 바람소리 한라산 구름 그 모든 것이 느긋하다. 하루에 한번쯤은 이런 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모두 다시 몸을 세운다. 솔숲 바람와 함께 이동한다. 제주 5일장이 선다는 곳에 우리는 내리고, 초록이와 경석 그리고 도토리가 같이 악기를 반납하러 간다. 한바퀴 돌고나니 벌써 도토리와 석이 온다. 볼 것이 별루 없어 그대로 촬스차에 올라 마지막 코스인 섭지코지를 향한다. 모두 잠들었다. 한참만에 도착한 해녀의 집엔 손님이 많아 밖에서 파도구경을 하며 기다린다. 마련된 자리에 앉아 두가지씩 세가지씩 주문을 한다. 겡이죽, 전복죽, 성게미역국, 해물라면. 하나 둘씩 나온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그런데 현서랑이 시킨 라면이 늦다. 한그릇이니 가장 나중에 나올수밖에. 여행을 다니면서는 둘씩 셋씩 같은 메뉴를 정하는 것이 빠르다. 극구 내가 꼭 그 메뉴를 먹고싶지 않다면 말이다. 유준과 마주하고 성게미역국을 시원하게 먹고는 파도 구경하러 나온다. 큰 파도와 마주하고 서서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유준한테 전한다. 혼자 와서 마음이 쓰였던 것, 어른들을 애칭으로 불러야한 시간들은 어땠는지, 엄마감성이 우굴대는 4일동안 불편하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괜찮았다는 녀석에게 의젓하게 잘해주고 진득하게 기다려주는 것도 고맙고, 무엇보다 스폰지에 물이 스미듯이 배움을 즐기는 태도에 나도 기분좋고 수업하는 맛이 난다고 마음을 전했다. 우린 그렇게 파도를 마주하고 서서 서로를 고마워했다. 준. 다시 한번 고맙다.
휘닉스제주에 서서 유민미술관 셔틀버스를 기다린다. 석과 준이 비싼 숙소 1층 로비라도 구경한다고 한바퀴를 돈다. 좋긴하다고 한다. 나도 화장실을 이용한다. 유민미술관은 안도타다오라는 세계적 건축가 작품이라고, 제주에 본태박물관도 그의 작품이다. 들어와 보니 자연을 인공적 구조에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벽면을 타고 내리는 물줄기와 자연채광과 높은 층고가 그의 특성이 이런 것인가보다 한다. 멋지다. 누군가는 건물도 그렇고 전시도 서민인 본인을 주눅들게 할뿐이라며 화가 나 있다. 1차세계대전 때부터의 유리공예품을 전시해 뒀는데 누군가는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고 설명듣고 보니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예품이 새롭게 보이더라고 한참 뒤에 나온다. 서로 이렇게 다르다. 개인적으로 나는 처음부터 건축물이 궁금했지 전시품은 별루 관심이 없었다. 이제 섭지코지의 미술관 건너에 있는 글라스하우스나 유민미술관이 나를 기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섭지코지를 오게되면 선흘말처럼 특별한 사람들만 드나드는 것처럼 살짝 기가 죽긴 했던 것 같다. 이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알았으니! 안다는 것이 이렇다. 모른다는 것은 모른다는 이유로 기가 죽거나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이제 미련이 없다.
그렇게 제주 마지막 코스를 마치고 공항 도착.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이 가는데, 저녁 메뉴인 햄버거를 안줬다고 한다. 다시 촬스에게 전화를 하니 공항에서 먹고 청구하란다. 그런데 버거집은 정신이 없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하는데 누군가 지금 배가 안고프니 광주공항에서 먹자고 한다. 좋은 의견이라며 정리를 하고, 의자에게 기다리다 뱅기를 탄다. 짐을 찾고 나와보니 마중나온 현서랑부가 현서가족을 맞이한다. 인사를 하고 갈사람들이 또 정신없이 떠난다. 처음처럼 북구에 사는 도토리, 석, 준, 마리아만 남아 택시타는 줄에 선다. 기다려도 택시가 없어 우리도 카카오택시를 불러 탄다. (이놈의 카카오택시 좀 안 타 보려는데.... 이 편리를 포기못할까?!) 우리끼리 전대후문에 내려 저녁을 먹는다. 광주가 최고다. 집이 최고다를 연신 말하며 후후 불며 맛있게 먹는다. 모두 제 갈곳을 찾아 가고, 나도 석을 날다에 내려주고 집으로 온다.
모두 고생했어. 고마워,
안녕^^
11/19
준비와 짐싸기 - 당근수프 - 숙소부터 소천지 걷기(올레길 6코스) - 악기반납, 5일장 구경 - 겡이죽 - 섭지코지 셔틀버스 - 유민 미술관 -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