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칠갑산이 충남의 알프스란 글귀 매료된 나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지도를 펼치고 충남 유구와 공주를 빠르게 밀며 돌멩이 투성이의 고갯길과 울퉁불퉁한 산길을 넘고 넘어가니 그곳에 칠갑산이 있었다. 그때의 첫 느낌은 황량했다. 그 메마르고 쓸쓸한 풍경 앞에 먼 길 달려온 내 발길은 무너져 내렸다.
이듬해 90년 어느 날, 그 황량했던 '칠갑산'은 대중가수 주병선의 구성진 음색에 실려 세간의 조명 세례를 받으며 화려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숫제 죽은 산을 일으킬 정도로 대중가요의 힘이 경이로움을 느꼈던 그 노래는 우리민족의 가슴 깊은 한恨을 유장한 절창絶唱으로 이끌어내며 그 한恨을 관통하고 있었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시름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 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작사 작곡:조운파 노래:주병선>
이곡은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내는 궁핍한 산골 홀어머니의 비원이 서려 있고 단장의 슬픔이 녹아 있다.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가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이 행간에선 시집을 떠나는 어린 딸의 가슴이 미어지며, 딸을 떠나보내는 홀어머니의 비원과 이를 두고 떠나는 딸의 정한情恨이 서로 절절하게 맞물리며 대중의 심금을 뜨겁게 울린다.
콩밭은 우리 민족의 궁벽했던 삶의 터전이다. ‘포기마다 눈물 심는 것은' 궁핍한 삶의 한과 슬픔을 의미한다. 빌라드와 록 K팝 등에 익숙한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겐 전설 같은 얘기가 될지 모르나, 이 노래는 한국인만이 갖는 근원적이고 숙명적인 한恨이 담긴 정한情恨의 노래다. 특히 대중가요와 국악가곡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민족의 한과 슬픔의 정서를 유장하게 이끌어내며 대중들의 콧날을 시큰한 감동으로 젖게 한 이 곡은 당시로선 경이로운 판매 수치를 기록하며,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주병선은 64년 11월 전남 여수 출생이다. 그는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고인돌’로 금상을 받으며, 이듬해 발표한 1집 앨범에 ‘칠갑산’이 수록된다. 그는 향토 문화재였던 아버지 덕택에 당대 내놓으라하는 국악의 명인 박동진, 안숙선 등이 그의 본가에 자주 드나들어 어렸을 때부터 국악의 정서 속에 자랐다 한다. 어찌 보면 타악을 전공했던 그에게 이 ‘칠갑산’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지난 흑백시절이 떠오른다. '76년 고2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침 작은 누님이 시집으로 떠나는 날이었고, 누님은 얼굴을 가린 채 서럽게 울며 삽짝을 나서고 있었다. 신혼 가방을 양 손에 든 매형이 앞섰고, 그 뒤 친척분들이 길 떠나는 누님을 부축하던 모습을 저만치서 우두커니 지켜보면서, 눈시울이 불거졌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렇듯 대중가요 속에는 세상살이의 숱한 애환이 오롯이 녹아 있다. 외롭고 그리운 사람마다, 쓸쓸하고 고독한 사람마다, 실의에 찬 날들과 허기진 삶마져 달래주며 위안을 준다. 때론 인간의 한을 달래고 풀어주며, 그 뒷심까지 되어주는 주옥같은 명곡들이 줄줄이 탄생되길 염원한다.
글쓴이 석등.- 2023.01 영상, 칠갑산 겨울 풍경
가요 단상 6, 주병선 - 칠갑산
30여 년 전 어느 봄날이었다.
칠갑산이 충남의 알프스란 글귀 매료된 나는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지도를 펼치고 충남 유구와 공주를 빠르게 밀며 돌멩이 투성이의 고갯길과 울퉁불퉁한 산길을 넘고 넘어가니 그곳에 칠갑산이 있었다. 그때의 첫 느낌은 황량했다. 그 메마르고 쓸쓸한 풍경 앞에 먼 길 달려온 내 발길은 무너져 내렸다.
이듬해 90년 어느 날, 그 황량했던 '칠갑산'은 대중가수 주병선의 구성진 음색에 실려 세간의 조명 세례를 받으며 화려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실로 죽은 산을 일으킬 정도로 대중가요의 힘이 경이로웠다. 그 노래는 우리민족의 가슴 깊은 한恨을 유장한 절창絶唱으로 이끌어내며 그 한恨을 관통하고 있었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시름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 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속을 태웠소. <작사 작곡:조운파 노래:주병선>
이곡은 하나뿐인 딸을 시집보내는 궁핍한 산골 홀어머니의 비원이 서려 있고 단장의 슬픔이 녹아 있다.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가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이 행간에선 시집을 떠나는 어린 딸의 가슴이 미어지며, 딸을 떠나보내는 홀어머니의 비원과 이를 두고 떠나는 딸의 정한情恨이 서로 절절하게 맞물리며 대중의 심금을 뜨겁게 울린다.
콩밭은 우리 민족의 궁벽했던 삶의 터전이다. ‘포기마다 눈물 심는 것은' 궁핍한 삶의 한과 슬픔을 의미한다. 빌라드와 록 K팝 등에 익숙한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겐 전설 같은 얘기가 될지 모르나, 이 노래는 한국인만이 갖는 근원적이고 숙명적인 한恨이 담긴 정한情恨의 노래다. 특히 대중가요와 국악가곡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민족의 한과 슬픔의 정서를 유장하게 이끌어내며 대중들의 콧날을 시큰한 감동으로 젖게 한 이 곡은 당시로선 경이로운 판매 수치를 기록하며, 하루아침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주병선은1964년 11월 전남 여수 출생이다. 그는 '88년 대학가요제에서‘고인돌’로 금상을 받으며, 이듬해 발표한 1집 앨범에 ‘칠갑산’이 수록된다. 그는 향토 문화재였던 아버지 덕택에 당대 내놓으라하는 국악의 명인 박동진, 안숙선 등이 그의 본가에 자주 드나들어 어렸을 때부터 국악의 정서 속에 자랐다 한다. 어찌 보면 타악을 전공했던 그에게 이 ‘칠갑산’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지난 흑백시절이 떠오른다. '76년 고2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침 작은 누님이 시집으로 떠나는 날이었고, 누님은 얼굴을 가린 채 서럽게 울며 삽짝을 나서고 있었다. 신혼 가방을 양 손에 든 매형이 앞섰고, 그 뒤 친척분들이 길 떠나는 누님을 부축하던 모습을 저만치서 우두커니 지켜보면서, 눈시울이 불거졌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렇듯 대중가요 속에는 세상살이의 숱한 애환이 오롯이 녹아 있다. 외롭고 그리운 사람마다, 쓸쓸하고 고독한 사람마다, 실의에 찬 날들과 허기진 삶마져 달래주며 위안을 준다. 때론 인간의 한을 달래고 풀어주며, 그 뒷심까지 되어주는 주옥같은 명곡들이 줄줄이 탄생되길 염원한다.
글쓴이 석등.- 202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