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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둥근 것은 그냥 봐도 보인다. 그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눈이 삔 것이다. 그들은 성의가 없다. 도무지 진지하지 않다. 각 잡고 앉아서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시시덕거리면서 건성으로 본 것이 아닌가? 귀찮아 하면서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말이다. 옛날 과학자들이 다 해먹었지 내가 해먹을 건덕지가 남아있겠나 하는 심드렁한 태도로 말이다.
조문도 석사가의라 했다. 아침에 도를 보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마음이 있으면 공자의 팀에 들어갈 자격이 된다. 갈릴레이는 목숨을 걸었다는데 당신은 왜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목숨을 걸지 않나? 왜 흥분하지 않나? 왜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 않나? 이런 실정인데도 잠이 오는가? 진리가 확실할수록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기쁨은 두 배가 되는 것이다.
주술의 편에 설 것인가, 진리의 편에 설 것인가?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과학자들과 같은 편에 서 있다는 동지의식을 느낄 때 그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는 넘어갈 수 없는 강이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인간의 무리에 합세하여 도도히 함께 흘러가야 한다. 들판에 흩어져서 질시하는 비참한 산적들의 눈빛과는 다르다.
검색하면 일곱가지 정도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가 나오지만 대개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알아듣는 내용이다. 일전에 필자가 쓴 글에 일반인이 그냥 봐서 알 수 있는 시각적 증거 30가지를 3일만에 찾았다고 했는데 거기에 몇 개를 추가하려고 했다가 단숨에 17개를 더 찾았다. 지구가 둥근 것은 지구 사정이고 나는 사람들이 눈이 삐었다는 증거를 보이려는 것이다.
도무지 인간들이 생각을 안한다. 천국, 내세, 귀신, 유기농, 성찰, 진정성, 생태, 신토불이 따위는 사실이지 아무 뜻도 없는 맹탕어다. 언어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개소리를 태연하게 입에 담는 자와 대화해야겠는가? organic farming이 왜 자연농이 아니고 유기농으로 번역되나? 먹거리는 유기, 무기로 나눌 수 없다. 유기는 태양이 만드는 탄수화물이고 태양은 무기다.
소금은 무기물이다. 소금 안 먹고 살겠나? 철분, 마그네슘, 아연, 구리, 칼륨 다 무기물이다. 피가 빨간게 철분이다. 유기라는 것은 비료와 농약을 안쓴다는 말인데 유기농도 비료와 농약을 쓴다. 공장제가 아니라서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물질을 쓸 뿐이다. 그거 해롭다. 안아키와 뭐가 다른가? 가격 올리려고 소비자를 바보취급하는 저급한 마케팅 상술인거 모르나?
정확히 잔류농약이 얼마냐를 따져야 한다. 옥수수는 지력 약탈이 심하므로 많은 환경파괴를 일으킨다. 수확량의 감소에 따른 재배면적의 증가 자체로 환경파괴가 된다. 이산화탄소를 늘리기 때문이다. 퇴비나 비료나 과학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깨끗하면 비료, 더러우면 퇴비다. 품목에 따라서 거름이 더 나을 수도 있고 후진국은 해로운 농약이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왜 농약회사와 싸우지 않느냐다. 그게 비겁한 거다. 정면승부 해야지 왜 도망쳐? 필자가 유기농을 비판하는 이유는 아무런 약효가 없는 인삼을 가지고 명나라 어떤 바보가 책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우상숭배 하듯이 억장이 무너지는 대표적인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인의 다수가 거짓말에 동의한다. 환빠와 같이 그냥 사람 등쳐먹는 거짓말이다.
국민의 90퍼센트가 과학을 비웃고 주술을 선택한다는데서 깊은 아픔을 느낀다. 통곡할 일이다. 이런 밥통들과 내가 대화를 해야 하겠는가? 좌절한다. 인간들아 생각 좀 하고 살자. 아닌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농약이 해로우면 농약회사와 싸워야지. 나만 농약 안먹으면 돼. 가난한 사람들만 농약 먹으면 돼. 해로운 라면은 빈민들에게나 먹여. 이 얼마나 추한가?
라면이 해로우면 라면회사를 타격해야 한다. 빈민에게는 해로운 라면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한다. 수돗물이 해로우면 오세훈을 족쳐야 한다. 나만 살겠다고 혼자 비겁하게 생수로 도피하냐? 그런 자는 인간실격이다. 그들은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사는 싸워야 한다. 내 자식만 좋은거 먹여? 악마 짓이다. 지식인은 전사로 태어났기 에 대접받는 거다.
무지와 투쟁하는 것은 지식인의 운명이다. 적이 있으면 보이는데로 베어넘겨야 한다. 지식인은 무지와 싸우고, 거짓말과 싸우고, 비겁함과 싸워야 한다.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자와는 한순간도 같은 하늘의 공기를 마셔서 안 된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적들과 맞서야 한다. 세계의 모든 지성인들과 한 배를 탔다는 동지의식이 주는 행복감은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지구가 둥근 51가지 시각적 증거
1. 수평선은 키에 따라 3~4킬로 거리에 있다. 지구가 평평하면 날씨에 따라 수평선이 달라보이는 정도가 매우 커진다. 맑은 날은 유명산 정상에서 롯데 타워가 잘 보인다. 날씨에 따라 롯데타워가 보이는 정도는 크게 달라진다. 이와 달리 바닷가의 수평선은 날씨의 영향이 거의 없다는게 이상하다. 여기서 뭔가 촉이 와야 한다.
2. 독도는 날씨에 따라 울릉도에서 잘 보이기도 하고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일년에 몇 번만 독도를 선명하게 보여서 성인봉에 오른 사진 작가들을 애먹이듯이 수평선도 일년에 몇번만 보일락말락 해야 한다. 날씨에 따른 차이가 커야 한다.
3. 평평한 지구의 지름이 4만 킬로라면 일년내내 수평선이 보이지 절대 않는다. 수평선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없어야 한다. 수평선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어야 한다.
4. 오후 네시에 서쪽 바다를 보면 볼링공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크기의 수정구슬에 조명을 비추었을 때와 같은 하트 모양이 뜬다. 이건 직접 실험해보면 된다. 이미지를 검색해도 나온다. 지구와 둥글어야만 나올 수 있는 모양이다.
5. 대머리 아저씨의 이마에 불빛이 반사되는 모양을 보면 된다. 구면과 평면에 반사되는 조명은 모양이 확연히 다르다. 그냥 알 수 있다.
6. 수면에서 키가 2미터인 사람이 지름 8킬로 거리를 본다는 것은 지구의 곡률이 일반의 예상과 달리 꽤 크다는 말이다. 달은 곡률이 더 커서 달 착륙 사진의 지평선은 울퉁불퉁하다. 지구도 의외로 울퉁불퉁하다. 정확히는 볼록하게 가운데 배가 나온게 느껴진다.
7. 스텔스기는 기체가 평면이라서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다. 바다가 평평하면 수면에서 반사되는 빛이 사람의 눈으로 들어오는 정도가 크게 감소한다. 빛을 모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후 4시에 바다를 보면 빛이 가운데로 볼록렌즈처럼 강하게 모아준다는게 느껴진다.
8.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면 바다는 완전히 구면으로 보인다. 빛의 각도로 알 수 있다. 더욱 고도가 높아질수록 혹은 낮아질수록 시시각각 달라지는게 보인다. 그 광경을 처음 본 사람은 큰 충격을 받는다. 추령고개에서 자전거를 타고 대왕암으로 내려가다보면 깜짝 놀란다. 마술을 보는 느낌이다. 이해가 안되는 사람은 비행기에서 보면 된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보면 거의 비행기에서 보는 것과 같다.
9. 지구가 평평하면 태양이 낮은 고도에 머무를 때 많은 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눈을 뜰 수 없게 된다. 일몰을 향해 운전하다가 눈뽕을 당해 본 사람은 안다. 거울은 각도에 따라 눈부신 정도의 차이가 매우 크다. 태양 고도가 변할 때 광량의 변화가 크게 느껴진다.
10. 특정 각도에서는 수면에 반사된 빛과 태양에서 눈으로 직격한 빛이 합쳐져서 정오에 태양을 직접 바라보는 것보다 두배의 밝기가 된다. 눈에 화상을 입는다. 눈뽕을 당한다.
11. 지구가 평평하면 일출 때 햇볕이 대기를 통과하는 두께가 2천배 더 두꺼워진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하늘이 까맣게 보이는 이유는 대기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대류권은 10킬로 이하로 얇다. 지구 둘레 4만 킬로의 절반을 반영하면 2천배 두꺼운 대기를 통과하므로 수평선의 햇볕은 2천배 흐려진다. 바다의 수증기와 대기오염을 고려하면 2만배다. 일몰은 절대로 볼 수 없다. 성인 눈높이 4.5킬로 거리에 수평선이 있으므로 일몰때 우리는 10킬로 이하의 얇은 대기를 통과하는 특별히 선명한 햇볕을 보는 것이다.
12. 수평선을 넘어가는 일몰의 태양은 수증기에 의한 돋보기 효과로 실제보다 커 보인다. 정오와 비교하여 일몰의 태양은 지름이 4배 차이가 난다. 육지에서 136킬로 떨어진 울릉도 성인봉은 4킬로 높이로 보인다. 140미터 앞의 4미터 크기 건물과 같다. 너무 크다. 성인봉 주변에서는 일출 때 돋보기 효과로 독도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일본인들이 독도가 안보인다며 시비를 거는 이유다. 돋보기가 된다는 사실을 일본인은 모른다. 신기루도 크기가 확대되어 보인다. 지구가 납작하면 태양과 달이 8천배로 크게 보여야 한다. 엥?
13. 달은 고도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보이는 정도가 크다. 보름달이 수평선에서 뜰 때 매우 크게 보인다. 초저녁에 보름달이 뜰때 한강 다리를 지나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보름달이 머리 위로 가면 작아보인다. 지구가 평평하면 달이 뜰 때 보름달보다 8천배 커진다.
14. 수평선 끝단으로 갈수록 바다 색이 짙고 선명하다. 파장이 짧은 푸른 빛이 물 속을 통과하면서 더 많이 산란하기 때문이다. 심해를 거치지 않고 수면을 스치듯이 투과한 빛을 우리가 보기 때문이다. 지구가 평평하면 물속으로 살짝 들어갔다가 반사되어 나온 수평선 끝단의 푸른 빛을 볼 수 없다. 수평선이 희미해진다. 우리가 보는 수평선은 4킬로 거리다. 지구가 평평하면 2만 킬로가 되므로 수평선이 안보인다.
15. 맨눈으로 봐도 시야의 3/4 지점이 볼록하게 보인다. 평면과 구면은 반사되는 빛의 칼라가 다르다.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바다의 물빛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식별된다. 지구가 납작하면 거울의 뱡항을 돌리듯이 갑자기 확 변한다. 이때 갑자기 눈이 부셔서 큰 충격을 받는다. 개기일식때 갑자기 캄캄해지고 갑자기 환해져서 구경꾼들이 큰 충격을 받는 것과 같다. 개기일식을 촬영한 동영상을 참고하자. 갑자기 변해서 관람객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른다.
16.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는 굴절율이 높아서 강한 빛을 쏘아주기 때문이다. 평면은 굴절율이 극도로 낮아진다. 평면이면 훨씬 덜 눈부시다. 이는 유리로 실험하여 알 수 있다. 수정구슬과 그냥 유리를 놓고 차이를 비교해보자.
17. 바다에 나가보면 바람이 부는 날 거리에 따라 파도의 크기가 불균일하게 작아지는 것이 식별된다. 지구가 납작하면 균일하게 점점 작아져야 한다. 시야의 3/4 지점에서 파도의 크기가 매우 부자연스럽다. 수평선이 고르지 않아 위화감이 느껴져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바다가 왜 저래? 먼 바다에 강풍이 불어 그런 거야. 아하 그렇구나.
18.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작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눈은 1킬로 밖에 있는 50센티 물체를 식별한다. 맑은 날은 300킬로까지 식별하고 불빛은 밤에 800킬로까지 보이므로 지구가 매우 크게 생각되어야 한다. 지구가 평평하면 원시인들도 지구가 크다는 사실을 쉽게 안다. 중국이나 몽골처럼 땅이 넓은 나라는 직접 걸어가서 확인해보고 지구의 크기를 대략적으로 알지만 부족민들은 모른다.
19. 영화에서 부시맨은 20일 정도 걸어가면 지구의 끝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부시맨이 나무 꼭대기에 올라 가늠해본 지구 크기에는 지구의 곡률이 반영되어 있다. 부족민들의 시력은 뛰어나다. 몽골의 유목민이나 폴리네시아 마오리족은 시력은 강력하다. 그들은 7.0의 뛰어난 시력으로 먼 거리를 보고 지구 끝을 봤다고 착각하여 지구가 작다고 생각한 것이다.
20. 지구가 평평하면 개기일식처럼 일몰과 동시에 깜깜해진다. 일몰의 박명과 일출의 여명이 없어진다. 갑자기 밝아지고 갑자기 어두워져서 큰 충격을 받는다. 원숭이들이 개기일식 때 해를 쳐다보다가 실명하여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다. 지구가 평평하면 매일 개기일식의 암흑쇼크를 체험할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를 볼 수 있다.
21. 개기일식을 맨눈으로 태양을 보면 실명할 수 있듯이 지구가 평평하면 일출 때도 실명한다. 설날 아침에 단체로 일출관광을 갔다가 집단 실명사태가 벌어진다.
22. 적도 부근은 중위도와 달리 일몰직후 갑자기 캄캄해진다. 고위도일수록 박명과 여명이 길어진다. 적도 부근은 지구평면설과 유사한 체험을 하게 된다. 지구가 평평하면 일몰과 동시에 완전 암흑이 된다. 약하지만 적도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낄 수 있다.
23. 지구가 납작한데 단지 거리가 멀어서 보이지 않는다면 그 보이지 않는 지점의 보이지 않음이 눈에 보여야 한다. 수평선에 소실점과 같은 소실선이 울퉁불퉁하게 보여야 하는데 수평선과 지평선은 칼로 자른듯 매끈하다. 울퉁불퉁하지 않다.
24. 지구는 바다가 넓어 지구 어디든지 반드시 어느 곳은 비가 오고 구름이 형성되어 있다. 적도는 항상 구름이 형성되어 있다. 윈디닷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수평선과 지평선은 있을 수 없다. 북반구에서 남쪽을 보거나 남반구에서 북쪽을 보면 무조건 구름에 막힌다.
25. 바다는 수증기로 인해 구름이 많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지구의 반이 구름에 덮여 있다. 지구가 납작하면 지구둘레 절반인 2만킬로 안쪽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는 구름 때문에 수평선과 지평선을 볼 수 없다. 그 사이에 틈이 있어도 틈의 크기는 2만 분의 1이다.
26. 구름 높이는 2키로 이상인데 안데스 산맥, 로키산맥, 히말라야 산맥의 높이가 5킬로를 넘는 점을 고려하면 구름과 수평선 사이에 틈이 있어도 대륙과 산맥에 막혀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수평선과 지평선이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에베레스트는 지구 어디서든 보인다.
27. 사방 어디에나 있는 구름과 산맥과 대륙에 막혀 수평선과 지평선을 볼 수 없으므로 일출과 일몰도 볼 수 없다. 월출과 월몰도 볼 수 없다. 수평선과 지평선을 넘어가는 별자리도 볼 수 없다. 평평하면 맑은 날에 인간의 시력은 300킬로까지 식별할 수 있다. 달은 수평선보다 최소 20배 멀리 있는데 육안으로 보인다.
28. 시력이 좋은 사람은 육안으로도 달의 분화구가 울퉁불퉁한 것을 충분히 볼 수 있다. 달의 분화구도 육안으로 보이는데 에베레스트가 너무 멀어서 안보인다고?
29. 달의 프록터 분화구 높이는 1.3킬로다. 에베레스트는 8.4킬로다. 에베레스트 높이의 1/6에 불과하고 최소 20배 이상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달의 분화구가 잘만 보이는데 에베레스트가 너무 멀어서 안 보인다는 말을 내가 믿으라고?
30. 지구가 평평하면 지구 가운데 위치와 가장자리 위치의 수평선이 다르게 보여야 한다. 남극과 북극 그리고 극동과 극서는 수평선이 코앞에 붙어있고 평평한 지구 중앙은 수평선이 끔찍하게 멀리 있다. 나라마다 수평선까지의 거리와 모양이 다르게 보인다. 근데 왜 수평선은 다 똑같아?
31. 지구가 납작하면 그 납작함이 보여야 한다. 납작한 평면과 볼록한 구면은 보이는 형태의 차이가 크다. 특히 햇볕이 수면에 비치는 각도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수평선을 처음 볼 때 이토록 납작한 것은 처음 봐서 큰 충격을 받아야 한다. 거울로 실험해보면 알 수 있다. 동근 것은 미술 수업을 할때 공 그리기를 해보면 알 수 있다.
32. 지구가 납작하면 하늘도 납작하다. 우리가 보는 푸른 하늘은 해발고도 10킬로 이하 대류권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는 하늘이 검다. 땅은 평평하고 하늘은 둥글다는 말은 이상하다. 땅이 평평하면 하늘도 대기 때문에 평평해야 한다. 하늘의 둥근 형태는 지구가 둥글어서 대류권이 둥글기 때문이다. 하늘이 둥글다고 생각되는게 땅이 둥근 증거다. 하늘은 땅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33. 옛사람들이 하늘이 둥글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늘 가운데가 높고 지구의 끝단이 가깝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부족민 기준으로 하늘은 1000킬로 쯤 멀리 있고 지구 가장자리는 걸어서 며칠거리로 훨씬 더 가깝게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곡률 때문에 일어난 착시다.
34. 지구가 납작하면 구름도 납작하게 보인다. 구름 높이는 2킬로~7킬로다. 저 멀리 어딘가는 맑을텐데 비가 오더라도 지평선 끝단은 환하게 밝은게 보여야 한다. 구름 사이로 서광이 비치듯이 멀리 수평선 근처 어딘가는 반드시 밝게 빛나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밤에 불빛을 최대 800킬로까지 식별할 수 있으므로 서울은 흐려도 일본하늘과 중국하늘이 맑은게 보인다.
35. 지구가 납작하면 일출과 일몰은 세계 어디든 같은 시각에 일어난다. 위도에 따른 차이는 없는데 경도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게 이상하다. 미국과 한국은 시차가 없어진다.
36. 해안에서 본 수평선은 가깝게 느껴진다. 바닷가 수면 1미터 높이에서는 3.6킬로 거리까지 보인다. 이는 매우 짧은 거리라서 처음 본 사람은 어리둥절해진다. 바다가 반토막이 나 있다. 엥? 이게 뭐야? 내바다 어디갔어? 섬이 없는 동해바다는 특히 단조롭고 수평선이 가깝게 보인다. 바다를 처음 보고 깜짝 놀라지 않았다고? 수평선까지 거리가 너무 짧아서 허망한 느낌이 없었다고? 눈이 삐었냐?
37. 고도 차이에 따른 수평선까지의 거리 차이가 크다. 성인의 눈높이 1.6미터에서는 4.5킬로까지 보인다. 높이 10터인 3층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11킬로까지 보인다. 고작 10미터 정도를 이동했을 뿐인데 시야의 거리가 무려 세 배나 길어진다. 너무 많이 변해서 깜짝 놀란다. 안놀랐냐? 충격먹지 않았나? 눈이 삔 거다.
38. 바람이 부는 날은 수평선 끝단에서 울퉁불퉁한 파도가 보인다. 수평선이 매끈한 선이 아니다. 지구가 평평하면 그딴게 보일 리가 없다. 파도까지 거리가 3킬로 이내라서 파도의 크기 차이가 보이는 것이다. 어부는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바다의 풍속을 알 수 있다.
39. 정면보다 가로 누운 평면이 더 길게 보이므로 정면의 파도와 비스듬히 사선으로 보는 파도의 크기가 작아지는 정도가 다르게 보여야 한다. 시야 양 측면이 더 멀리까지 보이는게 식별되어야 한다. 눈은 촛점이 정면에 형성되므로 카메라로 찍으면 이 점은 더 명확하다.
40. 수평선보다 멀리 있는 섬의 하단은 모두 직선이 된다. 수평선이 섬의 아랫도리를 잘라먹은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섬들의 하단을 보면 이상한게 느껴진다. 안 이상하다고? 눈은 감고 다니냐?
41. 수평선을 기준으로 그 앞의 섬들과 그 뒤의 섬들을 비교하면 이격된 거리가 확연히 느껴진다. 뭔가 이상한게 느껴지는데 그게 수평선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42. 수평선 너머 멀리 있는 섬의 하단은 뿌옇게 흰 선이 그어져 섬이 공중에 뜬 것처럼 보인다. 수평선과 거리가 상당히 이격된 것이다. 위화감이 느껴진다. 바다가 볼록한 부분의 물속을 통과하여 오는 빛 때문에 만들어지는 흰 선일 수 있다.
43. 다도해의 고만고만한 섬들 중에 수평선 뒤의 섬은 높이가 낮은게 느껴진다. 섬 모양은 카오스이론대로 위상동형이고 암석의 성질에 따라 형태가 대략 비슷한데 거리에 따라 섬들의 모양이 다르므로 위화감이 느껴진다. 가까운 거리의 섬들이 더 가파르게 느껴진다. 수평선 너머의 섬들은 대개 옆으로 길게 누워 있다. 왜 가까운 섬은 뾰족하고 먼 섬은 누워있냐고?
44. 오션뷰가 되는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고도차에 따라 수평선이 다르게 보이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 고도의 차이로 지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지구가 너무 작다는 느낌이 들어서 초딩들은 깜짝 놀란다. 지구가 왜 이렇게 작아?
45. 수평선은 시야 정면보다 1도 아래에 있다. 이 정도는 육안으로 충분히 식별된다. 1도 찌그러진게 안 보이는 사람은 웹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 화가도 될 수 없다. 직업을 바꿔야 한다.
46. 땅거미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을 보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학자라면 땅거미를 보고 지구 곡률을 계산할 수 있다. 일몰 후에도 한동안 하늘이 낮처럼 파랗게 보일 때가 있다. 심할 때는 보라색이다. 그게 계절에 따라 다른 것도 이상하게 생각해야 정상이다.
47. 계절에 따라 박명이 지속되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난다. 동지와 하지는 박명이 길고 춘분과 추분은 박명이 짧다. 평평하면 박명이 없다. 백야와 흑야가 있는 나라에 산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48. 지구가 납작하면 달도 납작하다고 생각하는게 상식과 부합한다. 낮달을 관찰하면 달이 통통한게 보인다. 달이 납작하면 태양의 각도에 따른 밝기 변화가 심해진다. 보름달 이외의 달은 희미해서 안 보인다. 납작한 거울은 한 방향으로만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구도 납작하고 달도 납작하면 일년 내내 보름달만 뜨거나 일년 내내 그믐달이 된다. 태양이 달보다 안쪽에 있으면 일년 내내 보름달이고 태양이 달보다 멀리 있으면 달은 보이지 않는다. 달이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면 일년 내내 보름달이다.
49. 비행기에서 보면 지구가 둥근 것이 확연히 보인다. 에베레스트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산에 올라도 충분히 곡률을 느낄 수 있다. 못 느낀다고? 그렇다면 뇌에 문제가 있다. 평평한 지구와 다르다는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50. 지구가 평평하면 비행기에서 보나 지상에서 보나 다른게 없다. 평면지구 반지름 2만킬로에 비해 비행기 고도 1킬로는 2만 분의 1에 지나지 않으므로 거의 차이가 없다. 비행기를 타면 지상에서 본 것과 확연히 다르다.
51. 지구가 평평하면 멀리 있는 서광이 잘 보인다. 서울에 비가 와도 중국은 비가 오지 않으므로 중국하늘이 맑은게 보여야 한다. 구름 뒤로 중국에 햇볕이 쪼이는게 서광으로 보여야 한다. 에베레스트는 높이가 낮아서 안보인다면 서광은 키가 대류권 높이 10킬로다. 적도에서는 최대 18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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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직관력이 뛰어난 동물이지만 직관으로 뭔가 이상한게 위화감이 느껴져도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위화감을 못 느꼈다면? 눈이 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애초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진지하지 않은 자다. 과학인은 아니고 주술인이다. 우리와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대화는 불통이다.
폴리네시아 부족민은 작은 카누가 먼바다를 지나가는 것은 꽤 먼거리에서도 잘 식별하면서도 큰 범선이 연안을 지나가는 것은 보지 못한다. 범선이 매일 섬 앞을 지나갔는데도 백인들이 부족민에게 물어봤더니 서양 범선이 지나간 것을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범선이 수평선 위를 지나가면 구름과 같은 기상현상으로 생각하고 그냥 무시한 것이다. 범선이 내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까.
이상 51가지 증거는 망원경이 없이, 과학적인 검토가 없이 그냥 눈으로 봐서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냥 보면 보이는데 그냥 봐서 안보인다는 원시 부족민들과 내가 대화를 해야겠는가? 지구가 평평하지 않아서 뭔가 이상하다는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였는가? 어릴 때 산 정상에 올라서 아무리 살펴봐도 서울이 안보여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 정도면 대다수 인간들이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게 명백하다. 단서가 포착되어도 살펴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피한다. 뭔가 비뚤어져 있어도 왜 비뚤어졌지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한 것을 보면 이상하다고 말해야 인간이 될 수 있다. 주술인의 그룹에서 과학인의 그룹으로 넘어올 수 있다. 과학인은 문명의 핸들을 잡을 자격이 있는 점에서 봉건인과 다른 신인류다.
생각해야 산다
생각해야 산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할줄 모른다. 생각법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 생각법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게 문제가 된다는 사실조차 거론되지 않는다. 인간들이 도무지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생각도 없이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는가?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아테네에 현명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선언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80억 인류 중에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없다.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말을 똑바로 하면 생각은 스스로 완성된다. 그러려면 낱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국어사전이 잘못되어 있다. 여덟살 때 알아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 발생한 것이다. 존재는 공간을 차지하고 버티므로 현상을 유지한다. 과정을 거쳐 존재는 이루어진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있다. 국어사전은 그 절차를 따라 기술되어야 한다.
간단히 그것은 족보다. 생물이라면 종속과목강문계에 족과 역이 추가되어 9단계다. 국어사전은 발생의 계통을 따라 기술되어야 한다. 그런 규칙이 없이 대충 써놨다. 명사는 그렇다치고 동사는? 아홉살 때 알아냈다. 동사는 변화다. 변화의 자궁을 중심으로 기술해야 한다.
모든 변화는 자궁이 있다. 변화가 날아가는 화살이라면 쏘는 활이 있다. 반드시 모태가 있다.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 동사다. 명사는 동사를 매개할 뿐이다. 언어의 중심은 동사다. 명사는 동사의 위치를 지정한다. 우리가 언어를 말하는 이유는 변화를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름을 말할 때는 성을 앞에 붙인다. 성이 명사라면 이름은 동사다. 성은 수식할 뿐이고 이름이 진짜다. 명사는 파일명에 따라붙는 확장자명과 같다. 우리가 언어를 명사 위주로 착각하는 이유는 동사가 변하기 때문이다. 동사는 변화를 반영하므로 변해서 헷갈리게 한다.
데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치자. 그냥 간다고 하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가 궁금해져서 말로 전달하기가 복잡하다. 반면 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집은 믿을만 하다. 명사는 믿을만 하다. 동사는 시제가 있어서 헷갈리게 한다. 특히 우리말은 동사가 애매하다.
우리말은 동사가 뒤에 붙는데 말하는 도중에 상대방 눈치를 보고 바꿀 수 있다. 집에 가겠다고 말하려다가 슬쩍 바꾼다. '집에 가겠다고 하면 네가 실망하겠기에 2차는 내가 쏘려고. 2차는 노래방 어때?' 이렇게 말을 돌리는 것이다. 동사는 변화무쌍해서 믿을 수 없는 언어다.
존재의 진실은 동사이지만 우리는 편의로 명사 위주의 왜곡된 사고를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동사의 변화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동사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디까지,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 당했는지를 일일이 다 말해줘야 해서 어렵다. 이 문제의 쉬운 해결책이 있다.
메커니즘에 태우면 된다. 그냥 비가 온다고 하면 왜, 어디서, 어떻게, 언제 하며 일일이 캐묻게 되지만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걸쳐 있다고 하면 대충은 알아듣는다. 변화를 조절하는 깔때기가 있고 깔때기 안에서 변화는 일제히 한 방향으로 일어나므로 많은 질문이 줄어든다.
문제는 우리가 메커니즘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구조론이 나온 이유다. 메커니즘에 에너지를 연결하면 시스템이 된다. 구조론은 메커니즘론이자 시스템론이다. 메커니즘은 시스템의 부속품이고 구조는 메커니즘의 부속품이다. 세상은 시스템, 메커니즘, 구조, 변화, 정보다.
우리가 느낀 추위나 더위는 정보다. 그러한 정보가 발생한 것은 변화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거나 더워진 것이 변화다. 변화가 발생한 것은 간섭 때문이다. 간섭이 구조다. 구조론은 간섭론이다. 우주는 간섭에 의해서 작동한다. 간섭을 일으키는 변화의 자궁은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에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문제는 우리가 시스템과 메커니즘과 구조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물체가 땅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중력 때문이다. 중력은 명사다. 우리는 쉽게 명사로 도피하고 더 이상 내막을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중력이 뭐냐고?
중력시스템이 있고, 중력메커니즘이 있고, 중력구조가 있고, 중력작용이 있다. 그냥 중력이 있다고 말하면 터무니없고 구체적으로 중력 시스템과 중력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말해줘야 한다. 중력이 정보라면 그러한 정보를 만들어내는 변화가 있는 것이다.
변화는 물체가 지구와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 전에 변화를 만드는 구조가 있다. 구조는 간섭이다. 간섭은 공유 때문이다. 어떤 둘이 공유하는 하나가 있다. 변화는 지구와 가까운 쪽이 멀리 떨어진 쪽을 이긴 것이다. 이겼다는 것은 공유하는 밸런스의 축을 차지했다는 말이다.
천칭저울에서 대칭된 자원들이 서로 공유하는 축에 가까운 쪽이 외력의 영향을 덜 받고 보다 안정된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월미도 디스코팡팡을 타고 있다면 어느 지점에 있어야 원심력의 영향을 덜 받고 자세가 안정될까? 바이킹은 어느 자리가 덜 무서울까? 축이다.
변화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어서 변화의 방향성이 있다. 언제나 원인이 먼저 가고 결과가 나중 따른다. 시작이 먼저고 끝이 나중이다. 순방향은 흥하고 역방향은 망한다. 이러한 변화의 복잡성 때문에 우리는 변화를 반영하는 동사보다 불변의 명사를 선호한다.
명사 중심의 사고는 잘못된 것이며 동사 중심의 사고는 언어로 전달하기 어렵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보다 선택하기 좋은 음식을 선택한다. 옳은 결정보다 집단이 결정하기 쉬운 것을 결정한다. 정당이 한사코 극단으로 가는 이유는 그게 집단이 합의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내쉬균형과 같다. 올바른 결정은 사전에 상대방과 합의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약속이 지켜진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사전에 담보를 잡아놔야 한다. 카드를 확보해놔야 한다. 그게 없으므로 나쁜 결정을 하게 된다. 국힘은 죄수의 딜레마에 갇힌 죄수의 결정을 하고 있다.
너 죽고 나 죽는 최악의 결정이다. 반대로 이미 담보를 잡아놨다면? 내게 확실한 카드가 있다면? 닫힌계 안에서 상대방이 쓸만한 카드는 뻔하다. 수렁에 빠진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우리는 답을 안다. 조금 더 압박하면 윤석열이 스스로 자폭한다는 것을 이재명은 알거든.
시스템은 외부에 닫힌계가 둘러치고 있다. 내부 자원들은 무조건 중심의 일점을 향한다. 압박의 정도가 결정한다. 느슨하면 법칙을 따르지 않으므로 조금 조여줘야 한다. 빡빡해지면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메커니즘은 내부에 코어가 있다. 코어를 움직이면 전체가 따라온다.
시스템 - 적을 극단으로 몰아 격리하여 고립시키고 압박하라.
메커니즘 - 내부에 강력한 중심을 건설하여 힘을 몰아주라.
구조 - 밸런스의 중심을 찾아 공유하는 축을 이동하라.
변화 - 변화를 지속시키는 관성력을 조절하라.
정보 - 접점의 연결과 단절을 조절하라.
시스템은 외곽을 때리므로 외부에 자기편을 두어야 한다. 메커니즘은 내부에 본부를 만든다. 국제사회가 윤석열정부보다 이재명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시스템의 작동원리다. SNS 세력 내부에 김어준이 강력한 구심점을 만들어낸 것은 변화를 통제하는 메커니즘의 힘이다.
구심점이 움직여 하나의 변화로 둘의 효과를 얻는 것은 구조원리다. 지도자는 환경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태도를 바꿔야 한다. 막연한 변덕은 팀플레이를 깨므로 곤란하고 예측가능해도 선수가 아닌 후수로 밀려서 좋지 않다. 팀의 방향은 예측되나 수순은 숨겨야 고수다.
1. 생각은 언어를 쓴다.
2. 언어는 명사와 동사다.
3. 명사는 매개하고 동사가 진실이다.
4. 동사는 변하므로 말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5. 변화의 메커니즘에 태우면 변화가 예측가능하다.
언어는 명사와 동사다. 동사가 진실이고 명사는 동사를 돕는다. 동사는 복잡하므로 인간은 명사로 사고한다. 명사로 사고하므로 생각이 진도를 빼지 못한다. 명사는 멈추기 때문이다. 움직임을 반영하는 명사는 없는가? 그게 구조와, 메커니즘과, 시스템이다. 생각할 수 있다.
구조의 공유에 따른 간섭원리를 모르고, 메커니즘을 장악하는 축을 모르고, 시스템에 닫힌계의 압박이 걸려 있는 사실을 모른다. 인간은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일단 언어를 모른다. 말할줄 아는 인간을 나는 본적이 없다. 대개 얼버무리고 있다. 뜻이 없는 허어를 남발한다.
천국, 내세, 귀신, 시간여행, 유기농, 성찰, 진정성, 생태 따위는 사실 아무 뜻도 없는 말이다. 광고전술이라면 말이 된다. 사치품을 명품이라고 왜곡하는 것과 같다. 솔직하게 사치품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판매가 줄어든다. 인간이 언어에 약하다. 어감이 괜찮은 광고용 단어다.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글자 아는 사람이 세치 혓바닥을 놀려 말장난으로 사람을 속여먹으려고 교언영색의 흉기를 휘두르는 양심불량에 대해서. 그런 비인간들과는 대화할 수 없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는 넘어올 수 없는 강이 있다. 일반인은 모르되 지식인은 처분된다.
모든 변화는 각운동량 보존으로 설명되는 밸런스의 복원력에 의해 일어난다. 밸런스의 축이 있다. 축이 있다는 것은 자동차에 핸들이 있다는 말과 같다. 핸들을 장악하고 자동차를 통제해야 한다. 능동적으로 변화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주의 철학이 필요하다.
생각해야 한다. 생각은 동사를 추적하여 변화를 따라잡는다. 명사는 불변이므로 추적하지 않는다. 동사가 그냥 동사가 아니고 정보, 변화, 구조의 간섭, 메커니즘의 축, 시스템의 닫힌계 압박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로소 동사 위주의 사고가 가능하게 된다.
생각은 수학처럼 일정한 공식에 대입해 풀어가야 한다. 그냥 머리에 힘 주고 있으며 우연히 생각이 떠오르기를 기대한다면 피곤하다. 천재는 우연한 아이디어로 점수를 따지만 여러분은 천재가 아니다. 달인은 그냥 하지만 여러분은 심진석이 아니므로 좋은 장비가 필요하다.
시스템이 바깥을 차단하고 안으로 조여오면 메커니즘이 내부에 중심을 건설한다. 구조는 밸런스의 원리에 따라 적절히 중심을 이동시킨다. 비로소 변화의 화살은 날아간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정보는 과녁에 박힌 화살이다. 변화는 이미 끝났다. 변화를 추적하기엔 늦었다.
우리의 사고법은 변화가 끝난 다음 '왜?' 하고 추궁하는 귀납적 사고다. 나는 '왜?' 라는 질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는 어린이가 엄마한테 떠넘기는 회피기동이다. 자신을 을의 포지션에 두니 능동이 아닌 수동이다. 왜를 버리고 어떻게로 사고하여 경로를 추적해야 흥한다.
왜? - 명사의 추적.. 범인의 의도를 추적한다. 어른에게 의존하는 어린이의 사고다. 결과 측에서 원인 측을 추궁한다.
어떻게? - 동사의 추적.. 변화가 일어나는 진행과정의 경로를 추적한다. 원인 측에서 진행과정을 파악하여 통제한다.
왜? 라는 말이 인간의 사고를 방해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돌대가리들과 대화를 해야겠는가? 왜는 꾸짖는 말이다. 왜? 왜? 왜? 하고 따지면 상대방은 화를 낸다. Because는 be+cause인데 cause는 꾸짖다의 뜻이다. Question의 까?Que~를 반복하는게 Because다.
짖다는 잦다와 같다. 까의 잦음이 꾸짖다이다. excuse는 밖ex으로 꾸짖어달라는 말이다. 왜?는 꾸짖고 화를 내며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잘못이다. 왜?라는 말이 생각을 방해한다는 것은 느낌으로 그냥 알아야 한다. 어머니나 선생님이 '왜?'라면서 야단치면 답답하지 않은가?
너 왜 그랬니? -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모함을 씌우고 있다. 억울하다. 이런 추궁하는 말은 어린이를 울린다. '왜?'는 '까?'가 변한 말이며 '까?'는 원시인이 동료에게 위험을 알리는 경고의 고함소리다. 위험하다는 전제가 깔린 나쁜 말이다.
나는 생각하는 인간 하나를 본 적이 없다. 만약 생각했다면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 밝혀야 한다. 차가 있다면 내가 벤츠를 타고 왔다고 자랑할 것이다. 차가 없으므로 무슨 차를 타고 왔는지 말하지 않는다. 생각할줄 모르므로 어떤 생각법을 사용했는지 자랑하지 않는다.
끔직하다. 인류 중에 생각할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AI의 밥이 될 것은 뻔하다. 30년 후에도 지구가 멀쩡히 살아서 문명의 항해를 지속하고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하긴 생각도 못하는 밥통들이 살아서 무엇하겠는가마는. 생각은 어렵지 않다. 구조의 공식을 쓰면 된다.
결과 측이 아닌 원인 측에 서야 한다. 귀납추론을 버리고 연역추론으로 갈아타야 한다. 모든 변화의 원인은 같다. 그것은 닫힌계에 압박이 걸린 상태에서 어딘가에 구멍이 난 것이다. 그럴 때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게 된다. 그것이 권력이다. 갑자기 권력이 생기면 일을 한다.
그것이 변화의 원인이다. 모든 변화는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압박이 걸리면 내부에 소용돌이가 만들어진다. 속도가 빨라지면 진공이 발생하여 주변을 잡아당긴다. 일제히 한 방향으로 정렬한다. 그 힘에 떠밀려 미친듯이 달려간다. 국힘이 한사코 극단으로 달려가는 이유다.
국힘은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개독세력이 치고들어와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 균형이 맞지 않아 오른쪽으로 자빠지고 있는 것이다. 극우라는 이념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한동훈이라는 척추가 부러져서 그 방향으로 자빠진 것이다. 자전거는 자빠지는 방향으로 핸들 꺾는다.
바탕우주 간섭우주
하나가 있으면 움직여 둘이 된다. 곤란하다. 둘을 통합시킬 세번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이 있으면 또 네번째가 요구된다. 의사결정 비용 문제다. 에너지 전달 경로 지정 문제다. 존재는 반드시 주소가 있고 족보가 있다. 어떤 둘을 연결시키는 고리가 있다. 상부구조가 있다.
존재는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다. 반작용이 작용을 이겨서 자신을 유지하는데 성공해야 한다. 지면 관통되어 망하고 비기면 교착되어 망한다. 지면 배트가 부러지고 비기면 파울이다. 타자의 배트가 투수의 공을 이겨야 한다. 외력을 이기는 존재의 힘은 어떻게 조달되는가?
에너지의 근원을 추적하면 사건은 수렴방향이 아닌 발산방향이 된다. 의사결정 비용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마이너스 세계관이다. 최초에 하나가 있었다는 전제를 깨야 한다. 하나가 없어야 움직여 둘이 되는 곤란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원자가 없어야 한다.
존재의 진실은 간섭이다. 원자 하나 대신에 둘의 간섭이 있다. 하나가 존재하고 그 하나가 어떤 외적인 이유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둘의 간섭이 여러가지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궁극적으로는 자기와 간섭한다. 간섭은 무한대로 일어나며 구조가 해제되면 간섭은 사라진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은 전부 뇌가 만들어낸 환영이다. 실제로 보는게 아니다. 시신경으로 들어온 데이터를 읽고 똑같은 것을 뇌가 복제한 것이다. 자연에는 소리가 없다. 우리가 귀로 듣는 소리는 파동의 간섭이다. 파동이 안테나를 때린 것이다. 간섭이 있되 바탕은 없다.
1. 바탕빛은 없고 간섭빛은 있다.
2. 바탕 원자는 없고 간섭 구조는 있다.
3. 바탕이 있으면 의사결정 비용의 발산문제가 생긴다.
바탕색은 없고 바탕자가 되는 원자도 없다. 색은 바탕색이 있지만 빛은 바탕빛이 없고 간섭빛이 있다. 우리가 본 모든 것이 간섭이다. 우주는 원자로 충만한게 아니라 간섭으로 충만하다. 바탕이 있다면 바탕자가 몇 개일까? 헥스 코드에 색상 수는 총 1677만 7216가지이다.
이는 소수점 이하를 임의로 자른 것이고 작심하고 풀면 무한대다. 무한대의 원자 종류가 있어야 세상이라는 구조물이 건축된다. 한자 숫자가 5만자라도 백성이 뜻을 펼치기에 부족하다. 우주가 간섭이면 이것을 0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 RGB 색상의 간섭을 제거하면 된다.
세상은 켜고 끌수 있다. 스위치를 끄면 빛은 꺼지고 순수한 무에 이른다. 눈을 뜨면 우주가 창조되고 눈을 감으면 우주가 꺼진다. 창조는 공짜다. 간섭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실시간으로 빛 우주와 소리 우주, 냄새 우주, 맛 우주, 촉각 우주를 창조한다.
뇌가 다양한 우주를 창조하는데 신이 우주를 창조할 수 없다고 우기다니 무슨 빌어먹을 개뼉다귀 같은 소리란 말인가? 인간이 하는 것은 자연도 한다. 뇌가 해석하여 감각우주를 창조하는 원리나 자연우주의 창조원리는 같다. 홀로그램을 쏘면 스크린 없이도 화면이 뜬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인간도 이 문제를 상상해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뇌 안에서 다양한 우주가 펼쳐지고 있다면 자연도 신의 머리속에서 연출된 것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사람의 꿈이 또다른 우주를 만들어낸다면 우리가 보는 세계가 신의 꿈속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원리가 같으면 같다. 인간의 두뇌가 이미 작은 신이다. 복제본이 있는데 어찌 원본이 없겠는가? 꿈이 뇌의 해석이라면 우주도 신의 해석이다. 간섭이 있을 뿐 바탕은 없다. 필름이 있을 뿐 스크린은 없다. 원인 측이 있을 뿐 결과 측은 없다. 에너지가 있을 뿐 물질은 없다.
빅뱅 이전에도 무엇이 있었다. 빅뱅은 커다란 간섭이다. 간섭원이 있었다. 간섭이 일어났고 태엽이 풀리기 시작했다. 시간과 공간의 바늘이 움직였다. 간섭우주>자연우주>생명우주>문명우주까지 왔다. 우주는 구조론의 4단계까지 진행했다. 질에서 입자, 힘, 운동까지 왔다.
5단계 량 우주가 아직 구현되지 않았으므로 인간은 카드를 쥐었다. 인간이 하기에 따라 존재의 마지막 우주가 어떤 모습이 될지 결정된다. 이걸로 신을 압박할 수 있다. 신은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시계바늘을 137억년 전으로 되돌려 디폴트값을 다르게 입력할 수 있다.
전축의 바늘을 옮기듯이 쉽다. 신은 우주를 헛간에 던져버리고 다른 우주를 찍어볼 수 있다. 바탕우주와 간섭우주는 전혀 다른 우주의 두가지 모델이며 우리가 아는 우주는 바탕우주이며 바탕자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원자다. 거기에 필요한 자원들이 플러스 된다.
비용이 무한대로 필요하다. 색깔만 지정해도 1600만 칼라가 넘어 과부하로 컴퓨터가 터진다. 우주는 하나의 컴퓨터다. 바탕우주는 연산이 안되어 뻗었고 진짜는 간섭우주다. 물질은 매듭이며 매듭이 풀리면 무다. 매듭은 자기 자신과 간섭하므로 의사결정 비용이 무시된다.
한 사람이 죽으면 기억은 사라진다. 하나의 우주가 태어나고 사라진다. 우주는 원래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며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생명에 우주가 있다면 자연도 그러하다. 137억년 전에 뭐가 터졌다. 큰 간섭이 일어나 크게 요동쳤다. 맥놀이가 길게 이어졌다.
삼라만상이 펼쳐졌다. 그것은 단지 간섭일 뿐이다. 간섭은 무에서 유를 만든다. 우주의 팽창, 생명의 진화, 문명의 발달은 놀랍지도 않다. 그리고 다음 단계가 아직 남아있으므로 인간이 갑이고 신이 을이다. 도화지와 크레용은 인간 손에 쥐어졌는데 그 다음은 쉽지 않다.
신이 있는 우주
답은 없다. 그러므로 답은 있다. 원자론의 답이 없으므로 구조론의 답이 있는 것이다. 신은 없다. 그러므로 신은 있다. 당신이 가만있는데 제 발로 찾아와서 떠먹여주는 신은 없지만 당신의 옆구리를 찔러 당신이 스스로 행동하도록 당신의 변화를 추동하는 신은 있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은 없지만 당신이 문제를 생산하면 신은 이롭다. 그러므로 당신은 카드를 쓸 수 있다. 신이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은 당신에 의해 존재한다. 머리가 손발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손발은 머리를 위하여 존재한다.
신이 있다 혹은 없다고 말하기 전에 신이 뭐냐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신은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신은 없다. 수염난 할아버지로 알려진 신은 없다. 그런데 신은 있다. 당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반대로 당신을 이용하는 신을 받아들이느냐가 당신의 문제다.
신이 있는 우주모델이 신이 없는 우주모델보다 만들기가 쉽다. 지동설은 간단하고 천동설은 복잡하다. 오컴의 면도날이다. 왜? 에너지는 빠른길을 가기 때문이다. 천동설 모델은 모든 행성에 엔진을 달아줘야 한다. 지동설 모델은 태양 하나에만 엔진을 달아주면 된다.
행성들은 은하 주변을 도는 태양의 운행에 묻어간다. 태양도 은하의 회전에 묻어간다. 이 논리를 계속 밀어붙이면 우주 안의 모든 변화는 결국 빅뱅의 관성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은하의 운동은 빅뱅의 여진에 불과하다. 137억년이 전부 연결된다는 말이다.
무신론자의 입장이 궁금하다. 신이 없다고 믿으면서 왜 물질은 있다고 믿는 걸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 물질이 있다는 증거는 있나? 없다. 양자역학이 증명하고 있다. 물질이 있으면 물질의 체와 용이 있어야 한다.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두개가 있다는게 구조론이다.
자동차는 있지만 운전은 없다?
체는 있지만 용은 없다?
사람은 있지만 생각은 없다?
집은 있지만 길은 없다?
나무는 있지만 생장은 없다?
동물은 있지만 진화는 없다?
물질은 있지만 성질은 없다?
집이 있으면 길도 있어야 한다. 차가 있으면 운전도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있으면 생각도 있어야 한다. 큰게 있으면 작은 것도 있어야 한다. 대칭성 때문이다. 체가 있으면 용도 있다. 체는 원자다. 용은? 구조다. 하드웨어가 있으면 보나마나 소프트웨어도 있는 것이다.
동물이 있으면 진화도 있다. 내가 있으면 나를 낳아준 부모도 있다. 현재가 있는데 과거가 없다는게 말이 될까? 여기서 곤란해진다. 원자와 구조가 동시에 있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시에 있다면? 체와 용이 동시에 있다면? 사람과 생각이 동시에 있다면?
둘을 통일하는 제 3의 것이 또 있어야 한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족보가 있고 존재는 경로가 있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있다. 더 높은 차원에 있다. 같은 차원에는 없다. 신이 있다면 신의 차원에 있는 것이다. 인간 차원에서 찾지마라.
하나가 있으면 둘이 있다. 둘이 있으면 셋이 있다. 그 셋을 통일하는 또다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학생이 있으면 당연히 교사도 있다. 학생도 있고 교사도 있으면 둘을 통일하는 학교도 있다. 학교를 관리하는 교육부도 있어야 한다. 점점 늘어나고 있다. 큰일이다.
감당이 안 된다. 곤란해진다. 이 사태를 어이할꼬? 방향은 확산방향이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는 왜 아무도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느냐다. 나는 질문한다. 왜 아무도 나에 앞서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지? 그들은 뇌가 없다는 사실을 들켰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뢰할 수 없다. 생각을 안하고 사는 사람과 내가 대화를 해야 하나? 무신론자는 사람이 아니다. 어른의 대화상대가 아니다. 생각해야 사람이다. 신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가 있으면 둘이 되어 점점 늘어나는 발산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 곤란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쪼개는 것이다. 긴 한가닥의 실이 있다. 실이 꼬여서 매듭이 생긴다. 풀면 다시 긴 한가닥의 실로 돌아간다. 즉 우주는 원자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구조가 잘게 쪼개진 것이다. 전체 총량은 보존된다.
신은 권력이다. 신이 있는 이유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영향력이다. 신이 없으면 도덕도 사라지고 이성도 사라진다. 합리성이라는게 근거가 없어진다. 옳다 그르다의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 살인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왜? 나라는 것은 곧 나의 인권이다.
인권이 있으므로 내가 있는 것이다. 권력이 있기 때문에 인권이 있다.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즉 나의 결정이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옳다, 그르다 그리고 선하다, 악하다는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전부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이 신이다. 물론 그 신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신은 아니다. 신이 수염난 남자 늙은이라는 생각은 웃긴다. 그럼 모건 프리먼이 신이냐? 신은 우주보다 나이가 많다. 오래 묵은 것은 때가 묻어서 검다. 137억년 살다보면 얼굴이 점점 검어진다.
모건 프리먼이네. 그런 유치한 상상은 버리고 진지해지자. 신이 인간의 형상을 닮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소프트웨어는 형태가 없다. 신은 존재의 소프트웨어다. 애초에 형상이라는 것은 우주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개에 불과하다. 둘의 약속 신호 같은 거다.
우주 안에 형상이 없으므로 신은 형상이 없다. 성별도 없다. 나이도 없다. 신의 나이가 몇 살이냐는 물음은 레코드 판의 바늘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것은 의미없다. 바늘은 옮겨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이라는 컴퓨터를 구성하는 1바이트의 정보다.
신은 아직 인간의 최대치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카드 하나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인간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게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빅뱅에서 우주로, 우주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문명으로 전진했다. 그 다음은? 신을 궁금하게 만들 수 있다.
빅뱅>우주>생명>문명>신은 그 다음에 완성된다. 신은 미완성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에게 갑질할 수 있다. 간 큰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해도 신은 좋아한다는 사실을. 신은 인간을 키우지만 동시에 인간은 신을 키운다.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우주는 한 점에서 나왔다. 한 점에 다 들어간다. 물질이 없다는 증거다. 물질이 없으므로 신이 있다. 물질의 질은 바탕이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도화지가 있었다. 색을 칠하기 전에 바탕색이 있었다. 숫자를 쓰기 전에 괄호로 표시된 빈 칸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
색은 바탕색이 있고 그것은 흰색이다. 빛은 바탕빛이 없고 합성빛이 있을 뿐이다. 그 합성된 것을 분리하면 순수한 무로 돌아간다. 바탕은 지울 수 없다. 빛은 지울 수 있다. 스위치를 끄면 된다. 이쯤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감이 왔을 것이다. 존재는 무로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