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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특강 (입다의 서원)
사사기 11:29-40
오늘은 사사기에 나오는 입다 사사 이야기를 본문으로 삼고 특별한 강의을 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 평상시 예배 때보다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릴 수 있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다면 끝까지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Ⅰ. 사사기 전체 문맥 속에서 살핌
사사기는 잘 엮어진 통일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 사사기의 내용을 살피보려고 하면 먼저 사사기 전체 본문에 대한 일관성 있는 그림부터 그려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사기의 전체적인 본문 속에서 각각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말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먼저 사사기의 전체적인 구조를 살펴봅니다.
사사기는 서론과 본론과 결론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한 편의 논문과도 같습니다. 이런 사사기의 구조를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서론 | 본론 | 결론 |
| 1:1-3:6 | 3:7-16:31 | 17:1-21:25 |
더 세분해서 보면 사사기는 두 개의 서론과 두 개의 결론을 가진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 서 론 | 결 론 | ||
| 1:1-2:5 | 2:6-3:6 | 17:1-18:31 | 19:1-21:25 |
| 정복실패 | 언약의 버림 | 종교적 혼란 | 도덕적 부패 |
사사기의 서론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 실패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림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의 결론부분에서는 사사시대 사람들의 종교적 혼란과 도덕적 혼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서론과 결론 부분이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칭을 이루고 있는 그 가운데에 본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론 부분에는 이스라엘의 배교와 배교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징계의 고통 중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우셔서 구원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배교와 하나님의 구원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스라엘의 배교 | 하나님의 구원 |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삿3:7)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삿3:9) |
|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삿3:12) |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삿3:15) |
|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삿4:1) | 랍바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삿4:4) |
|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삿6:1) |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 |
|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삿10:6)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 하였나이다.(삿10:10. 11:29) |
|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삿13:1) | 구원을 요청하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
이런 사시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정복에 실패하고, 또 정복한 가나안 땅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실패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기를 읽으면서 그 이유가 언약 백성으로 부름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 백성다운 삶을 살지 못하였다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바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삶에 빠져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사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사사시대는 배교의 시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자기 생각과 자기 소견에 옳다고 생각되는대로 살았던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였다는 것입니다.
Ⅱ. 근접 문맥의 살핌
1. 여호와께서 세우신 사사들
사사기의 본론 부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이런 사사시대에 ‘여호와의 신이 임했다’라는 표현이 다섯 번이나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사시대 속에 다섯 번이나 개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다섯 번의 표현 중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옷니엘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전쟁의 스토리나 다른 어떤 스토리도 없이 하나님의 개입이 간략한 설명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이후에 나오는 다른 사사들의 이야기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옷니엘의 이야기는 그 다음에 나오는 사사들 이야기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웃니엘 다음에 여호와의 신이 임했다고 설명되는 사사는 기드온, 아비멜렉, 입다, 삼손입니다. 이들 중에 악신이 임한 것은 아비멜렉 뿐이고 그 나머지 모두에게는 여호와의 신이 임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여호와의 신은 전쟁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 부여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사사들의 전형 : 옷니엘(여호와의 신)
a. 여호와의 신 : 기드온
b. 악한 신 : 아비멜렉
b'. 여호와의 신 : 입다
a'. 여호와의 신 : 삼손
이 구조 속에서 보면 먼저 기드온과 삼손의 이야기가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계시자가 여호와임을 확인하려는 몇 번의 시험과 불꽃이 단에서부터 나오는 신비한 제사 이후에 여호와의 신이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삼손도 여호와의 사자가 몇 번 나타나 자신을 계시하고 난 후 불꽃이 단에서 나오는 신비한 제사를 드린 후에 삼손이 태어나게 됩니다.
이 기드온과 삼손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드온과 삼손에게 임한 여호와의 신은 이스라엘의 적을 섬멸하는 것과 관련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과 입다가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상황의 급반전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아비멜렉과 그를 지원하였던 세겜 사람들 간에 급반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악한 신의 역사로 연합되어 있던 이 둘 사이가 이간 되고 급기야는 서로 배반하고 죽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가하면 입다 이야기는 암몬 왕과 입씨름하던 입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함으로 군사력만 믿고 함부로 입을 놀리던 암몬 왕에 대한 입다의 급반전이 여호와의 신에 의해 일어나게 됩니다.
이 반전부분에서는 악한 신의 역사와 여호와의 신의 역사가 대립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a와 a'가 대칭을 이루고 있고 b와 b'가 대칭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사기의 구조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이런 구조를 아는 것은 사사기의 개별 사건들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의 살핍을 통해 우리는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입다 사사의 이야기는 아비멜렉의 이야기와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먼저 나오고 있는 아비멜렉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아비멜렉은 첩의 아들로서 스스로 언약 공동체를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그 친척 세겜 사람들과 스스로 언약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세운 언약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삼 년 만에 악한 신이 임함으로 그 언약은 깨어지고 맙니다.
입다도 동일하게 첩의 아들로 태어나 그 형제들에 의해 언약 공동체 밖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과 언약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입다는 나중에 자신이 맺었던 언약을 버리고 여호와의 언약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입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도표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 비 멜 렉 | 입 다 |
| a.첩의 아들 b. 공동체 밖으로 나감 c. 악한 신이 임함 | a. 첩의 아들 b. 공동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옴 c. 여호와의 신이 임함 |
여기서 우리는 언약을 버리고 나간 아비멜렉과 언약을 찾아 돌아온 입다의 운명이 서로 달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내용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언약 공동체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에게는 악한 신이 기다리는 모진 운명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약 공동체를 다시 찾아 들어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그런 사람들의 삶을 감동하고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2. 입다 이야기
입다 사사의 이야기는 사사기 본론에 해당되는 부분 중에서 가장 범죄가 극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스라엘에서는 마치 우상 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10:6)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섬기고 있던 신들은 이스라엘이 그 당시 접할 수 있고 섬길 수 있었던 거의 모든 신들이 총 망라되고 있습니다.
a.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a'.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이렇게 우상으로 가득 찬 곳은 가나안에 살고 있었던 어느 민족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언약 백성들이 살고 있었던 땅 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두운 상황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의 배경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증한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겼을 뿐 아니라 이방 우상들을 섬기기 위해 여호와를 버렸고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남편을 버리고 동네 남자들과 잠자리를 하고 있는 그런 여인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이런 여인을 아내로 인정할 남편이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의 상처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 상처받고 계셨을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 백성으로 삼고 있는 군주나 혹은 이스라엘을 신부로 삼고 있는 신랑이 되시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마치 음행하는 여인같이 이방 우상들과 행음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인해 그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던가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10:13)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가 얼마나 컸으면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이 말씀은 ‘이제 나는 더 이상 너희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제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다.’ ‘우리의 결혼 관계는 이제 끝났다.’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관계까지 부정하고 계시는 이 하나님의 마음의 상처를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2) 입다의 상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사 입다도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형제들에게 상처를 입은 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입다는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천한 출생으로 인해 그 가족을 떠나 멀리서 홀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감추고 싶은 비천한 출생으로 인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고 결국에는 가족을 떠나 이방 땅에 홀로 거하게 됩니다.
사사기 11:13절입니다.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니라.’ 입다는 자신의 가족 공동체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입다는 마음의 큰 상처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Ⅲ. 사사기 11:29-40의 주석
1. 구조
오늘 다루게 될 본문은 입다 이야기의 절정 부분입니다.
성경 본문 말씀이 주는 교훈을 올바르게 알 수 있게 해 주는데에는 구조분석 방법이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사사기 11:29-40절 말씀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a. 서원의 배경(29)
b. 입다의 서원과 돌아옴(30-34)
c. 서원한 것을 인하여 괴로워하는 입다(35) :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c'. 서원한 것을 지키라는 딸을 권고(36) :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b’. 딸의 돌아옴과 입다가 서원을 행함(37-39)
a’ 서원의 이후 결과 (40)
이런 구조의 살핌을 통해 우리는 입다 이야기의 중심 주제가 전쟁의 이야기가 아니고 서원의 실행의 문제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2. 문예적 주해
1) 서원의 배경 (29)
서원의 배경이 되는 본문은 암몬 왕과 입다가 길르앗 땅의 영유권을 놓고 긴 논쟁이 있은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암몬 왕은 입다의 역사적인 설명 듣기를 거절하였고,(11:12-28) 입다는 암몬 왕의 거절의 결과를 가지고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라고 하며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그 결과 입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한 것은 여호와께서 입다를 구원자로 인정하신 것이고 나아가 이 전쟁에서 하나님이 입다와 함께 하시겠다는 표시였습니다.
입다는 암몬 왕의 반응을 전해 듣고 즉시 자기 스스로 광적인 흥분에 휩싸여 전쟁에 나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신에 이끌려서 길르앗과 므낫세와 길르앗 미스베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입다가 이런 지역을 거쳐 나간 행위에 사용된 동사(아바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이스라엘이 18년 동안 암몬 자손에게 당하는 학대와 괴로움의 시간이 끝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여호와의 신의 감동을 받은 입다가 암몬자손에게 이르러 싸울 것이고, 여호와께서 암몬자손을 입다와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입다의 서원과 돌아옴(30-34)
그런데 이스라엘과 암몬 자손의 전쟁과 그 전쟁에 대한 승리에 기사는 잠시 뒤로 미루어지고, 갑작스럽게 입다의 서원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입다는 11:30-31을 통해 길게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입다의 서원이 있고 난 후에 11:32에서 전쟁의 승리에 대한 진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입다가 서원과 입다의 전쟁에서의 승리가 상호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입다의 승리와 입다의 서원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입다의 서원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입다가 서원한 배경은 무엇인가?
성경은 입다가 여호와의 신에 이끌리어 여러 곳으로 갔던 행위가 있은 후에 서원을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에서 우리는 입다가 서원을 하게 된 것은 여러 마을로 나아갔던 행위와 연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입다는 암몬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려고 여러 마을들을 건너가고 건너갔지만 입다를 도와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와서 시비를 걸때 그들에게 한 입다의 말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나는 너희가 나를 도와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더라.‘(12:2-3)
이 말씀은 입다가 계속해서 여러 마을들을 다녀 가면서 군사를 모집했으나 사람들이 무관심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입다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자손은 암몬에게 18년이나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암몬과 싸우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10:18) 이런 상황 속에서 입다는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없다면 결코 이 전쟁에서의 승리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입다는 서원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입다의 서원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런 입다의 서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본문을 세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입다가 강한 적 앞에 서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입다는 이 전쟁에서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이 이 전쟁에 함께해 주셔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if절을 사용하여 서원을 하게 됩니다.(30)
“주께서 과연 암몬자손을 내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우리는 입다의 갑작스럽고 조건적인 서원을 의아해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입다의 입장에서는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다는 장로들에게 말할 때도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11:9) 라고 말하였습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분이시면
과연 주께서 암몸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이 두 본문을 대조해서 살펴보면 우리는 전쟁에 임하면서 한 입다의 서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입다가 11:9에서 서원한 태도는 신앙적인 태도였습니다. 그러므로 11:30절의 서원도 그의 신앙적인 행위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입다가 지금 신앙적인 모습으로 서원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자기 집에서 나와서 그를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린다고 말함으로 입다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제물로 삼을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입다는 그 대상의 선택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입다가 신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입다의 서원을 완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입다가 한 서원의 내용에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이 서원을 통해 당시 암몬 자손들이 헌신의 상징으로 드렸던 비 신앙적인 인신제사를 그도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입다에게는 이렇게 신앙적인 모습과 불 신앙적인 모습이 함께 보이고 있습니다.
입다의 양면적인 모습은 입다를 평가하는 관점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입다는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출생은 창녀의 아들이었습니다. 입다의 신분적인 약점은 그가 장성했을 때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여 형제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입다에 대한 상이한 두 평가를 통해 입다가 다소 이중적인 인물이고 그 인격에 결점이 있는 인물이라는 암시를 받고 있습니다.
셋째, 입다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중심적인 주제는?
입다 이야기의 중심은 암몬자손과의 전쟁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암몬 자손과 전쟁이 중심적인 문제라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을 때 입다의 이야기도 끝이 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이야기는 서원에 의해서 전쟁에서 서원의 문제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입다의 서원 이야기의 살핌을 통해 입다의 신앙과 입다의 인격적인 결점의 가능성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이야기가 이것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목적으로 기록되었다면 입다의 서원이야기는 여기서 종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의 서원이야기는 여기서 종결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구조화 시켜보면 이렇게 됩니다.
a.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사자를 보내어 한 말.(11:12-28)
b. 여호와의 신의 감동을 전쟁터로 나아감(11:29)
c. 입다의 서원(11:30-31)
b'.입다의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의 승리(11:32-33)
a'. 입다의 서원에 관한 이야기(11:34-40)
이상의 구조분석을 통해 살펴본 바로는 입다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전쟁의 이야기라는 성격을 띠고 있으나 그 중심적인 내용은 서원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여 전쟁에 승리하게 하셨으나 이것이 이야기의 핵심일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이 암몬 자손에게 구원을 받는 것 이상의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구조분석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구조분석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은 입다의 승리 이야기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표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바로 입다에게 그가 한 서원의 이행을 촉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이렇게 입다의 승리와 입다의 서원의 이행 사이에 언어적인 다리를 놓음으로 전쟁의 승리를 입다의 서원의 이행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30절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절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를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4절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사사기는 이렇게 입다의 서원과 입다의 승리를 연결 지으면서 입다가 반드시 서원을 이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입다를 맞으러 나온 것은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뛰어나와 영접하였습니다. 그 딸은 전쟁의 승리를 축하할 때 사용하던 타악기를 가지고 나와서, 종교의식에서 사용되던 한 자리를 반복하여 도는 춤을 추면서 아버지의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여기서 선명한 그림과 같이 극적으로 대조되는 두 사람을 보게 됩니다.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여 기쁨으로 소고 치며 춤을 추는 입다의 딸과, 비통으로 일그러진 입다의 대조적인 표정입니다.
그녀는 입다에게 유일한 외동딸이었으며 그녀 외에는 아들 형제도 딸의 형제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자기 목숨과 자기 가족의 목숨을 보호했다는 큰 기쁨 뒤에 사랑하는 딸을 포기해야 하는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입다와 암몬 왕의 전쟁 기록에서는 입다와 입다를 따르는 무리들이 누구였는지 또 그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입다를 따르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기록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전쟁을 하게 되었는지,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하게 되었는지 등 전쟁의 결말에 이르는 전 과정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암몬 왕과의 논쟁에 대해서 상세하고 자세히 기록했던 것과 대조됩니다. 이런 말씀들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본문의 기록목적이 전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입다의 이야기는 비록 암몬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되어 있지만,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전쟁의 이야기가 아니며, 전쟁의 이야기는 다만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입다 이야기의 뼈대는 입다의 서원과 서원의 시행에 있다는 것을 잘보여주고 있습니다.
3) 서원을 인해 괴로워하는 입다와 서원을 지키라는 딸을 권고(35-36)
‘입다가 이를 보고’ 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는 이 장면은 관점의 전환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입니다. 하나는 입다의 관점이고 하나는 독자의 관점입니다.
입다는 서원한 사람이 자신 - 내 딸, 나로, 나를, 내가 - 이라고 하는 강조를 통해 자신은 자기 처지만을 생각하는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입다가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 본문은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입다의 관점에 서게 하여 독자들이 입다와 그 딸의 대화 속에 깊숙이 빠져 들게 합니다.
이런 장치를 통해 집으로 돌아와 외동딸을 만나게 된 입다의 당시 심정을 독자들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입다에게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이었다.” 입다가 딸을 보자 “옷을 찢으며”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 하나로다.” 라고 하는 입다의 슬픔과 절망에 독자는 동감하게 됩니다.
이런 언급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서원의 준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의 전개를 통해 독자들은 입다가 과연 그 서원한 것을 준수할까? 준수하지 아니할까? 라는 입다의 서원 준수 여부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교차대조법을 통해 다음과 같이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a.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b.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라
b'.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a'.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이 말씀에서 입다는 주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향하여 입은 연 것은 돌이킬 수 없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의 잘못된 서원으로 인해 딸을 번제로 바쳐야 하는 아버지의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입다의 이 말 속에서 외동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쳐야 했던 아브라함의 슬픔을 보게 되며, 더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독생 성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셔야 했던 성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입다의 태도에 입다의 딸은 입다가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 입다의 말을 반복함으로서 입다의 말을 인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입다가 서원한 말을 자신이 순종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라고 하며 그녀는 아버지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하는 한 가지 이유는 추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우리는 이런 입다의 딸을 통해 모리아 산에서 영문도 모른채 아버지에 의해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로 바쳐져야 했던 이삭의 마음을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또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 자원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셔야했던 예수님의 희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입다를 통해 아브라함을 보고 성부 하나님을 보게 되며, 입다의 딸을 통해 이삭을 보고 우리 주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4) 딸의 돌아옴과 입다가 서원을 행함(11:37-39)
입다의 견해는 하나님이 입다에게 약속한 것을 허락하신 것 같이 자신도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다의 의견에 입다의 딸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딸은 자신에게 단 한 가지 부탁만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입다는 그것을 허락합니다. 이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a.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b. 나를 두 달만 버려두소서
c.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d.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a. 가라 하고
b.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c.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d.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여기서는 입다의 딸의 요구가 이어지고, 거기에 대한 입다의 반응과 입다의 딸의 행위가 상호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입다의 딸은 두 달간의 시간만 주어 자기 임의대로 행하게 해 주어서 처녀로 죽어야 하는(처녀 됨을 인해) 생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다가 허락하자 동무들과 함께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했다고 합니다.
본문은 입다의 딸의 요구를 입다가 들어주었고, 허락을 받은 입다의 딸이 실제로 그 요구대로 행한 것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입다가 그 서원을 일방적으로 이행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입다의 딸의 철저한 동의 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혹자는 입다가 그 딸의 요구에 짧은 말로 ‘가라’라고 말한 것이, 딸의 절박한 현실과 대조적으로 보면 자칫 잔인하게 까지 보이기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입다의 딸의 요청과 대구를 이루고 있는 입다의 말로서, 입다의 무정함을 드러내는 말로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입다가 무정함과 이기심으로 그 딸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다면 그는 그 딸에게 ‘약속된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덧붙여야 했을 것이나 입다는 단지 ‘가라’라고만 말하고 그 딸에게 어떤 강제력도 행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입다의 딸이 처녀로 죽는 것을 애곡하기 위하여 입다에게 두 달간의 시간을 요청한 것은 억울하게 죽게 되었기 때문에 요청한 것이 아니고 처녀로 죽게 되었기 때문에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처녀로 죽는다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고 또 자식도 없이 죽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입다의 딸의 요청이지만 입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만약 입다가 그 딸을 서원대로 번제로 드리게 되면 그는 무자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입다의 딸이 애곡해야 할 정도로 슬픈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은 동시에 입다가 당하게 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입다가 그 딸의 요구를 따라 서원을 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 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입다의 이야기는 소 사사 이야기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a. 10:3-5 사사 야일(아들 삼십)
b. 10:6-12:7 입다(무남독녀)
a'. 12:8-10 사사 입산(삼십,(며느리 삼십), 딸 삼십)
소 사사 이야기의 특징 중의 하나는 입다와 대조적으로 자녀가 많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인 배치 또한 입다가 그 딸을 여호와께 드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구절에서는 비록 입다가 결점이 많은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입다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여 그의 딸을 희생시키려고 할 정도로 잔인한 인물은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딸을 보내고 제한된 기한인 두 달을 지내는 아버지 입다의 심정을 생각하여 보세요.
입다는 자신의 서원 때문에 딸을 번제로 드려야만 하는 괴로운 심정을 가지고 자기가 어리석은 서원을 하나님께 한 것을 인해 수도 없이 괴로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 입으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었기에 서원을 이행하는 것 말고 다른 해결 방안은 없었습니다.
입다와 대조적으로 입다의 딸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그녀는 자기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만 아버지 입다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고 하나님은 그 서원대로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음으로 인해 그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슬픈 처지를 인해 애곡하였을 것입니다.
입다의 딸은 아버지에게 약속한 대로 두 달 만에 돌아왔습니다.
입다는 그가 하나님께 맹세한 맹세대로 그 딸에게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특징은 입다가 서원을 실행한 내용은 결코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퍽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입다의 딸의 죽음에 대한 내용은 원문에 없습니다. 이것을 통해 부분적으로는 인신 제사가 옳은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기록을 삭제함으로 입다를 변호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입다는 하나님에 의해 사사로 부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지만 그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비록 인간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면이 보이지만 입다의 서원은 신앙에서 나온 것이고, 여호와를 향한 서원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언약에 신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다에 대해 히브리서는 그 독자들이 본 받아야 할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 입다를 위해 본문은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입다가 서원을 준수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반복해서 암시함으로 그의 신앙심을 변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리하면 본문은 입다의 서원의 내용은 문제가 있다고 하여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다의 신앙심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이중적인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입다의 딸 이야기는 이후 이스라엘의 관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관습이라는 이 말에는 깎아서 새기거나 조각하는 동사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런 입다의 딸을 해도하는 이 일은 그 자손이 준수해야 하는 법이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5) 서원의 이후 결과 (40)
이 부분은 후기로서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이런 규례에 따라 해마다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해 나흘 씩 애곡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여인들이 해마나 4일씩 입다의 딸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노래를 지어 되풀이하며 기념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통해 다시는 입다의 서원과 같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동시에 교훈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문맥에서 그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에 불성실하여 각종 우상 숭배에 빠졌으며, 그 형제(입다)를 내어쫒는 악을 행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으며 이들은 아비멜렉과 같이 하나님에 의해 버림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기생의 아들인 입다는 그 형제들에게 내어쫓겨 언약 백성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는 언약 백성으로 다시 회복됩니다. 그는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아래서 한 순간의 실수로 서원을 드리게 되는데 이 서원이 그 가정에 가져다 준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경우에도 언약백성의 신실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말씀은 언약에 신실한 입다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람들에게 언약의 백성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사기를 기록하였다고 추정되는 사무엘시대 이스라엘의 상황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세운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이 인간적인 많은 장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에 순종치 아니하므로 하나님은 그를 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뛰어난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나 또한 흠이 많았던 다윗의 경우에는 그 언약을 영원히 폐하지 않고 다윗계보를 통해 그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다윗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 나아가 예수님 당시나 초대교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 주해를 토대로 한 간략한 설교를 하며 오늘 예배를 마치려고 합니다.
Ⅳ. 성경 주해에 근거한 설교 : 입다의 서원
우리는 종종 이런 사람을 만납니다.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개인이나 가족 혹은 직장에서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이런 어려움에서 구해주시기만 하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서원을 하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동일한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이스라엘의 사사 입다 입니다. 그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암몬 사람들의 침략을 받는 위기 상황을 맞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그들을 다스리는 머리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입다는 먼저 이스라엘의 통치자로서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암몬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두 민족 사이의 갈등을 풀어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암몬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요단 강 동편 땅이 자기들의 땅이라고 하면서 우세한 군사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강요 하였습니다.
이런 암몬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입다는 동족들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훈련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리보아도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가능성은 적어보였습니다.
입다는 자기의 어려운 현실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고 보고 우리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이 암몬 사람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다면 자신도 그에 상응하는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그 서원의 내용은 11:30-31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이것은 자신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주시면 자기의 승리를 축하하면서 그를 영접하려고 집에서 처음 나오는 그를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입다는 잘못된 서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이방인들의 풍습을 따라 서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리고 이런 서원은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신18:9-11)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의 기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를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누구였습니까? 입다가 사랑하는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입다는 전쟁의 승리와 들뜸은 곧 사라지고 딸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그 마음의 무너짐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입다와 그 외동딸과의 긴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이들이 가졌던 믿음과 아픔을 동시에 보게됩니다.
a. 입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라
b. 입다의 딸.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a’.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입다는 여호와께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면 자기도 합당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되 자기 집에서 처음 맞이하러 나오는 자를 여호와께 번제로 드린다고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기 때문에 그 서원한 것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하며 괴로워합니다.
이런 입다에게 그의 딸은 아버지 때문에 죽게 되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입을 여셨으니 믿음으로 서원을 한 그 서원을 지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서원한 것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승리케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약속하신 그 서원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당시 그 장소에 우리가 있었다거나 우리가 입다나 혹은 그 딸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경솔한 서원으로 자기 외동딸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아버지 입다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옷을 찢으며 그 슬픔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입다가 전쟁을 앞두고 급한 마음에 서원을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서원대로 자기 민족과 가정을 구원하게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도 하나님에게 한 서원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는 입다의 딸의 심정을 헤아려보십시오.
신앙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 입다와 그 딸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슬픈 대화가 입다 이야기의 중심이며 절정입니다.
입다는 이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머리가 된 사람입니다. 그 행동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입다 가정의 슬픈 이야기는 소문을 따라 이스라엘 방방곡곡에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것인가 하는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이익에 반하면 언제 내가 신앙을 가졌었냐 하고 순식간에 언약을 저버리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현대 신앙인들에게나 이것이 동일하게 큰 관심사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입다는 과연 서원한대로 행할 것인가?
입다의 딸은 그 아버지의 서원을 인정하고 따를 것인가?
이 일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입다와 그 딸은 그 당시 사람들이 자신에게 불리해지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쉽게 버리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이방신들을 섬기는 삶을 살았던 것과 달리(삿10:6)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했습니다.(삿11:39) 신앙을 버리고 타협하거나 외곡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살수 있었을까요?
무엇이 이들을 그 당시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했을까요? 그 해답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 안에 나오고 있습니다.
3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라’
입다는 자신이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입다의 이해, 하나님을 향한 입다의 믿음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입다가 알고 있었던 하나님, 입다가 믿고 있었던 하나님은 그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시고 아브라함의 자손된 이스라엘을 그 백성 삼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비록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역사 가운데 신실하셨던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거듭 거듭 범죄 하는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언약에 신실하셔서 늘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삿11:12-27)
지금은 입다 자신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입다는 길르앗이 낳은 기생의 자식이었습니다. 그의 천한 신분으로 인해 그는 형제들에게 버림 받았고 이방 땅으로 가서 나그네로 거하게 됩니다.
이렇게 입다는 언약 백성 밖에서 살았습니다.
이런 입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는 언약 백성으로 받아들여졌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입다는 자기가 비록 가족과 형제들에게 사람에게서는 버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고 계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의지하였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입다 와의 언약에서 신실하셨습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입다 자신도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입다를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의 용사라고 증거 하고 있습니다.(히 11:32)
이것은 입다의 딸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입다의 딸은 여기에 머무르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개인과 자기 가족의 구원을 넘어서는 고백을 합니다. 36절을 우리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아비의 서원에 신실하셔서 민족적인 구원을 이루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서원의 당사자인 그 아버지도 하나님과의 서원에 성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 아버지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희생적인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오늘 이 시대 속에서 기대할 수 있습니까?
이런 신앙을 오늘 우리 자녀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는 당신이 혼자 한 서원이니까 당신이 책임지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자녀는 나는 동의하지도 않았고 알지도 못하는 서원이니 서원한 아버지가 알아서 하세요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천사를 통해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다. 네가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야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라는 말을 전해 듣고 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의 계집 종이니 주의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며 자신의 생애를 다 포기하고 메시야의 어머니로 사는 삶, 하나님이 약속해 오신 언약의 성취를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이 마리아의 희생과 헌신으로 메시야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이런 희생을 각오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이전의 성도들은 믿음으로 수 많은 희생을 해 왔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믿음이 참되다면 반드시 희생과 헌신이 따라오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의 희생과 헌신이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아멘입니까?
이 입다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입다의 서원이 옳은 서원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따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입다의 서원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기 않으시는 서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잘못된 서원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 혹은 그래도 지켜야 한다라는 것을 따져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입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서원한 당사자인 입다의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서원한 그 서원대로 승리를 주신 하나님 앞에 자신도 신실한 서원의 이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입다의 믿음입니다.
입다의 딸은 어떻습니까?
자신은 아버지 입다의 서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다의 딸은 어떤 믿음의 고백을 합니까? 아버지의 서원한대로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승리를 주셨으니 아버지도 그 한 서원을 이행하시라고 하면서, 자신을 아버지가 서원한대로 하나님께 드릴 번제물로 내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들을 통해 이것이 참 믿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입다가 순종하기 어려운 처지였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에 순종했듯이 너희들도 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삶은 결코 쉬운 삶은 아닙니다.
특히 요즘 같이 죄악된 시대에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순교적인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비록 내게 물질적인 손해를 가져다 준다고 해도, 생활과 삶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가져다 주게 되더라도, 비록 학교에서 F학점을 맞아 과락을 하게 될지라도, 아니면 가까운 친구들이 다 내 곁에서 떠나가게 되고, 사람들이 우리를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게 되고, 심지어 부인이 남편이 우리의 행동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자녀들이 엄마나 아빠를 이해해 주지 않고 실망하고 외면하고 돌아서게 될 지라도, 그리고 성도들이 그런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를 마치 이방인을 보는 것 같이 대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데 성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치루어야 하는 그 어떤 어려움도 입다와 그 딸이 당한 어려움보다 크지 않을 것입니다. 입다는 자기의 사랑하는 외동딸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그 어려운 일에도 순종했습니다. 입다의 딸은 자기의 청춘을 다 내어드리는 희생과 헌신의 결단을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그 사랑하는 독자이며 외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독생 성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던 것과 비교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입다의 이런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 히브리서에서는 입다를 믿음의 용사라고 불러 주셨습니다.(히11:32)
입다는 비록 그 서원이 잘못된 서원의 결과이었지만 그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기 때문에 자신도 하나님께 한 서원에 신실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불신과 불신앙이 팽배하던 시대에 입다는 그 서원한 말을 지켜행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그 신실함과 믿음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이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한 가지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서 말씀을 마칠까합니다.
그렇다면 입다의 이야기는 슬픔으로 끝마치고 마는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정직하고 신실하게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밀스러운 위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 인격을 바쳐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결코 그냥 버려두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행7:56)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습니까? 그를 위해 어떤 것을 예비하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신약의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기꺼이 바쳤던 스데반을 하나님은 어떻게 대우하셨습니까? 스데반은 하나님이 주신 성령이 충만하여 소리칩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렸습니다.’ ‘보십시오. 인자가 하나님의 오른 편에 서서 맞이하고 계십니다.’라고 그는 감격해서 외쳤습니다. 스데반에게는 목숨을 아끼는 두려움이나 순교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저는 입다와 그 딸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히13:8) 입다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그 딸을 번제로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입다의 딸도 처녀로 죽는 것을 억울해 하며 죽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입다는 딸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에게 서원한 약속을 지켰을 것입니다. 입다의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처녀로 죽어야 하는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믿음의 행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천국에서 하나님에 의해 주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비록 우리에게 아픔이고 괴로움을 주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게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우리 모두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을 통해, 우리들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입다 임을 입다의 딸임을 세상에 보여주며 살아갈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믿음이 입다처럼 입다의 딸처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임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런 믿음의 삶에 함께 해 주시고 도우시며 은혜와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늘 누리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한 주간의 삶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말세에 깨어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