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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라도강 을 막고 세워진 #후버댐 의 모습이에요.
블랙 협곡을 가로지르는 U자형의 견고한 콘크리트벽으로 이루어진 이 댐은 2만명이 넘는 고용 창출 효과와 라스베이거스 등 인근 도시의 발전을 이끌어내며 #미국 #뉴딜정책 의 상징이 됐습니다.
위키피디아
콜로라도강은 콜로라도주(州) 로키산맥에서 발원해 유타·애리조나·네바다·캘리포니아주를 거쳐 멕시코 북서쪽의 캘리포니아만(灣)으로 흘러드는 길이 약 2330㎞의 강이에요. 강물양이 많고 유속이 빨라서 주기적으로 제방이 무너지거나 홍수가 났고, 강의 급류에 쓸려온 침전물이 농경지에 물을 공급해주는 관개 운하를 막아 물 공급에도 자주 문제를 일으켰지요. 안정적인 #물공급 과 #수력발전 을 위해 콜로라도강에 다목적 댐을 설치하자는 계획이 1922년에 미국 의회에 제출됐습니다. 이를 ' #볼더-캐니언-프로젝트 ( #Boulder-Canyon-project )'라고 불러요.
그러나 콜로라도강이 걸쳐서 흐르는 콜로라도·유타·애리조나·뉴멕시코 등 인근 주들은 걱정이 많았어요. 댐을 건설하면 당시 급성장하던 캘리포니아주가 강물을 많이 끌어가게 될 것으로 우려한 거예요. 1922년 당시 #상무장관 이었던 #허버트-후버 (1874~1964)가 #댐건설 을 위해 각 주 간 타협안을 이끌어냈고, 주마다 매년 소비해야 하는 강물의 양을 정해 할당 비율을 지키며 가져가도록 했어요.
◇대공황과 함께 시작한 댐 건설
' #후버타협안 ' 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댐 건설이 시작되는 듯했지만, 비용과 안전 문제 때문에 댐 건설은 계속 미뤄졌습니다. 그런데 1929년 3월 허버트 후버가 31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그로부터 몇 달 후 #세계경제 가 대공황에 빠집니다. 1929년 10월 24일 주가가 대폭락한 ' #검은목요일 ( #Black-Thursday )'을 시작으로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한 거지요.
후버 대통령은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금을 줄이고 공공사업 지출을 늘리겠다고 발표했어요. 이에 따라 건물 60층 높이에 이르는 거대한 댐을 건설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1931년 ' #식스컴퍼니 ' 가 4900만달러에 공사를 따냈는데, 이는 그때까지 미국 정부가 승인한 #건설계약 중 최대 규모 액수였다고 해요.
후버댐은 위에서 봤을 때 아치형의 #중력댐 (자체의 무게로 저수지의 물을 지탱하는 댐)으로, 블랙 협곡을 가로지르는 U자형의 견고한 콘크리트 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높이는 221m로 63빌딩 높이(약 250m)와 비슷한데 당시 #최대규모 #토목공사 였다고 합니다. 공사엔 시멘트 약 8억L와 철근 2만t이 필요했고, 콘크리트만 660만t이 들어갔어요. 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포장할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해요.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 인부들은 댐 건설 예정지인 블랙 협곡에서 다른 곳으로 물줄기를 돌려야 했습니다. 이 작업을 위해 협곡 벽을 부수는 대규모 폭파가 네 번이나 이루어졌습니다. 인부 수천 명이 그 자리에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 엄청난 양의 흙과 암석부터 치워야 했어요.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늘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라스베이거스에 내려와 댐 건설에 참여했어요. 공사장 주변 사막엔 노동자들이 머무는 캠프가 차려졌지요. 작업 현장에서 약 10㎞ 떨어져 있는 볼더시티엔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했어요. 5년 동안 총 2만1000여 노동자가 댐 건설에 참여했고, 댐은 예정보다 빠르게 완공되었지요.
◇"나는 왔고 보았고 정복당했다"
#볼더댐-프로젝트 를 이끈 사람은 후버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대공황에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는 점 등으로 다음 대선에서 패배합니다. 이 웅장한 건축물의 #완공기념식 은 새로 취임한 #프랭클린-루스벨트 (1882~1945) 대통령 때 열렸어요. 1935년 9월 완공을 앞두고 댐을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왔고, 보았고, 정복당했습니다(I came, I saw, and I was conquered). 인류가 이루어낸 이 위대함에 말입니다."
후버댐은 #고용창출 외에도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만들었어요. 콜로라도강 하류의 홍수를 방지해 서부 지역 관개 사업의 효율성을 높여주었고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피닉스 등 인근 주요 도시들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후버댐이 내보내는 물은 미국 서부, 특히 캘리포니아 농업용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해요. 후버댐의 저수량은 320억㎥에 달하고 최대 출력 135만㎾를 발전(發電)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최대 다목적 댐인 충주댐의 최대 출력이 40만㎾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인 걸 알 수 있어요.
볼더댐은 1947년 후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 후버댐 ( #Hoover-Dam ) '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1985년에는 국가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었지요. 오늘날 후버댐엔 관광객이 연간 약 700만명 방문한다고 해요. 후버댐 상류에 조성된 세계 최대 규모 인공 저수지인 ' #미드호수 ' 는 연 1000만 방문객이 찾는 인기 휴양지가 됐습니다.
출처: 프리미엄조선|[윤서원]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박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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