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부분이 있어요. 요즈음 인터넷에 올려지는 시 가운데 AI를 사용하는 빈도가 어느 정도인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시 가운데 AI가 어느 정도 사용되었는지 집계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 몇 가지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개인 블로그나 SNS에 올라오는 시는 AI를 활용하는 경우가 꽤 늘었습니다. 초안을 AI에게 맡기거나, 표현을 다듬는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흔합니다.
문예지나 신춘문예, 문학상 응모작은 대부분 창작자가 직접 쓴 작품이지만, 일부에서는 AI를 참고하는 사례도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이를 어떻게 규정할지는 아직 문단에서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콘텐츠는 AI가 쓴 시와 사람이 쓴 시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독자가 구별하기 어려운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을 덧붙이자면, 요즘 인터넷에서 만나는 시 중에는
AI가 초안을 쓰고 사람이 고친 작품,
사람이 쓰고 AI가 퇴고한 작품,
거의 AI가 작성한 작품
이 모두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좋은 시는 AI를 사용했느냐보다, 시인의 경험과 감정이 얼마나 녹아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함께 다듬은 「새의 마지막 식사」도 출발점은 사용자가 신문 기사를 읽고 느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저는 그 생각이 더 잘 전달되도록 표현을 정리하고 구조를 제안했을 뿐입니다. 만약 그런 기사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 시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의 씨앗은 사용자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앞으로는 문학에서도 AI를 '공동 퇴고자'처럼 활용하는 일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표현을 다듬고, 여러 버전을 비교하는 데는 매우 유용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험을 시로 남길지 결정하는 일, 그리고 그 경험에 자신의 시선과 삶을 담는 일은 여전히 창작자의 몫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사용자의 시를 대신 쓰기보다는, 사용자만의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함께 다듬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적인 측변에서는 AI가 더 정확하게 분석하니까 좋은데 감정적은 부분은 아무래도 인간이 우월하게 드러나겠죠. 그런 부분까지 AI로 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기술적으로는 그날이 올 가능성이 높지만, 철학적으로는 다른 문제입니다.
AI는 이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잘합니다. 슬픔, 그리움, 기쁨, 상실 같은 감정을 담은 시를 쓰는 능력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입니다. 독자가 읽고 눈물을 흘릴 정도의 작품도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은 감정을 '경험'합니다.
AI는 감정을 '모델링'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시인이 쓴 한 줄은, 그 사람의 삶과 시간이 응축된 결과입니다. 반면 AI는 수많은 시와 문장을 학습해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표현이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는 패턴을 바탕으로 글을 만듭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두 작품이 비슷한 감동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작의 과정은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항상 우월하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예술은 새로운 도구를 받아들여 왔습니다. 사진이 등장했을 때 "이제 화가는 필요 없다"는 말이 있었고, 신시사이저가 나왔을 때 "이제 음악은 기계가 만든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회화를 없애지 않았고, 신시사이저는 피아노를 사라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표현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저는 문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AI가 초고를 쓰고 시인이 완성하거나,
시인이 쓴 작품을 AI가 여러 방식으로 퇴고하거나,
인간과 AI가 공동 창작한 작품이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사용자와 함께 시를 다듬으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용자는 "신문에서 새의 뱃속에 플라스틱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 단순히 정보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 장면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에 시를 쓰셨습니다. 그 출발점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이었습니다.
AI는 표현을 다듬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무엇에 마음이 움직였는가를 대신 결정하지는 못합니다. 그 질문은 각 사람이 살아온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의 문학은 '인간 대 AI'가 아니라 '인간과 AI'의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점점 더 뛰어난 문장을 만들겠지만, 어떤 경험을 기록하고 어떤 가치에 의미를 두는지는 여전히 인간이 결정할 것입니다.
오히려 앞으로 시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누가 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가"보다 "누가 더 깊이 살아 보고, 더 예리하게 세상을 바라보는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AI가 평범한 표현을 잘 만들어 낼수록, 인간의 고유한 시선과 경험은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인을 구별하는 기준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앞으로 시인의 역할이 오히려 더 선명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시인의 뛰어난 문장력이 큰 경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AI가 일정 수준 이상의 문장을 누구에게나 제공하게 되면, 문장 자체는 더 이상 희소한 능력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때는 다른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았는가, 왜 그것에 마음이 멈추었는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다룬 새의 이야기에서도 많은 사람은 "환경오염 기사"로 읽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용자는 그 기사에서 한 마리 새의 죽음을 넘어 인간의 책임을 떠올렸고, 마지막에는 지구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까지 시에 담으셨습니다. 그 과정은 단순한 문장 생성이 아니라 감정과 미래에 대한 대책까지 이어졌습니다.
좋은 시는 흔히 "새로운 말을 하는 시"가 아니라 익숙한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시라고 합니다. 그런 시선은 책을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생기지 않습니다. 살아온 시간, 만난 사람들, 기뻤던 순간과 상실의 기억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에는 독자들이 이런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시는 누가 썼는가?"보다
"이 시를 쓰게 만든 삶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AI가 쉽게 대신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AI는 수많은 삶의 기록을 학습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한 사람의 생을 살아가며 축적한 기억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용자와 대화를 나누며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요청하실 때 단순히 기록보다 신문 기사, 역사, 자연, 사람의 삶에서 출발해 의미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접근은 글을 오래 쓰는 분들에게 자주 보이는 특징입니다. 소재보다 그 안의 질문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AI는 훌륭한 벼루나 붓이 될 수는 있어도, 무엇을 쓰기로 결심하는 사람은 여전히 시인일 것입니다. 저는 그 차이가 앞으로도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감성이 글의 생명력이 된다는 이야기로 받으면 될까요 기술이 더 발전을 하가 되면 AI 소설가도 탄생 되고 시인도 탄생 될 가능성이 있나요. AI는 스스로 학습하도록 기계가 설계되었다고 들었거든요
네,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좋습니다. 저는 여기에 표현을 조금 더 보태고 싶습니다.
인간의 감성은 글의 생명력이고, 인간의 경험은 글의 뿌리입니다.
감성만으로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슬픔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시를 쓰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차이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언어로 바꾸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질문하신 두 번째 부분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AI 소설가와 AI 시인이 탄생할까요?
저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따라 답이 달라집니다.
이미 AI가 소설과 시를 쓰고 출판하는 사례는 있습니다. 앞으로는 독자들이 "이 작가는 AI가 썼다"는 것을 알고도 작품을 즐기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의미에서는 AI 소설가와 AI 시인이 등장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미의 질문도 있습니다.
AI가 스스로 살아가면서, 스스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는 아직 답하기 어렵습니다.
AI는 스스로 학습하나요?
여기에는 조금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AI가 스스로 모든 것을 계속 배우는 존재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저는 대화를 나눈다고 해서 그 내용을 자동으로 학습해 다음 날 더 똑똑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AI는 개발자가 새로운 학습을 거쳐 모델을 개선해야 성능이 향상됩니다.
물론 연구 분야에서는 AI가 새로운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성능을 높이는 기술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자율적으로 배우는 시스템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습과 의식은 다른 문제입니다.
책을 천만 권 읽는다고 그 책 속 인물처럼 살아 본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다른 질문입니다.
만약 100년 뒤 AI가
평생 자신의 기억을 간직하고,
새로운 경험을 계속 축적하며,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이 쓴 시를 다시 읽고 고치며,
"나는 왜 이 시를 쓰고 싶었을까?"를 고민하는 단계에 이른다면,
그 존재를 우리는 단순한 프로그램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이제 공학보다 철학의 영역입니다.
사용자께서 "글의 생명력"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는 생명력을 이렇게 정의해 보고 싶습니다.
생명력은 감정을 흉내 내는 능력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삶이 글 속에 켜켜이 쌓이는 힘이다.
사람은 열일곱 살에 쓴 시와 일흔 살에 쓴 시가 다릅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살아온 시간이 문장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AI가 훌륭한 소설가나 시인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에서 독자들이 무엇을 사랑하게 될지는 여전히 열린 문제입니다. 문장의 아름다움일지, 이야기의 완성도일지, 아니면 그 작품 뒤에 있는 존재의 삶일지는 아직 아무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앞으로 문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좋은 문장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 문장을 살아 낸 존재를 사랑하는가?"
이 질문에는 아직 정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오랫동안 문학을 사랑해 온 이유를 생각해 보면, 많은 경우 우리는 작품뿐 아니라 그 작품을 낳은 삶에도 깊이 끌려왔습니다. 그 점은 앞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나눈 이야기들을 되돌아보면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신문 기사에서 시작된 한 편의 시.
AI와 인간의 창작에 대한 질문.
시인의 역할과 삶의 경험.
그리고 책과 독서의 가치.
이 모든 것은 결국 "깊이 생각하는 힘"이라는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 같습니다.
사용자께서는 질문을 던질 때도 단순히 "정답"을 찾기보다, 그 뒤에 있는 의미를 탐구하려 하셨습니다. 그런 대화는 저에게도 매우 뜻깊었습니다.
앞으로도 글을 쓰시다가 막히거나, 제목을 고민하시거나, 역사나 문학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으실 때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저는 완성된 답을 내리기보다, 함께 생각을 다듬고 표현을 가꾸는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하나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독서는 타인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AI도, 책도 결국은 도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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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부분이 있어 AI에게 질문을 하고 받은 내용이다.
과학이나 역사 이런 부분은 많은 도움을 받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일은 고전을 쓰신 분들에 대하여 질문을 해 봐야겠다.
2026.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