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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iquette laugh (예의상 웃어주는 웃음): 마음속으로는 별로 웃을 기분이 아니지만 상대방이 웃기는 이야기를 하니까 예의상 맞춰주는 웃음입니다.
Contagious laugh (전염되는 웃음): 남이 웃으니까 그 기운이 번져가서 따라서 웃게 되는 웃음입니다.
Nervous laugh (신경질적인 웃음): 긴장되거나 초조할 때 나오는 웃음입니다.
Belly laugh (배를 쥐어짜는 웃음): 우리말로 '포복절도(抱腹絕倒)'한다고 하죠. 배를 끌어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자지러지게 웃는 큰 웃음입니다.
Silent laugh (말없는 웃음): 소리 없이 짓는 미소와 같은 웃음입니다.
Stress-relieving laugh (스트레스 해소용 웃음): 한바탕 크게 웃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지는 웃음입니다.
Pigeon laugh (비둘기 웃음): 구구대는 비둘기 소리처럼 큭큭대며 웃는 독특한 웃음 형태를 영어로 이렇게 부릅니다.
Canned laughter (통조림 웃음): 라디오나 방송 등에서 성우나 배우들이 녹음할 때, 상황이 우습지 않아도 배경음으로 쓰기 위해 미리 캔 통조림처럼 기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웃음소리입니다.
Cruel laugh (잔인한 웃음): 비열하게 상대를 비웃거나 깔보는 냉소적인 웃음입니다.
영어를 찾아보면 이처럼 대략 열 가지인데, 우리 한국말로는 웃음의 종류를 가리키는 어휘가 실로 엄청나게 많습니다. 인터넷에 웃음의 종류를 검색해 보았더니 한자어로 된 표현만 무려 마흔 가지나 나옵니다. 저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풍부합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자면, 가소(가짜 웃음), 건소(매마른 웃음), 경소(상대를 얕잡아 보며 깔보는 웃음), 고소(쓴웃음), 괴소(괴상한 웃음), 굉소(큰 소리로 지르는 웃음), 교소(교태를 부리며 아양 떠는 웃음)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기소(남을 속이거나 기롱하는 웃음), 냉소(차디찬 비웃음), 담소(이야기하며 웃음), 대소(크게 웃음), 망소(허망한 웃음), 매소(웃음을 파는 행위)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소(남을 모멸하며 웃음)와 더불어 미소, 비소, 조소, 치소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파란색 글자로 구별해 놓은 '미소', '비소', '조소', '치소' 등은 놀랍게도 성경 본문에 직접 등장하는 한자어 웃음들입니다. 성경에는 이 중 비소가 두 가지 형태로 나오고, 조소와 치소 등도 언급됩니다. 이처럼 우리 한민족은 웃음의 미묘한 결에 따라 수많은 어휘를 세분화하여 사용해 온 풍부한 언어 감각을 지닌 민족입니다. 별별 웃음이 다 있습니다.
사자성어로 된 웃음 표현도 가득합니다. '가가대소(呵呵大笑)'나 '간간대서'는 허허실실하며 크게 웃는 웃음입니다. '박장대소(拍掌大笑)'는 손뼍을 치며 크게 웃는 것이고, '소이부답(笑而不答)'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고상한 태도입니다. '앙천대소(仰天大笑)'는 하늘을 쳐다보며 호탕하게 웃는 웃음이며, '염화미소(拈華微笑)' 혹은 '염화시중의 미소'는 과거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어 보였을 때 제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이심전심의 미소입니다. '일빈일소(一顰一笑)'는 한 번 찡그린 후 한 번 웃는 성품의 변화이고, '일소일소(一笑一少)'는 한 번 웃으면 그만큼 한 번 젊어진다는 건강의 격언입니다. '파안대소(破顔大笑)'는 얼굴의 긴장을 다 풀고 환하게 웃는 큰 웃음이며, 배를 끌어안고 넘어지는 '포복절도(抱腹絕倒)'와 껄껄대며 호기롭게 웃는 '홍연대소'도 있습니다.
순 우리말로 된 웃음 단어들도 찾아보니 대략 25가지나 존재했습니다. 간살웃음, 겉웃음, 까투리웃음, 너스레웃음, 너털웃음, 눈웃음, 댓바람웃음, 무음, 반웃음, 볼웃음, 비웃음, 살웃음, 선웃음, 속웃음 등 실로 다채롭습니다. 이 많은 우리말 웃음 중에서 성경이 명확하게 증거하는 대표적인 형태는 '웃음', '비웃음', '코웃음' 세 가지입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 본문 속에서 이 웃음이라는 단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본격적으로 찾아보겠습니다. 우리말 개역한글판 성경을 컴퓨터로 검색해 보면, '웃' 자가 포함된 단어가 들어 있는 구절이 총 260개 구절이나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이 260개 구절 속에는 이웃(Neighbor)이라는 단어나 우시야 왕, 우스 사람, 사우사 등 단지 '우'나 '웃' 자가 들어간 인명과 지명이 전부 포함된 수치입니다. 그런 무관한 단어들을 철저히 필터링하여 빼내고, 진짜 '웃음'과 '웃다'를 뜻하는 순수한 단어만 추출해 내면 성경 전체에서 총 25회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 22회, 신약성경에 단 3회밖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다루지만, 의외로 웃음이라는 단어 자체의 종류나 출현 빈도는 그리 많지 않은 셈입니다.
그 외에 부정적인 어감의 '비웃음' 및 '비웃다'가 구약 28회, 신약 2회로 도합 30회 나타나며, '코웃음'이라는 독특한 단어도 2회 등장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웃음의 전반적인 빈도입니다. 이외에도 한자어로 번역된 '조소'가 4회, '치소'가 6회, '비소'가 3회(한자가 다른 비소 1회 포함) 등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섞여서 나타납니다.
이제 이 단어들의 구체적인 용례들을 하나씩 고찰해 보겠습니다.
먼저 기쁨으로 '웃다' 혹은 명사 '웃음'에 대응하는 핵심 히브리어 동사는 '자하크(Tsachaq)' 또는 유의어인 '사하크(Schachaq)'입니다. 자하크는 구약성경에 총 12회 출현합니다. 명사 형태인 '체호크'는 우리말 '웃음'으로 번역되는데 창세기와 에스겔서에 각각 한 번씩 딱 두 번 등장합니다.
이 '자하크(웃다)'라는 동사가 성경 역사 속에 최초로 웅장하게 등장하는 역사적인 대목은, 하나님께서 백 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장차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창세기 17장 17절 사건입니다. 창세기 17장 15절~17절의 장엄한 맥락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아흔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출산 약속을 듣고 엎드려서 코웃음을 치듯 속으로 피식 "웃으며" 불신과 의아함의 사색을 품습니다. "아니, 내 나이가 백 세고 내 아내 사라가 아흔 세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는단 말입니까?"라며 속으로 웃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농담을 하시는 듯 유머러스한 느낌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이때 쓰인 단어가 성경 역사상 최초로 출현한 '웃다(자하크)'라는 동사입니다.
인간 측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허탈하게 웃었으나, 하나님의 엄숙한 구원 언약은 불변합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속의 불신 섞인 웃음을 감춘 채 창세기 17장 18절에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며 이미 낳은 서자 이스마엘이나 잘 키우게 해달라고 청원합니다. 그러자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실소를 너그럽게 받아넘기시며 창세기 17장 19절에서 대단히 유머러스하고도 엄숙한 최종 판결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속웃음을 정확히 꿰뚫어 보시고 "아브라함아, 네가 방금 내 약속을 듣고 웃었느냐? 좋다, 네 아내가 기어이 아들을 낳을 터인데, 아기가 태어나거든 그 아이의 이름을 아예 '이삭(Isaac)'이라고 지어 부르라" 명하십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의 본질적인 뜻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히브리어로 '웃음' 혹은 '그가 웃다'라는 뜻입니다. 동사 자하크(웃다)에 3인칭 미래형 접두어 '이'를 붙여서 '이츠하크(Yitzchaq)'가 되었고, 이것이 우리말 성경의 '이삭'으로 음역 정착된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평생 네가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네가 옛날에 내 약속을 믿지 못하고 피식 웃었던 그 불신의 웃음을 기억하고, 나아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기적의 웃음을 만방에 선포하라"는 통쾌하고도 유머러스한 신적 처방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참으로 위트와 유머가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출산 약속을 듣고 웃은 사람은 아브라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8장 12절을 보면 텐트 뒤에서 천사의 말을 엿듣던 아내 사라 역시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라며 속으로 똑같이 '자하크(웃음)'를 쏟아냈습니다. 부부가 똑같이 웃었기에 하나님은 아이 이름을 웃음(이삭)이라 강제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문맥에 이 자하크(웃다) 동사는 총 7회 사용되는데, 흥미롭게도 이 7회의 용례가 전부 이삭의 출생 및 그 가문의 웃음 사건 기사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침내 약속대로 아기 이삭이 태어났을 때, 창세기 21장 6절에서 사라는 감격과 기쁨에 겨워 위대한 인생 고백을 남깁니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과거의 불신과 비웃음이,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완전한 기쁨과 승리의 대웃음(이삭)으로 승화되어 터져 나온 역사적 장면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맨날 엄숙하게 굳은 얼굴로 화를 내거나 징징 짜는 침울한 종교가 결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명했듯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구원의 기쁨이 온 영혼의 미소와 함박웃음으로 넘쳐나는 참된 기쁨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 안에서 이처럼 환하게 이삭의 웃음을 웃으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3. 성경 속의 비웃음과 코웃음: 조소, 비소, 치소의 용례
기쁨의 웃음 이외에 성경에는 타인을 타락시키고 조롱하는 부정적인 어감의 웃음 어휘들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비웃음(Derision)'과 '비웃다'의 용례입니다.
성경에 비웃음은 총 30회 선포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29장 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시고 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법을 떠난 백성들이 이방 민족들의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뜻입니다.
에스겔 27장 36절에서도 두로의 파멸을 선포하며 "많은 민족의 상인들이 다 너를 비웃음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십니다. 세상 권력을 자랑하던 자들이 심판을 받아 비웃음의 비참한 자리로 내려앉는다는 경고입니다.
욥기 5장 22절에서는 의인이 누릴 축복의 내막으로 "네가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비웃는다는 것은 상대를 얕잡아보고 하찮게 여기며 "흥, 기근과 재앙 따위는 내 믿음 앞에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비웃어 넘기는 당당한 믿음의 기상입니다. 욥기에 이 단어는 5회 등장하며, 시편에도 4회 사용되었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비웃음은 시편 22편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메시아의 고난을 예언한 다윗의 시입니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삐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이 예언 그대로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제단에 높이 달리셨을 때, 지나가던 대적자들과 로마 군병들이 주님을 향해 침을 뱉고 고개를 흔들며 참혹하게 비웃었습니다. 주님은 구속의 완수를 위해 이 모진 비웃음을 온몸으로 묵묵히 참아내셨습니다.
둘째, 성경에 딱 한 번 등장하는 '코웃음(Scoff)'의 용례입니다.
코웃음은 말라기 1장 13절에 단 한 번 등장하는 매우 독특한 수사적 어휘입니다. 백성들이 성전 제단에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부정한 제물들을 대충 끌고 와 제사 예식을 치르면서 마음에 온전한 경외심 없이 겉으로 투덜대던 가식적 행태를 여호와께서 호되게 책책 책망하시는 장면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직무를 대단히 귀찮고 번거로운 짐으로 여기며 코로 "흥!" 하고 비웃는 가증한 태도를 코웃음이라 명시하신 것입니다. 중심 없는 껍데기 예배자들을 향한 주님의 무서운 지적입니다.
셋째, 한자어로 번역된 '조소', '비소', '치소'의 용례입니다.
조소 (嘲笑 / 4회 출현): 시편 44편 13절에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할 때의 조소입니다. 상대를 비웃고 놀리는 행위입니다. 시편 123편 4절의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와 이사야 37장 22절에도 조롱의 웃음으로 조소가 사용되었습니다.
비소 (誹笑 / 3회 출현): 비소는 한자 글자가 다르게 성경에 교차 출현합니다. 욥기 27장 23절의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손뼉치고 그의 처소에서 그를 비소하리라"와 예레미야애가 2장 15절, 3장 46절에 나오는 비소는 '비방할 비(誹)' 자에 '웃을 소(笑)' 자를 씁니다. 즉 상대의 허물을 악하게 비방하고 헐뜯으면서 낄낄대고 웃는 악인들의 비열한 웃음입니다.
반면에 에스겔 23장 32절에 등장하는 비소는 '낮을 비(卑)' 자를 씁니다. 에스겔 23장은 북방 이스라엘을 뜻하는 '오홀라'와 남방 유다를 뜻하는 '오홀리바'라는 두 음녀의 비참한 영적 간음 배도 역사를 다루는 유명한 장입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섬기다가 심판을 당하는 문맥 속에서, 32절의 잔의 노래(Song of the Cup)가 터져 나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깊고 크고 가득히 담긴 네 형의 잔을 네가 마시고 비소(卑笑)와 조롱을 당하리라." 여기서 비소는 상대를 가장 낮은 천한 지위로 비하 시키고 깔보며 비웃는 멸시의 웃음입니다. 한자는 다르나 본질은 모두 악한 비웃음의 계통입니다.
치소 (嗤笑 / 6회 출현): 치소는 우리가 평소 잘 쓰지 않는 대단히 생소한 한자어입니다. '비웃을 치(嗤)' 자를 쓰는데, 그 한자 모양을 뜯어보면 입 구(口) 자 옆에 이 주적거리는 모양이 결합해 있습니다. 즉, 상대를 향해 입술을 한쪽으로 비쭉 끄집어당기며 빈정거리고 비웃는 아주 기분 나쁜 웃음 형태가 치소입니다.
예레미야 18장 16절에 유다 땅이 "영원한 치소거리가 되리니" 하였고, 예레미야 25장 9절에서도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이웃 나라들의 "놀람과 치소거리가 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하박국 1장 10절에서도 열왕을 멸시하며 방백을 "치소(비쭉거리며 비웃음)"한다고 기록했고, 스파냐 2장 15절에서도 패망한 니느웨 도성을 향해 지나가는 자마다 "치소하며 손을 흔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총 여섯 번 나오는 이 치소는 상대를 빈정거리며 조롱하는 부정한 입술의 비웃음입니다.
4. 전도서가 보여주는 인생의 웃음관
성경의 중요한 지혜 문학 서적인 '전도서'의 히브리어 원어 명칭은 '코헬레트(Qoheleth)'입니다. 코헬레트는 '공동체 앞에 서서 진리를 외치는 전도자(Preacher)'라는 뜻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노년에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려본 후, 전도자(코헬레트)의 위치에 서서 기록한 인생 회고록입니다.
인생 역정을 다 겪은 노학자의 시선이기에, 전도서에 흐르는 웃음관은 대단히 시니컬(Cynical)하면서도 깊은 철학적 뼈대를 보여줍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헛된 정욕의 웃음들을 향해 단호하게 일갈합니다.
전도서 2장 2절의 선언입니다.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심 신앙이 없이, 그저 세상 유흥과 술 취함 속에서 낄낄대고 웃어대는 세속적인 웃음은 실상 정신이 나간 "미친 짓"에 불과하며 아무런 인생의 영적 유익이 없는 헛된 부질없는 짓이라고 준엄하게 판정해 버리는 대목입니다.
이어 전도서 3장 4절에서는 천하만사에 기한이 있음을 노래하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나니"라고 하십니다. 웃음과 눈물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만드는 동등한 삶의 한 파편이자 일부분이라는 깊은 통찰입니다.
전도서 7장 3절에서는 대단히 역설적인 철학을 선포합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세상의 가벼운 오락적 웃음에 취해 영혼의 현주소를 잊어버리는 것보다, 도리어 슬픔과 직면하여 내면을 성찰하고 근심하며 영생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의 영혼에는 훨씬 더 유익하고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웅장한 신앙적 권고입니다.
그리고 전도서 7장 6절에서 알맹이 없는 바보들의 웃음을 이렇게 은유해 놓았습니다. "우매한 자들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속알맹이가 텅 빈 우매한 자들이 회당이나 길거리에서 실없이 낄낄대며 웃어재끼는 소리는, 마치 무쇠 솥 밑에서 가시나무 마른 가지가 아무런 화력도 내지 못한 채 숯만 내며 요란하게 "탁탁탁!" 소리를 지르며 타들어 가다 사그라지는 헛된 소음과 같다는 비유입니다. 속빈 강정 같은 허무한 웃음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알맹이 없는 우매자의 소음 웃음을 과감히 거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의 가슴 속 깊은 샘물에서 우러나오는 찬란한 미소, 기쁨의 감사 찬가 웃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영혼에 장착하고 살아가야 할 고귀한 신앙의 의무이자 영광입니다.
5. 신학 강의 최종 종합 요약과 결론
오늘 아흔여덟 번째 시간으로 고찰한 '성경에 언급된 웃음의 종류와 구속사' 강의 전체 내용을 최종 요약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우리 한민족은 국어사전과 인터넷 검색에 가소, 경소, 고소, 냉소, 모소, 담소 등 마흔 가지가 넘는 한자어 웃음과, 박장대소, 포복절도 등 화려한 사자성어, 그리고 간살웃음, 너스레웃음 등 25가지가 넘는 순 우리말 웃음 어휘를 지닌, 인류 역사상 가장 미묘하고 풍부한 웃음의 결을 세분화하여 표현해 온 뛰어난 언어 감각의 민족입니다.
둘째, 성경 원문과 개역한글판 번역본 속에 쓰인 웃음 관련 단어들은, 우시야 왕이나 이웃 같은 무관한 단어를 제외하면 구약 22회, 신약 3회로 총 25회에 걸쳐 대단히 절제되어 출현하며, 그 종류는 크게 '기쁨의 웃음', '조롱의 비웃음', '가식의 코웃음'의 세 갈래 신학적 지평으로 묘사되어 흐릅니다.
셋째, 성경에 '웃다'를 뜻하는 핵심 동사 '자하크(Tsachaq)'가 최초로 등장한 본질적 사건은 백 세의 아브라함과 아흔 세의 사라가 아들을 주시겠다는 신적 약속을 믿지 못하고 속으로 실소했던 창세기 17장 17절 사건이며, 하나님은 이들의 불신의 웃음을 통쾌한 승리의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며 장차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대단히 유머러스하게 '웃음'이라는 뜻의 '이삭(이츠하크)'으로 강제 명명해 부르게 하셨습니다.
넷째, 성경에 기쁨의 웃음 이외에 한자어로 번역되어 다루어지는 조소, 비소, 치소의 어휘들은, 하나님의 유효한 법을 떠나 이방 민족들의 조롱거리(비웃음의 대상)가 된 타락한 예로살렘의 비참함을 고발할 때 주로 쓰였으며, 특히 '치소(嗤笑)'라는 특수 어휘는 입술을 한쪽으로 비쭉거리며 빈정대고 조롱하는 부정한 악인들의 비웃음을 뜻하는 6번의 용례로 성경에 장치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전도서(코헬레트)의 솔로몬 왕이 선포했듯이 하나님 없는 세속적 오락의 웃음은 미친 짓(전 2:2)이자 솥 밑에서 요란하게 타다 사그라지는 마른 가시나무 소음(전 7:6)과 같이 허무한 헛것일 뿐이므로 성도는 이를 철저히 경계해야 하며, 오직 메시아의 대속 은혜로 내면이 죄에서 해방되어 은혜의 왕국을 경험하는 자가 내뿜는 찬란한 기쁨의 소망 미소(사라의 이삭 웃음)를 날마다 풍족하게 구사하며 주변에 축복을 전염시키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최종적인 결론을 선포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이 인류의 우상이나 숭배 대상은 결코 아닐지라도, 세상을 신앙의 안목으로 관조하며 긍정하고, 내 곁에 있는 이웃들과 가족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잔잔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경영해 가는 것은 구원받은 천국 자녀들의 마땅한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굳은 얼굴을 펴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활짝 웃으십시오. 내 자아의 이름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뻐하는 이삭의 대웃음을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해 냄으로써, 내 삶도 건강의 축복을 누리고 내 웃음을 듣고 바라보는 주변의 모든 이웃에게도 예수의 살아 계신 향기와 위대한 천국의 평강을 전염시켜 주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것으로 성경에 나타난 웃음의 종류와 목적에 대한 깊은 사색 강의를 모두 성공적으로 마감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성경의 감추어진 놀라운 보화 어휘를 가지고 기쁜 얼굴로 성도 여러분을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신령한 은혜와 미소 안에서 늘 평안하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