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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7년 9월 16일 (토)
o 날씨: 흐림
o 산행경로: 유학산 휴게소 - 도봉사 - 유학산 - 천생산(525.8봉) - 학하리 신동지 - 천생산 - 대원사
o 산행거리: 15.1km
o 소요시간: 5시간 40분
o 지역: 경북 구미
o 일행: 나홀로
▼ 산행지도
영남해안에 태풍 탈림이 몰고온 강풍과 비를 피해 유학산을 찾았습니다. 유학산은 영남내륙 칠곡 낙동강을 끼고 있는데, 6.25 한국전쟁시 다부동 전투의 중심지입니다. 산림청에서 선정한 '숨은 우리산 250'에 포함되는 명산이기도 하며, 바로 건너편에는 임진왜란의 전설이 숨어있는 천생산이 있어 연계산행도 가능합니다.
유학산 산행은 보통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에서 시작하여 674고지, 793고지와 837고지를 경유하여 유학산 정상(유학정, 839m)에 도착한 후 정상 아래에 있는 도봉사를 따라 팥재주차장(유학산 휴게소)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오늘은 천생산과 연계산행을 위해 팥재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도봉사를 거쳐 정상에 오른후 건너편 천생산으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현재 개선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다부IC 주변에서는 네비게어션도 갈팡질팡 합니다. 학산리 호국로를 따라 가면서 바라본 유학산은 동서로 길게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모습입니다.
▼ 학산리에서 바라본 유학산
유학산 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등산화를 고쳐 신습니다.
휴게소 뒤로 보이는 암벽이 '쉰질바위'입니다. '쉰질바위'는 절벽 밑에서 고개를 들면 까마득히 보이는 정상이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데 그 높이가 어른키로 50질이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학이 노닐던 곳이라 하여 '학바위'라고도 한답니다.
▼ 유학산 휴게소
도봉사까지는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갑니다.
빠르게 페달을 밟아 급경사를 오르는 바이크 족은 조금 짠~ 한 마음이 듭니다.
걷는 것은 경사도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면 되지만 바이크는 속도를 늦추면 넘어지게 됩니다.
무한 경쟁의 속세(?)를 벗어나 '느림'의 자연을 찾아 왔는데 여기에서도 멈출 수 없다는 것은 슬픈일이지요...
쉰질바위 아래에 도봉사가 멋있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쉰질바위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쿨에서 가을이 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살랑 살랑 바람을 타고 퍼지는 산사의 독경소리는 마음을 한층 정갈하게 해 줍니다...
▼ 도봉사와 쉰질바위
이곳도 태풍의 간접영향권인지 날씨가 흐려 먼거리는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핸드폰으로는 그나마 그 모습이 더 흐릿하게 보입니다.
도봉사에서 숲길을 따라 유학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등산로는 돌길입니다. 쉰질바위에서 보듯이 이곳은 암벽과 암석이 많습니다.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주니 발길이 한결 가볍습니다.
가끔씩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봅니다.
산을 오르는 만큼 세상은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초록의 나뭇잎들도 서서히 갈색의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또 이렇게 오는가 봅니다.
건너편으로 암봉의 금오산이 다가옵니다.
금오산도 정상부가 암벽이며, 아래에 약사암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00대 명산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 금오산 (우측)
정상 아래의 헬기장은 갈림길입니다. 정상은 오른쪽, 직진하면 학상리...
헬기장 주변에는 규모는 작지만 억새들이 은빛 가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160m를 더 가면 유학산 정상입니다.
들머리에서 유학산 정상까지는 1.5km도 되지 않은 짧은 거리, 마실가듯 올라왔습니다.
유학산 정상에는 유학정이 자리잡고 있고, 그 아래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유학정은 산객들의 쉼터도 되어 주지만 이곳에서 산화한 많은 호국영령들의 쉼터도 되어 주는 것 같습니다.
▼ 유학정 (유학산 정상, 839m)
[830고지 탈환전] 유학산 830고지는 북고 남저의 특징이 뚜렷하여 다무동을 남북으로 5호(대구-안동국도), 25호(대구-상주국도) 도로를 제압하여 대구를 공격하는데 가장 유리한 다부동 격전장의 제1의 요지이다. 이 고지의 방어부대는 제1사단 12연대 1대대와 3대대, 그리고 11연대 3대대로 8월 1일 낙정리에서 낙동강을 도하한후 지연전을 하면서 이곳에 방어선을 형성한 것은 8월 12일경이었다. 적군은 제15사단 2개연대가 공격에 가담하였으며 8월 30일 이곳 진지를 미 제1기병사단에 인계하고 아군 제1사단 본대와 함께 영천방면 전투에 가담하였다. 9월 1일부터 미 제1기병사단이 이 지역을 방어하다가 북괴군의 총공세에 밀려 660고지(도덕산) 일대까지 후퇴하게 되었으나 9월 16일 유엔군의 총 반격으로 미 제1기병사단과 아군 제1사단이 이 지역을 탈환하고 잔적을 소탕한 후 9월 24일 북진을 하므로 이곳 유학산 전투는 종결되었다.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 동안의 전투로 주야간 9회에 걸쳐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로 아군은 약 600여명이 손실을 입었으며 낙동강 방어전투로 아군 1만여명이 희생되었고 적군 1만7천여명과 유엔군 약 3천여명이 희생되는 전투를 치른 곳이다 (안내판)
유학정에 앉아 사방을 둘러봅니다.
동남쪽으로는 팔공산이
남쪽으로는 비슬산 능선이
서남쪽으로는 가야산과 그 너머로 덕유산의 너울이 몰려옵니다.
팔공산을 바라보면서 내년 봄 가팔환초를 꿈꿔 봅니다.
▼ 유학산에서 바라본 팔공산
▼ 유학산에서 바라본 비슬산 방향
▼ 유학산에서 바라본 가야산과 덕유산 방향
헬기장 갈리길로 되돌아와 천생산으로 향합니다.
이곳까지 연결되어 있는 임도는 학상공단으로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별 의심없이 걷다보니 천생산 방향의 등로에서 한참 멀어져 있습니다.
별수 있나요... 다시 돌아서 올라와야지요...
천생산 방향의 등로는 임도의 큰길에서 좌측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그널도 하나 보이지 않고 사람이 다닌 흔적도 별로 없습니다.
트랙도 다운받아 오지 않았기 때문에 GPS지도를 보면서 방향을 어림잡아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등로에 핀 작은 야생화가 그나마 불안한 마음을 덜어 줍니다.
▼ 갈림길 (천생산은 좌측)
희미한 등로가 있는 듯 없는 듯 이어집니다.
계속되는 숲길에서 잠깐 뚤리는 전망포인트에서 주변 구경도 하고 내 위치도 파악합니다.
그리고 또 숲길을 헤쳐 나갑니다.
▼ 전망포인트에서 바라본 금오산과 민주지산(좌) 그리고 황악산 (중간 좌)
어쩌다 발견한 시그널
산행대장님을 만난 것 만큼 반갑습니다.
그 만큼 등로가 불분명 합니다.
머리위로 주먹만한 굴밤이 떨어집니다.
금방 한줌의 굴밤이 모아 집니다.
어릴적 생각이 많이 나네요
이럴때는 나도 나이가 제법 많이 먹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인생은 사계절의 어디쯤을 지나고 있을까요?
네이버지도 상에 표시되어 있는 천생산(525.8m)을 지나갑니다.
아무런 표시도 없으니 이곳이 천생산인지 무슨 산봉우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등로는 다시 하강을 합니다.
우측으로 가산CC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치기 좋은 계절이네요.
골프도 좋지만 나는 좋은 계절에 산을 찾아 오는 것이 더 좋습니다...
▼ 가산CC
건너편으로 천생산이 보입니다.
정상부의 자연절벽은 병풍을 친 것 같기도 하고 머리에 머리띠를 두른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 모습이 일자로 보인다고 하여 일자봉 또는 병풍바위라고 불린답니다.
▼ 건너편으로 보이는 천생산
학하리 방향으로 유학산을 빠져나왓습니다.
이곳에서 천생산 들머리인 신동마을회관까지는 514번 국도를 따라 찾아가야 합니다.
아무런 이정표가 없다 보니 멀리 보이는 마을을 찾아가는 것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515번 국도를 건너고 또 위험하게 갓길을 따라 걷고...
인접해 있기는 하지만 유학산과 천생산을 연계하는 산행은 그렇게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 유학산 날머리
▼ 신동지와 유학산 능선
우여곡절끝에 신동마을로 접어들었습니다.
마을길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누렇게 변해가는 들판에서 가을이 왔음을 실감합니다.
가을이네요... 남자의 계절...
산동마을회관 뒷편으로 걸어갑니다.
이곳에도 아무런 이정표가 없어 등산로 입구를 찾는데 애를 먹습니다.
등로를 찾아 걷는 논길에는 메뚜기가 튀어 오릅니다.
▼ 신동마을회관
▼ 신동마을에서 바라본 천생산
돌고돌아 신동마을의 천생산 들머리에 섰습니다.
이곳 등로도 메인등로는 아닌 모양입니다.
아무런 이정표도 없고 시그널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몇번의 헷갈림과 알바를 하면서 한발 한발 천생산을 올라갑니다.
▼ 천생산 들머리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요?
등로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해골모양의 기암괴석 절벽이 나타납니다.
GPS지도를 보니 천생산의 자연절벽 아래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슬아슬 경사를 기어 오릅니다.
아마도 지금의 등로가 정비되기 전에는 이곳의 절벽을 타고 오르는 등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암벽 끝에서 정상으로 연결되는 나무데크계단을 만났습니다. 휴~ 살았다...
나무데크계단 위가 남문지 입니다.
예전에 암벽을 타고 남문지를 오르내렷던 밧줄이 보입니다. 지금은 절대 금지...
남문지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쐽니다. 시원한 가을바람입니다...
▼ 남문지
▼ 남문지에서 바라본 금오산
남문지에서 다시 돌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천생산 정상부에 닿습니다.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천생산성 비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천생산 정상부
천생산 정상 8~9부 능선을 따라 천생산성이 축조되어 있고
정상 바로 옆에는 삼면이 절벽인 미덕암이 크게 돌출되어 솟아 있습니다.
미덕암 위에 서니 저절로 다리가 후덜거립니다.
평지에서는 한뼘도 안되도 한 다리를 들고도 서는데, 두어평 되는 미덕암 위에서는 두발로 버티고 서있기도 겁이 납니다.
사방의 절벽이 보이기 때문일까요?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기 때문일까요?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하는데, 아직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입니다...
▼ 천생산성 碑
▼ 미득암
동쪽면에서 보면 하늘 천(天)자 모양이고 하늘이 낳은 산이라 하여 천생산이라 부릅니다.
장천면 일대의 산성을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혁거산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천생산성은 산봉우리의 사면이 절벽이라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 천생산 자연절벽 단애
하산길을 가늠해 봅니다.
천룡사를 거쳐 신동마을로 내려갈지, 천생산성 산림욕장을 거쳐 인동동으로 내려갈지...
▼ 내려다 본 천룡사
하산길은 갈림길이 너무 많습니다.
이정표가 없거나 분명하지 않아 초행자에게는 방향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왔다 갔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산을 조금씩 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 거북바위
GPS 지도를 보면서 방향을 확인합니다.
소나무 능선길도 지나고...
샛길이 너무 많아 헷갈립니다.
천생산 중간 중간에 등산로를 표시한 지도나 안내판을 설치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샛길이 많아도 익숙하겠지만 외지에서 온 산객에게는 헷갈림은 곧 알바로 연결됩니다.
초로의 어르신께서 망개나무 뿌리를 열심히 캐고 있습니다.
망개 잎과 줄기 그리고 뿌리를 차(茶)로 만들어 마시면 내장비만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평소에 흔하게 보는 망개가 이런 효험을 가지고 있었네요.
좋은 것은 희귀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 대원사 (날머리)
대원사로 하산하여 팥재에 세워둔 차를 픽업하기 위하여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는 유학산을 돌고 돌아 갑니다. 직선거리로는 4~5km도 되지 않는데 택시비가 2만 5천원이나 나왔습니다.
그래도 걸어서 유학산을 다시 넘어 되돌아 오는 것 보다는 백배 천배 다행이지요.
유학산 휴게소로 돌아와 쇠고기 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니 지나온 산길이 되살아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