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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seen that face before-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
날씨가 온통 잿빛으로 우중충합니다. 간간히 빗방울도 보이고요, 경주의 안타까운 소식까지 겹쳐 마음이 그저 우울하기만 합니다.
급조한 말입니다만 '이울치울以鬱治鬱'. 이런 날일수록 우울한 음악 하나 들으면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릅니다. 바로 적절한 음악이 떠오릅니다. 그야말로 서른 즈음에 지린내 풍기던 강릉 중앙극장에서 시 쓰는 전동균이란 친구와 함께 본 어떤 영화 OST입니다.
먼저 전동균 시인의 시부터 한 편 올립니다. 이 친구의 시는 늘상 이렇습니다. -데요, -데요, 이렇게 긁적거리면서 허한 듯, 시니컬한 표정으로 약간의 위악과 통속도 슬쩍슬쩍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시를 씨부리는 사람이지요.
변두리 포장마차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빗방울 소리
마음의 안쪽으로
파고드는
그 소리의 끝을 따라갈 수 없어
우동 먹으러 왔다가 죄 없는 술잔만 비우는데요
마흔 살의 허기,
공복의 찬 속을 확, 확, 불 지르는
소주 맛 같은
그런 여자 하나 만났으면 싶은데요
세상도 좀 알고
남자도 좀 아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도 뗄 줄 아는
여자의
휘어질 땐 휘어지고
감을 땐 착착 감는 뽕짝노래 속으로 들어가,
슬쩍, 손만 대도 젖어드는 몸속으로 들어가, 들어가
한 사나흘
젓갈처럼 푹 삭았으면 싶은데요, 그런데요
-니에미, 삐걱대는 의자야, 너도 한잔해라
어떻습니까? 이 친구랑 마시면 술맛 절로 날 것 같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동해안 ‘등명’이란 작은 포구가 생각나네요.... 옛날 어찌어찌하다가 듀엣가수인 ‘하사와 병장’ 중 이경우 형을 알게 되었지요. '목화밭' '해남아가씨' 같은 히트곡도 있지만, 경우 형이 솔로로 취입한 ‘블루스맨’이란 곡이 압권이지요.
원래 재즈 가수였습니다. 이 양반 당시 속초에서 ‘블루노트’란 재즈카페를 운영하다가 여의치 않아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무튼 서른 무렵의 제가 경우 형을 만나기 위해 속초로 내려간 건 순전 내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정은 몽땅 생략하고..., 10월 어느 날, 불쑥 속초로 내려갔습니다. 형, 나 여기 며칠만 있다갈게. 그래라. 형은 사정도 묻지 않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 당시 형 역시 하던 업소 그만 두고 야인 생활 할 때라 노모와 형수의 눈치가 만만치 않았을 겝니다만. 그 날 이후 형과 나는 낚싯대 챙겨 들고 가진(거진 아닙니다) 방파제에서 구멍낚시로 놀래미 따위나 잡으면서 시간을 죽였더랬습니다.
야, 강릉 같이 가자.
낚싯대를 든 채 경우 형이 말했습니다.
왜요?
응, 업소에서 며칠 노래 좀 해 달래.
그러죠 뭐.
경우 형이 노래하러 가면 나는 강릉 시내를 어슬렁거리거나 지루해지면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한 번에 두 편 상영하는 즉 동시상영 극장이란 곳에서요.
형이 ‘페이’ 받던 날이었습니다.
우리 조용한 데 가서 회 좀 먹자.
좋지요.
그래서 간 곳이 ‘등명燈明’이란 작은 포구였습니다. 정동진 남쪽 저물녘에 우린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등명이란 곳, 애써 찾지 않으면 결코 눈길을 잡아끌지 못하는 7번국도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눈 부셔 눈 뜨지 않는 해안으로 없는 듯 엎드려 있다가 어둠이 내려야 등에 불을 박히고 나타나듯 납작하게 숨어있었습니다. 7번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동해선 철로를 사이에 둔 채 말입니다. 철길 너머 앙상한 해송 뒤로 등명이 순하디 순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해가 가장 맑게 뜬다는 고을 등명이 말입니다.
상현인가 하현인가...아무튼 반쪽도 되지 않는 달빛 바라보며 잡어회 한 접시 놓고 소주 마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앞에 소개한 전동균의 ‘초승달 아래’란 시가 오버랩되었기 때문입니다. 강릉 출신 이홍섭이란 시인이 있는데, 이 친구가 꼬셔서 그가 찾은 등명에서 쓴 글이랍니다.... 기왕 예까지 왔으니 소개합니다. 이런 시입니다.
떠돌고 떠돌다 여기까지 왔는데요
저문 등명 바다가 어찌 이리 순한 지 솔밭 앞에 들어온 물결들은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솔방울 속에 앉아 있는 민박집 밥 끓는 소리까지
다 들려주는데요
.......(중략)....
막버스가 왔습니다. 헐렁한 스웨터를 입은 여자가 내려 강릉 장에서 산 플라스틱 그릇을 딸그락딸그락거리며 내 앞을 지나갑니다. 어디 갈 데 없으면, 나랑 살림이나 차리자는 듯
두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그 후, 경우 형과 저는 오래토록 왕래가 끊어졌다가 우연히 일산에서 다시 만나 왕래하고 있습니다. 일산에서 노래 지도하는 '음치 클리닉'이란 업소를 운영하고 있었더군요. 가수협회 부회장 일도 하고, 홍대 카페에서 노래도 하고...
기왕 길어진 이야기, 마치고 가지요 뭐.
오늘 소개하려는 곡은 그 당시에 강릉 극장에서 보았던 '실종자(원제는 Frantic)'의 OST 그레이스 존스의 'I've seen that face before'입니다.
'흉부외과 의사인 리차드 워커 박사(Richard Walker: 해리슨 포드 분)는 20년 전 파리에서 자신의 아내(Sondra Walker: 베티 버클리 분)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의학회의 참석차 다시 파리를 찾아 호텔에서 샤워를 하는데 아내가 이상한 전화를 받고 사라진다. 샤워 후 아내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 워커는 아내를 찾아 나서지만 찾을 수 없고 경찰과 호텔 지배인을 만나보지만 별 소득이 없다.
호텔로 다시 돌아온 워커는 자신의 방이 엉망이 된 것을 보고 놀란다. 그는 방안에 떨어져 있는 성냥갑을 찾아내고 그 위에 적힌 나이트클럽을 찾아가 미쉘(Michelle: 엠마뉴엘 세이그너 분)이라는 여자를 만나 아내가 없어진 이유가 바뀐 가방 때문임을 알게 된다. 워커가 바뀐 가방을 찾아오면서 국제적인 산업스파이 조직에 쫓기게 되는데….‘(이상 펌글)
이 영화 중 해리슨 포드가 아내를 찾기 위해 나갔다가 나이트클럽에서 갑자기 춤으로 접근해 오는 미지의 여인 미쉘과 함께 춤을 출 때 나오는 곡입니다. 이 노래의 원곡은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탱고음악의 거장 아스트로 피아솔라Astor Piazzolla의 작품 ‘Liber Tango’로서 신디사이저로 리메이크한 곡입니다만, 기계음악이 주는 인위적 냄새는 별로 나지 않습니다. 공교로운 것은 이 음악의 음색이 퇴폐성과 통속성, 묘한 신비감에서 그 이미지가 미셸과는 딱 맞아떨어집니다.
참고로, 김연아 선수가 소치 올림픽 때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탱고 음악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 역시 피아솔라의 작품임을 알려 드립니다.
이 노랠 부른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에 대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사실 연기자, 모델로도 꽤 알려진 사람입니다. 혹 ‘007 A View to a Kill'이란 영화 보셨다면 ’아, 그 여자!‘ 하실 겁니다. 자메이카 출생의 흑진주, 상고머리를 하고 신비로운 눈매를 갖고 있는 여자. 마치 검은 칠을 한 청동조각 같은 몸매를 가진 그 여자가 바로 Grace Jones입니다.
Fam, Muse, Warm Leatherette, Nightclubbing, Living My Life 등이 그 여자의 전성기 때 발표된 앨범인데 다 들을 만 합니다. 후에도 싱글 Do Or Die, Nipple To The Bottle, La Vie En Rose를 발표하고 뮤직 비디오를 발표하여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지만 수상은 하지 못합니다. 수상 발표 이후 그녀는 자신이 수상하지 못한 이유를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 때문에 방송매체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멘트를 남겼고요.
그레이스 존스는 많은 팝팬들을 가진 이후에도 영화출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84년 첫 메이저 영화인 Conan The Barbarian(아놀드 슈왈츠네거와 협연)에 출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고, 1년 후 영화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되는 007시리즈 중 하나인 A View To A Kill에 출연하게 됩니다. 영화가 나올 때쯤 그레이스는 맨해튼 레코드사와 계약하며 앨범 Slave To The Rhythm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에 I've seen that face before가 들어 있답니다.
다음 해인 1986년 초 Grace Jones는 결국 이 음반 하나로 블랙차트와 팝차트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됩니다.
연기자로서 모델로서 가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레이스 존스의 노래와 영화의 OST 장면입니다.
다음은 작년 포르투갈에서 취재한 '파두' 음악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니에미 삐꺽데는 의자야 너도 한잔해라,,
시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옛날 생각도나고 수유리 너네집 위화계사 올라가 희망이란놈 빨던
생각도 나네. 아 ㅡ 옛날이여 ㅡ ㅡ
권표는 역시 천재야. 우애 그래 많은장소와 시간과 해프닝 (happening)을 다 기억하노? 아직 많은 시간이 있으니 걸작하나 기대한다.
잠시 읽고 있노라니 30여년 전의 그때 그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합니다.
중해 아제 말씀대로,
아~ 옛날이여~
멋~진 동영상이네요..
아우님! 캄~쏴!! 훌륭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