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의 호남 기행
-금강을 따라서 (22)
김제(金堤), 금(金)을 일어 쌓인 게 김제 고을이다.
외갓집 마을!
이 세상 많은 언어가 있지만, 참으로 따뜻한 낱말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외갓집 없는 곳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그 보통명사를 특별명사로 바꾼 마을이 김제의 외갓집 마을이다.
세상에 단 하나, 마지막 남은 외갓집 마을이라고 생각해보자. 마음이 따뜻해지는가? 쓸쓸해지는가? 따뜻해지면 그대는 아직도 인정과 정감이 있는 사람이다. 쓸쓸해져도 마찬가지다. 외갓집 마을은 마음에 켜는 따뜻한 등불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쓸쓸한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제군 금구면 사방길 110-5 번지, 훈훈한 인정과 정감이 살아 넘치는 푸른 들녘의 낙성리와 산동리 2개 마을이 바로 그 외갓집 마을이다. 여기서는 철따라 영양쌀과 찰보리, 황토밤, 호박 고구마, 포도, 배, 모싯잎떡, 절임배추를 판매하고, 조청, 두부, 염색, 김장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금구는 말 그대로 금을 얻는 땅이다. 일제강점기 마을 앞 너른 들에서 사금을 주웠다. 지금은 그 들판이 국립종자원의 시범포로 새로운 볍씨를 얻는 곳이다.
금싸라기 땅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쌀이야말로 땅에서 얻는 진정한 금인 것이다. 우리를 수수천년 살려온 금처럼 귀한 식량이다.
그 금을 얻던 금구 들녘을 내려다보는 고깔봉에서도 일제강점기에 금을 채굴했다. 지금은 폐광이 된 냉굴에서 마을 주민들이 여름 한 철 장사를 한다.
또 이곳 외갓집 마을은 콩쥐 팥쥐의 얘기가 생긴 곳이다. 마을 앞 들녘을 적시는 두월천은 콩쥐가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너다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팥죽이 방죽이라 부르는 연못제방은 두죽제(頭粥堤)다. 머리 ‘두(頭)’는 콩(豆)과 팥(荳)의 유사형태고 향토지인 ‘완산지’에는 콩 ‘두(豆)’로 표기돼 있다.
그러니까 여기 금구면 둔산 마을은 콩쥐 아버지 성씨인 최씨가 5백 년 전부터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왔고, 마을 동쪽 250여m에 팥죽이 방죽이 있다.
이 팥죽이 방죽에서 가까운 ‘앵곡’ 마을은 조선시대 여행객들이 머물던 ‘역’이었다. 아마도 콩쥐팥쥐전의 필자가 이곳을 지나가다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를 얻었을 거다.
최씨 집성촌인 둔산리 옆 마을은 최씨의 후처이자 팥쥐 어머니인 배씨 집성촌 상리 마을이다. 또 콩쥐의 선행에 탄복해 밤과 은행 등 과일을 베푸는 이야기 장면은 바로 가까이 금천저수지의 옛 지명 ‘대율’과 ‘은행’이 뒷받침 한다.
아름다운 마을 외갓집 마을에 금처럼 귀한 얘기가 있음이 당연한 일이다. 콩쥐가 꽃신을 떨어뜨린 두월천, 콩쥐의 아버지 최만춘이 살았다는 집터의 거북바위, 팥쥐가 콩쥐를 유인하여 밀어 넣은 팥죽이 방죽인 두죽제, 왜인들이 개다리를 걸어놓고 먹었다는 개다리 등, 김제 금구 외갓집 마을에는 이야기도 풍성하다.
지금의 김제시는 삼한시대에 벽비리국이었다. 백제시대에 벽골군이었고, 백제부흥군의 한 때 거점이었던 피성이 있었다. 피성으로 추정되는 김제시 교동 성산성터는 30여m의 낮은 산이지만 사방 백 여리를 볼 수 있어서 능히 왕궁터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백제 11대 비류왕 27년(330)에 축조된 김제시 부량면 포교리와 월성리의 벽골제지는 고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의 수리시설이다. 여기 신털미산은 저수지를 만들 때 일꾼들이 짚신에 묻은 진흙을 털어서 생긴 산이다. 이 벽골제 박물관지내에 있는 아리랑문학관은 소설가 조정래의 문학관이다. 그렇게 ‘징게 맹개 외에밋들’로 표현되는 이곳 김제와 만경평야는 일제수탈의 현장이었다.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의 금산사는 600년(백제 무왕 1)에 창건하였으며 후백제왕 견훤이 그의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된 곳이기도 하다.
요즈음 먹거리가 비상이다. 공장지대와 사대강 주변의 농산물, 일본 방사능 피해가 있음직한 수산물이 특히 경계 먹거리다. 또 가공과정에서 둔갑 시키는 깨, 콩, 고추 등의 부식물과 떡이며 간장, 된장, 고추장 등도 겉만 보고는 안심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한 우려와 염려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곳이 김제의 외갓집 마을 아니겠는가? 광활하고 넉넉한 땅, 지평선이 있는 고을, 김제의 외갓집 마을!
가장 소중하고 귀한 금인 먹거리를 얻어 내는 곳이 금구의 외갓집 마을이고 그 외갓집 마을들이 모여 김제 고을이 되었다.
부디 그 따뜻하고 행복한 이름으로 우리 모두를 포근히 안아주었으면 한다.
외갓집 마을
콩쥐 아버지가 살았던 마을
콩쥐가 살던 이웃 마을 고려 말엽의 절 귀신사 석등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