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상 변호사가 《월간천관》에 '이청준문학관 건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故 이청준 작가의 인물과 문학세계를 심층적 소개 중이다.
2022년 8월호를 시작으로 9월호, 10월호, 11월호, 12월호, 2023년 1월호, 2월호, 3월, 4월호, 5월호, 6월호, 7월호, (8월호 쉼), 9월호, 10월호, 11월 12월호, 2024년 1월호, 2월호, 3월호, 4월호 이번이 스므번째 연재기고이다. (편집자 주)
이청준과 ‘아기장수 설화’ -이청준문학관을 위하여(20)
1. 아기장수 설화
이청준은 <광대의 가출, 1993>에서 '아기장수의 꿈'을 말하였고, 다시 <신화를 삼킨 섬, 2003>에서는 제주도에 관련하여 '아기장수의 설화'를 인유하였다. 이청준은 어떤 아기장수의 꿈을 꿈꾸었는가? 아기장수 설화는 지배층 학정에 시달리던 민중에게 한때 큰 희망을 줄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민중의 무지와 체념, 배반과 방해 등으로 인하여 다시금 좌절하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전국적으로 퍼져있는 신화담이다. 아기장수는 구원의 상징, 구세(救世)의 영웅으로 반복되지만 어쨌거나 결국 패배하고 만다. 이청준은 그 '아기장수 설화'를 <신화를 삼킨 섬, 2003>의 서두와 말미에 배치하고 있다. 과연 무슨 뜻인가?
2. 제주도 4,3사태와 큰당집과 씻김굿
1980년경의 신군부는 그 체제강화를 위하여 제주 4.3 사태로 희생한 원혼들의 위령(慰靈)을 통한 '역사 씻기기' 작업을 벌인다. 이때 중앙의 배후 신군부를 가리키는 '육지부 큰당집'은 제주현지 심방들의 소극적 태도에 직면하여 육지 쪽에 있는 무당들에게, 예컨대 원래는 남도 장흥 천관산에 연고를 둔 유정남 씻김굿 무당과 인천의 만신굿 조복순 무당에게 제주도로 옮겨 활동 하도록 지시한다. 같은 무당이더라도 황해도 만신굿 조복순은 강신무이고, 남도 장흥의 유정남은 세습무 당골이었다.
3. 육지부 무당과 제주도 심방(尋訪)
'용두마을 추심방'과 '해정마을 변심방'은 육지부 무당에 대해 싸늘한 시선을 보이면서도 그들 본향당 당골무업에 충실하였다. 황해도 만신굿 조복순 역시 상생적 해원(解寃)의 생명꽃을 피우는 굿판을 벌이고, 유정남 역시 관덕정 위령굿터에서 씻김굿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제주도는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 기준이 적용되는 곳으로 '김통정 장군, 김방경 장군'도 비록 한쪽에서는 당신(堂神)으로 모셔지긴 했어도 내내 전능한 아기장수로 모셔질 수 없었다. 그들도 육지에서 건너온 지배계층 출신이기에 그 본색은 '가짜 구세주'라는 의심을 면하기 어려웠다. 민중과 그들과의 공동운명체적 연대감을 형성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제주도 자체는 역사적으로 늘 피지배자의 패배가 결정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4. 신군부 큰당집의 역사씻기기 작업의 이중성
도청 문화과장이 재주 현지실무자로서 추진하는 역사정비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보수적 단체 한얼회와 진보적 단체 청죽회는 사사건건 대립하며, 제주 4.3 사태의 원인론으로 다툰다. 우익의 탄압론과 좌익의 봉기론 중에 어느 쪽이 먼저인가? 일방적 편가르기를 거듭하며, 희생자 유골의 수를 다투며, 유골탈취사건도 일어난다. 그 육지부 큰당집 뒤에는 아마 그 시절 '경신회, 보안대, 안기부'가 있었을 수 있다. 그 시절 '국풍 81' 관제행사도 그런 연장선에 있었을 것이다.
5. '무당(샤만)'과 '이야기꾼'의 역할
작가는 용두마을 추심방의 굿, 해정마을 변심방의 굿, 황해도 만신 조복순의 진혼굿, 장흥 천관산 출신의 유정남의 씻김굿의 춤사위와 사설들을 꼼꼼하게 옮겨놓았다. 무슨 굿판 분야 장르 소설도 아니련만 그들 무당의 모습을 차분하게 기술하였다. 그러면서 그 소설 행간에 작중 인물의 입을 빌어 생각하고 질문한다. 국가주의란 무엇인가? 개선과 변화를 꿈꾸는 민중의 열망을 폭력적 이데올로기로 제압할 수 있는가? 제주도의 역사적 숙명이 따로 있는가? '제주의 봄'은 늘 불가능한 것인가? 망자의 넋과 생자의 넋이 서로 감읍하며 대화하는 것처럼 해원(解寃)상승의 꽃이 함께 피어날 수는 없는가? 구세(救世)의 아기장수 도래는 영영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문학인과 지식인들은 이 나라를 버리고 망명을 떠날 생각은 없는가?
6. 작가의 덧붙임1
(작가는 소설 18장 말미에 이르러) 씻김굿 유정남의 아들로 취급되고 있는 '정요선'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유정남 일행은 제주도 생활을 청산하고서 다시 완도로 돌아오면서 고흥 녹동에 일부러 들린다. 그 녹동 소록도에 있는 '만령당 안치소'에 모신 어느 혼백을 씻어주려 찾아가는 것이다. 모친 유정남이 아들 '정요선'에게 입을 열었다. “그 소록도의 불쌍한 남자의 일을 알리려 인천까지 나를 찾아온 여자는 실은 '그 천관산 밑에서 흘러 들어간 남자'가 그 섬에서 얻어 산 여자였다. 그 여자는 나이 두 살밖에 되지 아니한 어린 사내애를 데리고 와서 그 앞날을 나에게 부탁하였다. 물론 그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였다" 그 미감아 아이가 바로 '정요선'이었던 것. 이청준의 남도사람 지역에 '고흥 소록도'를 빠뜨릴 수 없다.
7. 작가의 덧붙임2
(작가는 소설 에필로그 부분에 이르러)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후부터 아기장수도 용마(龍馬)도 더 이상 기다리려고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 영웅 장수나 용마의 희망에 속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끝내 그 구세(救世)의 영웅 이야기를 잊지 못했고, 언제부터인지 그 아기장수와 용마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 속의 꿈과 기다림이 없이는 아무래도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추기>
1, 이청준 선생의 다른 소설(목포행, 조율사)에 실종된 인물로 등장하는 '외종형, 규혁형'도 이른바 '아기장수' 부류에 속할 것이다.
2. 이청준 선생은 이번 소설에 장흥 땅 역사와 동학혁명 석대들 전투의 원혼 등을 언급하였다. 장흥관군과 농민군 사이에도 해원상생의 씻김굿 위령제가 필요할 수 있겠다.
3. 이청준 선생이 언급한 장흥고을 '당골 무당'에 대해서는 <굿, 전라도 씻김굿, 최길성, 1985> 에 수록된 '호남의 단골제도' 부분에 당시 대덕면 여섯 마을의 단골집 현황과 실태가 조사되어 있다. 최길성(1940~2022)은 장흥 민속 과 부속에 관한 여러 자료를 남겼다.
4, <신화를 삼킨 섬>은 또 다른 형식의 <비화밀교, 1985〉라 말할 만 하다.
박형상 변호사(前 서울 중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