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7장 10-16절. 그리스도인의 이혼 문제. 요약설교
10-11절. 남편과 아내가 모두 신자인 경우의 이혼에 대해서- (원칙상 신자끼리는 이혼이 불가하나, 현실적으로 이혼하게 된 경우에는, 재혼하지 말고 그냥 지내라. 그러다가, 재결합하게 되면 재결합하라)
12-16절. 남편과 아내 중 한쪽이 신자인 경우의 이혼에 대하여- (신앙을 이유로 노예처럼 학대할 경우나 이혼을 강요당할 경우에는 이혼하라)
10-16절. ‘이혼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화평 중에 부르셨으므로, 결혼생활이나 독신생활 자체를 절대시하지는 말고, 평안한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결혼생활조차도 상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2-17절이 부부 중 한편이 불신자인 경우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10-11절은 쌍방이 모두 신자인 경우를 말합니다.
이처럼 부부가 다 신자인 경우에 대한 교훈은 주님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2. 즉, 주님은 ‘신자끼리의 결혼생활은 음행의 연고 외에는 이혼이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9:3-9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3.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칙적인 명령이고, 실제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입니다.
즉, 11절에서 본 대로, 고린도 교회는 교회 내에서 성도들끼리도 이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11절.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 예수님의 엄한 명령(마 5:32)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고린도 교회에는 부부가 모두 신자이면서도 이혼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의 이러한 이혼의 사유가 아내의 신비적이고 지나친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Findlay).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내가 지나친 신비적 신앙의 열심 때문에,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 않자, 그 남편이 성욕을 참을 수 없어서 창녀와 음행했기 때문에, 신자 부부간의 이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최갑종, 바울연구, 95-116쪽).
2. 이처럼 주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실적으로 본능상 이중적인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혼 했을 경우에는, 재혼하지 말고 독신으로 지내든지, 다시 재결합 하라고 교훈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상적인 결혼이란 영구적으로 방해받아서는 안 되고, 설령 이혼해서 일시적으로 별거하더라도, 다시 원래의 결혼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2절. 그 남은 자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 ‘그 남은 사람들’이란 고린도 교인 중 자기의 배우자가 불신자인 교인인 경우를 가리킵니다.
이들에 대한 교훈이 주의 명령이 아니란 말씀은, 이런 경우에 대한 예수님의 생전에 직접적인 교훈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의 교훈이 바울의 사견(私見)일 뿐이고, 성경적 권위를 갖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의 교훈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들이고, 성경적 권위를 갖는 것입니다(이상근 100쪽).
2. 이처럼 바울은 영감 된 말씀으로 교훈하기를, 신자인 남편이 불신자인 아내를, 그 불신자인 아내가 함께 살고자 하는데도 이혼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즉, 아무리 신앙이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신앙 문제가 절대적인 이혼 사유가 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역으로 말해서, 결혼을 우선시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지, 신앙과 교회 생활 이외의 모든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상대화시키는 ‘신앙(교회) 지상주의’(easy Believism: fideism)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신앙생활을 핑계로 남편과 부부생활을 전적으로 기피한다든지, 교회 가서 봉사한다는 구실로 가정에서 빨래나 청소나 남편과 자녀의 뒷바라지를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신앙 지상주의’라는 것입니다.
13절.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 12절과 13절에서 부부 중 한편만 믿게 된 경우는 원래 부부 두 사람 다 불신자였다가 한 사람만 믿게 된 경우를 말하고,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한 경우를 말하지 않습니다. (NIV-SB. See v12).
즉, 남편과 아내가 결혼해서 살다가 중간에 아내가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제 예수 믿었다고 해서, 불신 남편이 함께 살기를 좋아하는데도, 남편이 안 믿는다는 것을 구실로 이혼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14절.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 여기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내적 성화(內的聖化 : inner sanctification)를 가리킴이 아니고, 신앙공동체에 속하여 외부적 종교의식(外部的 宗敎義式)을 행함으로써 거룩케 하는 영향력(sanctifying influence)을 받는 외적 성화(外的聖化), 피상적 성화(superficial sanctification)를 의미합니다(박윤선, 95쪽, NIV-SB).
2. 한편 부모의 신앙적 영향 아래 있는 자녀가 거룩하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신정국가(神政國家)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외부적 종교의식에 순응함으로 거룩한 백성(聖民)으로 간주되고, 그 표로써 할례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인 아버지나 어머니의 신앙적 영향 아래 있는 자녀도 그리스도의 새 언약 안에서 거룩하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유아세례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박윤선, NIV-SB).
이런 의미에서, 사도행전 16장 31절에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15절.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 버림받은 사람은 만족하게 지낼 수 있고 비난받지 않으며, 잘못은 전적으로 버린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버림받은 사람은 합법적으로 다시 재혼할 수 있습니다.
2. ‘구애되다’’(δεδούλωται)는 것은 ‘노예 상태에 있다’(is under bondage)는 뜻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불신 배우자에게 노예처럼 비인격적인 학대를 받으면서까지 결혼생활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봉건시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제적 생존 문제 때문에, 여인들이 남자들에게 노예 취급을 당한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고대 시대에도 이처럼 혁명적인 해방(자유)선언을 했던 것입니다.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여기서 ‘그러나’(δε)라는 단어는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에 연결된 것이고, 앞부분에 ‘갈리게 하라’와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노예 생활과 같은 결혼생활은 계속하면서 불화하느니, 차라리 갈리어서 평안하게 살아라”는 뜻입니다(See NIV-SB).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러나’를 ‘갈리게 하라’에 대한 반대어로 오해하여 “온갖 학대를 무릎 쓰고서라도 결혼생활을 지속하라”고 가르치는데, 이것은 성경의 교훈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이상근 102, NIV-SB. p.1742).
16절.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 이 말씀은 “네가 혹시 불신 배우자를 구원할 수 있을지 모르니 이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유명한 Calvin 선생과 신학자 Hodge가 말한 대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므로, 네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불신 배우자를 구원하겠다고 이혼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는 뜻입니다(Calvin, Bengel, Hodge).
즉, 불신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좋아하면 같이 살려니와(13-14), 불신 배우자가 노예처럼 학대하고 이혼하기를 원하면(15-16절), 네가 인위적으로 구원시킬려고 고집 피우지 말고 이혼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신 배우자가 여러분과 함께 살고자 할 때는 신앙을 핑계로 이혼하지 마시고, 불신 배우자와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배우자 중 한쪽만 신앙생활 해도 자녀들을 유아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배우자가 학대하고 핍박을 하면, 신앙을 이유로 참고 살지 말고, 이혼하여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신 배우자가 성도님의 신앙적 영향으로 예수를 믿으면 참 잘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아름다운 신앙생활 하시고, 신앙 때문에 학대나 핍박을 억지로 참고 살려고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행복한 신앙생활 하시고, 복된 가정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