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사건 쟁점과 관련된 공소사실 요지와 원심 판단은 다음과 같다.
가. 피고인들은 2017. 2. 12.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피고인 1이 SC제일은행에 자신의 명의로 개설한 예금계좌(이하 ‘이 사건 계좌’라 한다)의 예금통장과 위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 1개, OTP카드 1개 등을 교부하여 전자금융거래에 관한 접근매체를 양도하였다. 이후 성명불상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2017. 2. 13. 09:00경 공소외인에게 전화하여 검사를 사칭하면서 “당신 명의로 은행 계좌가 개설되어 범죄에 이용되었다. 명의가 도용된 것 같으니 추가 피해 예방을 위해 금융기관에 있는 돈을 해약하여 금융법률 전문가인 피고인 1에게 송금하면 범죄 연관성을 확인 후 돌려주겠다.”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에 속은 공소외인은 2017. 2. 14. 11:20경 이 사건 계좌에 613만 원(이하 ‘이 사건 사기피해금’이라 한다)을 송금하였는데, 피고인들은 같은 날 11:50경 별도로 만들어 소지하고 있던 이 사건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를 이용하여 그 중 300만 원을 임의로 인출하였다.
2. 이 사건의 쟁점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으로 인하여 피해자의 계좌에서 제3자 명의의 사기이용계좌(이른바 대포통장 계좌)에 송금․이체된 피해금을 그 제3자(이하 ‘계좌명의인’이라 한다)가 임의로 인출한 경우에 횡령죄가 성립하는지와 성립한다면 횡령죄의 피해자가 누구인지이다.
3. 가. 형법 제355조 제1항이 정한 횡령죄의 주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야 하고, 여기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그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또는 기타의 본권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위탁관계는 사실상의 관계에 있으면 충분하고 피고인이 반드시 민사상 계약의 당사자일 필요는 없다. 위탁관계는 사용대차․임대차․위임․임치 등의 계약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에 한하지 않고 사무관리와 같은 법률의 규정, 관습이나 조리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대법원 1985. 9. 10. 선고 84도2644 판결, 대법원 2003. 7. 11. 선고 2003도2077 판결 등 참조). 그러나 횡령죄의 본질이 위탁받은 타인의 재물을 불법으로 영득하는 데 있음에 비추어 볼 때 그 위탁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것으로 한정된다(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 위탁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재물의 보관자와 소유자 사이의 관계, 재물을 보관하게 된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보관자에게 재물의 보관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할 의무를 부과하여 그 보관 상태를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고려하여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나. 송금의뢰인이 다른 사람의 예금계좌에 자금을 송금․이체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계좌명의인 사이에 그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계좌명의인(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그 자금에 대하여 예금계약이 성립하고, 계좌명의인은 수취은행에 대하여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이때 송금의뢰인과 계좌명의인 사이에 송금․이체의 원인이 된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송금․이체에 의하여 계좌명의인이 그 금액 상당의 예금채권을 취득한 경우 계좌명의인은 송금의뢰인에게 그 금액 상당의 돈을 반환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7다51239 판결 등 참조). 이와 같이 계좌명의인이 송금․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취득한 예금채권 상당의 돈은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계좌명의인은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계좌명의인이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을 그대로 보관하지 않고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05. 10. 28. 선고 2005도5975 판결,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는 계좌명의인이 개설한 예금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에 이용되어 그 계좌에 피해자가 사기피해금을 송금․이체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계좌명의인은 피해자와 사이에 아무런 법률관계 없이 송금․이체된 사기피해금 상당의 돈을 피해자에게 반환하여야 하므로(대법원 2014. 10. 15. 선고 2013다207286 판결 참조), 피해자를 위하여 사기피해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하고, 만약 계좌명의인이 그 돈을 영득할 의사로 인출하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 이때 계좌명의인이 사기의 공범이라면 자신이 가담한 범행의 결과 피해금을 보관하게 된 것일 뿐이어서 피해자와 사이에 위탁관계가 없고, 그가 송금․이체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이는 자신이 저지른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아니하여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기죄 외에 별도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7도3045 판결 등 참조).
다. 한편 계좌명의인의 인출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
(1) 계좌명의인이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게 예금계좌에 연결된 접근매체를 양도하였다 하더라도 은행에 대하여 여전히 예금계약의 당사자로서 예금반환청구권을 가지는 이상 그 계좌에 송금․이체된 돈이 그 접근매체를 교부받은 사람에게 귀속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접근매체를 교부받은 사람은 계좌명의인의 예금반환청구권을 자신이 사실상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예금 자체를 취득한 것이 아니다. 판례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으로 피해자의 돈이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되었다면 이로써 편취행위는 기수에 이른다고 보고 있는데(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6256 판결, 대법원 위 2017도3045 판결 등 참조), 이는 사기범이 접근매체를 이용하여 그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의미일 뿐 사기범이 그 돈을 취득하였다는 것은 아니다.
(2) 또한 계좌명의인과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 사이의 관계는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가 아니다. 사기범이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로 돈을 송금․이체하게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기범이 그 계좌를 이용하는 것도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의 실행행위에 해당하므로 계좌명의인과 사기범 사이의 관계를 횡령죄로 보호하는 것은 그 범행으로 송금․이체된 돈을 사기범에게 귀속시키는 결과가 되어 옳지 않다.
라. 위와 같은 법리를 바탕으로 이 사건에 관하여 살펴보면, 피고인들에게 사기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이 사건 사기피해금 중 300만 원을 임의로 인출한 행위는 피해자 공소외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8. 7. 19. 2017도17494)
문)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에 대포통장(통장을 개설한 사람과 실제 사용자가 다른 통장)을 판 명의자가 사기방조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상 계좌로 들어온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을 멋대로 인출해 쓴 경우 횡령죄가 성립한다. 단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횡령죄가 되지 않는다.(판례에 의함)O
문) 전기통신금융사기 종범이 사기이용계좌에 입금된 사기 피해자의 돈을 임의로 인출한 행위가 별도로 사기 피해자에 대하여 횡령죄를 구성한다.(판례에 의함)X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