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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포~스피틀러 피크(Campo~Spitler Peak) 271km
PCT(Pacific Crest Trail)는 이른바 하이커들 사이에선 ‘꿈의 트레일’이라 불린다.
멕시코와 미국의 경계인 캘리포니아 캠포(Campo)에서 시작해 미국 국경을 넘어
캐나다까지 연결된 4,300km. 필자는 2020년 3월 6일부터 7월 29일까지 걸었다.
완주를 목표로 부지런히 걸었지만, 캘리포니아 남부와 중부 구간 도중,
양쪽 오금을 다치는 통에 3,455km 지점에서 멈췄다. 2021년 6월 말 나머지
워싱턴 구간인 813km를 더 걸어 완주할 계획이다.
글 사진 · 최인섭(서울시청산악회, 전 서울시산악연맹 이사)
“여보, 빨리 나와 봐. 당신이 볼 만한 트레킹 프로그램이야.”
2018년 5월 13일 일요일 느긋하게 낮잠을 자고 있던 중 아내가 날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TV를 통해 PCT를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 길을 걷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난 주저 없이 결심을 했다. ‘이 길은 내가 걸어야할 인생길이다’라고. 자전거를 타고 10개월 간 남미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후여서 여행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터였지만, 이후 내 머릿속엔 오직 ‘P, C, T’라는 세 단어만 똬리를 틀고 있었다.
1km 걸을 때마다 500원씩 기부 약속하고 대장정 나서
2020년 1월 15일 새벽 2시 미국 PCT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른바 퍼밋을 신청했고, 2월 초에 2020년 3월 6일부터 8월 26까지의 운행 일정에 대한 허가증을 받았다. 차근차근 운행 준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물론 나 혼자 만의 여정이며 내 개인적 도전에 불과한 운행이지만, 걸으면서 뭔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내가 걸은 거리만큼 돈으로 환산해 공익법인에 기부하는 방식이 좋겠단 결론을 내렸고, 곧바로 청년재단을 방문해 약정식을 가졌다. 이 재단은 청년 지원 특화기관으로서 시급하고 절박한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의 기부금으로 여러 가지 청년 지원 사업을 펼치는 공익사업기관이었다. 난 1km를 걸을 때마다 500원씩 기부하겠단 약속을 했고, 귀국 후 지인들(최한춘 선배, 윤흥하 선배, 최호철 동료)의 후원금을 합해 348만원을 기부했다.
2월말 다니던 직장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3월 2일 미국 LA행 비행기에 약간의 건조 음식을 비롯한 운행 장비를 실었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막 창궐하려는 시기였기에 출입국에 대한 불안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염려는 기우였다.
2020년 3월 6일 새벽에 일어났다. 출발에 대한 설렘 때문이었는지 밤새 잠을 설쳤다. 샌디에고(San Diego)에서 PCT 출발지를 향해 기차를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또 걸어서 마침내 캠포(Campo, 깜뽀라고도 함)에 도착했다. 멕시코와 미국의 경계인 캠포가 PCT 출발점이다.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안내원이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함께 걷기 시작한 하이커는 네 명. 코로나19가 고개를 쳐들고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무렵이었기에 길동무들이 의외로 적었다. 드디어 첫발을 내디딤으로써 긴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제 난 편안한 일상을 넘어 내가 설정한 생의 도전을 시작한다. 나에 대한 도전이고, 특별히 위암과 싸우고 있는 내 친구의 투병에 힘을 보태고자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겠다는 다짐도 함께 가지고 시작을 한다. 내가 걷는 한 걸음마다 친구의 몸에서 기생하는 암 세포가 수백 개씩 없어지길 바라며 걸을 생각이다. 친구에게도 그런 내 뜻을 비쳤고 그 또한 힘을 내겠다고 했다.
탈 없이 하루를 맞이하다
첫날이라 그런지 짐이 무겁다. 무게를 최소화해서 걸어야함을 알고 최대한 줄인다고 줄였지만 20kg 이상 나갈 듯하다. PCT를 걷는다는 설렘으로 걷긴 하지만 어깨를 내리 누르는 배낭이 내 걸음을 더디게 한다. 아직도 소유에 집착하거나 비우지 못하는 내 마음이 흡사 이 배낭 같아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4시간쯤 걷고 나니 어깨에 통증이 올 만큼 아프다.
첫날이니만큼 무리하지 않겠다 싶어 일찌감치 운행을 마쳤다. 길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평평하고 둥그스름한 바위 밑에 텐트 치기에 맞춤한 곳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준비한 대용량 소고기 비빔밥으로 저녁을 해 먹는다. 일찍 잠을 청해 내일 새벽 달빛이 교교하여 길을 걷는데 지장이 없다면 적어도 6시 전에 출발하련다. 3월 초임에도 낮엔 무덥기에 일찍 출발해 걸으면 한낮엔 좀 더 쉬면서 더위를 피할 수 있으리라.
첫날에 부여하는 의미는 상당하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을 했고 탈 없이 하루를 맞이해 안주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얼마나 걸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6개월 동안을 걸어야 하므로 매일 얼마나 걸었느냐는 무의미하게 보인다. 걷다보면 언젠가 발걸음을 마칠 때가 있을 터이므로 그저 하루하루 안전하고 무사하게 내가 쉴 곳에 도달하면 된다.
“Don’t worry be happy”
아침에 일어나 잠시 눈을 감고 주위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식물들의 소리가 다른 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여러 종류의 새가 제각각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로 아침을 맞는다. 꾸엑꾸엑, 찍찍찍 찌르르르, 호로로로록, 삐리리삐익…. 흡사 새소리 경연대회라도 치르는 양 가지각색의 노래에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밤새 내린 이슬이 물방울이 되어 풀잎 위에서 또르르르 굴러 땅에 떨어진다.
박원식 작가는 『BRAVO my life』의 ‘속리산 상고암의 가을’에서 이런 글을 썼다. ‘산은 세상에서 가장 미더우며 산의 속성을 낱낱이 알아낼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리라. 산을 마음에 담고 산다면 세속의 진흙땅에서 무리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나 또한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한다. 단 일이라도 산의 속성을 알아내어 일상에서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힐 뿐더러 무리하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노라고.
PCT는 특징이 있다. 이른바 스위치백(Switch-Back)이다. 지그재그(Zigzag)로 길을 내어 기울기를 완만하게 해 누구나 수월하게 걷게 함이리라. 초반이어서인지 길동무들이 제법 많다. 혼자 걷는 여성들도 있다. 연인인 듯 남녀가 같은 배낭을 메고 걷고 있다. 이 길을 마치면 저들의 관계가 훨씬 돈독해지고 그들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리라.
높은 고개를 넘으며 더위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고작 이틀이 지났음에도 벌써부터 시원한 맥주가 그리워진다. 모레나(Morena, 스페인어로 ‘돌과 진흙 더미’란 뜻) 호수 공원에서 잠시 쉰다. 하이커들이 쉴 수 있는 텐트 사이트(Tentsite)가 호수 바로 옆에 있다. 처음으로 하이커 박스(Hiker Box)를 보았다. 불필요한 짐을 버리는 상자다. 새 등산화, 옷가지, 모자, 양말, 각종 양념 병, 가스통, 선크림, 바지, 심지어는 아보카도까지 여러 물건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출발점으로부터 고작 35km 지점임에도 하이커들이 이토록 많은 물건들을 버렸다는 의미는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무게를 고려하지 않고 많은 짐을 쌌다는 뜻이었을까.
찰리와 로이를 만났다. 이들은 시원한 캔 맥주를 내밀며 멀리 동양에서 온 나를 반겨 주었다. 찰리는 71세이고 서점을 운영하는 철학자라며 내게 명함을 건네준다. 그가 내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서 살고 있죠?” “대한민국 서울에서 삽니다.”
“천만에, 당신은 지금 바로 여기 이곳서 살고 있어요!”
말문이 막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옳다. 내 삶의 거처는 현재 지금 있는 곳, 바로 이곳이잖은가! 철학하는 사람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텍사스에 산다는 로이는 올해 47살이다. 자기는 도시가 싫단다. 시골에서 염소 키우는 일이 매우 좋다고도 한다. 삼성 휴대폰을 보여주며 값이 싸고 성능이 좋다고 칭찬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노래를 정말 좋아한다며 말춤을 추기도 한다. 나도 그를 따라 말춤을 추며 호응을 했다. 이들도 나처럼 이 길을 걷기 위해 오랜 기간 자신의 의지를 다졌겠지. 이들은 입을 모아 내게 말한다. “Don’t worry be happy”
PCT 야영지에서 만난 트레일 천사의 매직
야영지(Campground)에서 운행을 멈추었다. 책에서만 보았던 트레일 천사(Trail Angel)를 만났다. 자신의 트레일 이름(Trail Name, PCT 하이커들은 길을 걷는 중 자신의 본명 대신 통상 별명을 사용한다)을 마그네토(Magneto)라고 불러 달란다. 이 친구는 자신의 차를 이용해서 하이커들이 다니는 길에 상을 차렸다. 시원한 맥주는 물론, 과일도 준다. 저녁 식사와 다음날 아침 식사까지 마련해 주었다. 모두 자신이 비용을 부담한다. 고맙고 놀랍고 신기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진짜 천사다. 천사들은 모두 PCT 종주 경험을 가졌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그 힘들고 험한 길을 걸은 이들이라 누구보다도 길 위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잘 알고 있다. 하이커들은 이런 상황을 트레일 매직(Trail Magic)이라고 표현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음식과 맥주를 제공해 주는 이 상황을 마술이라 하지 않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이 친구에게 가져간 태극기 배지를 선물로 주었고, 아내가 길 위에서 읽으라고 준 책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까지 그의 손에 넘겼다.(무게를 줄이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천사는 흔쾌히 책을 받으며 내게 말한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이젠 한국어를 배워야 하겠네요.”
“물론이죠. 한국어 배우기 쉽습니다.”
아침엔 주변에서 함께 하룻밤을 보냈던 길동무들에게도 커피 믹스를 타 한 잔씩 주었더니 맛있다며 다들 좋아한다.
라구나 지역(Laguna Community)에 도착했다. 우체국은 이미 문을 닫았고, 내일 보급품을 찾으면 된다. 란차(Rancha, 스페인어로 ‘판잣집’이란 뜻,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엔 스페인 명칭이 많다) 캠프장에서 하이커 여러 명을 만나 단체로 야영을 했다. 아침에 시니어 두 분과 인사를 나눈다. 한국인이라고 내 소개를 했더니, 대뜸 “PCT를 즐기세요”라고 말한다. 70세가 넘어 보이는 두 분은 이 캠프장에서 봉사 활동을 한다며 맑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 은퇴 후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일할 수 있음은 진정한 축복이다.
모하비 사막 끝자락에서 나 홀로 캠핑
4일치 보급품을 찾아 배낭을 꾸리니 보통 무게가 아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또 가벼워지겠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로 걸음은 더디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그렇지만 길에 대한 설렘이 물리적인 어려움을 이긴다. 한 발 한 발 끊임없이 내 딛는다. 다음에 보급품을 받을 우체국은 워너 스프링스(Warner Springs). 부지런히 걸으면 앞으로 4일 후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야트막한 봉우리가 있는 사막 지대를 건넌다. 사하라 사막처럼 오직 모래만 존재하는 사막이 아닌, 풀과 키 작은 나무가 사는 사막이다. 캘리포니아 남부에 있는 모하비 사막의 끝자락이다. 도로가 없고 사람이 사는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5시간쯤 걸은 후 운행을 마쳤다. 출발지에서 52마일(83km) 걸어온 지점이다. 반나절쯤 걸었지만, 길이 평탄해 제법 먼 거리를 걸었다. 에둘러 가는 길이 많아 실제 직선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PCT 길이 긴 이유도 이렇게 에두르는 길이 많아서이리라. 야영 가능 표지판이 있어 짐을 풀고 있는데, 어제 함께 야영했던 제리(Jerry)가 나타났고 그가 내게 말한다.
“이곳에선 캠핑을 할 수 없어”라며 안내판을 가리킨다. 해가 있을 동안에만 캠핑이 가능하고 밤을 보낼 순 없다고 쓰여 있다.
“2.2마일 더 가면 텐트 사이트가 있고, 난 거기에 가서 캠핑을 할 거야.”
“난 몹시 피곤해서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레인저(Ranger)가 와서 뭐라고 하면 무조건 몰랐다고 해.” “고마워, 제리! 내일 만나.”
알싸미에 물을 듬뿍 부은 다음 컵라면을 넣고 끓였다. 파래김자반과 고추장을 첨가해 비빈다. 미소국을 더하니 훌륭한 저녁 식사가 완성됐다. 여기에 단무지나 김치를 더한다면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따로 없을 텐데 거기까진 욕심이다. 야전에선 야전 방식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잠을 청하니 후두둑 빗방울이 긋는다.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이내 우박으로 바뀌며 텐트를 때리는데, 모조리 구멍을 내버리겠다는 듯 거세다. 텐트 안 공간이 커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밤새 자반뒤집기를 되풀이하며 거의 뜬 눈으로 보냈다.
텐트가 젖고 배낭 안엔 물이 흥건하다. 하지만 난 걸어야 하고 걷기 위해선 또 먹어야 한다. 누룽지와 육포를 넣고 들입다 끓인 후 파래김자반을 첨가해 섞어 먹는다, 육포의 짭조름한 맛과 파래김자반의 소금기가 적당한 간을 만들어 준다. 처음으로 생리현상을 자연에서 해결했다. 스틱으로 땅을 파 배설물을 묻었다. ‘흔적을 남기지 말라’는 PCT 운행 규정에 충실히 따른다. 지금까지 길 위에 비닐봉지, 담배꽁초 하나 볼 수 없었다.
평원을 3km 이상 걸으니 78번 도로를 만난다. 트레일 천사 두 명이 하이커들을 반겨준다. 제리도 보인다. 천사들은 캔 맥주, 사과, 바나나를 나눠주며 그간의 고생을 위로해 준다. 12마일 떨어진 율리안(Julian)에 가서 뭘 좀 살까 말까를 고민 하는데 천사가 말한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결정 하세요” 결과는 ‘가지마라’였지만 차에 올랐다. 장비점에 들러 똥삽과 스낵바, 과자, 남미산 라면 따위를 산 후, 천사들의 차를 타고 다시 78번 도로로 복귀했다.
6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걸었다. 해발 1,500m라 바람이 세다. 굽이굽이 봉우리 수십 개를 지난다. 저체온증 증세가 나기에 부리나케 걸어 숲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에서도 몸이 으슬으슬 떨리면서 여전히 춥다. 내일 몸살이 나면 어떡하지 걱정이 앞선다.
앞서 간 길동무들이 동굴 앞에서 행동식을 먹고 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뚫은 동굴이다. 한 사람이 드러 누우면 맞춤한 크기다. 왜 이런 데에다 동굴을 팠을까. 이 세상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부지기수다.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왔고 이름은 최인섭이야.”
“체인솝?” “아니, 최, 인, 섭” “제인솝?” “아니, 에이, 그냥 초이라고 불러.” “오, 초이!”
내 성을 제대로 발음하는 친구들이 없다. 오클라호마에서 왔다는 트램프가 말한다.
“우리 지역엔 산이 없고 평지야. 나는 산이 좋아. 캐나다까지 갈 거야.”
PCT의 명물 독수리 바위를 보다
포장도로를 건너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자 딴 세상에 온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숲은 사라지고 드넓은 평원이 끝 간 데 없다. 저 너른 평원에 길은 오직 한 줄 금처럼 그어져 있다. 안개가 풍경을 살짝 흐리게 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길엔 흔한 돌멩이 하나 없어 솜 위를 걷는 듯 폭신하다. 길은 직선을 배제한 채 S자로 유연하게 틀어진다. 이 너른 들판에 오직 나 혼자만이 걷고 있다. 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완만하게 휘어져 지루하지 않다. 다만, 길 위에 혼자 있으니 외로움이 몰려온다. 나는 멈춰 서 이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잠시 방황한다.
원시림 같은 맑고 청명한 숲길을 걷는다. 저 나무와 풀, 길과 나는 이질감 없는 하나가 되어 호흡한다. 내 몸과 마음 또한 저절로 맑아진다. 비가 와서인지 숲길 옆 개울엔 물이 불어 흐르고, 그 개울들이 모여 내를 이루며 더 큰 곳으로 흐른다. 개울이나 내에 흐르는 물소리가 매우 정겹다. 무릇 개울엔 물이 흐르는 소리가 있어야 그 풍경이 완성된다. 여전히 바람이 세고 가는 빗줄기가 빗금을 긋는다.
워너 스프링스 우체국에서 짐을 찾고 5평쯤 되는 조그만 미술관에 들어갔다. 하루 편히 쉬면서 마을을 돌아다니며 보낼 생각이다. 1969년에 독일에서 이민 왔다는 73세 헤니 데크만 아주머니가 미술관에 대해 대략 설명을 해 주더니, 독수리 바위(Eagle Rock) 사진을 보여주며 내게 묻는다.
“이 마을의 명물인 독수리 바위를 봤나요?” “아니요, 못 봤습니다.” “여기에서 3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데….”
어제 길을 걷다가 본 남녀 하이커들이 계속 안 보이기에 이상하다 싶었는데 바로 저 바위를 보러 간 모양이었다. 아주머니께 인사하고 물, 과자, 카메라를 들고는 앞만 보고 들입다 달렸다. 50분 만에 독수리 바위 앞에 섰다. PCT 길에서 약간 떨어져 있고 더군다나 뒤로 돌아있는 형상이어서 위치를 알지 않는 한 볼 수가 없었다.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돌아와서는 데크만 아주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여러 번 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명물을 못 볼 뻔했다고, 고맙다고. 아주머니는 큰 잔으로 커피까지 타 주셨다. 아주머니와 페이스북 주소를 주고받았다.
초원을 걷는다. 젖소들이 밤새 이슬을 머금은 싱싱한 풀을 뜯으며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한다. 장난기가 발동해 소들을 향해 점잖게 “음메~, 음메~” 하고 소 울음소리를 냈다. 소들의 시선이 모두 나를 향한다. 고개를 쳐들더니 모두 한 걸음 한 걸음씩 내게 오고 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수십 마리 소떼가 나를 향해 뛰어온다. 그야말로 우루루루 소리를 내며 흡사 목장의 소떼가 이동하는 형국이다. ‘앗 뜨거라’ 싶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저들의 뿔에 한 번이라도 받히게 되면 바로 황천길로 직행이다. 사추리 밑에서 요령소리가 날 만큼 빠른 속도로 도망을 쳤다. 다행히 녀석들이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한다. 삽시간에 야트막한 구릉 너머로 사라진다. 나를 쫓아온 게 아니었나?
한참을 걷다가 생각해 보니, 아뿔싸, 숙소에 내 옷가지를 놓고 왔다. 바지, 티셔츠, 팬티 2장. 그냥 갈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놓고 온 내 옷가지들을 찾을 수 있을까? 데크만 아주머니와 페이스북 주소를 주고받은 일이 생각났다. 다음 숙소에 묵게 되면 부탁해서 우체국으로 부쳐 달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부지런히 걸어 74번 하이웨이를 만난다. 이곳에서 도로 서쪽으로 1km쯤 이동해 음식이 맛있다는 패러다이스 밸리 카페(Paradise Valley Cafe)로 갔다. 아쉽게도 입구에 3월 29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틀 전에 만난 길동무들도 이곳에 왔다. 카페 발코니에 텐트를 친다. 오늘밤부터 눈이 내린다는 친구들의 말에 내일 운행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다.
아침부터 눈발이 커지더니 폭설이 내린다. 갑자기 날이 환해지더니 하늘이 뻥 뚫리며 태양이 비친다.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더니 이내 어두컴컴해지면서 또 눈이 내린다. 느닷없이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가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오늘 아침엔 눈이 푹푹 날이고 나는 혼자 쓸쓸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저 Idyllwild(아이딜와일드) 가는 길은 멀고’ 어쩌니저쩌니 하며 맥락 없이 읊고 있다. 봄기운이 무르익어야 할 시기에 폭설이라니. 다행히 해가 나고 날은 쨍쨍하다. 가야할 앞쪽 산봉우리는 모두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사방이 탁 트인 기가 막힌 전망대에서 멋진 설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밤새 내린 폭설에 한숨도 못자고 하산
해발 2천 미터쯤 되는 산마루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짐을 챙겨 출발을 하려니 폭설이 내린다. 내리는 눈의 양이 점점 많아지며 길을 덮어버린다. 도대체 갤 기미가 없어 다시 텐트를 치고 눈이 멎기만을 기다리는데 기약이 없다. 2일치 식량과 1리터의 물이 있으니 하루쯤 운행을 멈춰도 문제가 없을 테지만, 눈이 많이 쌓일 경우 운행에 큰 지장을 초래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이틀 안으로 아이딜와일드에 가 휴식을 취하고 또 식량을 마련해야 한다. 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맹렬하게 땅을 덮는다. 하늘이 한 쪽 구멍이 나 내가 있는 지역으로 모조리 쏟아지는 듯하다. 오후 들어서 며칠 전에 만난 중국인 친구 꿍취엔과 낯모르는 미국인 여성이 내 주변에서 쉬어갈 듯 서둘러 텐트를 치고 있다. 이어서 여성 2명이 더 주변에서 텐트를 친다.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이름 모를 두 나타샤를 위해 텐트 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일행이 생겼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폭설로 인해 고립이 된다손 치더라도 여러 사람이 협력하면 위험에 빠질 리는 없겠다 싶다.
오후부터 밤새 바람이 분다. 보통의 바람이 아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모조리 날려버리려는 듯 어마어마한 기세로 텐트를 때린다. 흡사 히말라야 산허리 어느 지점에서 비박을 하는 기분이다. 공중을 나는 바람소리가 이렇게 두려운 존재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부는 바람소리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꿍취엔의 텐트가 부실해 보이던데 강풍에 안전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그의 텐트 덮개가 간밤에 날아가 버렸다. 허탈한 그의 표정에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꿍취엔과 나도 하산하기로 했다. 부지런히 걸어 포장도로에 진입하니 오전 11시. 먼저 내려갔던 코니가 승용차 앞에 서 날 기다리고 있다. 아마 차량 운전자에게 내 얘기를 한 모양이다. 어제 오후 코니가 텐트를 설치할 때 내가 도움을 주었고, 그녀는 그 보답으로 나를 위해 차를 잡아주었으리라 추측한다. 선(善)은 또 다른 선(善)을 낳기 마련이다. 아이딜와일드 시내에서 사업을 한다는 크리스티(Christy) 아주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아이딜와일드로 간다.

첫댓글 올해 Campo에서 Palm Spring 쪽까지 180 마일 가량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포기 했습니다. ㅠㅠ
이분이 올해 6월달에 워싱턴주 구간 완주하신다니 잘하면 개미님과 만날수도 있겠네요.
대단해요~그 힘든 곳들을 40lbs 이상 메고 걸어들 다니니...아마 우리 산행팀두 몇분들이 계시죠 ㅎㅎㅎ
아이고 ~~~
엄마야 ~~~
글을 읽을땐 가고 싶어 흥분했는데
끝나고 나니
제정신이 돌아 오네요...
목표가 생긴다면 걸을수도 있겠지만...
목표는 세우면 되는것...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