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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두 코드를 가진 문학 읽기
저:김현숙(아동문학 평론집)
출:청둥거울
독:2013년 9월 18일
• 동화작가에게 동화는 불행한 자아의 행복했던 과거를 상기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고뇌하는 자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펼치는 즐거운 작업장이다.
•하느님은 어디에 있느냐는 딸의 물음에 작은 풀꽃 하나하나에도 계신단다하자 “하느님도 글머 이 냉이꽃처럼 작고 이쁘시겠네?”
했다. 위로와 승화는 하느님이 하실 일인데 자기 동화에서 이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동화는 하느님이다라는 고백을 터뜨릴 수 밖에
•황선미 동화
작가의 능란함을 느끼면서 일근 작품이 있다. 눈동자는 줄을 따라 쉼 없이 움직이는데 마음은 이야기에 푹 적셔지지 못하고 작가의 손길을 더 강하게 더듬는 작품들이 있다. 주제도 괜찮고 형상화도 잘 됐어. 깔끔하네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작가를 기억하고 작품은 잊어버린다. 그러나 황선미는 이야기만 위로 띄우고 나머지 것들을 안으로 감싸 보이지 앟게 처리한다. 황선미의 세상 인식이 비판적이고 어둡기 때문에 그가 만든 주인공들이 단순하고 밝고 활기 넘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안델센 동화에 대하여
안데르센 2005년에 탄생 200주년이다. 동화는 156편 정도다.
안델센 동화 세 분류
첫째, 규범적인 작품군-엄지공주, 얼간가이 한스. 남을 도우면 나도 도움을 받는다는 “고마 투크”
둘째, 자시 삶을 투영시킨 작품-문지기와 아들, 두거비, 인어공주
셋째 .삶에 대한 통찰- 백조, 촛불,
1. 안델센 동화 기법
가. 환상화 기법
① 의인화: 미운오리새끼, 나이팅게일, 엄지공주
② 요정의 등장: 식료품 가제 주인의 용정, 잠의 정령 올레, 딱총나무 아주머니, 장미꽃 요정, 버드나무 밑에서
③마법세계, 저너머 세계: 인어공주, 백조, 눈의 여왕, 얼간이 환스, 날아가는 가방, 부싯돌 상자
④사후 세계로 넘나듦: 빨간구두, 빵을 밟은 여자아이, 무덤 속의 아기
⑤ 꿈: 잠의 정령 올레, 딱총나무 아주머나, 고마 투크
나. 자유로운 공간 이동
①공간 이동이 장대. 이승에서 저승으로 현실에서 마법의 세계로, 인간 삶터에서 요정의 삶터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다듯한 현실 나라에서 상상 북극으로 등(날아가는 가방, 엄지공주, 인어공주,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
② 여행 주체가 의인화된 비인간들의 경우가 많다.(은돈, 전나무, 놋쇠병정, 갈고리 바늘, 좋아하는 이. 이 부류들을 물건들의 기행문이라 이름 붙여도 될 것 같다.
2. 안델센 동화의 한계와 평가
가. 안델센 동화 특징
① 재래 구비 재료로 자신의 예술ㄹ로 승화시킨 독창성
② 장대, 자유분방한 공상
③ 투철한 정서
④ 탁월한 문장, 명쾌한 유머
⑤ 종교적 사상
나. 인간 보편의 진실 다루기
「미운 오리 새끼」
백조 새끼로서 결국 백조가 되었다는 사필귀정, 오리 새끼가 이 사실을 모르는 동안 당한 고통과 이를 참아내는 인내가 아름답게 펼쳐진 까닭에 백조임이 밝혀지는 마지막 대목이 감동으로 부당한 고통을 겪은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으로 당위성은 있다. 그러나 백조가 겪은 고통이 아니라 못생긴 오리였기 때문에 받은 고통이다. 참고 견뎌 백조 신분이 드러나는데 고통의 원인은 있지만 고통을 겪을 만한 것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오리의 의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독자는 불쌍한 오리가 잘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혹시 나도 백조 새끼가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갖는다. 백조로의 변신은 노력 대가가 아니라 수동적 인내의 결과이기 때문에 땀 흘리는 노력 없어도 절망하지 않고 인내의 세월을 보내면 진흙에 묻혀 있다가 햇빛을 보는 진주처럼 고귀함이 드러난다는 것은 진정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희망이란 노력에 따른 대가로 성공이 주어졌을 때 성립된다. 노력해도 대가 없으면 절망이다. 진짜 오리는 백조 새끼가 하는 인내 이상의 노력을 바쳐도 우아한 백조가 될 수 없다. 이때 희망은 희망을 가장한 절망이다. 오리 새끼는 아무리 노력해도 백조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동화로써 진정한 희망을 심어주지 못하는 작품이다. 자서전적 작품으로 이루지 못한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맛본 쓰라림에 대한 한풀이 작이라 연민을 일으켜 감동을 느낄 수도 있고, 안도감은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맛보게도 한다. 하지만 삶의 통찰 부족으로 보편적 진리에서 멀어진 작품이다.
다. 환상적인 상상력과 심리 묘사
안델센 문학 생명은 작품의 내용성보다는 이를 드러낸느 상상력에서 찾아야 한다. 상상력은 환상 성향이 강하다. 환상성은 현실성과 대립되지만 오히려 현실에 대한 상징력을 가진다. 별로 극적 플롯이 아니라도 계속 읽게 하는 것은 평면적 플롯을 입체화시킨 상상력 덕분이다. 악마의 거울이 산산조각이 났는데 그 조각이 남자아이의 눈에 박혀 눈의 여왕의 궁전에 갇히게 되는 것, 수다쟂이 주인 아주머니의 입을 떼어서 물건에 붙이니까 그것이 말을 한다는 것, 꽃이 시디는 것은 밤에 지치도록 춤을 추었기 때문이라는 것. 주전자 속에서 뻗어 나오는 딱총나무 아주머니 등 역동, 유쾌한 상상력이 도화 발상의 원동력이 되었다. 안델센은 코펜하게의 어린이들에게나 tu성 살롱을 찾아가 자기 동화를 들려주었다. 부계 내력을 보면 할아버지는 정신분열증이 있었고 할머니는 병적 거짓말쟁, 아버지는 정신병으로 죽었다. 안델센은 상상력으로 어릿광대 같은 행동거지를 자구 보였다. 젊은 시절 멸시와 조롱을 받고 추한 외모나 촌스러운 매너 지적 천박함도 문제였지만 자기가 쓴 것을 아무 거리낌 없이 아무에게가 읽어주는 자기 중심 태도 때문인데 역으로 이런 것을 상상력 때문이라 한다면 이 상상력이 비루한 현실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유일한 갑옷이었다. 상상력은 자신의 천부적 기질이면서 어두운 현실을 뚫고 나가는 무기였다. 인어공주는 비련 스토리나 환상 존재 출현보다 뛰어난 심리 묘사라 본다. 언니들이 쥐어주는 칼로 왕자를 찌르기를 주저하는 인어 공주의 갈등은 바로 독자의 갈등이라서.
라. 안델센 동화의 의의와 앞으로의 과제
컴퓨터 게임에 빠져 동화책을 외면하는 현대 어린이들에게 동화는 진부하나 보편 진실을 상징으로 표현하는 동화는 계산 능력과 정보 처리 능력에 국한된 컴퓨터에는 없는 기능으로 가치의 깊이가 있다. 눈의 여왕과 백조로 대표되는 작품이 광활한 환상 세계를 드나드는 재미 속에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준다. 현실은 기계문명이 정신문화를 앞지르고 있으나 앙델센 동화가 우리 정서를 자극해서 이런 불균형을 바로 잡는다.
21세기를 살면서 자신의 글쓰기는 동네로 발을 묶어 버린 우리의 공간 개념을 넓혀준다. 동화는 원시 감성을 그리고 있어 전승 문화와도 통하고 아직 미발달된 심성의 어린이들과도 통하고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어른도 수용한다.
안델센의 뛰어난 환상성은 당시 유럽의 낭만주의 사조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원수(동원)의 동시 문학과 동시에 대한 자의식 탐색
첫시인 <고향의 봄>을 썼던 1925년에서 마지가 시 <겨울 물오리>를 쓴 1980년까지 56년간 시를 썼다.
1단계(1926~1949) 민족 가난 속에서 어린이가 겪는 아픔
누나를 바래주러
뱃머리에 나왔더니
흐렸던 하늘이
그만 비를 뿌리시네
두 달만에 한 번
겨우 다니러 왔다가
단 이틀을 못 쉬고
가야만 하는 건지.
편지마다 고향집이 그립다던 누나건만
처음 갈 땐 배에서도 울던 누나건만
점원 된지 이제 두 달
내 손에 과자봉지 쥐어주며
안 나오는 웃음으로
잘 있거라는 그 목소리
잘 가세요
잘 가세요
세상에 누구보다
고마운 우리 누나
씩씩한 우리 누나
옷보통이 옆에 끼고
비오는 갑판 위에 우두커니 선 누나
그 눈에도 그 눈에도
필시 비는 오시리라
바다에 비는 부슬부슬
빗속에 배도 멀어져 안 뵈건만
나는 부두에 혼자 서서
비 오는 바다만 보고 있다.
<가시는 누나:이원수>
저녁이면 성둑에
아기 업고 나와서
“보오야 넨네요.”
“보오야, 넨네요.”
아기는 일본 아기
칭얼칭얼 우남이
해질켝엔 여기 와서
"보오야, 넨네요.”
귀남아
귀남아
나ㅓ희 집은 어디냐?
저 산너머 마을이냐?
엄마 아빠 다 있니?
나무 나누 늘어선 서산 머리는
새빨간 새빨간 저녁놀빛
귀남아, 네 눈에도 저녘놀빛
<보오야 넨네요: 이원수>
나뭇잎이 손짓하며
너를 부른다
운동장 느티나무
가지마다 푸른 잎새
바람에 한들한들
너를 부른다
꽃이파리 곷잎마다
너를 부른다
울타리엔 찔레꽃
향기마저 피우며
바람에 하늘하늘
너를 부른다
순희야
순희야
양담배 양사탕
상자에 담아 들도
학교엔 안 나오고
한길로만 도느냐
우리도 목메며
너를 부른다
<너를 부른다: 이원수>
2단계(1950~1956)
영국군 노무자라 사무를 보다 소와되고 일 년간 천막생활하다 전쟁이 끝나 서울에 오닌 집은 넘어가 버리고 세 아이를 잃었늗데 끝내 두 자식을 못 찾았다. 전쟁이 남긴 상처의 치유 과정과 이에 다른 변화가 드러난 시다.
산이 나를 안아 준다
장송과 잡목이 몸짓해 반겨준다
골자기 개울이 노래를 불러 준다
해는 어느 산 뒤에 숨고
검푸른 밤이
우줄우줄 소리 없이 다가드는 길
그 서늘한 산기운 속에
나는 그만 훨씬 더 어린 아이가 된다.
어둠의 아름다움
쉼쉬는 수목의 향기로움
손을 잡은 아이가
못 견디게도 귀여워서
덥석 안고 돌아서면
아, 물결처럼 흐르는 나뭇잎 냄새
밤은 이렇듯 아름다운 것인가
밝는 날은 또 얼마나 화려할 것인가
귀여운 내 아기가
가슴에 안긴 채, 스르르 잠이 든다
<산정:이원수>자기 자신을 아이지만 타자로 객관화할 만큼 여유를 회복한 것이 그는 반가웠다.
눈 오는 소리 사락사락
밤은 깊어도 쉬지 않고 사락사락
산골 동에, 등불도 안 보이고
모두 모두 잠든 밤을
눈만 혼자 쌓이는ㄷ[
스웨덴 노르웨이
먼 북쪽 어느 나라엔
눈 속에서 굶주리는 새들을 위해
모이를 뿌려 준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아, 그렇다
귀여운 새들, 모두 며칠씩 굶고 추워
어디서 비비비 울고 있겠지
사락사락 사락 눈은 자꾸 내리는데
먹이를 줄 생각조차 못해 보는
가난한 이 나라에 사는 새들아
봄이 올 게다. 봄맞이할 꿈을 꾸며
부디 참고 잘 있거라.
사락 사락 사락
눈은 자꾸 쌓이는데
아름다운 이야기의 먼 북쪽 어느 나라
그 눈 오는 밤이 부럽구나
<눈 오는 밤: 이원수>
3단계(1957~1969)
회복된 시심으로 자기 성찰, 자기 이외 것들을 바라복 수 있는 여유를 갗준 시, 다듯해진 시선에 다양한 이미지와 비유 동반
비 온다, 소낙비 좍좍 온다
아무데나 두들기며 막 쏟아진다.
추녀 밑에 들어서서 보고 있으면
곷나무들 제자리서 비를 맞네
징독도 제자리서 비를 맞네
비속에 또 비 온다. 좔좔 온다.
산도 들도 비 속에 매 맞고 있네.
추녀 및에 들어서서 보고 있으면
아버지가 논귀에서 비를 맞네
누렁이도 논길에서 비를 맞네.
<소낙비: 이원수>
완두콩 하얀 꽃 피었다고
좋아했더니
어느새 콩이 열렸네
연두빛 고운 콩 꼬투리
햇빛에 비쳐
속이 환히 보이네
하난 둘 셋 넷...일곱 여덟 개
연하디연한 어린 콩알 나란히 들어 있네
바깥엔 무슨 바람 불어와도
모른 체 나란히 들어있는 콩
우리 식구도 여덟이란다
아! 완두야, 잘 자라라
엄마 배 속에 든 아기처럼
완두밭엔 여전히 흰꽃들 피어 있고
비 한 번 안 와도
꽃은 이어 피고
콩은 무수히 맺어 자란다. 자란다. 예쁜 우리 완두콩
<완두콩: 이원수>
산은 너무
조용해서 무섭다
따순 바람은 고여만 있어
나뭇잎 풀잎 하나 꼼짝도 않고
우거진 푸른 덤불 속에
아, 아!
저 작은 불송이들, 가시줄기 사이로
죄 짓는 듯 딴다.
보드랍고 연해
조심스런 산딸기
불을 먹자
따스하고 서늘한
달고 새폼한
연하고도 야무진
불의 꼬투리
내 입에도 넣어주고
네 입에도 넣어주고
작아도 빨간 딸기 송이는
덤불 속에 열린
호화로운 눈동자
우리도 저런 것이 될 수 없을까
꾸르륵 꾸르륵......
어디서 괴상스런 소리의
새가 운다.
사람이 너무 없어
아늑한 산이
무서우면서도 좋다
<산딸기:이원수>
포플러 숲을 가면
여울물 소리
여기 무슨 강이 있나
들러보며는
여울물이 하늘로
흘러가면서
가자 가자 가자고
갈바람 소리
울던 일은 언제던가
모두 다 잊고
나도 너랑 손잡고
하늘로 간다.
간다 간다 간다고
여울물 소리
<여울물 소리:이원수>
4단계(1970~ 1981년)
죽음 앞에선 삶, 공기, 불 등의 추상 제재
포플러 숲을 가면
여울물 소리
여기 무슨 강이 있나
둘러보며는
여울물이 하늘로
흘러가면서
가자 가자 가자고
갈바람 소리
울던 일은 언제던가
모두 다 잊고
나도 너랑 손잡고
하늘로 간다
간다 간다 간다고
여울물 소리
<여울물 소리:이원수>
공간적으로는 상승 공간으로 시의 놀라움이 즐거움으로 바뀌어 사랑을 바탕으로 한 자아 확장 공간이 이루어진 것이다.
신현득 시는 고향에 대한 시로 쉽게 이어지며 자연, 우리 것에 대한 신현득 시를 모아보면 그 매개항은 노동하는 육체가 드러내는 힘줄임을 안다. 탱탱하게 긴장되어 있는 힘줄
부지깽이는
어디가 착한가?
섶나무
공구어 피우며
자신의 한 끝을 태우는 목숨
-뜨거운가?
-뜨거울 수밖에
장작불 뒤적여 주고
자신도 불이 붙는다
-아픈가?
-아플 수밖에
내 몸 태우지 않음
어째서 부지깽이fi.
아궁이 곁에 놓여
불 지피며 짧아지다가
오뉴월 점심낮에
보릿짚을 때다가
보리밥 지으며
몽당이가 되다가
마지막
남은 내 몸까지를
불 속에 던지는
부지깽이.
<부지깽이: 신현득>
하나 가득 익은 들을
업어 나르고
산에 가면
오솔길로 숲을 나누어 업고
그것으로 우리 조상의 온돌
아랫목을 태워 주고
바다에 가면
바다를 나워 등짐으로 업고
대관령 큰제 너머
우리네 장독간까지
소금맛을 대어 주던 지게
<지게:신현득>
쓰는 작가는 많은데 읽히는 작가는 드물다. 꿈의 배제만이 능사가 아니고 꿈에 새롭고 적절한 상징을 내장시켜야 한다. 문학이 여타의 글과 구분되는 가장 뚜렸한 특성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학은 주제를 담고 있으되 그 주제를 어떻게 드러내느냐에 가장 골몰하는 글쓰기이다. 비유, 암시, 복선, 이미지 등은 주제를 은근히 드러내는 상징 어법들이다. 동화는 어린이 독자에게 형태의 간결함 속에서 성인 작가의 메시지를 부드럽고 요령있게 드러내어야 한다. 상징이 말하려는 것, 곧 가치 있고 명료한 주제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변했다.
TV 모니터는 마법 상자처럼 마법의 숲을 지나더니 아이들이 변했다. 지난날의 시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감각을 가진 신종어린이가 생겨났다. 핵가족 제도도 새로운 어린이의 출현을 부추겼다. 가족의 일상은 더 이상 어른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안흔다. 어린이를 중심으로 식단과 주말 계획표가 자진다. 첨단의 기계문명의 수혜자이고 도시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서구 문화 상품들에 노출되어 어인이다운 어일이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문학은 위기다. 농경사회 출신 작가들에게 자기들에 대한 적극 이해를 원한다. 책읽기가 싫다한다. 1980년대가지만 해도 통했던 작가와 독자와의 교감 GTLEO가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독자의 소실은 문학의 위기다. 작가들은 독자가 배반한 이유를 밝혀 위기를 이겨야 한다. 위기 극복 양상은 두 가지다.
<양상1> 조급성을 드러낸 단순 대처: 이는 원인에 대한 대립적 자세와 성급한 수용이라는 양가적 태도를 노출시킨다. 기계문명의 발달을 문자 메체의 위기와 직결시키는 생각 이면에는 양자를 대립으로 파악하는 사고가 있다. (텔레비전이 보급되면 신문은 없어질 거라는 추측이 맞지 않았듯이) 반면에 영상 매체의 매력을 문학작품 속으로 성급하게 수용하려 하나 급체 현상을 드러내는 소재주의적 자세만 드러내고 만 것
<양상2>변화된 독자의 정서와 유지되어온 작가 자신의 감성을 조율하는 자세가 필요
새로운 인식으로 위기 대처 방법이 타작가들과 변별점을 보이고 그것이 기존 아동문학의 변혁을 유도한다면 그것이 타당하다. 방송국 PD왈 드라마 승부는 처음 몇 초에 달려 있단다, 초반에 재미 없는 드라마를 끝까지 보는 시청자는 없다. 어린 독자의 동화책 읽기도 그와 같다.
“엄마야아!”
이것이 내가 한 가장 마지막 말이었던 것 같다. 누눈가가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나의 몸에서 모든 중력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엄마야아!”하고 비명을 지른 것은 바로 그 때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비명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나를 끌어당기는 그 엄청난 힘에 말려 어디론가 발려 들어갔다.
-이 경우 공간 배경 묘사나 화자가 누구인가 밝히는 정보 없이 독자를 사건 중심으로 이끌어 몇 초 안에 눈길을 끌게 한다. 뉴 미디어 시대가 작가에게 문장 위주의 문체에서 영상 문체로의 일대 전환을 요구한다.
이;FEKS 현대 소설이 사건의 시간 질서와 서술 질서를 일치시키지 않고 두 질서의 끊임없는 교란과 왜곡을 통해 서사적 긴장과 재미를 얻어낸다. 서술 질서
시간 질서와 일치하는 정상 질서
일치하지 않는 교란, 회상 질서
중간에서 시작하는 생략 질서는 소설에서 시작해서 영화에서 사용하는 서술 형태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전히 거꾸로 배치한 역순 배치 기법은 영화가 개발한 이야기 조직접이다.
<나 혼자 아는 이야기>작가 이혜원은 빠르고 재치 있는 장면 변화의 구사가 회상 질서와 정상 질서를 교차해서 판타지 동화를 구성했다. 현실 셰게와 낯선 세계 두 개의 공간에 회상 질서가 나타나 한결 복잡한 이야기가 된다. 한 장면의 설명 없는 전환이라는 영화의 특권이 이혜원의 동화에서도 확인된다. 도정일은 영화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에“라든가 ’책방에서 잡지를 들여다보다가‘와 같은 장면 전환의 설명이나 묘사 없이 버스 타고 가는 장면, 책방에 서있는 장면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뽀그르르
그는 계속해서 거품을 내뿜었다. 내가 몇 가지 일들을 기억해 내는 동안에도, 그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거품을 내뿜었다. 그가 뿜어낸 거품들은 야단스럽게 보글거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중 몇 개는 내 앞으로까지 날아와 머리며 콧잔등이며 어깨로 살포시 내려와 앉았다가 순간, 차갑게 터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기분 나쁜 차가움이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불에 타는 듯 이글거렸단 그의 눈빛도 침국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했다. “저, 뭣 좀 물어도 될까요?”
계속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궁금한 것만큼이나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이는 그대로 보여주기만 함으로써 장면의 전환을 이루는 영화적 장면 제시에 가깝다. 이혜원은 영상 기법의 동화로의 능란한 적용을 통해 즐거움을 준다. 이런 즐거움은 그 이면에 자리한 새로운 동화 문법에서 유발된 것이다.
<원숭이 그림자>는 남의 흉내만 내며 살아가는 원숭이 이야기다. 원숭이의 그림자가 그를 버리고 햊바라기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새로 생긴 해바라기 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자신의 원래 모습이라 생각하고 해바라기 모습을 한다.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고 남의 것만 흉내내며 살아가는 사람의 우스운 꼴은 드러낸 작품이다.
<하마의 팔자 타령>은 매일 핑계만 대다가 수영을 못 배우고 마는 하마 이야기다.
<나야 뭉치 도깨비야:서화숙>도개비는 도시 개발과 현대 문명에 밀려 살마들과믄 멀리 떨어진 곳에 숨어살지만 이 도깨비는 아파트에 산다. 평면 구조라 도깨비가 살기엔 불리하지만 요즘 아이들 입맛에 맞는 귀여운 캐릭터로 보람이네 집에서 보람이를 찾가헤 이끄는 대신 자신의 비법을 알려주거나 보람이를 따라 멋진 옷을 입으려는 신세대 도깨비다. 쉽게 독자가 동화도고 보람이와 스TM럼 없이 지내기에 실제 만나고 갖고 싶은 존재가 된다. 이 작품은 도깨비를 일상 속에서 함께 하는 존재로 그려 일상 생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매체 역하를 하게 하고 특정 주제나 교훈이 없다. 일상의 자작한 이야기를 나열하는데도 훈훈함이 남는 동화는 전래 동화 문법을 해체하는 새로운 동화 문법이다.
신세대 아동문학의 비전
첨단의 소재를 취급했다 할지라도 감각이 후지면 독자의 외면을 받는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전래동화가 끊임없이 재화되는 것은 바로 이런 변화되는 감각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보편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와 시대 정신까지를 꿰뚫어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신세대 작가들이 쓴 작품이 고전으로 남으려면 아동문학에는 우리 아이들이 21세기 세계의 보편적 질서에 친숙하게 하고 공통의 가치관을 소화할 수 있도록 새로운 문학적 인식이 담겨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