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용구현과 처인현을 합치며
두 고을 이름을 한 자씩 따 용인현으로 부르게 된다.,
용인은 백제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서 즉위한 이후
용구현(龍駒縣)으로 백제의 영토에 속하였다.
용구현을 멸오현(滅烏縣)이라 칭했던 기록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우리말의 "말아"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말아" 또는 "말" 은 '마루'와 동의어로
크다와 높다의 의미가 포함된다.
즉, 큰 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고구려 장수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남정하여
백제의 왕도인 한성을 점령, 백제 개로왕을 죽이고
구성현으로 고구려 영토에 귀속시킨다.
축대앞 갈색과 녹색 장식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살린 것으로 보인다.
용인, 지명이 가진 상상속 동물,
용, 미르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미르마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