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0월 6일 일요일 설악산 안산
신사 산악회 이용 고인돌 임종삼 님, 사니조은 하치윤 님과
산행코스 : 장수대 – 대승령 – 안산 – 한계리 석황사
산행거리 : 약 14 km 산행시간 : 약 8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714065
거리 14.1 km
소요 시간 11h 45m 43s
이동 시간 8h 17m 24s
휴식 시간 3h 28m 19s
평균 속도 1.7 km/h
최고점 1,453 m
총 획득고도 806 m
난이도 보통
오랜만에 세 명이 함께 산행한다. 지난 번 명지산을 다녀온 후 내가 러시아 여행을 갔고 돌아오자 마자 가을 단풍을 그리며 설악 품에 안겨볼 참이다. 머릿속에는 작년 10월 3일 마치 불타는 듯이 설악산 귀때기청봉을 붉게 물들였던 산행 풍경이 눈에 삼삼하다.
약 2주간 별다른 산행이나 걷기 운동을 하지 않은 탓에 장거리 산행이 내키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공룡능선이나 서북능선을 길게 타고 싶기도 하지만 약간 겁이 난다. 마침 고인돌 형님도 안산 산행을 원하던 터라 우리는 만장일치로 장수대에서 안산으로 오르는 산행코스를 결정했다.
장수대에 일찍 도착했다. 매번 주말마다 태풍이나 비 소식으로 산행에 불편한 날씨였으나 이번만큼은 최상의 가을 날씨를 예고한다. 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버스정류장에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이려 들어가니 우리와 똑 같은 생각을 가진 여성 산객 두 분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듯 이제 막 조리를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가는 코스를 물어보니 우리와 같이 대승령에서 안산을 거쳐 남교리로 갈 예정이란다. 한참 라면을 끓이려 준비중인데 우리와 같은 버스에서 내린 남자 한 분이 정거장 문을 열고 고개를 빼곰히 들이밀고 산에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는 대승령에서 귀때기청봉을 거쳐 서북능선을 타고 다시 공룡능선을 지나 백담사로 내려갈 예정이라 한다. 설악산에 오르다 보면 정말 대단한 기인들을 많이 만난다. 한계령에서 출발해도 그 코스를 제대로 걷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것이 성에 차지 않아 장수대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체력이 좋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천천히 안산을 거쳐 남교리로 갈 예정이라고 하니 그는 인사하고 바쁜 걸음을 거둬간다.
라면을 끓여먹고 커피도 한 잔 얻어 마시고 났는데도 시간이 많이 이른 편이다. 새벽 3시 30분 우리는 더 이상 머뭇거릴 명분도 이유도 없어 하릴없이 장수대 탐방로에 들어선다. 길 가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경쾌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야간 산행에서는 오로지 귀로 들려오는 소리만이 산행의 지표가 된다. 몸에 익은 계단길을 오르고 대승폭포 전망대에 올라서니 폭포물 떨어지는 소리가 우렁차다. 혹여나 보일까 전등불을 위로 쳐들어도 멀리 떨어진 물줄기는 그저 어둠속에 숨어있다. 대승폭포는 비가 내린 직후 며칠 상간에나 물떨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을 만치 물이 귀한 폭포다. 그 위 계곡 바닦이 돌로 되어 있는데다 길이가 짧은 탓이리라.
대승폭포 전망대에서는 폭포를 귀로 보고 밤하늘 가득 흐르는 별을 두 눈 가득 담는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니 산을 올라온 만큼 별이 가까이 다가온다. 겨울철 대표적인 별자리인 오리온 자리와 큰개 그리고 작은개 자리가 또렷하다. 전에 러시아에서 한 번 연습해 본 별자리 사진찍기를 시연해 보였다. 별 빛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조리개를 최대한 노출시켜서 장시간 움직이지 않은 채 정지해 있어야 한다.
대승폭포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대승령을 향한다. 우리보다 늦게 도착한 산행팀들도 하나씩 둘씩 우리를 추월한다. 산을 오르면서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어젯밤 서초동에서 열렸던 집회와 개천절 광화문 집회에 대한 얘기로 옮겨간다. 우리나라 민주화를 완성시키려는 검찰개혁의 절실함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그것을 꼭 조국 법무부 장관이 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보수층을 대변하듯 고인돌 형님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처벌이 과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하지만 그런 온정주의를 이용하는 기득권 세력들이 친일파청산이나 독재정권과의 결별에 번번히 개입하여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실에 대해서는 모른 체하는 것 같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역사적 청산이 있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갈등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늘 정의롭지 않은 사람들이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정의로운 사람들을 짓밟아 왔다. 그러던 것이 1986년 6월 항쟁을 통해 비로소 시민들의 힘으로 독재를 밀어내고 어렵게 어렵게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유지해 오고 있는데 지금 보수세력이라고 하는 희미한 개념 뒤에 숨어서 커다란 기득권 세력이 꿈틀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산이 그렇게 좋은가요? 사는게 그리 좋은가요? 사니조은 고인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산을 오르다 보니 날이 밝아오고 대승령에 이르렀을 때는 완전히 밝았다. 별이 맑게 보일 때는 하늘이 청명하고 시야가 탁 트인 줄 알았는데 해가 밝고 나서 보니 안개가 조망을 가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찬 공기가 옷깃을 여미게 한다. 낮으막한 산줄기를 가리는 안개를 바라보며 오늘 산행에 대한 전망도 희미해진다.
단풍은 예년같지 않다. 고인돌 형님은 올해 늦추위가 있어서 대체적으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계절이 늦다고 하신다. 나뭇잎은 아직 푸른 빛을 띄고 있고 단풍이 든 것도 기대했던 것처럼 예쁘지가 않다. 안개비에 젖은 나뭇잎이 스산하다. 지들도 마음같아서는 불같이 빨갛게 타오르고 싶을 테지만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 없으니 안타까울 터이다.
안산 삼거리에서 금줄을 넘어 안산으로 향한다. 작년이던가. 늦은 여름 이 곳을 찾았을 때는 참조팝나무와 터리풀이 길 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화려한 풍경을 연출했었다. 은근히 투구꽃이나 과남풀 그리고 쑥부쟁이와 구절초꽃이 남아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혹시 금강초롱이라도 한 두 송이 피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
안개 낀 숲속으로 그리고 가을속으로 들어간다.
안산으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건너편 가리봉이나 주걱봉은 안개에 흽싸여 있다. 설악산에는 안개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전망이 탁 트인 바위 봉우리가 ‘대한민국’봉우리다. 차가운 바람을 조금 막아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사니조은 님은 버너를 꺼내 불을 지펴 삼겹살을 굽는다. 바람이 제법 차갑다. 배낭에서 풀오버를 꺼내 입었다. 계절은 겨울을 향해 나아가는데 아직도 머뭇거리는 단풍이 야속하다. 한 시간쯤 지나니 정말 약속이나 한 듯 안개가 서서이 걷히고 가리봉과 주걱봉의 모습이 드러난다. 다만, 가리봉 정상 위에 걸터앉은 구름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
산 이름이 대한민국봉이란다. 참 멋진 이름인데...
건너편 가리봉은 지금 한창 안개와 술레잡기 놀이중이다.
두 번에 나눠서 먹으려던 삼겹살 한 근은 장정 세 명에게는 양이 너무 적다. 찬바람에 쉽게 데워지지 않는 불을 코펠 안에 넣어가며 그럭저럭 맛있게 구워먹었다. 옷을 껴입어도 찬바람에 몸이 추워진다. 날이 밝아 오자 당일 산행팀들도 하나씩 둘씩 올라온다.
가을 단풍잎은 왠만한 꽃보다 아름답다.
가을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개쑥부쟁이
한 여름 설악산을 흔들어 대던 바람꽃이 아직도 몇 송이 남아 있다.
가을꽃 산구절초도 벌써 자취를 감춘다.
안산으로 가는 길에 한 무리의 여성회원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특별히 눈에 띈다. 작년 초겨울 천불동 계곡을 내려올 때 백패킹용 큰 배낭을 메고 거꾸로 설악산으로 올라가던 도봉산 왕언니라는 별명을 가진 86세 할머니다. 유쾌하게 산객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산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이 분은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이 산행팀 팀원들도 나이가 꽤 많다고 하는데 그 중 여행작가 한 비야 씨도 함께 하고 있어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산객들과 기념사진도 찍는다.
내가 전에 안산에 갔을 때는 짙은 안개로 조망이 좋지 않아 안산 정상에는 오르지 않았었다. 그러니 오늘이 안산 정상에 처음 오르는 날이다. 정식적으로 탐방이 금지된 비탐구간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여느 탐방길 못지 않게 길이 뚜렷하고 실제로 산에 오르는 사람도 꽤 많다. 물론 지금이 단풍산행 절정시기인 점을 감안하면 아마 서북능선이나 공룡능선 등 정식 탐방로에는 산행객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보인다.
늘씬한 다리를 봄내는 가는다리장구채
이 때쯤 흔하게 피어 있을 법한 과남풀도 눈에 띄지 않는다.
꽃보다 열매가 더 매력적인 산앵도나무 열매
지리산이 고향인 정령엉겅퀴
산구절초가 무리로 피어 있는 모습이 소담스럽다.
여름 내내 구석구석 피고지던 산목련꽃 (함박꽃나무) 열매.
작은 씨앗 달려 있는 모양이 이슬방울 같다고 하여 쥐털이슬이다.
오늘 산에서 제일 많이 만난 가을 꽃 산구절초
안산 정상에서 뜻하지 않게 아직도 몇 송이 남아 있는 <백리향>꽃을 볼 수 있었다. 8월에 한계령에서 남교리로 내려갈 때 만났던 부부산객이 안산 정상에서 백리향을 보았다고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난 아직 백리향 꽃을 본 적이 없어 무척 궁금했는데 마침 고인돌 형님이 먼저 보고 가르쳐 주어 내 생애 처음으로 백리향 꽃을 만날 수 있었다. 작은 잎이 많이 뭉쳐서 달려 있고 줄기는 덩굴 같이 길게 벋었으며 자주색 꽃이 뭉쳐서 핀다. 이름대로라면 꽃 향기가 멀리까지 퍼질만큼 진할 것 같은데 꽃에 코를 바짝 대고 향기를 맡으려 하였으나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아마 계절이 지나 지금은 향기가 다 사라졌나보다.
안산에서 서북능선쪽을 바라보니 귀때기청봉이나 대청봉 등 높은 지대는 모두 구름에 가려져 있다. 남설악 가리봉이나 주걱봉은 이제 구름이 걷혀서 제법 뚜렷하게 보인다. 작년에 현오 권태화 님과 저 산에 가보기로 했다가 갑자기 찾아온 겨울 날씨에 흐지부지되었는데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산줄기다.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즐거운 마음으로 항상 움직이는 것이다. 86세이신 도봉산 왕언니의 건강비결
다람쥐꼬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름이 개석송이라고 한다.
큰솔이끼
서북능선위에 귀때기청봉과 대청봉은 구름에 닿아있다.
가까이 대한민국봉 그리고 오른쪽 가리봉이다.
어느게 고양이바위이고 어느게 치마바위인지 모르겠다.
요 바위가 반대편에서 보면 고양이 귀 모양의 바위가 두 개 있어서 고양이바위라고 부른다는 얘기인데..
안산 정상에서 여행작가로 유명한 분을 만났다.
단풍이 짙어가는 가을의 문턱을 넘는다.
오늘 산악회 버스에서 우연히 현오님을 만났다. 작년에 지리산 산행 때 만난 후 함께 설악산 화채봉 안내까지 해준 분인데 그 동안 서로 엇갈려 함께 산행을 못했는데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에게도 일행이 있어 서로 눈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다른 이들은 모두 안산에서 원점회귀하려 내려가고 우리는 산줄기를 타고 남교리까지 가기로 하였다. 여기도 산길이 제법 뚜렷하여 길 잃을 일은 없어 보인다. 출입금지 팻말을 넘을 때마다 법을 어긴다는 불편한 마음을 가졌는데 어찌된 일인지 법을 어기고 비탐길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8월에 한창 피어 있더라던 백리향 꽃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백리향 꽃 색깔도 참 곱다. 하지만 백리까지 퍼진다는 향기는 여름을 따라 날아간 듯 하다.
가는다리장구채
천남성 열매
산솜다리 즉 에델바이스는 이렇게 털달린 잎으로 추운 겨울을 난다.
능선길을 타고 가다가 조금 일찍 내려갈 심산으로 우리는 도중에 왼쪽 계곡길로 내려섰다. 길이 무척 가파른 경삿길이라 불편하다. 더구나 등산화 끈을 제대로 조이지 않은 탓인지 발가락이 아파온다. 여느때처럼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앞서 가는 고인돌형님과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사니조은님을 쫒아가기 버겁다.
급경사길을 내려오자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편안하다. 길도 외길이라 벗어날 일도 없다. 신발끈을 조이고 조금 여유있게 한참 걸어 내려오니 마을이 나타난다. 설악면 한계리다. 마을에는 계단식 다랭이 논에 벼가 익어간다.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 내려가니 석황사라는 절이 나타나고 곧 이어서 원통에서 한계령을 거쳐 양양으로 넘어가는 국도를 만나 산행을 종료한다.
가을 단풍잎
신갈나무잎은 아직 여름빛을 간직하고 있다.
하산길에 능이버섯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산 아래 마을에는 미국쑥부쟁이가 한창이다.
까실쑥부쟁이도 많이 피어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인 듯 나무 아래에는 제단이 세워져 있고 술병이 늘어 서 있다.
나도송이풀
석황사 경내에 있는 소나무 - 전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만큼 크다.
여기서 산악회 버스를 탈 수 있는 한계교차로까지 약 3 km 를 가야 하는데 시내버스 시간도 맞지 않아 걸어가기로 했다. 긴 산행 후에 자동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아스팔트길을 걷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거리니 택시를 불러 타기도 애매하다. 가는 길에 냇물에 들어가 몸을 씻고 옷을 갈아 입었다.
한계 교차로에 있는 휴게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산에서 내려올 때 우연히 따 온 능이버섯을 넣고 끓인 라면이 별미다. 비록 단풍다운 단풍은 보지 못했지만 역시 설악은 언제 가도 좋다.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가득 담고 남는 것은 카메라에 담아 집으로 오면서 또 언제 가보나 하는 기대감에 부푼다.
안산에서부터 이어지는 긴 산길을 내려오면 석황사를 지나 인제 -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도로로 나선다.
이제 바야흐로 계절은 가을이다. 가을꽃 산국이 피기 시작했다.
길 가에 죽 늘어선 해바라기
한계령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에서 손발을 씻는다.
마가목
내설악 휴게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능이버섯 라면을 끓였다.
능이라면에 소주 그리고 커피로 긴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