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실드의 바이올린> 줄거리
일흔 살의 야코프 이바노프는 소도시에 사는 장의사이다. 벌이가 변변치 않으며 평생 작은 오두막에 아내 마르파와 함께 작업대와 관과 모든 세간을 두고 살았다. 관 짜는 일 외에도 바이올린 연주로 돈을 좀 벌었다. 일반적으로 결혼식날 유대인 악단을 초대하는데, 악단 지휘자가 솜씨가 뛰어난 야코프를 초청하곤 했다. 거기서 만난 사람이 빨강머리 유대인 플루트 연주자 로실드이다. 로실드는 가장 유쾌한 곡조차 슬프게 연주하며, 말이 어눌한 데다 윽박지르면 울음을 터뜨리거나 피하는 성격이다. 야코프는 어느 결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유대인을 증오하고, 로실드를 증오하고 경멸하기 시작했다.
야코프는 주일이나 축일이라서 일을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쉬는 날이 많아서, 악단의 지휘자가 불러주지 않아서, 누군가 악단 없이 결혼해서 벌지 못한 돈을 손해로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그런 번민에 시달리는 밤이면 침대 곁에 놓아둔 바이올린 줄을 퉁기곤 했다.
아내 마르파가 갑자기 병이 났다. 마르파는 비틀거리면서도 집안 일을 하고 저녁에 앓아 누웠다. 아내가 앓아 누워도 손해본 돈 생각만 하던 야코프에게 마르파가 “나, 죽어요.”라고 마치 이 생활과 야코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기쁜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야코프는 평생 아내를 위해 주지 않았다. 아내를 위협하고 돈을 절약하느라 차도 마시지 못하게 했던 그는 그제야 마르파를 병원에 데려갔으나 별다른 치료법이 없이 마르파가 세상을 떠난다. 죽기 직전 마르파는 50년 전 태어났던 아기와 이들 부부가 강가에서 내내 노래를 불렀던 행복한 시절을 추억한다.
야코프는 관을 직접 만들고 이웃의 도움으로 저렴하게 장례를 치른 후 만족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극심한 슬픔에 사로잡혔다. 그제서야 52년 세월을 한결같이 말없이, 수줍고 자상하게 곁을 지켜주었던 마르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길을 걷다가 강가에 이르러 늙은 버드나무를 보고 마르파가 이야기했던 금빛 솜털이 난 아기와 버드나무를 떠올린다. 그리고 50년 세월 동안 강가에 와보지 않았던 것, 이 강에서 고기를 잡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짐배를 운항하고, 거위를 잡았다면 얼마나 큰 돈을 벌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인생은 아무런 유익도 만족도 없이 헛되이 지나가 버렸다고 한탄한다. 그는 “왜 평생 욕하고 투덜대고 주먹을 휘두르고 아내를 모욕했을까?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어 방금 전 유대인을 겁주고 모욕한 것일까?...증오와 미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엄청난 유익을 얻을 수 있을텐데…” 이런 생각으로 밤까지 번민한다.
다음날 겨우 일어나 병원으로 가서 약을 받아왔지만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서글프게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이때, 로실드가 다시 결혼식에 연주자로 초청하는 소식을 가지고 와서, 야코프의 연주를 듣고는 감동에 젖어 눈물을 떨군다.
저녁에 사제가 찾아와 고해성사를 집행할 때 야코프는 “바이올린을 로실드에게 주세요”라고 유언을 남긴다. 이후 로실드는 플루트 연주를 그만두고 바이올린만 연주한다. 특히 야코프의 연주를 흉내내려 할 때면 너무도 우울하고 비장한 음조가 흘러나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그의 연주는 널리 사랑받는다.
<감상>
1. 주인공이 손해본 것을 기준으로 삶을 생각하고 불평만 일삼으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모질게 굴다가 아내의 죽음과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계기로 동정심과 연민을 회복하는 이야기는 한편의 우화와 같다. 체홉은 작품에서 교훈을 펼치거나 어떤 주장을 하지 않으면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 중에서 <로실드의 바이올린>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이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나는 과연 일상에서 어떤 생각을 주로 하는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2. 주인공은 야코프이지만, 무엇보다 마르파의 짧은 행복과 긴 고통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낡고 좁은 오두막에 무엇이 있었는지 소개하는 문장에서 마르파는 마치 가구처럼 ‘벽난로, 2인용 침대…’와 나란히 등장한다. 인색한 남편 때문에 차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해 뜨거운 물만 마셨고, 죽기 직전 병원에 다녀와서도 바로 자리에 누우면 남편이 구박할 것 같아서 페치카를 붙들고 10분 정도 서 있었다. 수십 년 전, 솜털이 보송보송한 아기를 얻었지만 아이는 죽고 버드나무 아래 추억만 남은 채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죽는다는 말을 그처럼 환하고 기쁜 얼굴로 했을까.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한두 세대 전 우리나라 여성들과도 다르지 않게, 남편이나 환경의 그늘 아래 억압받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3.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음미하게 된다. 야코프는 고된 삶에서 바이올린 선율로 위로를 얻고, 자기는 죽지만 바이올린이 땅에 묻히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악기를 로실드에게 줌으로써 모질게 대했던 로실드에게 사과와 화해의 마음을 남긴다. 그리고 야코프의 몸은 관에 들어갔어도 그 선율은 로실드의 연주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한다.
(한편, 1939년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수였던 쇼스타코비치는 애제자 벤야민 플레이시만에게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냈고, 플레이시만이 작품의 기초를 잡은 단계에서 2차대전에 참전하여 사망하자 1944년에 제자 대신 오페라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