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봉지 / 김석수
구순이 가까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부엌에서 달걀과 토마토를 물에 넣고 삶는다. 젊은 사람에게 그 시간이면 아침이라기보다 새벽이다. 사과와 우유를 믹서에 넣고 당신 방에 들어가 시끄러운 소리 내며 갈아서 컵에 붓는다. 밥하고 시래깃국도 끊인다. 부산한 아침 준비에 잠이 깨서 눈을 비비고 방에서 나오면 식탁에 한 상 가득히 차려져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여러 종류의 약봉지를 들고 나와 약을 드신다. 혈압과 갑상선 약이다. 얼마 전 동네 병원에서 검진하다 갑상선 암을 발견하고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경과는 좋아서 지금은 활동하는 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갑상선에 좋다는 약을 이것저것 먹고 있다. 홍삼이나 비타민 같은 건강 보조 식품 봉지(어머니 말로 봉다리)도 방에 가득하다. 어떤 때는 약 봉지가 많아서 무슨 약을 드신지 잘 알지 못한다.
팔순이 지나서부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기침만 나와도 병원에 가신다. 좋다는 동네 병원은 물론 소문난 시내 병원을 두루 다니신다. 이제는 신종 의료기 매장을 찾아가는 것이 일상이 된지 오래다. 아마 노인당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얻으신 것 같다. 노인을 상대로 하는 의료기 매장이 많아서 매일 그곳으로 출근 하느라 바쁘다. 한번은 미건 의료기라는 것을 가지고 왔다. 일종의 안마기구 같은 것인데 외상으로 사왔다. 한 달 사용하더니 반납해야겠다고 했다. 사용료를 지불하고 반납했는지 잘 모르지만 여러 종류의 의료 기구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했다. 맘에 들면 할부로 구입하기도 한다. 아내와 여동생은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낭비한다며 다니지 말라고 권유해도 소용이 없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가신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다. 젊으셨을 적에 할머니와 함께 가끔 절에 다니셨다. 왜 교회에 나가시냐고 하면 노인당 친구들이 함께 가자고 해서 간다고 하신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특별한 생각 없이 그냥 가시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 교회에서 예배 끝나고 맛있는 점심을 준다고 했다. 가끔 교회에서 준 선물이라며 호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서 내게 주기도 했다. 목사님 좋은 말씀 듣고 친구와 교제도 하고 맛있는 점심 주니 안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매일 오후 노인당으로 출근하신다. 노인당이 집과 같은 건물에 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그 곳을 다니셨다. 노인당이 맘에 든다며 집이 나왔을 때 이곳으로 이사하자고 했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맞춤 이사를 온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인당에 가신다. 승강기 타고 내려가서 한 발짝만 뛰어도 갈 수 있으니 편한 곳이다. 그 곳에서 나이가 세 번째로 많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도 있고 동생들도 많다고 한다. 가장 큰 언니는 백세 가까운 할머니인데 아직도 기력이 짱짱하다고 했다. 봄과 가을은 물론 가끔 노인들과 함께 버스 여행을 가기도 한다. 여행을 가시는 날이면 초등학생이 수학여행 가는 기분으로 가시는 것 같다. 여행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하시니 아내는 금방 눈치채고 또 어머니 여행가실 모양이라고 한다.
가끔 밖에서 봉지(봉다리)를 잘 가져오신다. 당신 방 베란다는 만물상 같다. 주로 약봉지와 자식들에게 줄 물건들이다. 전용 냉장고도 있다. 밖에서 자주 물건을 사와서 아내가 따로 마련해 준 것이다. 명절 때면 오남매 자식들 이것저것 챙겨주기 바쁘다. 자식들이 안 주어도 괜찮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식혜를 좋아하는 여동생에게 줄려고 명절 며칠 전부터 버스를 타고 멀리 가서 엿기름 가루를 사오신다. 명절에 왔다 간 동생들 손에는 어머니는 준 배가 불룩한 봉지(봉다리)가 들려 있다.
저녁에 주무실 무렵 가끔 방에 들어가 팔다리를 주물러 주면 어린 아기처럼 좋아 하신다. 아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밥하시는 것 그만 하셔도 된다고 하면 ‘내가 요양병원에 안 가고 치매 안 걸리려고 얼마나 애쓴 지 아냐.’며 ‘건강(어머니 말로 몸댕이 장사)이 최고니 걱정 말라.’고 하신다. 요즘은 눈에 띄게 어머니의 얼굴에 검버섯이 늘어간다. 이대흠의 말처럼 늘어가는 검버섯은 자식들에게 퍼주던 것들, 봉다리 봉다리 들어낸 자국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