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옥 할머니께서 25일 낮 12시 30분경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 향년 78세.
김 할머니는 당시 13세이던 나주초등학교 6학년때 일본인 담임선생님의 회유에 의해 1944년 5월말경 일본 나고야에 소재한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소로 강제 동원되어, 해방 후 귀국할때까지 임금 한푼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에 시달린 바 있습니다.
당시 나주에서는 김 할머니를 비롯해 나주초등학교 출신 등 24명이 끌려갔는데, 그의 나이 불과 13살이었습니다.
김 할머니는 다카하시 마코도씨 등 일본 나고야의 양심적 시민들의 성원에 힘없어 뒤늦게 용기를 내 1999년 3월 1일 동료 피해자들과 유족 등 8명의 이름으로 일본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명예회복을 위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등, 근로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열심히 앞장서 왔습니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 11월 11일 최종 '기각' 판결, 생전 억울한 한을 풀어보고자 하는 할머니의 바램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김 할머니께서는 지난해 11월 13일 광주 YMCA에서 개최한 '최고재판소 기각 판결 및 미쓰비시 규탄 기자회견' 장에 노구를 이끌고 참석하신 바 있고, 지난해 12월 5일 재판 보고회 차 광주를 방문한 다카하시 마코도 '나고야 소송 지원회' 회장과 광주공항에서 만나 국적을 뛰어넘어 관심을 보여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겨울부터는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병원 신세를 져야 했으며, 올 봄부터는 광주시 동구 학동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해 오셨습니다.
한편, 김 할머니는 1980년 5.18 당시 대학생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군인을 보다못해 항의하다 머리에 부상을 입어 나중에 5.18 유공자 인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발인은 오는 27일이며, 장지는 국립 5.18 묘역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8년 5월 20일 양금덕 할머니 나주초등학교 명예졸업장 수여식에 참석한 김혜옥 할머니.
왼쪽부터 양금덕 할머니, 김혜옥 할머니, 고이데 유타카 '나고야 소송 지원회' 사무국장
나주초등학교 '이화관'에서 개최된 101주년 개교기념식 및 명예졸업장 수여식에 참석한 모습
2008년 12월 19일 광산구청에서 개최한 '어등포럼' 행사에 참석한 김혜옥 할머니.(왼쪽 양금덕 할머니, 오른쪽 이금주 회장)
전갑길 광산구청장으로부터 환영의 꽃다발을 받는 장면. 힘겹게 지팡이를 짚고 있다. 이때가 외부행사에 참석한 것으로는 마지막이었다.
2008년 12월 5일 광주에 도착한 '나고야 소송 지원회' 다카하시 마코도 회장의 손목을 잡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광주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