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돌비석
2023년 10월 28일 정연경 장로, 김대희 권사, 박창운 성도가 서로 협력하여 교회 마당에 갖다 놓은 세 개의 큰 돌을 기념비석으로 세웠다. 이 바위들은 지난 9월에 김대희 권사가 관급 공사인 덕거리 하천 준설작업을 맡아 시행하던 중 돌멩이, 자갈 등을 처리하다가 비석으로 쓰기에 좋은 바위를 하나님의 교회에 헌물처럼 드린 것이다. 그는 교회뿐만 아니라 마을 표지석 혹은 관공서 기념비석으로 재활용하도록 의미 있는 일을 수행해 왔었다. 이렇게 해서 김 권사가 교회에 돌비석을 봉헌한 것이 이번 3번째다. 첫 번째는 1993년 최초로 교회에 돌비석이 세워졌다. 당시 홍광수(洪光洙) 목사가 교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의미 있게 구상했던 일이었다. ‘오직 예수’란 시그널이 새겨진 돌비석이 예배당 정면에서 교회를 출입하는 성도들에게 이 믿음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 후 예배당 증축공사 때 이 돌비석은 제 역할을 마치고 옮겨져서 지금은 충청남도 입장면의 한 교회에서 새로운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두 번째 돌비석은 한영섭 목사 재임 시 2007년 현재의 성전을 신축 후 봉헌 1주년을 기념하여 2008년 8월 1일 교회 마당에 세웠다. ‘예수생명’이란 글씨는 교회가 생명공동체임을 선언하는 강렬한 느낌을 준다. 높이 3.8m(땅속 2m), 둘레 5.9m, 무게 30t 정도의 거대한 돌비석이다. 하나님께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상이 연상되는 자연석이라서 그 가치가 매우 높고 귀한 돌이다. 어느 교회든지 마찬가지겠지만 봉평교회 역시 성전 건축은 대단한 사역이었다. 16년 전 21억 원의 건축비가 소요된 대공사였다. 산골마을의 교회에서는 감당하기 심히 어려운 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감당해야만 하는 시대적 사명이었기에 당시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고 성전을 건축했으니 교회역사 가운데 기념비적인 일이 분명했다. 그래서 봉헌 1주년을 기념하여 선조들의 헌신을 담았고 후대에게 역사의 유산이 되게 했다. 예수님의 생명의 힘이 철철 흘러넘치는 교회로서의 위상을 간직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처럼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2023년은 교회 창립 8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그러던 중 80년으로만 알고 있던 봉평의 교회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 발생했다. 1928년에 30여 명의 신자들이 봉평 장터 어느 집에서 교회를 세우고 예배하고 있다는 옛 문헌의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1929년 제22회 미감리회 조선연회 원주지방 신홍식(申洪植) 감리사의 평창구역 보고 기사에 봉평교회 소식이 기록되었다. 교회 역사는 15년을 되찾았고 5년 후 2028년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 때문에 역사의 유물들을 찾던 중 그 존재조차 망각 속에 던져버린 1959년 봉평교회 ‘복음의 종’의 소재를 파악했고 현재 반환을 위해 기도 중이다. 새 성전 건축으로 옛 성전에 붙어 있던 성물들이 죄다 고물로 전락하려던 순간을 포착하여 고이 보관되었던 1960년대 주보, 교회명 동판을 찾는 등 나름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 때문에 2023년은 교회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에 돌 박사 김대희 권사는 이를 기념하고픈 마음의 감동을 받고 기도했다. 생각지 않게 하천 정비 사업을 위탁받고 공사하던 중에 그 개천에서 이런 보물을 발견했다. 하나만이라도 감사한데 높이와 둘레가 각각 1.5m에 5.9m의 돌 하나, 1.4m에 4.95m의 돌 둘, 2.86m에 1.43m의 돌 세 개를 보고는 기도의 응답으로 믿고 주저 없이 모두 교회 마당에 갖다 놓은 것이다. 그날이 9월 8일이었다. 그 후 김 권사는 널브러진 돌들이 1달이 지나도록 제 자리를 찾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던 중 여러 분들의 협력 하에 마침내 돌비석을 세웠다.
그날 함께 일한 성도들의 마음에는 단순히 돌만 세우는 작업이 아니었다. 그 돌들처럼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우리의 100년 역사를 잘 정리하여 이렇게 올바로 세워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불태웠다. 당연히 역사는 수자에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그 수자를 떠들어 보니 그 안에 휑하니 아무것도 없이 헛바람만 분다면 그 수자에 걸었던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이내 분노가 표출될 수 있다. 100이란 수가 주는 역사의 무게감은 그에 걸맞은 스토리(story)로 균형을 이룰 때 전통이 있고 역사에 빛나는 교회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된다.
인간은 자기 기념비를 세워 역사를 왜곡시키는 교만성이 굳게 자리 잡고 있는 존재다. 사울 임금이 갈멜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고(삼상 15:12) 아버지에게 불효했던 다윗의 아들 압살롬도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왕의 골짜기에 압살롬의 기념비를 세웠다(삼하 18:18). 그러나 기념비는 하나님이 그 시대 사람들과 일하신 흔적을 새겨서 당대는 물론이지만 특히 후대의 사람들에게 과거를 보고 자신들의 미래를 열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념할 만한 교회역사는 오직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뿐이다. 행여 사람의 업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 요단강을 건너야 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앞장 세워 요단강을 건너자 물이 끊어져 그 백성들이 안전하게 그 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했다. 이때 여호수아는 이를 기념할 만한 돌을 세우라고 지시한다. 각 지파대로 12개의 돌이 요단강 가운데에 세워져 기념이 되게 했다. 후손들이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세운 돌비석은 이제 100년 동안 하나님과 일하신 증거를 낱낱이 기념할 돌이 되어야 할 이유다.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여호수아 4:7).
첫댓글 후대의믿음의비가되어하나님의영광이되어지시길손모아기도합니다.아멘.
믿음의 선진들을 이어가는 봉평감리교회 되기를 기도합니다 🙏
홍성현 목사님 헌신하신 모든분 감사합니다
조송암 원로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