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농부 / 양선례
토요일 오후, 휴일인데도 출근한 남편을 기다렸다가 주말 주택에 왔다. 3주 전에 심은 무는 새순이 올라온 곳보다는 빈 데가 더 많다. 휘어지는 지지대로 터널을 만들고 그 위에 하얀 망사 모기장까지 씌운 배추는 서른다섯 포기 중 겨우 열한 포기가 살아 남았다. 주말에만 오기에 적절한 수분 공급이 안 된 탓이다. 지난 여름 내내 그곳은 풀밭이었다. 풀은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라며 세력을 키웠다.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 부끄럽다고 힘에 부치면서도 부지런히 베어 내던 남편도 텃밭 농사 5년 만에 지쳤는지 올 여름엔 본 체 만 체 하더라.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주말 주택을 살 때만 해도 집을 감싼 텃밭에는 잡초 하나 찾기 어려웠다.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갓이나 상추, 혹은 열무가 넘실거렸다. 유자나무에는 크고 탐스러운 노란 유자가 주렁주렁 달렸다. 가지가 휘게 붉은 감이 열린 감나무가 집 주변을 감쌌다. 우리가 집을 산 그해 가을에도 크고 맛있는 감이 열렸다. 포도나무에는 미처 다 따먹지 못할 만큼 포도송이가 달렸다. 무화과는 가을이 깊어가도록 주말마다 내 군것질거리가 되어 주었다. 한여름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이 육질이 단단하고 훨씬 달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집 뒤에는 텃밭이 있고, 그 위로는 300평이 넘는 녹차밭이 있다. 봄이면 차나무의 파릇한 새순이 신기했다. 잎이 거친 것에 비해 너무도 수줍은 하얀 꽃이 피었다. 남편은 좁은 골을 따라가며 잡초 방지용 매트를 깔았다. 공들인 것에 비해 채 일 년이 못 가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매트는 여름 햇볕에 삭았고, 풀은 그 사이를 뚫고 나올 만큼 힘이 셌다. 힘들여 깎았고, 녹차를 만드는 데 쓰이는 옹기를 주인 할머니에게서 삼십오만 원이나 주고 샀지만 차를 만들지도 못했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붉은 교회 지붕이 푸른 녹차밭과 어우러져 그럴 듯한 풍경을 자아냈지만 그뿐이었다.
남편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주말 농사 5년 만에 파와 쪽파도 구별하지 못하던 사람이 관리기를 몰고 밭을 간다. 혼자서 검정 비닐을 씌운다. 예초기로 풀도 벤다.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톱날이 달린 무선 전기톱을 휘두르며 녹차 나무도 깎는다. 그런 날이면 돌아누울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모기가 뜯은 등짝은 멀쩡한 데가 없이 붉게 부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 집은 풀밭이다. 특히나 지난 늦봄, 일이 있어서 한 달만에 왔더니 정글이 되었더라. 겨우 심어 논 고추는 제때 지지대를 해 주지 않아서 다 쓰러져 있었다. 주변 잡초가 더 크게 자라서 앉아서 지지대를 해 주기도 어려웠다. 결국 남편이 힘들게 심은 100주나 되는 고추는 제대로 수확도 못한 채 풋고추 몇 개 따 먹는데 그쳤다.
그뿐이랴. 포도와 무화과 나무는 지난 가을의 무리한 가지치기로 올해는 열매조차 맺지 않았다. 그나마도 칡넝쿨이 덮어서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집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를 묻은 탓인지 이 집을 산 첫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본 적 없는 아삭한 감을 맛보게 해 주던 감나무는 봄이 되어도 새순이 돋지 않았다. 뒤늦게 땅속 쓰레기를 파서 옮기고 새 흙을 가져다 부은 덕에 겨우 살아나기는 했지만 감꽃은 피지 않았다. 맵고 짠 음식 찌꺼기가 뿌리까지 흘러 내린 탓이라고 했다. 수돗가 양쪽에 있는 유자나무도 세 그루가 죽었다. 남은 세 나무에서 올해는 유자가 많이 열렸다. 아직은 짙은 초록이지만 머잖아 노랗게 본래의 색을 드러낼 것이다.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한 번도 쓰지 않았기에 크기는 탱자만 하고, 오돌토돌한 표면에 검은 점이 많지만, 유기농이라서 믿고 먹을 수 있다.
자두나무 꽃이 이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얀 꽃이 뭉쳐서 다닥다닥 피어난다. 달큰한 향기가 어찌나 강한지 벌이 수없이 윙윙거린다. 가지치기도 안 해 줬지만 작년과 올해 열매가 많이 열렸다. 맛도 좋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시고 떫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몇 년째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방치했다. 올해는 효소라도 담아볼까 해서 몇 개를 땄더니 열매마다 벌레가 들어 있었다. 올해도 자두는 나무에서 그대로 말라 갔다.
5년 전 텃밭에 둘러싸인 이 집을 사고서는 부자라도 된 듯 마음이 부풀었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라 자주 오기는 힘들었지만 주말에 와서 묵으면 마음이 평안했다. 창문을 열면 들리는 꿩이나 산비둘기의 화음도 좋았다. 여름이면 온갖 풀벌레들이 제각각의 소리로 노래했다. 마당에 둔 고양이 사료에 눈독을 들인 직박구리 녀석은 내 아침잠을 깨우는 초대하지 않는 손님이었으나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어서 괜찮았다.
처음에는 나도 텃밭에 나와서 조금씩 일했다. 부추 밭의 풀도 매고, 남편이 고추모를 심어 놓으면 아래쪽 어린잎 순치기도 하고, 튼튼하게 줄 매는 법을 유튜브에서 공부해서 지지대도 세웠다. 나머지 시간은 주로 풀을 맸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새벽에 잠들 수는 있지만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건 힘들어한다. 어쩌다 평소보다 30분쯤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하루 종일 하품을 달고 산다. 그러니 평일도 아닌 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한낮에는 뜨거워서 못하고, 산 그림자가 생기는 해 질 녘에 밭에 나와서 한두 시간 일하는 게 전부다. 그 시간에는 모기도 앵앵거리며 극성을 부린다. 종아리와 팔뚝이 성한 데가 없다. 그나마 보이지 않는 데면 다행인데 언젠가는 이마와 뺨이 부어올라 탈바가지가 되었다. 몇 주간이나 모기 물린 상처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뿐이랴. 긴 팔에 긴 바지를 입고, 장갑까지 야무지게 끼었는데도 손목 주변에 띠를 둘러서 난 수포 때문에 두 번이나 주사를 맞고 일주일간이나 약을 먹었다. 아니 도대체 풀을 얼마나 맸다고 글쎄, 풀독이란다. 포도 따다가 벌에 쏘여서, 자다가 지네에 물려서도 병원에 갔다. 더 많이 더 오래 일하는 남편은 멀쩡한데 나만 그런다.
이제 나는 거의 밭에 나가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고 낮잠을 자면서 뒹굴거리다 온다. 때맞춰 끼니만 챙긴다. 남편의 눈치도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주말 주택을 온통 꽃밭으로 가꾸는 꿈은 애시당초 물 건너갔다. 얼치기 농부가 주인이 되고부터 소휴당(笑休堂)은 점차 풀밭이 되어가고 있다.
첫댓글 자두, 감, 포도, 무화과 나무도 있고 집 뒤 텃밭에는 배추, 무, 고추, 부추, 파 등이 있군요, 그 뒤로는 녹차밭이 있고요. 여기저기 온통 풀이 많고요. 농장이 그려집니다.
봄에 그 동네에 놀러가서 어디쯤이 소휴당일까 멀리서 눈으로 한참 찾아 봤답니다.
하하. 네 맞아요.
회천에 놀러 오셨군요.
제가 소휴당 이야기를 여러 번 써서 눈에 그려지지요.
풀밭을 만들 수밖에 없는 핑계를 댔습니다.
사실은 게을러서 그런 거지요.
하하. 얼치기 농부 맞아요. 과일 나무가 자신이 할 일을 다하지 못한다고 주인을 원망하겠어요. 내년에 갔을 때는 자두랑 다른 과일 따서 먹게 좀 해봐요.
완전 얼치기 맞습니다. 자두 나무는 아무래도 올해는 약을 좀 해야겠지요? 키가 커서 약을 하려면 별도의 도구를 사야 하는 모양입니다. 지금도 창고가 한가득인데 말입니다.
예전에 엄마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공부 못하는 놈이 책가방만 무겁다고. 꼭 그짝입니다. 하하!
땅이 넓어 고생이 많으시네요. 잡초를 사람손으로 어떻게 못하면 제초제를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작물은 재미로 잎채소만 키워 드세요. 과일은 약을 안치면 따 먹을 수 없습니다. 일년에 최소한 세 번은
해야 됩니다. 농작물을 가꾼다는 건 힘든 작업입니다.
그러게요.
그런데 남편은 생각이 다른지 이번에는 양파와 마늘을 심는다네요.
수고한 거에 비해 소출이 너무나 적은 데도 말입니다.
올해는 과일 나무에 약을 좀 쳐야 되겠어요.
그럼 또 큰 나무에 약 치는 기계를 사야 한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