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을 기뻐하며 부르는 새노래
오늘 시편의 표제는 단순히 ‘시’라고 되어있습니다. 시는 시인데, 내용을 보면 찬송시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 찬송시는 이스라엘 왕이 즉위하던 때에 불렀고, 또 예배시에 불렀습니다. 오늘 시편은 또 96편과 매우 닮은 시입니다. 동일하게 새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초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초대는 먼저는 예배하는 회중들에게 주어집니다. 그 다음에 4절에서 보는 것 같이 온 땅의 백성들, 그리고 7절에서 보는 것 같이 천지 만물을 초대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새노래'는 우리가 96편에서 살펴 보았던 것이 구원을 경험한 자들이 부를 수 있는 구원의 노래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 그리고 원 피조세계가 죄로부터 회복을 기다리고 함께 이 새노래를 부를 것임을 보여줍니다.
1절을 보시면 시인이 이 새노래로 초청하면서 찬양의 이유를 말해 줍니다. 찬양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역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행하신구원을 노래하기 위해서 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기이 한 일을 행하셨고, 그의 오른 팔로 자기를 위하여 그 백성을 구원하셨음을 찬양합니다. '기이한 일'은 위대한 일, 기적과 같은 일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셨을 때 놀라운 기적들로 애굽의신들을 심판하시고, 홍해를 가르시므로 큰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2주 전에 살펴 보았듯이 절망 속에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바벨론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놀라운 일도 행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능력을 구원 사역을 통해서 그 백성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구원을 경험한 백성이 새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독특한 것이 있는데, 시인은 이 구원의 사역을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의 사역이 단지 우리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요?
2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를 많은 나라가 볼 수 있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을 통해서 많은 나라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대적하는 자에게 심판을 베푸시는 공의로우심을 보게 됩니다. 악한 나라를 심판하시고 의로운 나라를 구원하는 공의로운 분이심을 보게 됩니다. 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붙드는 자들을 끝내는 구원하시고 붙드신다는 사실이 구원 사역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3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때 그냥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그 시작이 아브라함에게 맺은 언약에서 출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은 결국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하신 것입니다. 또 시내산 언약에서 약속하신 것 같이 ‘사랑’과 성실함으로 당신의 백성에게 헌신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에 대해서 신실하신 것과 백성들의 다양한 기도들과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을때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그대로 실천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경험한 백성들에게 새노래로 찬양하자고 초청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땅한 반응입니다.
96편에서 보았던 것 같이 찬양에는 선교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온 땅의 민족들이 함께 여호와께 즐겁게 소리치고,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하자고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표현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속으로 찬양할 수도 있지만, 즐겁게 소리치며 노래하자고 합니다. 또 수금과 목소리와 나팔과 호각으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찬양을 하자고 합니다. 여기서는 찬양시에 악기 사용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목소리가 함께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금과 음성, 나팔과 호각소리와 함께 소리침이 함께 옵니다. 아무리 좋은 악기로도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놀라운 구원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왕 되심과 그분의 의로운 통치를 인식하고 찬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목소리가 항상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찬양할 때 가사가 중요한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새노래는 우리의 마음과 목소리가 담겨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이 새노래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할 때 전해지고, 모든 민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차원 때문에 목소리가 중요하고 가사가 중요한 것입니다. 악기로는 감동을 줄수 있지만, 복음을 전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할 때 가사에 집중하고 마음을 담아서 드리고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악기로 찬양을 할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악기만으로는 복음을 전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을 그분에 대한 찬송으로 초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과 의로운 통치는 모든 이스라엘 민족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또 인간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에 온 피조세계도 죄로 물들었기 때문에 온 피조세계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 하고 있다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노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 자연을 보호하고 올바르게 다스릴 때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만물은 바다와 세계 대륙까지, 그리고 ‘큰 물(강들)’ 산들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구원과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임할 때, 온 피조 세계가 다 외치고 박수 치고 즐겁게 노래할 것입니다. 현재의 상태는 만물이 아름다운 구원, 즉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습니다(롬8:21-22). 이 의로운 통치는 이미 시작 되었지만 완성을 향해서 미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피조세계를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바르게 다스릴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필요 이상으로 동물에게 애정을 가지고, 사람과 동등하게 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자연 세계에 무관심한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세계를 잘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분리수거를 가능한한 잘하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산불이나 동물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본 것 같이 ‘의’와 공평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오실 때 비로소 그 찬양은 완성될 것입니다. 심판자로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 입니다. 심판자로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지 않고 그 노래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돌보지 않은 자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구원의 노래를 부르며, 그 노래를 듣고 돌아온 자들과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온 땅의 민족들과 만물은 우주적인 하나님의 통치와 완성될 날을 기다립니다. 곧 하나님의 임하심 심판의 날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하는 것은 구원을 노래하는 것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심판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없고,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심판이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둘 다 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심판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심판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는 설교와 권징을 통해서 구원과 심판을 베풀고 계시고, 마지막 날 완성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는 구원과 심판을 모두 노래할 수 있고, 있기를 바랍니다. 매주 마다 선포되는 구원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노래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고, 복음을 전하며, 이 복음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자연 만물이 찬양할 날도 기다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찬양하기 바랍니다. 심판을 생각하며 우리가 참으로 구원이 절실했던 자들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이런 새 노래의 삶이 날마다 저와 여러분의 입술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