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몸 / 임정자
올봄, 시아버님 장례식을 치르고 시름시름 아팠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이것저것 검사 한 결과 당뇨, 혈압, 고지혈, 지방간 진단을 받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뚝 떨어진 건 아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다. 의사는 운동과 식단으로 체중 감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곧바로 당뇨 관리 수첩을 내밀었고 당과 혈압 일지를 적어 다음 진료에 가져오라 했다.
한 달 약 처방을 받고, 아프다는데 약 먹고 음식조절하고 운동해 살 빼지 뭐. 아픈 몸도 내 몸이잖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하소연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친구에게 전화했다. 불난 데 부채질이다. "혈압, 당뇨약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더라" 말한다. 위로는 못 해 줄 망정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술도 안 먹는 내게 간까지 안 좋다는데 속상했다. 하지만 어쩌랴 수긍할 수밖에.
완경 이후 살이 5kg 쪘다. 작년, 장애인 시설에 근무할 적에 정신적 피로가 올 때마다 폭식과 매운 음식을 자주 먹었다. 때로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약을 먹곤 했다. 게다가 건강검진에서 당뇨 전 단계 진단을 받았는데도 소홀히 했다. 몸에 이상 징후를 느끼면서도 신경은 쓰였지만 지나쳤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편두통이나 전신에 열감을 느낀 적도 있었고 운전할 때 밖에 사람들 얼굴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였다. 쉬이 피로하고 자주 뻑뻑해져 인공눈물을 눈에 넣기도 했다. 휴일이면 피곤해 지쳐 누워있을 때가 잦았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망가진 몸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을 찾으려고 인터넷에서 건강 정보를 검색했다. 많은 자료 중 방송에서 얼굴이 알려진 박용우 교수의 유튜브를 선택했다. 간헐적 단식이 눈길을 끌었다. 체중 감량뿐만 아니라 건강한 몸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일단 한 달만 해보라는 말에 솔깃했다. 살이 빠지는 상태를 경험하고 혈당 수치가 정상이 되면 운동과 식단 조절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말하는 간헐적 단식은 여러 가지다. 최소 14시간부터 16, 18, 20시간, 최대 24시간까지 단식한다. 나는 수면 시간을 포함해 하루 14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10시간 동안 식사하는 14:10 단식법을 선택했다. 예를 들어 저녁 여섯 시에 식사를 끝내고 다음 날 오전 열 시에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런데 오전에 헬스장을 가야 해서 아침 여덟 시에 두유(두유 제조기에 서리태콩을 갈아서) 한 잔을 마셨다. 운동을 끝내고 열두 시에 점심을 챙겼다. 이때 배가 고파도 물만 마셨다. 3주 동안은 이 방법으로 하고 마지막 4 주차에는 일주일에 한 번 24시간 굶었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단 조절로 석 달 만에 혈압은 정상 수치가 되어 약을 끊었다. 이리하면 다른 약들도 먹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가진 몸을 회복해 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더 하자는 마음에 간헐적 단식은 두 달 하고 멈추었다. 세 끼니를 채소와 단백질로 채운 다음 탄수화물을 섭취했다. 일명 거꾸로 식사법이다. 이는 공깃밥 한 그릇에서 반 공기로 줄이는 효과, 혈당조절에 도움이 되었다. 주로 삶은 콩나물, 양배추, 두부, 연어샐러드, 수육 등 되도록 채소를 준비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동네 주변을 걸었다. 몇 안 되는 친목 모임은 두어 달 참석하지 않았다. 빵이나 떡, 기름에 튀기는 건 피했다. 간식은 견과류, 계란으로 챙겼다.
아침 공복에 당과 혈압을 재고 입안 칫솔 후 따뜻한 소금물을 먹는다. 운동을 싫어했지만, 주 5회 에어로빅과 줌바댄스로 비 오듯이 땀을 흘렸다. 상쾌했다. 한 시간 30분 하고 헬스 기구를 10 분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운동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주말이면 땀복 입고 모자 쓰고 물병 들고 양을산을 걸었다. 쇠도 녹일 만큼 더웠던 여름, 나를 혹독하게 담금질했다.
최근 혈당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당화혈색소 5.7%, 공복혈당 108mg/dl) 심지어 근육의 변화 없이 체중은 4kg 줄어들었다. 나와의 전쟁을 온전하게 겪는 여름이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분다. 정원에 사과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언제 저리도 붉어졌는지. 장석주는 그의 시 <대추 한 알>에서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 저 혼자 둥글어질 리 없다고 말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만나 다시 시작된 생명, 수많은 시간 동안 대추 한 알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 있는 저 나무처럼 고된 시간을 다시 견디어야 한다. 붉은 대추 앞에서, 나는 침이 고인다.
첫댓글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망가진 몸처럼 여겨지지 않았는데요.
건강한 몸으로 회복했다니 다행입니다.
허구대만 그리 보인답니다. 반 백살 먹었으니 안 좋아질만 하죠. 내 몸이니 잘 데리고 살아야죠. 하하하
의지가 대단하세요.
그런 결심이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 없겠어요.
의사가 초장에 잡아보라는 권유가 있어서요. 어금니 꽉 깨물고 했습니다. 좋아졌다 해서 방심하면 다시 망가진다네요. 이 보다는 덜 하지만 현재진행형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생각은 뻔해도 꾸준히 행동하기는 어려운데 말입니다. 붉은 대추 맛있게 드실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 바랍니다.
무척 힘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특히 명절이나 가족 행사있을 때는 더 합니다.
진짜 대단하세요. 전 먹는 건 못 참겠더라구요. 건강 잘 유지하시길요.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저도 해내야겠다는 의욕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어제는 생일이라 저녁에 배터지게 먹고. 오늘은 야영수련활동 와서 왕창 먹었지만, 내일은 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선생님은 안 아프잖아요? 일반 다이어트가 아닙니다. 이도 할 일 없는 몸으로 보이던데요. 건강하시니 드세요. 강건해야지요. 늦은 생일밥 사드릴까요?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시는 선생님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배고픈 것을 잘 참지 못해서...먹는 것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부터 해야 되겠어요.
저를 관리하기는 처음입니다. 아프니까 하는 거라서. 선생님은건강하다면 잘 드시고 걷기 운동하면 좋을듯합니다. 지금은 잘 먹습니다. 근데 매일 운동이...
초당산 맨발걷기 길에서 선생님 닮은 분 보았어요.
다음에 만나면 인사해요.
먹는 재미도 있는데 힘들긴 하겠네요. 그래도 대단합니다.
맞아요. 먹는 행복이 크지요. 지금은 잘 먹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