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성경: 마태복음 1장 23절
찬송: 104, 112, 122, 126
설교: 이 경준 목사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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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심을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이날을 일컬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복된 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성탄절을 연말연시와 함께 즐기는 날로만 여겼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럴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즐기는 것이 성탄의 의미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을 어떻게 지내는 것이 옳은지를 생각해보며 은혜 나누려고 합니다.
성탄절을 영어로는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합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드리는 예배(Christ-mass)라는 말의 뜻입니다. 또 성탄절을 엑스-마스(Χ-mas)라고도 하는데 엑스(Χ)는 희랍어에서 그리스도를 뜻하는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의 첫 글자로 크리스마스와 같은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성경에도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 때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경에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이 헤롯이 유대 왕으로 있을 때 탄생하였다는 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인 근거에 의하면 헤롯왕은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기 4년 전에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기원전 4년입니다. 기원은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 해를 기점으로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헤롯은 기원이 시작되기 4년 전에 이미 죽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탄생한 해와 달은 정확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였는지 초대교회에서는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성탄절을 지켰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성탄절의 유래는 중세시대 때 로마 가톨릭교회에 스칸디나비아 지방의 태양숭배일인 12월 25일이 유입되면서 그날을 성탄절로 지정하여 지켰다고 합니다.
AC 303년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는 정확하지 않은 성탄절을 지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과 청교도 시대에도 성탄절 축제는 이교도적이고 비성경적이기 때문에 지키지 말라고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계몽주의운동에 영향을 받던 시대에 ‘찰스 딕킨스’ 라는 사람이 쓴 ‘크리스마스 캐럴(Christmas Carol)’이라는 책이 출판되면서 성탄절과 연말 축제 분위기가 다시,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때 금지되었던 성탄절 나무 장식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영국 빅토리아여왕은 성탄절 나무 장식하는 것을 즐겨서 장려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성탄절 나무 장식이 성탄절의 상징이 되었던 것입니다.
12월 25일이 역사적이거나 성경적으로 진정한 성탄절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12월 25일은 세속적인 축제의 목적으로 제정된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서였는지 성탄절 축제에는 예수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는 것들이 난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산타클로스’나, ‘루돌프 사슴’을 노래하고, 화려한 트리를 장식하며 즐기는 것들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엄밀히 말한다면 이교도의 축제와 세상적인 놀이를 그리스도 예수 탄생과 얼버무려 만들어 놓은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탄절로 지키는 12월 25일을 폐지하여 큰 혼란을 초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성탄절에 세속적이고 이교도적인 놀이에 빠질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탄의 의미를 바로 알려면 마태복음 1장 23절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 보면 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예수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입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이고 그래서 그분의 오심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 성탄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성탄절을 축제의 날로 생각하여 즐기기만 하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앙생활에서 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은 세속적인 방법으로 특정한 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오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일반 성도들은 하나님께 직접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성전에서 제사장을 통하여 정해진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지금까지는 뵐 수가 없었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중요한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2020여 년 전에 잠시 오셨다가 떠나가신 그분을 추억하는 것에 묶여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육신으로 탄생하신 그 날을 막연히 추정하여 축제로 즐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식하고 있었거나 또 그렇지 못하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2022년 성탄일을 평안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새해가 되는 다음 주에도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일분일초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더는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성탄절의 축제 놀이에 빠지지 말고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 임마누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연말연시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23)
고 합니다.
우리의 성탄절은 그동안 너무 세속화되어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시려 이 땅에 동정녀의 몸을 통하여 오신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외면당하신 채 산타클로스와 루돌프가 그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 이름 대신 세상적인 캐롤송과 세상적 즐거움을 주는 세상적인 축제문화로 흥청거렸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성탄절의 참된 주인이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들이고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우리 마음의 예물을 드리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오니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아주시옵소서!
이 아름다운 성탄절에 간절히 구하오니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분쟁지역의 분쟁이 멈추고 코로나가 물러가게 하시어 지구촌에 하나님 주신 참된 평화가 임하게 하시며, 전쟁과 재난과 전염병으로 지치고, 상처받고, 아픈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으로 위로하소서!
감사드리며 임마누엘 하셔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