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다크호스
드디어 혜정이가 제작한 영화가 천삼백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장하다. 「베테랑」은 베테랑이 만든 「베테랑」임을 온 세상에 알렸구나. 모두모두에게 감사하자...’ 카톡 보내는 소리가 마치 연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경쾌하다. 하기야 이 영화도 유쾌, 상쾌, 통쾌하다고들 하지 않은가.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나는 혜정이의 고3 담임이었다. 3월 첫 상담이 시작되었다. 반 아이들 모두는 대학에 가겠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지만 막상 전공이나 직업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고한 목표를 지닌 학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혜정이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꿈을 펼쳐 보였다. 동시통역사가 되겠다며 대학은 반드시 고려대에 진학하고 말 거라고 했다. 이미 상담 전에 자료 분석을 통해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학생으로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그때 혜정이의 목표는 본인의 말처럼 터무니없고 불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3학년 한 해 동안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평생 고생만 한 부모님께 효도다운 효도를 하기 위해서 자기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까지 했다. 과묵한데다 착하고 어린 줄만 알았던 혜정이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힘과 열정에 나는 그 아이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래. 우리 한번 해보자. 너는 올해 선생님의 다크호스다.”
그날 이후 혜정이, 아니 나의 다크호스는 뛰기 시작했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에 무서운 집중력이 어우러지자 놀랄 정도로 성적이 올라갔다. 그런데 교내 체육대회에서 우리 학급을 종합우승으로 이끈 발야구 시합에서 맹활약을 한 혜정이가 무릎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깁스를 한 채 그 더운 여름날 공부하느라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겠는가. 깁스를 풀고도 한참을 절룩거리며 예민하고 불안한 고3 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 주었다. 결국 학력고사에서 자신의 최고의 성적을 받았지만 희망 학교는 안정권이 아니었다. 그러나 혜정이의 소원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나도 주저없이 원서를 써 주었다. 그 아이가 얼마나 간절한 목표를 가지고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합격 발표날, 초조한 시간이 흘러갔고 수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합격했어요!” 고려대 합격. 혜정이에게는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는 강혜정의 인간승리였다.
대학생이 되고도 모교에 간식을 들고 찾아와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종종 나에게 안부를 전하곤 했다. 대학교 2학년 때 혜정이가 장문의 러브레터를 보내왔다. ‘선생님, 3학년 때 멋모르고 철없는 얘기를 할 때도 귀 기울여주시고 제 가능성을 믿어주신 그 한마디가 영원히 잊지 못할 고3 생활의 버팀목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제 인생의 레이스에서 진정한 다크호스가 되어 보이겠어요.’ 이어서, 다리를 다쳐 절망하고 있을 때에도 선생님의 따뜻한 위로와 다독거림이 자기에게는 절대적인 힘이 되었다고, 무엇보다 대입 체력장의 800m 오래달리기에서 마지막 트랙을 선생님이 함께 돌면서 골인 순간까지 응원해 준 일을 어찌 잊을 수 있겠냐고,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작은 말 한마디, 작은 몸짓과 때로는 어려움까지도 감사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에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 넣는 혜정이가 얼마나 대견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어느 날 혜정이가 불쑥 나를 찾아왔다. 대학 졸업 후 영화의 매력에 빠져 본격적인 수업을 받고 그동안 영화기획과 홍보,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던 때였다. 몇 년 전 독립영화협의회의 워크숍에서 만난 청년과 결혼하고 싶지만 난관에 부딪쳤다며 도움을 청했다. 상대방은 세살 연하에 학력은 고졸이었다. 중학교 때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어린동생을 보살피는 소년 가장인 데다 그런 형편에 미래의 영화감독을 꿈꾸는 청년이었다. 당연히 부모님이 펄펄 뛰었다. 하지만 고단한 삶 속에서도 그렇게 해맑은 얼굴로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에 마음이 이끌렸다고 했다. “그가 얼마나 삶에 대한 책임감이 분명하고 착한 심성을 지녔는지 만나보시면 아실 거예요.” 확신에 차서 얘기하는 혜정이의 절절한 눈빛에서 나는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미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나는 또 손을 잡아주었다. “네가 꼭 결혼해야겠다면 해야지.”
결혼식은 구민회관에서 열렸다. 화려한 결혼 장식도 없고 넓은 공간에 비해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신랑 신부는 더없이 행복해보였다. 친구들과 지인들의 진심어린 축복이 함께 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그날 밤 친구들이 선물로 마련해 준 신혼여행지에서 뜻밖에도 신랑 신부가 나에게 번갈아 감사전화를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제자들의 결혼식에 참석했지만 신혼 첫날 저녁에 받은 문안전화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결혼 후 신부의 믿음대로 신랑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해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 마침내 류승완, 강혜정 부부가 설립한 영화사 ‘외유내강’에서 처음 제작한 「짝패」가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도중에 흥행실패로 큰 어려움도 겪었지만 다시 딛고 일어나 「부당거래」를 만들었다. 그 영화는 청룡영화제에서 제작대표인 아내에게는 최우수 작품상, 남편에게는 최우수 감독상을 안겨줬다. 그리고 부부합작영화는 블록버스터 「베를린」을 거쳐 기어코 「베테랑」이 되었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강대표는 말한다. “선생님의 그 한마디가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 모르겠는가. 오늘의 결실은 그들의 신념과 의지 그리고 노력으로 일궈낸 것임을. 언젠가부터 옛날의 자기처럼 꿈을 키우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눈길을 돌려 격려도 하고 기회를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흐뭇하기만 하다. 이번에는 자선단체를 만들어 뜻깊은 일을 하겠다고 하니 이 또한 아름다운 영화인 부부가 아닌가.
이들 부부가 천만스코어보다 더 바라는 것은 오랜 시간 후에도 한결같이 사랑받는 ‘시간을 이기는 영화’라고 힘주어 말한다. 또한 누군가의 삶에 위로와 용기, 희망을 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들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이제 나의 다크호스는 만인의 베테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