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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강 고난을 이기는 위로 김형익 목사 벧샬롬 교회 ~ 1장 고난중위로
26.04.19(일)
고린도후서를 여러분들과 함께 14주 동안 진행하게 될 벧샬롬 교회 김형익 목사입니다.
이번에 여러분들과 함께 고린도후서를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4주 동안 진행될 것이고. 고린도후서의 주제 패자를 위한 복음이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가 고린도후서를 같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첫 번째 강좌는 고난을 이기는 위로
고린도 후서 1장 1절에서 11절까지 공부합니다.
오늘의 포인트는 고린도 후서의 기록 배경인 바울 사도와 고린도 교회의 복잡한 관계를 먼저 이해하는 겁니다.
고린도 후서도 그렇고 고린도 전서도 그렇고 특별히 고린도 후서가 그런데 고린도 교회와 바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관계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고린도 후서를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이기 때문에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람들과의 도대체 어떤 관계들이 있었던 거야 하는 것을 공부할 거고
두 번째는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하나님의 위로의 상관관계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는 바울 사도의 개인적인 감정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서신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기 얘기를 이렇게 많이 쏟아낼 수가 없어요.
그의 정말 속 깊은 이야기들이 드러나면서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드러내고 있고 복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배경을 먼저 좀 보죠.
고린도후서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쓰여진 편지죠
그래서 고린도가 어떤 도시였는지 1세기 당시에 이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BC 146년 주전 146년에 로마 군대가 고린도를 다 파괴해버렸습니다. 이건 헬라 지역에 속한 곳이죠. 그러니까 로마가 침략을 한 겁니다.
그리고 BC 44년 그러니까 그때로부터 한 100년이 지난 거죠. 100년이 지나서 줄리어스 시저가 다시 고린도를 재건합니다.
그러니까 한 100년이 지나서 재건된 도시인데 바울 사도가 방문을 했을 당시는 그게 바울사도의 2차전도여행 중에 고린도를 방문해서 1년 반을 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때가 대략 주후 49년에서 51년 사이입니다.
50년 정도로 보게되면 당시에 8만 명 정도의 인구가 있었고, 졸리어스 시저가 고린도를 재건한 것이 주전 44년이라고 그랬으니까 한 90년이 지난 거죠. 90년의 역사를 가진 젊은 도시였습니다.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었고 제국 내에서 세 번째 주요 도시가 됐는데 여러분 로마제국 전체에서 제일 큰 도시가 어디겠어요. 로마죠 알렉산드리아죠 세 번째 도시가 고린도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다른 도시들이 시기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부흥을 했고 굉장히 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도시였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스포츠나 유흥문화가 발달하게 되고 여행 성산업 종교 다원주의 물질주의 이런 것들이 아주 편만하게 고린도에 있었다는 것 바울과 고린도교회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를 알아야 우리는 고린도후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걸 좀 살펴보죠. 고린도교회 설립 과정입니다. 사도행전 18장 1절에서 17절에 나오는 이야기죠 바울사도가 2차전도의 여행에서 고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마 고린도를 빨리 떠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밤중에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마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해 이성에 내백성이 많아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래서 바울샤도가 에베소에서 3년의 사역을 했는데 1차 2차 3차 전도 여행 전체 한 10년 정도의 사역 중에서 에베소에서 3년이라는 시간 보냈죠
그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게 고린도예요.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애정이 많이 담겨있는 곳이죠.
3차 전도 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고린도 전서를 쓰게 됩니다. 이게 고린도를 방문한 후에 3년 정도가 지난 뒤죠
그리고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을 위해서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을 바울사도가 고린도 전서를 마치면서 16장에 내가 가서 너희들을 볼게 라고 얘기합니다.
근데 그 사이에 디모데가 곧 고린도교회를 방문할 일이 생겼고 디모데는 고린도교회가 무너진 것을 보게 돼요. 우상숭배 음행 이것은 예수 안 믿는 세상에서나 고린도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 교사들이 들어와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다 허물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보고를 바울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는 급히 자신이 원래 갈려고 했던 의도가 아니라 목적이 아니라 급히 고린도를 방문하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방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징계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이거 그냥 놔두면 안 되겠구나. 그리고 바울이 갔어요.
근데 바울이 그렇게 사랑했던 교인들이 바울을 배척했고 면전에서 바울을 비난했고 바울의 사도성까지 너 진짜 사도 맞아 이런 식으로 바울을 거절한 겁니다.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지요
바울의 사역에 대한 문제 인격에 대한 문제 이런 것들을 그들은 비난을 하는데 예를 들어서 이런 비난들이에요.
너 진짜라면 왜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해 하나님의 사람이면 좀 편안하게 좀 안락하게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가 뭐 있어 아직도 왜 이렇게 너는 고생하고 돌아다녀
또 지극히 큰 사도들과 비교해서 지금 그 사람들이 쓰는 이 말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키는 거예요. 슈퍼 어포스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죠.
가자들이 대단하게 보이니까. 바울을 보면 활기가 없어 보이는 거예요. 당신은 자기 삶을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왜 계획을 번복해 온다고 그랬다가 안 오고 그리고 당신은 왜 사례를 안 받아 다른 사람들 다 봤는데 당신 뭔가 캥기는 거 있는 거 아니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또 당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모금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당신한테 돈 맡길 수 있을까?
이건 굉장히 치명적인 얘기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 추천장을 가지고 와 베드로의 추천장 요한의 추천장 당신은 왜 추천장이 없어 이런 식의 비난들은 1년 반을 자기의 땀과 정말 피를 쏟아서 세운 고린도 교회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바울은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이게 고통스러운 방문이었습니다.
결국은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을 비난했던 것은 거짓 교사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그들에게 휘둘렸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이죠.
상처만 남긴 방문이 된 겁니다.
그래서 바울샤도는 고린도후서를 쓰기 전에 고린도 중서를 썼습니다. 처음 들어보셨죠 고린도 중서가 어디 있지 고린도 중서 1장1절 없어요. 잃어버려진 편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자기가 고린도 전서 말고 그 뒤에 쓴 가운데 있는 편지를 언급합니다.
어떤 편지였을까요? 바울은 디도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는 편지를 고린도교회에 보냅니다.
이게 고린도 후서를 쓰기 전에 바울이 먼저 보낸 편지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편지를 읽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전부 다 해결한 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바울의 권위를 의심하고 바울을 배척하는 그 주도적인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지도자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사실 이 편지를 2장 4절에서 언급하는데 그 뒤에서도 좀 언급해요. 근데 굉장히 심하게 쓴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후회했다고 그래요.
내가 너무 심하게 해서 너희들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데 회개했어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우리가 고린도 후서를 이해해야 돼요.
바울은 세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하기 전에 고린도 후서를 먼저 씁니다.
예베소사역을 마친 뒤에 마게도니아로 이동한 시기에 아마 빌립보에서 고린도 후서를 썼을 거라 생각을 하는데 이런 고린도 사람들과 자신의 관계 속에서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쓰면서 정말 깊은 그 자기의 그들을 향한 감정 마음 이런 것들을 쏟아냅니다.
먼저 시작 부분을 보면 두 가지를 얘기하는데
1절과 2절에서 자신이 사도다 하는 걸 먼저 얘기하고요.
두 번째는 너희들은 하나님의 교회요 성도다 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자 먼저 자신의 사도됨을 얘기하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그랬어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여기서 바울이 얘기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기 때문에 너희가 나의 사도됨을 의심하고 사도성을 배척한다면 그것은 나를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거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두 번째 고린도 사람들의 교회와 성도됨입니다.
아마 이 정도로 자신을 배척하면 바울이 너희가 교회냐 너희가 성도야 이렇게 말할 것 같은데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아가야는 고린도가 속해 있는 주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교회와 모든 성도에게 라고 말하는 거예요.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고 있지만 자기가 복음을 전했고 그들이 중생했고 회심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봤고요.
그들이 지금 잠시 어려움 가운데에서 시험에 들어서 이렇게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죠.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교회와 성도에게라고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전체의 주제를 잠깐만 언급하고 넘어갈게요
약함은 강함의 원천이며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의 도구다 이 말을 여러분 이 강좌를 진행하는 동안 기억하십시오.
물론 전체 주제 패자를 위한 복음이라는 것도 기억하시지만 약함은 강함의 원천이다. 우리는 다 강하기를 원하지 약함을 원치 않습니다. 내 약점은 숨기고 강점을 더 부각하고 강점을 더 극대화하는 게 세상 사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고린도 후서는 말합니다. 약함은 강함의 원천이다. 약함이 그냥 약함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리고 고난은 다 피하고 싶죠 고난 원하는 사람 없어요. 그러나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에 능력과 영광의 도구다 이 부분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여러분 보십시오.
지금 바울은 약한 사람이고요. 바울은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거예요.
고린도후서 1~2강 고난을 이기는 위로
고난의 사람 바울 오늘 본문에 반복되는 단어가 환란 고난이라는 단어가 계속 나와요.
바울이 왜 이 고난이라는 것을 화두로 고린도 후서를 시작하는 것일까? 질문할 수 있죠.
바울이 참 사도라면 고난을 겪을 수 없다고 고린도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바울이 고난당하고 좀 허접해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좀 안정되고 좀 멋있고 좀 뭔갈 거대한 위업을 이루고 업적을 남기고 그래 보이질 않아요.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고난 이렇게 받을 수 있어 하나님이 축복 안 하는 거 아니야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고 싶은 겁니다.
또 바울은 사실 처음에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예언을 하셨어요. 너 고난 받을 거야.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살펴볼 수 있을 겁니다.
사도행전 9장 16절에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왜 이렇게 고난을 받는 거를 강조했을까요?
아니 내 이름을 위하여 네가 복음을 증거할 거야. 내 이름을 위하여 니가 뭘 할 거야. 교회를 세울 거야. 이방인의 사도가 되고 교회를 세우고 여기저기에 고난을 받아야 할 것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이죠.
이 문제를 바울이 다루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하는 말에 5절에 그 말을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바울은 자신이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그래요.
이거 좀 지나친 거 아닙니까
내가 받는 고난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그래요.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난이 넘친 것 넘쳤어요. 이게 고난이 내게 있었다가 아니라 고난이 넘쳤어요. 고난이 나를 삼켰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위로는 그보다 더 넘쳤어요.
더욱 나를 삼켰어요.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죠.
사도행전 9장 16절에 아까 언급한 그 말씀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지 내 이름을 위하여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거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고난이기 때문이고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받는 고난이 곧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울이 그때 사울이 물어봐요. 당신이 누굽니까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고 그래요. 나는 니가 핍박하는 예수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죠.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죠.
근데 하나님께서 뭘 주님께서 뭐라고 그래요.
니가 핍박하는 예수다 니가 박해하는 예수다 그렇게 말씀하는 거예요.
또 너희의 고난이라는 말이 있어요.
6절 7절을 보면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고난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 뭘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 보세요.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경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해도 그러할 줄 알미라
지금 바울은 너희가 받는 고난도 내가 받는 고난하고 다르지 않아 라고 얘기해요. 왜 그렇죠. 이거는 아까 성도요 교회라고 얘기한 것처럼 너희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본 기본적으로 당하는 고난 가운데 살아가는 거야.
근데 그 고난은 내가 받는 고난과 다르지 않아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이야 라고 자신과 그리스도를 연결시킨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있어요.
고난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는 거예요.
연대성을 지금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의 고난이 사도적인 고난 사도가 받는 고난이죠.
복음을 위하여 그리고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고난 이걸 것이 전부 다 같은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너희와 우리는 그리스도 편에 속한 자가 아니냐 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바울은 8절에서 자기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이 어떤 것인지를 잠깐 소개해요.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아시아에서 아마 에베소를 가리킬 텐데요.
어떤 고난인지 우리는 확실히는 몰라요. 그렇지만 그 고난은 이런 고난이었다는 거죠.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이었어요.
바울이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이에요. 근데 이 고난은 자기의 인생 고난이라고 말할 만큼 힘든 고난이었다는 거예요.
살 소망이 끊어졌대요 아 이제는 끝이구나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대요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대요 죽음이죠. 이제 끝났구나 그런데 이 의미를 발견한 거예요. 물론 죽지 않았어요. 의미를 발견한 거예요.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만큼의 고통을 주신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한다.
말하자면 너희에게도 고난이 있지만 그 고난이 다 사람마다 다르겠고 너희 공동체가 당하는 고난이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다 내가 당한 고난하고 비할 수 없는 것일 텐데 이 고난은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 의지하라고 주신 고난이야 라는 거를 얘기하는 거예요.
조금 넘어가 봅시다 바울이 고난에 대한 얘기를 꺼낸 것은 고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로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를 얘기하려는 것인데 바울이 경험한 위로는 자기 연민 아니에여요.
우리는 종종 힘들고 고난이 있고 그러면 자기 연민 속으로 빠져 들어가요 이거 죄여요. 자기가 자기를 불쌍히 여기기 시작하면 답이 안 나와요. 고난을 이기는 하나님의 위로를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3절부터 7절에는 위로라는 단어가 무려 10번 나와요. 바울이 경험한 위로가 어떤 위로인지를 보세요. 이 맥락을 잘 살펴야 되는데 위로와 보혜사 하나님이 어떤 관계인지
위로라는 말은 제가 문자를 잠깐 쓸게요 헬라어로 파라클레시스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보혜사 성령을 너희가 너에게 보냈다고 했죠 보혜사라는 말의 뜻은 파라클레토스예요. 비슷하죠. 파라칼레오라고 하는 말에서 나온 거예요.
근데 사람이 혹독한 시련을 겪을 때 그 곁에 서서 그를 격려하는 거 이게 보회사 위로의 의미예요. 그 곁에 있어서 파라 그 곁에 있는 거죠.
그리고 칼레오는 말한다는 거예요. 부른다는 거예요. 그 곁에 있어서 뭘 말하는지 모르지만은 여기서는 위로라는 뜻은 위로자가 된다는 거예요. 옆에서 같은 자리에서 그런 의미에서 보혜사와 위로라는 단어는 만나요?
3절에서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 모든 위로의 하나님 다시 말하면 바울은 보혜사 성령님만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이 보회사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예외가 없어요.
성도들이 받는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시는 보혜사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위로의 목적이 있습니다.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느니
아 내가 받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넘치는 위로를 주셨는데 이게 다른 고난 받는 사람을 위로하라는 얘기구나 위로하는 능력이 생긴 거예요.
왜 그런 말 아시죠. 헨린 아우웨니스 말인가요?
상처 입은 치유자 이 얘기를 하는 거예요.
6절
우리가 환란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의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그 얘기죠 내가 받는 위로로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가 이 고난을 능히 견딜 수 있게 한다. 고난에 대한 성경의 관점을 우리가 제대로 가지는 거 중요해요. 왜냐하면 바울을 의심했던 고린도 사람들이 가진 관점으로 고난을 이해하면 복음을 버리게 돼요.
고난에 대한 오해들이 있습니다.
크게는 두 가지인데요.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반드시 고난을 받는다. 고난이 없으면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거야.
근데 고난이라는 거는 눈에 보이는 고난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난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고난을 당하는지 다 몰라요. 이렇게 함부로 판단하면 안 돼요.
이것도 비슷한 거예요. 사실 고난당할수록 더 영적인 사람이다. 그런 것들은 오해여요.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의 또 오해가 있죠.
고난은 죄 때문에 혹은 믿음의 결핍 때문에 온다 이게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을 받던 오해였어요. 아 저렇게 고생하는 거 보니까 저 사람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고 있네 이런 오해죠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의 어떤 목적을 위해 선한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허용하는 거예요. 성도에게 목적이 있어요.
고난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고난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성도는 고난을 다 당해요. 고난이 없는 성도 없어요.
예수 믿으면 고난 없구나 천만의 말씀이요.
바울은 예수 믿고 고난이 더 많아졌어요.
요한복음 16장 33절 주님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랴 함이라 그 다음 말씀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나 환란을 당하는 거를 기정사실로 얘기해요.
담대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베드로 전서 3장 14절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며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우리의 고난은 의를 위한 고난이어야 해요.
베드로 전서 3장 10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하나님의 뜻이에요.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세요. 믿음을 가지고 불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라는 사실을 아세요. 꼼수 부리고 사는 것 아니에요.
그냥 요령 부리고 잔머리 굴리고 사는 것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곧이곧대로 그 말씀대로 순종해서 사는 거예요. 고난이에요.
예수님은 세상에서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 그러셨어요. 이거는 그냥 고난 많이 받을 거야. 그렇게 사는 게 아니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거예요.
성도가 겪는 고난은 적극적 차원의 권한 소극적 차원의 권한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렇게 나눌 수 있겠죠. 적극적 차원의 고난은 복음을 위한 고난이에요.
디모데 후 3장 8절에 하반절에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 받아라 이런 거예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박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디모데후서 3장 12절 마찬가지예요.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고난이 와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럴 때 너희 의를 위하여 박해 받을 때 그럴 때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그것 때문에 처지고 그것 때문에 낙심하고 그것 때문에 예수 믿는데 왜 이러지 그러지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니라
소극적 차원의 고난도 있어요.
우리가 고린도 후서 12장에 가보면 바울이 하나님 나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는데, 이 사탄의 가시를 좀 없애주세요. 세 번 기도했는데 거절당했어요.
이거는 어떤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약점 같아요.
복음을 위해서 내가 이 약점을 가져야지 그런 게 아니고 약점이에요. 근데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다 있어요.
뭐 예를 들어서 인생을 살며 실패하는 것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좌절하게 되는 어떤 사건들 경제적인 실패나 기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 약점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들도 소극적 차원의 고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하죠.
5절과 9절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 영적 유익을 위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아가 넘친다 고난이 있을 때 우리는 뭘 경험하냐? 하면 하나님의 위로를 엄청나게 경험하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까지 살았던 삶 속에서 은혜 진짜 많이 받고 하나님의 위로를 충만하게 받았던 때가 언제예요. 좋았을 때예요. 고난 가운데 있었을 때였을 거예요.
마가복음 8장 34절에
주님이 자기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지고 나를 따라와라 그랬죠
고린도후서 1장 9절에서
바울은 정말 아 내가 십자가 이제는 죽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그때도 은혜를 받았어요.
아 내가 나를 의지해서 내가 내 생명이 있고 내 젊음이 있고 내가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 의지하는 거구나 이걸 배우는 거예요.
고난 속에서 고난을 대하는 또 하나의 자세는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거예요. 여러분이 받는 고난은 여러분 한 사람만을 위한 고난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서 유익해요.
4절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신다고 했죠.
이 고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게 해요.
6절
우리가 환란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오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오
또 그다음에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의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한다.
내 고난을 내가 고난을 위로 속에 견딜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견딜 힘을 얻어요.
11절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기도해 달라 그래요.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를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리라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 기도 때문에 감사하게 될 거예요.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거죠. 또 고난 속에서 확신한다는 것이 어떤 것이에요.
10절에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란다 건지셨고 과거 건지실 것이며 바로 앞에 있는 미래 그리고 궁극적으로 건지실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모든 게 지나가고 우리가 영원한 구원 가운데 이를 것을 안다 이 확신이 있는 거예요. 중요해요. 고난을 당할 때 이런 확신을 가지는 겆
네 번째 고난은 위로를 위로는 감사를 가져온다 그랬어요.
11절
너희도 우리를 위해 간구함으로 도우라 그랬죠 그렇게 해서 어떻게 감사하게 하렴이라
고난 속에서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 결국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감사함이 넘치게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3절 4절에
찬송하리로다 송영이에요.
찬송을 해요.
그는 우리 중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요.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나님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 이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서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로다 그에게 찬송을 돌릴지어다 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오늘 이 짧은 강의속에서 우리가 몇 가지를 좀 정리했으면 좋겠는데
세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첫째 고난과 약함은 복음의 부끄러운 장애물이 아니에요.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관점을 바꾸세요. 고린도 후서 강좌를 통해서 이걸 배우세요.
성경 전체가 얘기하는 거예요.
두 번째 성도의 고난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넘치는 위로가 있어요. 하나님의 위로를 향해서 마음을 여세요. 여러분의 고난이 심한 만큼 하나님의 위로는 그보다 더 커요
세 번째 고난이 그리스도와 고난당하는 자 그리고 온 교회를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는 결속시키는 힘이에요. 이거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래요.
나와 그리스도를 너와 그리스도를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게 하는 힘이여요.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다음 시간에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것은 사랑과 용서라고 하는 주제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주제죠 고린도 후서 1장 12절부터 2장 11절까지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고린도후서를 살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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