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2002년 7월 서빙고 온누리 교회 등록교인이 되었다. 거기서 고교졸업 후 38년 만에 처음 이호영을 만났다. 이어서 김경식과 김승언을 만났다. 고교 동기 4명이 동시에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신기했다. 이호영(사망), 김경식, 김승언, 그리고 남기영. 나는 용산 미8군 직장에 다녔고, 김경식은 평택에서 개인 전문의로 일하고 있었다. 교회에서 조심해야 할 사람 3가지는 첫째, 가장 오래된 고참교인, 둘째, 헌금을 제일 많이 한 교인, 셋째, 활동적인 사람이다.
2. 온누리 교회 주일예배 후 넷이 두 세 번 만났다. 2002년 8월쯤 이호영이 서초구 에클레시아로 장소를 옮기자고 제안하였다. 중앙55회 졸업 562명(사망97명)을 전도 대상으로 모임의 명칭도 二月會로 정하고 회칙도 마련했다. 나는 이월회 회원 자격을 세례교인 이상으로 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이호영이 동의하지 않았다. 이종윤, 양윤근, 김창룡(장로/사망), 윤규성, 신현길, 이원태, 이홍철, 원치상 등이 이월회를 방문하였다. 이때 이종윤(장로)은 이호영의 신앙이 장로 수준이라고 추켜세웠다. 장로의 덕목은 감사와 겸손, 충성과 헌신이다. 이호영의 驕慢은 이종윤이 부추겼다. 이때 부터 이호영과 이종윤은 권위주의적으로 이월회를 좌지우지하였다. 목사 장로직분은 군대계급이 아니다.
3. 2003년 2월에 8명으로 이월회는 창립했고 회장,총무,감사를 선임했고, 회장은 1년 기간 이호영이 맡았다. 총무는 이종윤, 몇달 후 장소를 교총회관으로 옮겼다. 이호영은 IBM에서 퇴직하고 8년간 무직으로 지냈다고. 이호영에게 회장을 1년 더 맡꼈다. 어느날 이호영은 나와 김경식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김경일의 사우디 조용기 목사설교테이프 청취와 사위를 혼쭐 낸 걸 자랑하였다. 그는 운전을 하고 오면서 이유없이 화를 냈다. 우리는 당황하였다. 김경식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차를 세우고 카페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샀던 게 생각난다. 감사를 원치상으로 추천했는데 이호영이 취소시켰다. 원치상은 화를 내고 이후 이월회에 나오지 않았다.
4. 다음 회장은 이홍철이 1년을 자청해서 했고, 3대 회장(2006.2~2007.2)으로 이호영이 나를 추천해서 과반수 투표로 결정했고, 이홍철은 총무로 이월회에 처음 나온 허완을 지명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일어서서 믿는 일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홍철은 이월회에 오랫 동안 나오지 않았다. 이종윤도 오랫동안 무직이라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1년 동안 이월회에 나오지를 안했다. 나는 성경 공부를 회원들에게 권면하고 여러 성경책도 소개했고 485명 전도플랜을 짜서 13명 회원들에게 할당했다. 허완 총무에게는 빌립보서 강해 테이프를 빌려주었으나 그는 반납하지 않았다. 어느 날 총무는 회장한테 묻지도 않고 이종수 동기목사에게 30만원을 주었다. 이종수 목사가 참석했다.
5. 2007년 2월 이종윤은 필리핀에서 돌아와 나에게 회장을 1년 더 하라고 요청하였으나 나는 욕심이 없었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동안 회원들의 경조사가 많았다. 김주회 아내 장례식, 노정 장례식, 김경일 딸 결혼식, 최혁 딸 결혼식 등 자녀결혼식에는 회원들이 단체로 검정색 정장을 입고 찬송가 #604 [완전한 사랑]을 불렀다. 내 후임 회장은 허완 동기가 맡았다.
5-1. 2006년 여름 어느 날 김경일이 교총회관으로 이월회에 한 번 참석했었다. 그는 회장인 내 바로 옆 총무자리에 대신 앉더니 월례회 예배를 진행하는 나를 능멸하였다. 이런 그의 행위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인 줄 그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정신 나간 미친 짓이었다. 우리 나이가 평균 58세였다.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안 했다. 모두 눈치만 봤다. 그들은 고교졸업 후 42년 동안 어른이 되었어도 달라진 게 없었다. 고교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면서~~ 이런 자정능력이 없는 이월회에는 성령은 임재하지 않는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6. 김승언은 초기부터 이월회에 잘 나오지 않았다. 김승언이 무슨 말을 나에게 하면 이종윤이 추임새를 넣었다. 불쾌했다. 1962-1964년 고등학생 때 나는 2년간 등록금을 못 내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1964년 2월 추운 날 졸업식에 참석은 했으나 졸업장도 앨범도 못 받았다. 1980년 봄 어느날 돈을 준비해 가지고 졸업장과 앨범을 찾으려고 모교를 방문하였다. 담임 선생님도 만났고 그러나 나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庶務室에는 김흔 동기가 직원으로 있었다. 앨범은 후에 내가 영여회에 나갈 때 박동진 동기에게 부탁하여 복사해 받았다. 박동진 동기에게 감사한다.
7. 1964년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미아리에 살고 있었는데 ①차재열(장로)도 거기에 살고 있었다. 그를 무슨 일로 두 번 만났다. ②1983년 내가 의정부 한미 야전사에 장교로 근무하고 있을 때 차재열을 수소문해서 그를 초청 둘이 미군부대에서 만났다. ③이후 우리 부부가 그의 부부를 미군 식당에 초대하여 같이 저녁을 먹은 일이 있었다. 그는 연로하신 아버지를 위해서 캐나다에서 임시 입국하였다고 하였다.
8. ④1985년 4월 내가 군에서 제대하기 직전에 그를 초청 용산 남영동 직장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⑤ 2003년도 어느날 그가 요청해서 내가 운전을 하여 부부 동반 인천 소래 포구 근처에 가서 회를 먹기도 하였다. ⑥ 교총회관에서 모일 때 의정부에 살고 있는 그를 나는 이월회에 참석하라고 초대하였다. 2007년 1월에 나는 이호영,이종윤,허완,강영일 4명을 내 직장인 용산 미군부대 드래곤 힐로 초청하였다. 그날 이호영은 오산에서 바빠서 못 온다고 했고 강영일은 주민등록증을 갖고 오지 않아서 출입이 제한되었고 이종윤과 허완 셋이서 영내에서 양식을 먹었다.
9. 나는 온누리 교회에서 2-3년 정도 배우니까 배울 것이 없어서 주도적으로 심도 있는 성경 공부를 하려고 목동 집 가까이 있는 교회로 옮겼다. 2006년 이호영의 요청으로 나는 55동문을 목동반석교회 부설 강화기도원으로 초대하였다. 20여 명이 참석하였다. 평소에 이월회에 잘 나오지 않던 김승언도 나타나서 기도원 식당 점심에 식권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기도원에서 예배 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 강화도 마니산을 등반하고 교회버스로 목동반석교회로 돌아왔다. 좋은 경험이었다.
10. 박창윤 동기가 질병으로 삼성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월회에서 이호영, 이종윤, 차재열 3명이 문병을 갔었다. 2009년 8월쯤 내가 춘천으로 이주 직전에 차재열이 동대문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는 내가 비동계 출신이라고, 전달해 주었다. 배신감을 느꼈다. 차재열 부친이 사망했다고 했을 때 당시 이종윤이 내가 회장 때 모아 논 이월회 회비(600만원)에서 60만원을 부조했다. 당시 이월회는 교회에서 경계해야 할 사람 3가지를 다 가지고 있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11. 2009년 10월 나의 가족은 춘천으로 이주하였다. 춘천에는 중앙55 동기로 이성모(사망)와 노희영(사망)이 있었다. 이성모는 한의사였고 노희영(장로)은 대학교수였다. 매월 모였다. 노희영은 고려대 재학생일 때 중앙55동기가 모이면 동계 출신 동기끼리만 웃고 떠드는 통에 소외감을 느껴 괴로웠다고, 2015년 6월 나는 춘천 동기 두 명을 대표해서 모교 중앙고 칠순잔치에 참석하였다. 40명 정도가 참석하였다. 거기에 김경일이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온 걸 모두가 보았다. 춘천으로 돌아와서 이성모에게 김경일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얼마 전에 김경일이가 여자와 춘천에 와서 자기를 만나고 갔다고 알려 주었다.
11-1. 목사들도 성경 66권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성경책을 주었는데 하나님은 안 믿고 목사만 믿다가 聖經文盲者가 된 長老들이 너무 많다. 모두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다. 하나님을 잘 믿으려면 머리도 좋아야 한다. 영국에서는 신학교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목사가 된 사례가 있다. 내가 회장을 그만 둔 후 누가 이월회에서 성경공부를 주도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이월회에서 누군가가 성령으로 변화되고 거듭났다(reborn)는 소문을 못 들었다. 10년 전에 지준홍 동기에게 이월회 회칙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이종윤 동기가 반대하는 글을 올렸다. 이월회는 서로 合力하여 善을 이루어나가야 된다.
12. 2014년부터 나는 복음을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 내블로그를 개설하여 문서전도를 하고 있다. 온누리 교인 동기 4명은 현재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호영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갔고 김경식을 중앙 55동기 내카톡방에 자주 초대했고 김승언과는 서로 전화로 몇 번 통화하였다. 지금 어느 교회를 다니고 있는가? 김경식은 웃으면서 아무 교회도 안 다닌다고 했고 김승언은 왜 교회를 물어 보느냐고 화를 내며 앞으로는 전화를 걸지 말라고 소리질렀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교회를 떠난 걸로 파악이 되었다. 4명 중 나만 홀로 남았다.
13. 2002년 부터 어느덧 24년 이란 세월이 흘렀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지 22년 만에 총리가 되었다. 목사와 장로 직분은 중요하다. 목사 장로라고 다 성도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으면 바른 신앙은 절대 유지되지 못한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강풍에 쓰러진다. 이월회 동계 주동자들이 지난 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거듭남이 없으면 그들의 심령에 성령은 임재하지 않는다. 24년 전 이월회의 시작과 과정은 혈과 육이 지배하였다. 지난 2월에 18년 만에 조용근 동기와 통화를 하였다. 이월회에 성령이 임재하기를 소망하고 동기들의 참 신앙을 위해 기도한다.
남기영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