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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사회는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로 혼돈에 빠져있습니다.
10년 민주정부의 온갖 성과가 쥐새끼 정권하에서 무위로 돌아가고
지난 부정선거로 당첨된 박그네로 인해 민주공화정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으며
이에 맞서야 할 야당과 시민사회는 깊은 무기력에 빠져
상황을 타개할 투쟁력을 보이지 못하고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내외 독점자본의 지배력이 민주주의의 최후보루인
시민의 의사판단의 영역에 까지 그 문어발을 뻗고있는데
이에 변변한 대항매체 마저도 부재한 지경입니다.
그래도 좌절치 말고 힘을 내야하는 근거는 지금보다 더 어렵던 일제와 독재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싸운 전통이 있기 때문이겠죠. 다시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목표로 싸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민주주의에 대한 저의 고민입니다. 카페의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글도 작년에 달맞이넷에 올린 글입니다. 왜 제가 글을 올려서 좀 알려지려하면 문을 닫는 사태가 오는 지 의문입니다. 정치포탈 13년 전통의 서프라이즈도 달맞이넷 처럼 열릴 기미가 없네요. 그래서 다시 이곳에 올립니다. 못 보신 분들은 숙독바랍니다.
위기의 대한민국! 여전히 민주주의가 답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80여일 남았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1920여 시간이다. 그리고 선거 이후 또 그만큼의 시간이 가면 드디어 쥐명박이 청와대를 나오게 된다. 그자의 재임 기간에 저지른 숱한 악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면에 비굴한 조소를 띠면서 청와대를 떠나는 쥐의 면상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민주적 선거제도는 이렇게 역사상 최악의 날강도를 최고 권력에도 올리고 그리고 때가 되면 내려오게도 하는 허점이 많은 그러나 당장은 대체 불가능한 인류 지성의 발명품이다. 대의제에 근거하여 국민의 대표자를 선출하고 일정한 임기 동안 나라의 정책 결정권을 위임하는 현재의 선거제도는 인간과 사회의 진화 과정에서 축적한 민주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모두 반영한 역사적 산물이다. 즉 선거제도와 그로 인해 구성되는 권력기관의 운영원리인 견제와 균형- 책임과 기능의 분할과 통합-모두가 민주주의를 최고의 상위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 1조에 주권재민을 선포한 이유인 것이다.
민주주의 사상도 역사적으로 그 폭과 깊이를 더 넓고 더 깊게 확장해왔다. 민주주의에 대해 숱한 논의와 의견 대립이 있어왔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포괄적인 정의는 링컨의 개티스버그 연설에서 나왔다는 그 유명한 언명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정치’ 원리라는 것이다. 보통은 이 세 가지 원리를 각각 인민주권, 시민자치, 복지주의로 설명하곤 하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상세를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각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내 생각에 의미의 폭이 작은 순서대로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정치의 순으로-민주주의 개념에도 위계와 서열이 있다.)
1. 사람을 위한 정치(for the people)
유럽에서 중세암흑의 시대가 끝나고 문예부흥의 시기에 재발견한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서 드러나는 사람과 사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의 전환이다. 즉 기독교의 원죄설의 포로가 되어 사람의 비참함과 무기력을 운명으로 체념하고 신의 섭리와 대속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수동적 노예의식에서 해방된 것이다. 무질서와 만인의 투쟁이라는 카오스적 정치적 혼란기를 거쳐 왕권신수설의 절대왕정 시대를 거쳐 온 이 인본주의 사상은 마침내 근대 유럽의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그 꽃을 피운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날개옷으로 장식한 이 민주주의 꽃은 유럽 전역에 봉건왕조 체제를 대체하여 입헌 공화국의 수립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하여 유럽 역사상 ‘신과 그 대리자인 왕권’이 아닌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 정치가 시작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민(爲民)정치는 역사적으로 동북아시아 그 중에서도 공맹의 도를 그 극한까지 추구한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가장 눈부시게 분출하였다. 특히 세종은 역성 혁명론의 실천가이자 권문세족의 토지몰수와 노비해방을 단행한 조선조 최고의 민본주의 정치가 정도전의 사상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서 백성들이 진정한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한 위력한 무기인 ‘한글’을 창제하였다. 정도전이 민본정치의 주체로 성리학에 정통한 사대부를 내세운 반면 세종은 이미 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는 깨어있는 백성임을 자각한 것이다. [SBS 화제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작가 김영현과 시다의꿈이 주장하는 소수설이자 유력설(?).] 이는 실로 500년을 앞서 본 선견지명의 위대한 사상가 세종의 최대 업적이다. 기껏해야 부국강병의 수준에 머물던 서구의 다른 개혁군주에 비교해 보면 세종의 업적은 인류 문명사적 위업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선도국가로 인류문명을 주도해 나가면서 이를 입증하게 되리라.
그러나 이러한 사람을 위한 정치로서의 민주주의 단계는 여러 한계를 가진다. 즉 사람(백성, 인민, 대중)이 주체가 아니라 시혜의 대상으로 머물러 있어 만일 위민정치의 주체인 왕이나 사대부, 또는 칭송을 받는 인민의 지도자가 죽거나 권좌에서 밀려나거나 변절하면 이를 극복할 수단이 없어 역사는 다시 너무도 쉽게 패도 정치의 폭군이나 부패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너무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친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면서 5현제의 시대는 끝나고 네로를 거쳐 망국으로 간 사례, 개혁군주 공민왕의 개혁 정책들이 그의 사후에 모조리 후퇴하여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의 극심한 대결로 고려가 절단 난 사례, 뛰어난 혁명가 레닌이 신경제정책을 추진하여 급진적 혁명의 수정을 시도했으나 급작스런 죽음이후 권력을 찬탈한 스탈린이 사회주의적 이상을 짓밟고 학정을 일삼던 사례, 그리고 노무현을 거쳐 쥐명박 집권 5년 동안 우리가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이 짐승의 나라...
또한 현대 정치에서는 그 어떤 정치세력도 자신들을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자로 포장하고 교묘하게 대중심리를 현혹하기에 이 수준의 민주주의만을 강조하는 자들은 사실상 사기꾼에 가깝다. (또다시 “부자 만들어 주겠다.”는 사탕발림에 속는 사람은 바보!)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선전한 유신헌법이야 말로 수출 100억$ 달성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도 파리 똥 취급할 수 있다는 위선적 위민정치의 전형인 것이다. 모든 전체주의 파시즘 독재국가도 마찬가지로 언제나 ‘국민을 위하여’를 구호처럼 달고 출현했다.
결론적으로 for the people 단계의 민주주의 수준으로는 진정한 사람 사는 세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2.사람에 의한 정치(by the people) - 절차적 민주주의의 꽃이 만개하다.
위민정치의 한계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강화로 상당히 보완되어 왔다. 이 단계에서 자유주의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 절대군주의 전제적 폭력에 맞서 시민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언론, 출판의 보장과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안전장치로 기능한다. 권력을 삼분하여 서로 견제케 하고 인간의 존엄한 인권을 가장 중요한 헌법가치로 규정하였다. 국가권력에 의한 신체적 위해도 금지하였고 이를 어기는 권력엔 폭력적 저항권 행사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이 단계(by the people)의 최고의 산물은 국민의 참여로 국가 권력을 구성하는 선거제도라 할 것이다. 국민의 자유로운 직접, 평등, 비밀 선거로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게 됨으로써 국민을 위한 민주정치는 비로소 온전히 자신을 역사 속에서 드러낼 수 있었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자유의 전사들이 피를 흘리며 싸웠다는 史實을 기억하자. (4.19와 유신독재항거,80년 광주와 학생운동가들, 6.10항쟁의 그 뜨거운 함성들) 또한 바로 이명박그네 정권의 집권연장 기도를 깨고 다시금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를 꿈꿀 수 있는 것도 바이더피플 수준의 민주주의를 우리가 쟁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에 의한' 민주주의에도 한계가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근대혁명은 신흥 부르쥬아 계급의 지위를 제 3신분에서 일약 사회의 지배계급으로 전변시켰고 구체제의 앙시앙레짐을 막기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교하게 체계화했다. 그러나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과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는 이 과정에서 개선되지 못하였다. 즉 실질적 민주화라 불린 경제민주주의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우리의 경우도 70년대 이후 정치적 자유투쟁의 과정에서 독재를 종식시키고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대표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회복을 달성했지만 그 과실은 사실상 새로운 기득권 동맹과 그 협조자들이 차지해 버렸다.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여전히 포더피플의 시대에 머물러 있고 정치적 지위는 때마다 돌아오는 선거 때만 주인대접 받는 처지이다.
즉 ‘사람에 의한’ 정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단계에서도 여전히 대다수 사람의 지위는 정치의 주체가 아닌 시혜의 대상에 머물러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문제가 ‘of the people’ 바로 사람‘의’ 민주정치 구현인 것이다.
3.사람의 정치(of the people)
- 사람이 정치의 실질적 주인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단계.
그 궁극적 상(狀) 또는 최종적 형태가 무엇인지는 아직 미완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독점의 해소로 공동체의 이익을 강화하는 사회적 소유 시스템의 확립으로 실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정치’의 실현도 권력구조의 창출과 운영 과정에 다수 대중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절차와 제도의 확립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1)정당 민주주의와 2)직접 민주주의의 강화가 필수이다.
1)정당의 민주주의 또는 민주적 정당이 필수적인 이유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민주적 정당이 돌파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의제로 대표되는 간접 민주주의는 국민의 실제 이익과 의사보다 기득권 세력 특히 독점자본의 금권정치에 취약하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판명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권당은 물론 야당조차도 재벌의 이해가 걸린 법안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열린 우리당의 상당수 486 정치인들과 심지어 탄돌이 의원들마저 4대 개혁입법(그 자체로는 재벌의 소유구조와 무관하지만 기득권 동맹과의 싸움에 교두보가 되는 과거사 청산, 친일 재산정리, 국보법 폐지, 사립 학교법개정)의 통과에 몸을 사렸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이후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떠들고 친노의 패권을 규탄하고 지금은 민주당의 당 지도부 사퇴를 쇄신이라고 떠벌이고 있다.
정당의 쇄신은 곧 정당의 민주화이고 그것은 바로 국민의 의사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이 당의 대표, 공직 선거의 후보가 될 수 있는 정당 시스템의 정비로 가능한 것이다. 그 어떤 재벌과 이권 세력의 로비도 통하지 않고 권력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의 조직’의 최고 형식이 바로 ‘진보적 민주정당’인 것이다. 정강과 정책에 동의하며 당비를 내고 참여하는 주권당원의 진성당원제도는 저비용 고효율 정당을 만들어 재벌의 금권정치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것이지 무슨 신성한 당원을 위한 당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당이야 말로 현대 정치의 진정한 대중정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중정당이 직접민주주의의 요소의 확대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통해 of the people 이라는 민주정치의 안정적 구조가 완성되어 가게 될 것이다.
2) 우리가 현재 취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요소는 국민투표, 국민발의, 주민소환이 있다. 그런데 기성 정치권과 제도 언론은 그 무슨 파퓰리즘이니 사회적 혼란과 대중독재의 출현이니 하면서 이 기초적인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전면도입조차 한사코 꺼리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정치의식은 날로 고양되고 이를 정치 시스템에 반영할 기술의 진보가 구비되었다. 무엇이 두려우랴? 구더기가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된 장맛을 보기가 두려운 것인가? 민주당의 당대표 선출과 대통령 후보 선출과정에 도입된 모바일 투표를 보라! 여기에 무슨 혼란이 있고 민의의 왜곡이 있던가? 오히려 그렇게 나발 불던 세력이야 말로 민주정당의 민주적 결정과정을 왜곡하고 당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 아닌가? 이제 앞으로 국민이 정당의 선출직 공무원의 후보 선정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이러한 제도가 더욱 세련되게 정비되는 과정에서 소수 특권 세력의 준동은 그 힘을 잃어갈 것이다. 이러한 발전 과정이 축적되면 언젠가 진정한 ‘사람의 민주 정치’가 실현되리라 믿는다.
4.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민주정치의 상관관계
- 이 세 가지 민주주의 원리는 마치 삼각대의 트라이앵글처럼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보완관계다. 이 세 원리를 분리해서 그 한 가지 원리에 치중한다면 각각 그 고유의 가치도 소멸할 것이다.
- 역사적으로 보면 ‘사람을 위한’ 정치의 원리가 처음 발현되었다. 위민정치라는 한계가 있지만 인본주의 사상의 시작이었다. 근대 자유주의가 완성한 절차적 민주주의도 원칙과 상식이라는 진보자유주의 사상의 개화에 기여했다.
- 이런 ‘사람에 의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그러나 형식과 절차의 강조로 나아가 실질적 민주주의에 미흡했고 히틀러의 집권과정에 보듯이 민주주의의 적들의 공세와 독점 자본의 금권 정치에 취약한 구조를 가졌다.
- 그리하여 위민의 정치 원리와 절차적 민주주의는 국민의 직접참여를 강화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와 결합할 역사적 필요에 직면해있다.
- 광범위한 sns의 보급의 시대, 최고로 개화된 한글 문명의 수혜를 받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가장 첨단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5.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을 망설이는가?
싸이의 저 거침없는 도전을 보라. 민주주의가 그리스 로마의 것인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로 나아갈 역량이 되어있다.
위민정치의 전통은 우리가 최고다. 절차적 민주주의도 김대중 노무현이란 위인을 통해 최고 수준을 경험했다. 그 분들의 피의 대가로 이제 실질적 민주주의-사람이 주인 되는 사람 사는 세상- 은 이렇듯 역사의 창 너머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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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래 글에 이어 곧 벌어질지도 모를 부정선거 투쟁과 박그네 이후에 대한 제 고민의 글입니다. 이 글에 대한 토론은 적극 환영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자네보고 읽으란거 아니니 패스하시고 자네 길로 가시게.. 내가 자네 글에 대고 똥 뿌린적 없던 걸로 아는데..?
또 시작했군! 질문해서 답해주면 말꼬리잡고 늘어지고 사람 매도나 함시럼.. 거 수준 좀 업그레이드 안되나 몰러..
혹시 댓글 다시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오늘 밤 늦게나 시간이 되니 답글 늦어도 양해바랍니다.
겨울 니가 오지마! 지금은 봄이야!
ㅋㅋㅋ
미권스가 미스권인가 거기 2,30대 애들 코묻은 돈 뜯어 먹을라고 맨들어 놓은 교재구만? 나도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 중 한 명인데, 내 생각은 당신 같은 어설픈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야 정치가 좋아지고, 민족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거 가터. 댁같은 아마추어들이 정치판 개판 맹글어 놓으니 우리 북녁 동포들이 외롭게 미국하고 맞짱뜨느라고 고생 하잖여. 안그랬음 진즉에 통일 됐을지도 모르는데 말여.
하이고 시간도 없는데 댓글 많이들 다네.. 나는 댁과 생각이 달라 나 같은 사람도 이바구 할 수 있기 민주주의야! 자기랑 다른 생각도 좀 존중해봐라 이 말이여.. 토시씨!
내 말이 그말이여. 당신들은 왜 남의 의견을 존중 안하냐고? 댁들만 잘났고, 댁들만 진보고, 댁들만 민주주의자고, 댁들만 정치할라고 하고, 댁들만 대통령 할라고 하냐고요?
토시님! 나는 개인 시다의꿈으로 님과 댓글을 주고 받는 걸로 아는데 왜 나를 댁들이란 복수로 호칭하나요? 혹시 내가 무슨 특정집단의 선전요원으로 느끼시나요? 나나 토시님이나 이 사회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 중 하나요. 의견의 차이는 어쩌겠소. 생각이 똑 같으면 이런데서 머하러 손꾸락 아프게 타자질 하겠쏘이까? 허깨비하고 싸우지 마시길..
민중은 비정규직 알바 실업 자살등으로 내 몰리는 현실에서 먼 민주주의
민중이 주인이 아닌 노예 도 아닌 소모품으로 취급되어지는 현실의 부조리는
있지도 않은 민주주의보다 자주가 우선인것을 알아야 한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바로 그 문제에 대한 겁니다. 좀 숙고 좀 바라요. 이북이 단숨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거란 주관적 기대는 버리시고.. 남한의 무너지는 민주주의와 경제, 그래서 죽어나가는 민생도 고민하자 이 야그입니다. 와 독촉 전화 엄청와서 이만!
시다님도 최근에 느끼셨겠지만.. 현 분단상황 및 수구기득권 독식 상황에서는 향후 30년을 지낸다 한들 바뀌는게 없을거라고 생각됩니다. 국제정세가 한국의 국내정세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통일에 의한 자주성이 우선 확보가 되어야 맘대로 정책을 펼칠수 있을 겁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죠.. 노대통령도 참 불쌍하신 분이고요..
말씀 공감하고요. 제 생각엔 그 자주성 확보란 것이 민주주의 만큼 하루아침에 될 것 같지 않아서 더 안타깝습니다. 진짜 민주주의나 진정한 통일이나 남한 땅에 그걸 담보할 만한 주체세력이 없으면 기대난망입니다.
자주성 없는 민주주의는 무신 민주주의? 정당을 쇄신 해봐야 미국 핫바지이고 미국만 입에 물고 사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지?
민중이 비정규직 알바 실업 자살등으로 내 몰리는 현실적인 원인은 한가지 아닌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노예로 보고 대체할수 있는 물건 취급 하는거...남한의 민주주의는 있었던 적이 없는데...노무현 김대중 정권 때를 말하는 것인가? 그때도 이나라의 권력층은 변한게 없었는데..그나마 그땐 욕이란걸 해도 된다는 차이 밖에는...민주주의의 뜻이 무얼 말하는지는 아시는지?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말하는것인데 우리 나라에서 그게 가능 하다고 보시는지? 실체가 없는데 무슨 논의를 하자고 하는지
이해가 영 안됨...이 나라에서는 옳은 말 하는 순간 바로 빨갱이 되고 밥숫가락 놔야 하는 구조인데 미국놈 물러나라 하면 바로 국보법 위반으로 창살있는 곳에서 먼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데...민주주의는 애시당초 이 나라에 없었음..실체도 없는 놀음은 해서 뭐 할라고 하는지요? 대체 민주주의라는게 뭔지 아시는분? 전 당췌 모르겠음...그리고 자유라는게 무엇인지 아시는분? 이것도 당췌 모르겠음...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요 자유의 반대는 억압 이라는 모호한 표현 말고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아시는분? 좀 알려주세요...
대한민국의 자유는 있는 넘들의 자유를 말하는 것 아닐지..
법적으로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지만...
쩐으로 묶여...직장으로 묶여...교육으로 묶여...기타등등...실제적 제한이 심각한 것아닌지..??
차라리 한곳에 살아도 별 걱정없이 살수 있게끔 된다면...
그런 자유 개나 줘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지..??
민주주의...는 그들만의 민주주의일수도....세력 밖은 외적 명분을 만드는 하나의 도구로서...
그저 사기나 치며 데리고 놀 노예일뿐,,,
그것을 만드는 것도....사료에 눈 어두운 대다수 소위 국민들이라는 사람의 인과응보 아닐지..
하늘바라기님의 탄식처럼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외쳤던 정치세력이 집권해도 실질적인 사회정의-즉 국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민주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충족되지 못하고 정치는 그들 가진 자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린게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자주성이란게 도대체 어떻게 실현되는 걸까요? 그저 이북만 바라보는 건 아니지 않나요? 분명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발딛고 선 이 남한의 현실에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해야 않겠어요?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의 힘을 모아야지 않겠어요.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한, 정확히는 유 시민 씨에 대한 님의 글 (그럴듯하게 둘런덴)을 본 후론 님의 잘 쓴 글을 보면서도
님의 시각과 진정성에 대한이 의심이 앞서 마음에 닿지 않음.
후..ㅠㅠ 그러세요? ..
그리고 한가지 말해주자면 소크라테스였던가..그가 이런 말을 했죠..현대의 민주주의 (다수결 제도)를 보고 중우정치라 하면서 미친정치라고 비판하지요...4대 성인이라고 불리던 그가 왜 이런말을 했는지 아시는지요? 이유는 단 하나..대중들은 좟 나리 멍청해서 정치 맡겨 놓으면 다 망쳐 놓을거라고..그래서 철인 정치를 주장 했었죠..이런 주장은 그 후에 레닌도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죠 농민들은 개 돼지와 같다고..다만 다르다면 말을 할줄 알 뿐이다..라고 했죠..민주주의를 논하든 뭘 하든 알고 해야 하는데 이 나라 사람들은 그런거에 관심 없음...민주주의의 실질적인 토대는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민중이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
인데 이 나라에서 철학이 뭔지는 가르치나요? ㅋㅋㅋㅋ 토양도 없고 근본도 없는데 뭘 세우고 뭘 논함? 토양이나 만들어야 함..차라리 민주주의를 논하지 말고 학교 교육이 잘못 되었으니 그거부터 고치자고 해야함..왜냐하면 학교에서 부터 그리고 가정에서 부터 철학이라는걸 가르쳐야 하니까...근본부터 닦아 놓지 않는한 무엇을 세우든 무너지게 마련이니까...
하늘바라기님의 구구절절한 마음이 잘 느껴집니다. 이 나라의 위정자들과 정치인들에게 뭘 더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찌해야죠? 이런 한심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시다꿈의 글도 가치있고 여기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글과 사고는 우리에게 힘이된다고봅니다
누구나 상대를 인정하고 공감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쥐새끼 잔당들이 파고들어올 틈이 없는 것입니다
좋은말씀 공감합니다 !
시다의 꿈님, 민주주의란 "백성이 주인되는 주의"인데요,,,,김대중은 정권을 잡고 비정규직법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지금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새로운 신분계급을 만들었어요, 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가 되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또 김대중과 이명박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를 채택해서 국가 기간산업인 정유산업, 통신산업을 외국자본이 장악하게
했고, 서민에게 아주 불리하고 부자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준 국민연금,의료보험 강제화와 같은 교묘한
서민 억압정책으로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시키고, 서민들의 자본축적을 제도적으로 억압했는데요, 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인지 설명해 주실수 있나요?
님 글좀 자주자주 써주세요. 님글 너무 재미 있습니다.
뭔 봉창뚜드리는 소린지...당췌...
식민지에서 민주주의라...
해방된 조국이 먼저겠지...
민주주의와 통일은 상호 밀접한 불가분의 관계랍니다. 그야말로 中線奉行의 문제입지요.^^
민주주의란 백성의 뜻이 주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서민들이 김대중씨가 강제화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으로 삶이 굉장히 힘들어 졌는데요,,, 미국같은 나라는 세금하나 올리는 것도 주민투표를 통해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대중씨는 국민으 ㅣ뜻도 물어보지 않고 딴나라 매국노들과 짝짜꿍으로 자율가입이었던 국민연금을 강제화시키고,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을 강제화시켜서 서민들 소득의 거의 10%를 강제적으로 뺏어가고 있는데..이것이 어떻게
민주주의인가요? 국민연금은 김대중정권이 외국투기자본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게 혹시 아닌가요?
김대중씨가 민주화투사인건 맞는데요,,,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권력을 잡을때까지만이 아닐까요? 실제로 김대중씨가 권력을 잡고서 한 짓은 "민주주의"라기 보다는 친 재벌주의,,,친 서양금융자본주의"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요..
김대중씨가 시행한 기름값 세금비율 왕창 인상,,,,기간산업 외국투기자본에 매각,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폐지,,
비정규직법 만들어 노동자 계급화하기, 외국인도 공무원이 될수있게 법개정, 호주제 폐지로 향후 근친상간이
마구 일어나게 만듦, 각종 인프라가 김대중정권때부터 민영화로 도로,터널등 바가지요금화됨, 쥐박이를 권력남용해
사면해줘서 대통령되게 해줌,, 그외 수도없이 많지만 생략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개두화니가 매국노 역적인것은 맞는데..군사쿠테타 개두화니가 권력을 잡고있을때가 일반 서민들은 지금보다 박탈감이 덜 했다는 겁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집한채 살려면 몇십년을 모아야 되지는 않았고,,
지금처럼 빈부격차가 심하지도 않았고,,,,지금처럼 상류층과 공무원들만 살판나는 세상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아주 희안한 것이...민주화정권들이 들어서면서 현격히 바뀐것은 기름값,통신료,의료보험,국민연금등의
각종 복지와 고정비를 가장한 가혹한 세금으로 서민들 살기는 더욱 힘들어졌고, 물가상승률을 천정부지로 만들어 서민들 재산을 강탈하고,극악한 신자유주의로 외국자본과 부유층 천국을 만듦
솔직히 요즘같이 휴대폰이 발달한 시대는 돈이나 쳐먹는 국개의원들 수백명씩 뽑아놓고 대의민주주의라는 개쑈행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스위스같은 나라는 이미 왠만한 국가 결정사항은 국민투표로 결정합니다. 예를들면 한국처럼 국민연금이나 의료보험 강제화처럼 서민들 소득의 거의 10%를 뺏어가는 중대한 결정은 스위스에선 정치패거리들이 절대
지들끼리 올리고 어쩌고 못합니다. 국민투표 붙여야만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휴대폰 투표로 하면 왠만한 사안은
전국민 투표결과가 48시간 안에 다 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발달이 안되있을때나
써먹던 대의정치를 한다고? 하하하....돈쳐먹기엔 대의정치가 딱
제 글 중간만 보시고 글을 쓰느건 아닌지 의문이 드네요. 대의정치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인데..어쨓든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기의 세계정세가 소련몰락으로 겁날게 없는 미국이 신자유주의란 미명으로 노골적인 자본주의 수탈을 감행하던 시기란 점을 고려하기 바랍니다. 전두환 때가 한반도의 냉전이 최고조 일때이니 동북아판 마셜플랜이 강력히 작동 중이던 때죠. 경제논리 보다는 대소련방어 기지로 남한을 어느정도 보호하던 시기입니다. 그나마 지금도 이북이 있어서 한미 에프티에이의 칼날이 무디다는 현실도 보셔야 합니다. 물론 지금은 미국은 물론 세게 자본주의 전체가 위기에 몰려 과거 같은 호시절은 결코 없겠지만 말이죠.
지금 같이 외세와 그 앞잡이 매국노들이 권세를 잡고 다수의 대중들을 속이고 우중화한 상태의 대의 민주주의란 사기이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유돼지들의 노예국가에서 민주주의를 한다는 얘기는 유돼지들이 만들어 놓은 똘마니들의 보수민주 좌파우파 연극놀이를 하자는 얘기지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할까요? 북미 대결전의 관전자로 응원만 하면 되는 건가요?
나라가 거덜났을때 유대돼지 금융가들이 돈은 공짜로 빌려줬을거 같습니까?? 순진하시군요
그나마 대외적인 지명도가 있는 김대중 때문에 그나마 나라살린겁니다..돼지들이 돈주면서 조건없이 줄것 갓습니까?
어디서 줏어들은것은 있어가지고 헛소리 하지말고 냉정히 생각하세요.. 전두환이 시절이 그립갰다~~ㅎㅎ
삼청교육대가서 좃나게 당해봐야 정신차리지,,,감히 살인마새끼시절이 좋았다고 하는 인간들 보면 밥맛이 떨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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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파장. 도찐개찐. ^^ 사돈남말.. ^^ 다 문화탓.
읽다보니,자꾸혈압이오르네,니 모하는ㄴ 이야
집에 가서 발딱구 주무시게,ㅈ 도모르는게 탱자는 아는가보네......
읽지마소.. 뿌리도 없는데 나무 글 읽다 쓰러질까 걱정되니..
타인을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의 사고나 행위에 대한 겸허한 성찰이 필요하다 여깁니다.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배포있는 양심과 행동이 필요하지
말이나 글 장난은 그만합시다.
현재 글과 댓글에 대한 표현은 모를까
옛 글에 대한 감정표현은 자제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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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라도 할 수준이면 행복하겠습니다.
just only REset...
So Good! But 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