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술과 진실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려 한다. 진리를 추구하면 손해를 보거나 박해를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틀린 생각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회는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고, 진실하지도 않고, 또 이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회가 이모양 이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진실하고,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음식이 육체의 양식이라면, 진실, 양심, 정의 등은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미 완전히 영혼이 망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영혼의 양식을 추구한다. 영혼의 양식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진실이란 양자간에 교환되는 것이지, 한쪽만 진실하고 다른 쪽은 그러하지 않을 때는 결코 지속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나 양심적이거나 원칙적이거나 무엇이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렇게 상호적인 것이다. 사실 거짓도 마찬가지다. 한 쪽이 거짓일 때, 이 거짓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거짓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상대방에게는 진실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거짓을 내보이면서, 교묘하게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처세술’이라고 한다. 처세술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거짓으로 위장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거짓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전형적인 처세술 하나를 예 들어보자.
한 회사의 어떤 단체에서 프로젝트를 관공서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벌써 두 번이나 선정되기 못하였다.
세 번째 시도를 하고자 사람들이 모였다.
사장에게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사장도 모임에 요청하였다.
그 부서의 장이 약간 격양된 톤으로 사장에게 어필을 한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였지만
"벌써 세 번씩이나 우리의 프로젝트가 선정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이 벌써 4번째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꼭 되어야 합니다!”
그곳의 멤버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상하다. 분명 두 번 실패하고 지금이 세 번째 인데, 왜 부서장은 네 번째라고 하지, 내가 무언가 잘못 알고 있나?” 이렇게 자신은 무엇이 사실인지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머릿 속으로 언제 언제 지원했지를 생각하느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 그러면 부서장을 또 목소리를 높인다. “회사를 위해서도, 부서를 위해서도, 이번에는 꼭 프로젝트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모두 정신들 차리고 이번엔 잘해 봅시다!”
당연히 사장이 보기에, 부서장이 이래저래 노력하는데, 멤버들이 대충해서 계속 실패를 한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서장이 언성을 높이는 데, 모두 꿀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처럼!
사실상 부서 전체가 함께 하는 일에서 잘못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부서장에게 있는데도, 자신은 잘못이 없는데, 부서원들이 일이 잘못하여 실패하였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교묘하게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방법이 ‘살짝 진실을 왜곡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혼란에 빠지게 하여 더 이상 말하지 못하도록 기회를 박탈하는 능란한 수법’이 곧 대표적인 처세술이다. 처신을 잘하여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은 사장에게 신임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실에 살짝 거짓을 섞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올바른 담론을 이어가지 못하고 ‘아노미 상태’에 빠뜨리는 방법이 가장 흔한 처세술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사악한 사람들은 항상 단순하지 못하고, 복잡하고 애매한 말과 논리를 앞세워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적당한 사실과 적당한 거짓을 섞어서 상대방이 말을 잇지 못하게 하는 방법 이것이 사악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체세술이다.
하지만 이러한 처세술의 가장 큰 약점은 처세술은 어려운 상황을 순간적으로 모면하는데는 매우 유용한 기술이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타인들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에 엄청난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그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도 거짓이 무한정 지속적으로 진실처럼 간주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처세술을 방어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진실이 모든 판단과 행위의 기준이자 척도가 되도록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남의 눈치나 나의 이해득실과 무관하게 항상 진실이나 진리, 원칙과 공정함 이런 것을 중심으로 행동하게 될 때, 처세술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마치 불을 켜게 되면, 어둠이 자동적으로 물러나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