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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축 우보만리 한옥에 대하여…
 
 
 
카페 게시글
자유 게시판 스크랩 새단장을 마친 보성여관, 2012년 보성여관에서 1935년 보성여관 들여다 보기
우보만리 추천 0 조회 156 12.08.14 21: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다들 여름휴가 계획은 잡으셨나요?^^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탄탄한 여정 계획을 짜는 것이 중요한데요, 특히 장거리를 이동하느라 고단해진 몸을 편히 쉬게 할 안락한 숙소가 관건입니다.

요즘은 지갑이 얇은 젊은 배낭여행족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혹은 호스텔부터 찜질방, 민박, 펜, 고급 호텔 등 정말 다양한 숙박시설들이 즐비한데요, 이번 글에서는 이제는 추억의 한 편 에 자리잡은 그곳 여관에 대해서 알아볼 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룰 여관은 조금 독특한 배경을 가진 곳입니다.

바로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보성여관이라는 곳인데요,

 

자, 그럼 지금부터 저와 함께 보성여관으로 떠나보실까요? 출 바~!

 

 

복원전 보성여관

 

 

보성여관은 1935년에 설립된 아주 오래된 숙박시설로, 지난 2004, 한옥과 일식이 혼합된 일본식 여관이라는 근대건축사·생활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돼 등록 문화재 제132호로 등록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그 옛날의 정취를 새롭게 되살리는 복원사업을 거쳐 새롭게 개장하기도 한, 말 그대로 역사적인 여관인 셈이죠.^^

 

그렇다면 보성여관이 지어지게 된 역사적인 배경은 어떠할까요? 보성여관의 건립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여관이 있는 벌교라는 지역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벌교 홍교(보물 제304호)

위)현재의 홍교 모습/ 아래)과거 홍교모습

 

 

 

보성여관이 위치하고 있는 벌교라는 지명은 본디 뗏목을 이은 다리라는 뜻의 보통명사가 지명이된 것으로, 현재 보성여관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벌교 포를 메운 지역입니다.

 

1910년부터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벌교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벌교가 포구가 밀집되어 있던 전남 고층, 순천, 보성의 교차점에 있던 터라 특히 여관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1930년에 접어들면서 여수와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는 연락선이, 1935년에는 여수,필리핀, 중국, 대만을 연계하는 연락선이 취항되면서 비로소 벌교는 대규모 국제 무역항으로 그 입지를 굳건히 합니다. 1910 9,600명이던 여수 인구가 1930년에 들어서는 2배가 넘는 2만명으로 집계되었다니 당시 벌교에 유입된 인구의 증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성여관이 한 소설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남도여관이 바로 그것입니다.

 

 

위-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벌교면 위치)

아래- 좌) 소설책 태백산맥 우)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

 

 

 

소설 태백산맥은 벌교읍을 주 무대로, 전쟁, 민중, 민족의 분단 현실을 다룬 소설로, 허구에 근거한 소설이긴 하나 현실의 벌교에는 소설속의 사건들이 펼쳐졌던 다양한 장소들이 소설과 똑같은 위치에 있어 사실감을 더해주는데요, 최근들어 소설을 읽고 소설 무대를 체험하기 위해 벌교를 찾는 문학기행과 현장답사를 하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벌교버스터미널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태백산맥문학관」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보성여관은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반란군 토벌대장 '임만수'와 그의 대원들이 잠자고 밥을 먹었던남도여관’ 의 실제 모델입니다. 소설의 한 대목에서지금이 어느 때라고,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민심을 수습해야 할 임무를 띤 토벌대가 여관 잠을 자고 여관 밥을 먹어?” 라는 대화가 등장하는데요, 소설을 감명 깊게 읽으신 분들이시라면 아마도 보성여관 방문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갈 것 같네요.^^

 

  

, 그럼 이제 보성여관의 모습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보성여관은 부지 529(160)에 건평 416(125) 규모로 비교적 아담한 크기입니다. 복원 전 건물의 외벽은 목제 비늘판 벽으로 되어 있고 일본식 기와로 지붕을 이고 있었는데요, 특히 보성여관이 자리잡고 있는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 중심거리로 소위본 정통이라고 불렸던 길로, 이는 여관이 건립되었던 1930년대 벌교지역의 일본 영향을 간헐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건축양식이었죠. 또한, 쌍여닫이로 된 주 출입문이나 다양한 모양의 유리창, 굴뚝 등도 옛 모습을 그대로여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보성여관은 광복 이후까지 여관용도로 사용되다가 1988년에 접어들어 이 지역이 학교정화지구로 지정되고 여관은 상점으로 사용되면서 그 역사적 가치 존립의 위기를 맞을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보성여관의 문화재 등록과 문화재청에 의한 매입 이후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기금 및 시민 성금, 전남 보성군의 예산 등으로 2009 12월부터 약 2년여간의 복원 공사 기간을 거쳐 지난 2012 67일 그 역사적인 재 개관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립에 참여한 인사들은 태백산맥 문학관의 건립에 참여한 건축가 김원, 이종상 화백, 그리고 보성여관 개축을 담당한 건축가 최욱으로 재 개관 이후에는 1층을 카페나 소극장 등으로 이용가능한 이벤트 공간과 벌교 및구 보성여관의 옛 모습을 보여 주는 전시 공간으로, 그리고 2층은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올 하반기부터는 숙박 체험장으로써의 보성여관 체험을 시작해, 이제 다시 진짜 숙박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닙니다.^^

 

한때는 조국을 빼앗은 이들의 편의를 위해서, 지금은 조용한 벌교의 지난날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슬픈 과거사와 부흥의 한때라는 아이러니가 교차하는 중심에 서 있는 역사의 보고로서의 보성여관.

앞으로도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 속에서 그 역사적 가치의 인식과 더불어 그 명맥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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