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반복
작업실에 앉아 내다보니 맞은 편 건물의 회벽에 반사되는 빛이 더 없이 밝고 명랑하다. 그러나 열기는 별로 느껴
지지 않고 그늘은 더욱 짙어졌다. 쏟아지는 빛의 알갱이가 약해진 것이니 이는 바로 가을빛이다.
땅이 식어들고 있다, 그 많던 熱氣(열기)가 어디론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寒露(한로)의 첫날이니 새벽녘에는 찬 이슬이 많이 내렸을 것이다.
해는 06시 34분에 떴고 18시 05분에 지니 이제 밤의 시간은 12시간 29분이고 낮은 11시간 31분이다.
그만큼 빛이 적어졌건만 산과 들은 이맘때로서 화려함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2000 년 이후로 節氣(절기)가 바뀔 때마다 유심히 지켜봐왔기에 이번 한로의 모습 또한 여러 번 새겨왔음에도 새삼
이번 한로의 印象(인상)을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시켜본다.
이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수히 얘기하는 운명의 순환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 모든 것이 한해를 두고 변해
가는 계절의 모습을 처음에는 무심결에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유심하게 지켜보게 되면서 얻은 결과물들이다.
늘 변해가지만 해가 바뀌면 늘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는 자연의 循環(순환)하는 모습, 늘 변하니 일정함이 없지만
전체로서 보면 조금치의 변화도 없으니 그로서 常道(상도)인 저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깨닫게 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늘 우리 곁에 머물면서 세상의 이치를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는데 사람이 아둔하고 또 교만해서 저를 몰랐
거나 혹은 일부러 외면했던 거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 저 모습.
이에 더 나아가서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 그러니 우리의 삶과 운명 또한 자연을 닮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서 60 년에 걸친 운명의 순환론을 다듬어낼 수 있었다.
한해가 헐어서 끝이 나면 새해가 새롭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해가 늘 更新(갱신)한다는 천문학적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점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은 해의 갱신에 대해 지금의 우리와는 많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가 지구상 모든 생명의 원천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함이 없다. 해가 바로 생명이었기에 태양은 그냥
태양이 아니라 ‘님’자를 붙여 해님이라 불렀으며 생명의 神(신)으로 받들었다.
(이에 해님은 인류가 지녔던 최초의 종교였고 모든 고등종교의 뿌리이다.)
그런데 이 해님에 대해 크게 나누어 두 갈래의 생각이 존재했다.
하나는 다행히도 해가 갱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갱신되지 않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지만 인간 사회가 보다 조직화되면서 상호 경쟁하고 싸우게 되다 보니
죄의식이 싹텄고 그로 인해 타락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그 징벌로서 해가 갱신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감
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불덩어리 해님이 식어서 冬至(동지)에 이르러 죽어버리면 그것이 바로 세상의 마지막 날이었고 종말의 날이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원래 ‘동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라.)
인류의 조상들은 긴긴 겨울밤 동안 추위에 떨면서 이런 불길한 생각을 서로 나누기도 했을 것이니, 약해져버린
해님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기를 그래서 따뜻한 새봄을 반드시 만들어주기를 고대하고 기다렸었다.
이런 불안은 북유럽의 신화에 등장하는 ‘라그나뢰크’, 즉 세상의 마지막 전쟁에 관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 있다.
신화 속에서 모든 신과 거인, 괴물들이 서로 싸우고 또 죽으면서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온다.
결과 지극히 일부만 겨우 살아남아서 죽어버린 발데르, 태양의 신을 소생시키면서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다.
(아주 새롭고도 또 새로운 새봄이 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생각 중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관념은 힌두인의 신화이다.
힌두신화에는 칼파, 漢譯(한역)으론 劫(겁)이라는 것이 있다. (불교에서도 사용하기에 우리와 제법 친숙하다.)
이는 우주의 창조와 파괴가 부단히 반복된다는 생각으로서 하나의 겁은 86 억 4천만 년에 걸친다.
유한한 생명체인 인간에게 대단히 긴 시간이지만 우주의 창조신인 브라흐마에게 있어서는 겨우 하루의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힌두신화는 1 겁은 2000 마하유가로 이루어져 있으며, 1 마하유가는 432만년이라 한다. 그리고 하나의 마하유가는
또 다시 네 개의 유가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네 개의 유가에 대해 내용을 보면 첫째는 황금시대로서 모든 사람들이 착하고 도덕적이어서 평화로운 세상이며,
다음 시대는 서서히 정의가 흐려지면서 세상이 타락해가기에 법이 생겨난다고 한다.
이에 세 번 째 유가는 정의가 쇠퇴하고 선악의 불균형이 커져서 많은 사람들이 괴롭게 살아가게 된다.
마지막 유가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로서 상호 불화와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어느 날 세상이 끝나
버리고 당연히 모든 생명도 죽어버리면 또 다시 새로운 마하유가가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거창하고 거대한 시간 스케일의 힌두신화이지만 이 역시 해의 갱신과 그에 대한 불안감이 만들어낸 관념
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또 다른 갈래의 생각은 첫 번째 생각에서 약간 변형된 것들이고 시간적으로 보다 후대에 생성되어진 것이라 하겠다.
대표적으로 기독교의 종말론을 들 수 있다.
힘에서 밀려 핍박을 받던 유태교도들은 이 세상이 잘못되었으니 반드시 언젠가 절대자인 신에 의해 최후의 심판이
내릴 것이고 이때 구세주 메시아가 나타나 유태교도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 달리 표현하면 복수
혹은 앙갚음의 생각을 품었던 것이 종말론의 시작이다.
(‘이제 너희들 다 죽었어!’ 라고 외칠 날을 기다리는 것은 애나 어른이나 동일하다.)
이 역시 기본적으로는 해님의 갱신 여부에 관한 고대인들의 관념이 유태인들에 의해 변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유태교도들의 종말론은 기독교에 와서 또 다시 변형되어 부활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마지막
날에 다시 재림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수가 재림하는 날 그간 날 못살게 군 나쁜 놈들을 죄다 손본다 하는 기독교의 심리 역시 유태교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彌勒(미륵)사상 역시 기독교적 종말론과 대동소이하다.
미륵보살신앙 혹은 미륵신앙 역시 세상이 갈수록 타락해가다가 마침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때가 왔을 때, 달리
표현하면 세상 끝날 즉 末世(말세)가 되면 미륵보살이 부처가 되어 나타나서 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물론 못된 놈들은 죄를 받을 것이고.)
더 소개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이만 그치기로 하고 정리해보자.
해의 更新(갱신)과 그에 대한 불안심리,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동물을 잡아서 식량으로 쓰고 또 사람 간에도
빼앗고 또 죽여야 하는 잔혹한 현실과 그로 인한 죄책감 또는 앙갚음의 심리 등이 고대 북구 신화나 기독교 또는
불교의 종말론 속에 투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니 해는 이미 서녘으로 넘어갔다.
하루의 해가 저무는 것이니 만일 내가 힌두의 ‘브라흐마’라 한다면 미미한 존재들에겐 무려 86 억 4천만년이 지나
가고 있을 것이다. (크하, 하루는 86,400 초라는 사실!)
그리고 두어 달 더 지나면 지금의 헌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뜨면서 2013 년을 만들게 될 것이다.
내가 명리학과 관련해서 알아낸 것은 60 년을 1 년이라 한다면 사람마다 또는 사물마다 그 1년, 다시 말해서 60
년의 흐름이 시작되는 시점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는 태어나서 열일곱 살에 60 년의 새해, 立春(입춘)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마흔 다섯의 나이에
새해를 맞이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가수 싸이는 올 해로서 60 년의 흐름 중에서 한로를 맞이하고 있어 저 난리이다.)
물론 당시에는 몰랐지만 1997 년으로서 새로운 60 년 흐름의 입춘을 맞이했던 나는 2000 년 초반부터 밖으로 나다
니기 시작했다. 충분히 망해있던 터라 나를 찾는 이도 없었고 찾을 까닭도 없었기에 자유롭게 밖으로 쏘다닐 수
있었다.
그저 좌절의 아픈 상처를 달래보기 위함이었을 뿐 달리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홀로만의 여행이었기에 산사에서
새벽을 맞이한 적도 있었고 허름한 민박집의 어두운 등불 밑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저 상처를 핥아대던 세월이었다.
그러다가 2004 년 무렵 자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순환이라고 하는 자연의 常道(상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마침내 뭔가를 보는 법이고, 이에 유심히 보노라면 그 무엇인가의 모습이 더욱
확연하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세상은 한없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그로서 마냥 괴로워하던 나의 존재는
어느덧 사라지고 행복할 수밖에 없는 나를 찾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만들어져서 자연과 함께 한정된 기간이나마 살아본다는 사실,
영원히 살지 않아도 이미 그로서 충분하다는 사실,
운의 성쇠란 것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다름 아닌 것이니 그 또한 마음 하나 바꾸면 모든 계절의 별미를 알뜰
하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
힘들다고 그 시간을 삶에서 제외하면 그야말로 남는 것이 없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다.
추위와 빈곤은 내 육체와 정신을 더욱 튼튼히 만들 것이니 좋은 것이고, 좋은 계절이 와서 풍성하면 그 또한 고마
움을 가득 느끼며 즐길 것이니 더욱 좋다.
(사실 추위와 빈곤을 겪어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풍성함과 풍요로움을 감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잘 살아감에 있어 없어선 아니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니겠는가.)
자연에 네 계절이 있는 것처럼, 추위와 빈곤이란 것을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요, 오늘과 같은
풍성한 寒露(한로)의 시간이 주어지면 그 또한 절로 온 것이지 내 잘 나서 그런 것도 아닌 것이니 그저 주어지는
대로 누리고 즐기면 되는 삶이라 하겠다.
멜라토닌 세라토닌
멜라토닌 호르몬
인체에 매우 중요한 멜라토닌과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의 효능....
인간이 잠 잘때 만 분비되는 멜라토닌(melatonin)은 1953년에 처음 발견된 물질로써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연구진이 1980년대에 불면증환자에 특효가 있는 물질임을 입증하였다.
멜라토닌은 망막에 도달하는 빛의 양에 반비례하여 어두워지면 분비량이 증가되고 세포의 산소 대사 과정에서
생기는 유해 산소의 작용(활성산소)을 억제하여 노화방지와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역활을 하는데 사춘기에 가장
많이 분비된 후 점차 감소하여 60세 이상이되면 거의 분비가되지 않는데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최근 수면, 노화
방지, 면역력 증가 기능이 있음을 입증한바있다.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면 깊은 잠을 잘 수있고, 인체 노화의 진행도 느리게 하고, 각종 질병에 면역력이 생기고
반대로 분비가 잘되지 않을 때는 인체는 수면부족과 건강을 잃게되어 질병을 앓게되고 노화속도가 빨라지며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게됩니다.
이 멜라토닌(melatonin)은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호르몬에서 만들어져 나오는데 세로토닌(Serotonin)은
인체가 햇빛을 받아야 생성되고 일조량이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많은 양이 생성되어 빛이 전혀없는 상태에서
숙면을 취할 때 충분한 양의 멜라토닌이 만들어지게하고 분비도 되게한다.
즉, 건강을 좌우하는 멜라토닌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려면 세로토닌 호르몬이 먼저 많이 만들어져야한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합니다.
인간은 봄,여름에는 무언지 모를 기쁨, 즐거움등의 산뜻한 기분을 느끼고 가을, 겨울에는 의기 소침해지거나 외로움,
쓸쓸한 기분에 젖어들게되는 것은 추분을 기점으로 가을의 일조량이 감소하는데에 따라 세로토닌 호르몬 감소에
인체가 반응하는 현상입니다.
햇빛을 잘 볼 수 없는 비오는 날, 장마철에 세로토닌 호로몬 부족이 생긴 결과로 멜라토닌 호르몬 부족 현상이 생기
는데 인체는 본능적으로 햇빛을 보면 세로토닌을 대량 만들기 위해서 탄수화물 속에 함유되어있는 트립토판
(Tryptophan)이라는 필수아미노산 영양소를 찾게되어 비오는날 끼니 외에 꽁을 볶아 먹고싶거나, 가을, 겨울에는
땅콩, 군밤, 군고구마가 먹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연유합니다.
평상시 분비되지 않다가 사랑하거나 운동할 때 또는 기쁜 일이 있을 때 분비되는 엔돌핀(endorphin)호르몬은 기회
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인 반면 세로토닌 호르몬은 24시간 지속적으로 분비되지만 - 실의, 좌절, 욕구불만, 병통,
걱정, 비관, 스트레스등의 내적 요인과 운동부족, 과도한 업무량, 소음등 외적요)에 시달리게되면 세로토닌 호르몬의
소비가 과다해저 부족현상이 초래되고 상당기간 개선되지 못하면 기분이 우울하게되고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하게
되면서 이유없이 심장이 두근 거리거나 변비, 두통, 편두통, 목통이생기기도하고 나른하고 소화불량이나 피로감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활동성이되어 집밖으로 나갈 의욕마저 잃게되어 심해지면 자포자기에 이르게하여 자살하게
됩니다.
(희정남)
『시간 박물관』 따라잡기
어느 날 저녁 한 동안 벼르던 일을 저지르고 만다. <시간 박물관>(The Story of Time)을 구입한 것인데, 벼르고
있었다는 말은 공동저자대열에 에코가 들어가 있어서 그간 무척이나 갖고 싶었지만 처음에는 오만원을 육박하는
책값 때문에 후에는 품절 내지 절판이 되는 바람에 뜻을 못 이루고 시일만 질질 끌어왔음을 일컬음이다.
그러나 결국, 길은 뜻이 있는 곳에 있다던가, 거금을 투자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에코는 서문만 썼지만 다른 저자들도 눈에 들어온다.
책 뒷부분에는 홀로그램으로 일련번호가 찍혀있는데, 이 책에는 775번. 몇해 전에 단순히 아마추어수준에서
광개토왕비(호태왕비)에 대한 책들을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분야에 관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북한,
일본에서의 연구도 적지 않았기에 대부분 어떻게 구하고 구해서 참고로 삼게 되었지만 유독 입수하지 못한 게 한
권 있었다. 바로 제목도 생경한 <광개토왕비원석초기탁본집성>. 동대출판부에서 나온 것으로 당해 연구분야에
기초적이고도 핵심적인 자료라 할, 광개토왕비의 탁본들을 집성하여 각종 미술관련 도록처럼 양장본에 원색화보
형식으로 담고 있는 책이었다.
내가 구득하지 못한 이유는, 그 비싼 책값 때문이었다. 칠만원. 당시 학부 삼년생에게는 적이 망설이게 되는 금액
이었다. 뭐 박사과정에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그래도 지금이라면 적어도 결론은 달라졌으리라).
저런 비싼 류의 책들이 대개 그러하듯 몇 달 지나면 바로 절판단계에 들어가고 그 뒤에는, 정말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집성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어서 가끔씩 중앙도서관에 갔다가, 아직도 슬그머니
꺼내서 더듬고는 한다. 그때 살 것을...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란 옛 말,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시간 박물관으로 돌아와서, 그럼에도 일단 이 책에 대한 기대 또한 적지 않다. 에코와 마르티니와의 대화록인
<누구를 믿을 것인가>에서도 간단히 그러나 때로는 깊게 다루어졌던,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고민하게 될, 우주의
기원과 창조, 종교와 신, 인간과 죽음,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착종된, 현재로서는 아득하게만 생각되는, 아주 좁기만
한 이 인식의 지평을 조금이나마 넓혀 주리라는 작은 기대가 있다. 여기서는 여전히 다른 이들의 소개를 먼저 흠향
하기로 한다. 사실 아래 글들을 다 읽으면 더 할 말이 없다. 교보와 알라딘 등을 통해 구득한 자료이다.
Ⅰ. 서지
움베르토 에코 외, 『시간 박물관』(김석희 역, 푸른숲 2000, 308면). 영어판은 『The Story of Time』(Hardcover:
Merrell Publishers 1999, p.304; Paperback: Merrell Publishers, 1999).
Ⅱ. 저자와 역자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 1932년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1954년 토리노 대학 철학과를 졸업
하고 1962년 첫 저서 <열린 작품>을 출간했다. 1965년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1971년 데달루스라는 필명으로 좌파
기관지 '일 마니페스토'에 기고를 시작했다. 1973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 조직했고 1975년부터 볼로냐
대학 기호학 교수로 있다.
저서로 <조이스의 시학>(65년), <시각 커뮤니케이션, 기호학을 위한 노트>(67년), <기호>, <집의 풍습>(73년), <일반
기호학 논구>(75년), <기호학 이론>, <대중의 슈퍼맨>(76년), <논문작성법 강의>(77년), <소설속의 독자>(79년),
<장미의 이름>(80년), <푸코의 진자>(88년), <폭탄과 장군>, <세 우주 비행사>(88년), <해석과 초해석>(92년),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전날의 섬>,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94년) 등 수많은 책이 있다.
김석희 : 서울대학교 문리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으며, 창작집 <이상의 날개>와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 역자후기 모음집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 등을 발표했다. <화산도>, <털없는 원숭이>, <에코토피아>, <로마인 이야기>(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 <고야>, <프랑스 중위의 여자>, <호비트>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Ⅲ. 출판사 소개글과 추천사
1. 소개글
[시간 박물관]의 원서는 영국 그리니치의 국립해양박물관에서 개최된 대규모 특별 전시회 'The Story of Time 展'
(1999. 12. 1∼2000. 9. 24)과 그리니치 왕립천문대―그리니치 표준시와 세계 본초 자오선의 기점이며 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열린 뉴 밀레니엄 축하식과 때를 같이하여 출판되었다.
밀레니엄에 그 의미를 주는 주제―시간―를 다룬 [시간 박물관]은 이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여 출판된 책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태도나 입장이 분명한 책이다.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측면―달력과 시계, 주요 문명과 그 의례, 예술,
음악, 과학, 예언―에 시간이 미친 영향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가득 들어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 특유의 도발적인 서문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에서 근대의 언어철학으로, 그리고 다시 밀레니엄
버그로 힘차게 나아간다.
존경받는 예술사가인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히브리어 성서에 나오는 '안식년'부터 유명한 1769년의 '셰익스피어
기념제'를 거쳐 오늘날의 기념일 홍수에 이르는 '기념일의 역사'를 간결하게 압축한 글을 기고했다.
존 맥도널드의 흥미로운 '이누이트족의 시간'은 북아메리카 북극지방의 전통 문화가 왜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아이
들을 가르치는지, 그리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새로운 부족 공동체가 주일이라는 이질적인 개념과 어떻게 씨름했는
지를 설명한다.
론 캠벨은 초상화를 그릴 때의 시간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며, 조너선 베츠는 '근대 시계의 발전'을 요약하는 등
인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전세계 석학들의 다양한 시각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시간의 다양한 측면―기계적 시간,
심리적 시간, 물리적 시간, 철학적 시간, 그리고 사회적으로 재구성된 시간 등―을 탐구하면서, 시간이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너무나 광범위한 개념이지만, 그럼에도 그 개념을 만들어낸(발명) 것은 인간임을 상기시켜준다.
사회의 획일적인 시간의식에 휩쓸려 속도와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시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일상과 역사에서 소외된 인간의 주체적인 시간의식을 되살리게 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제1장 시간의 창조]
지구상의 여러 문화가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견해를 창조신화를 통해 살펴본다.
주요 문명의 창조신화에서 시간이 맡고 있는 역할을 확인하고, 그런 원칙이 우주의 운행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어떤
식으로 뒷받침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제2장 시간의 측정]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인류가 시간을 체계화하기 위해 시도한 노력과 그 결과물인 달력과 시계의 발전사를
다룬다.
[제3장 시간의 묘사]
예술가들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지,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과 중세의 알레고리화를 해석하고,
인상주의·초현실주의 화가들이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허무함을 묘사해온 미술의 역사를 정리했다.
[제4장 시간의 체험]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또 다른 유형의 시간―유기체의 생명을 조절하는 생물학적 시계(심장의 박동, 노화 등)―을
분석한다. 민족과 종교,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다양한 인생의 통과의례 문화가 비교된다.
[제5장 시간의 종말]
지구상의 여러 문화가 시간의 종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한다. 결론은 시간의 종말을 모든 것의 종말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시간이 끝난 뒤에도 무언가는 살아남을 거라고 믿는 이 경향이야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라는 것이다(2000.6.5.푸른숲).
2. 추천글
인간과 시간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견해뿐만 아니라 역사와 철학 및 세계 문화에 대한 교양을 길러주는 내용도 풍부
하게 담고 있다(라이브러리 저널), 흥미진진하고 시각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는 400여 점의 사진 자료가 시간과 관련
된 유물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퍼블리셔스 위클리), 인간은 너나없이 시간의 덫에 갇힌 존재들이다.
아무리 막강한 역사와 거대한 세력과 화려한 문명도 시간 앞에서는 결국 무력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
인가.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시간 박물관>의 빗장을 열어보자.
우리는 놀랍게도 저 어슴푸레한 박명(薄明) 속에서 숨쉬며 일어서는 그 어떤 존재와 대면하게 될 것이다. '시간'
이라는 이름의 그 신비한 존재와(김병종 서울대 교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이란 운동(motion)을 계측할 수 있는
척도이다."라고 정의를 내린다.
이를 카탈로그 형식으로 엮은 <시간 박물관>은 우리를 매우 놀라게 한다. 특히 선사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미술작품에서 시간을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하였는가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마치 '시간 미술의
박물관'처럼(유재길 홍익대 교수).
Ⅳ. 미디어 비평
1.'천의 얼굴' 시간의 모습을 보여드립니다. (책과세상, 김관명기자, 한국일보 2000.6.6.)
움베르토 에코, 에른스트 곰브리치 등 제작에 참여한 세계적 석학 24명의 명성만큼이나, 5·7배판이라는 큼직한
판형만큼이나 묵직한 중량감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과학 예술 역사 철학 등 인류의 모든 생활 영역과 관련된‘
시간’의 다양한 역사와 모습을 400여장의 사진과 함께 추적했다.
풍부한 사진(특히 시계의 역사를 다룬 제2장‘시간의 측정’)은 웬만한 백과사전 수준. 압권은 제3장 ‘시간의 묘사’.
예술가들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실제 예술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유명 작품들과 시간의 관계를 끈기
있게 고찰한 상상력과 분석력이 놀랍다.
특히 1870년대 인상파 풍경화가 시간 개념에 몰두했다는 영국 런던대 코톨드 미술연구소장 존 하우스교수의 글,
초상화란 ‘그림은 변하고 자신은 영원히 그대로’라는 바람이 투영됐다는 영국국립박물관 론 캠벨박사의 글이 흥미
롭게 읽힌다.
이어지는 ‘시간의 체험’은 시간의 개념을 좀 더 확장시켜 생물학적 시계로서 ‘인생’을 탐구한다. 중국 화가 주배춘의
‘진맥하고 있는 중국 의사’, 에드바르드 뭉크의 ‘사춘기’ 등의 작품을 통해 탄생, 세례, 결혼, 질병, 결혼, 죽음과 같은
다양한 통과의례 문화를 살펴본다.
히브리어 성서에 나오는 안식년부터 현대의 기념일 홍수에 이르기까지 기념일의 역사를 다룬 런던대 곰브리치교수의
글이 실렸다. 원서는 지난 해 12월 1일 영국 그리니치의 국립해양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시회 ‘The Story of Time’과
때를 같이해 같은 이름으로 출간됐다.
뉴 밀레니엄을 맞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간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임을 알리자는 취지.
한 권쯤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책이지만 4만 9,000원이라는 책 값은 부담스럽다.
2. 세계적인 석학 24인이 본 인류문명 시간의 역사 (화제의책, 이윤미기자, 내외경제신문 2000.6.5.)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처럼 심오한 수수께끼를 꼬치꼬치 파고들려는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 우스갯소리는 진지하기로 이름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모든 철학적 미스터리 중에
서도 가장 오묘한 문제, 즉 시간에 도전하면서 ‘이건 농 담에 불과하다고’연막을 친 뒤 인용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말하자면 시간이 탄생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는 것은 부 질없는 일이라는 얘기다.
움베르토 에코와 에른스트 곰브리치 경을 비롯한 과학, 예술, 역사, 철 학, 문화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24인이 인류
문명의 시간이란 부분을 총정 리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와 국립해양박물관이 밀레니엄을 맞아 펴낸 ‘시간박물관
’(the Story of Time;김석희 譯·푸른숲 刊)은 고대로부터 오 늘날까지, 또 에스키모 이누이트족부터 마야, 일본, 유럽
에 이르기까지 이질적인 문화권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시간의 개념과 박물학적 자료들 을 집대성한 매력적인 책이다.
특히 시간의 역사를 시간의 측정과 체험, 시간에 관한 상상과 상징의 세계를 통해 다면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다양한
층위의 시간의 개념을 이 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됐다.
제1장에선 지구상의 여러 문화가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견해를 창조신화를 통해 살피고 있으며, 이어
달력과 시계의 발전사, 예술가들은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 지 등을 살피고 있다.
또 생물학적 시간개념을 민족과 종교,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비교해가면서 정리했다.
이 가운데 움베르토 에코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에서 근대의 언어철학으 로, 그리고 다시 밀레니엄 버그의 문제까지
짚어간다. 에른스트 곰브리 치는 히브리어 성서에 나오는 안식년부터 그 유명한 1769년의 세익스피 어 기념제 등
기념일의 역사를 엮었다. 또 론 캠벨은 초상화를 그릴 때 의 시간적인 문제를 살폈다. 이 책은 고대 이집트와 바빌
로니아 달력에서부터 각종 유물, 살바르도 달리의 그림, 허블망원경이 포착한 우주사진에 이르기까지 400여점의
작품들을 수록해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3. 시간의 역사로 재는 인류문명사 (김주혁기자, 대한매일신문 2000.6.6.)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죽음을 향 해 다가간다는 예고다.하지만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거나 잡을 수는 없다.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시간은 경외의 대상이다.
‘시간박물관’(푸른숲)은 시간이란 창을 통해 바라본 인류문명사다.인류가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시간을 어떻게 인식
해 왔고,그러한 인식 차이가 달력 과 시계,예술 과학 심리 철학 등 인간의 생활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를
비교,분석했다.
고대 이집트의 달력에서 갖가지 시계와 그림,최근의 우 주 사진에 이르기까지 400여점의 유물과 작품 등 갖가지
시간의 흔적도 담겨 있다. 영국 국립해양박물관과 왕립그리니치천문대가 뉴 밀레니엄 축하식에 맞춰 원서(The
story of time)를 펴냈고,움베르토 에코 교수(이탈리아 볼로 냐대)를 비롯한 유럽,북미,오세아니아의 석학 24명이
각 분야별 필진으로 참 여했다.
이 책은 시간의 창조와 측정,묘사,체험,종말 등 5장으로 구성됐다. 창조신화로 볼 때 기독교의 개념은 현재가 미래에
의존해 있는 반면 마오리 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에게는 현재가 과거와 나란히 존재했다.또 신을 인간세 계와 분리
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는 한 세상의 종말이 다음 세상의 시작이라는 식의 고리와 같은 순환적인 인식이 우세하다.
반면에 유대 ·기독·이슬람교 에서는 시간을 화살처럼 끝이 있는 직선적 개념으로 파악한다.물론 죽은 뒤 에도 선택
받으면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기대는 있다.종말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은 것은 마야와 아즈텍 문명뿐이다.
인류는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해·물·모래시계와 진자·전자시계를 거쳐 원 자시계까지 만들어냈다.
현재 연구되고 있는 ‘이온 트랩’은 100억년에 1초 의 오차밖에 나지 않는다.그러나 50억년 뒤면 태양의 소멸과 함께
지구도 종 말을 맞는다.시계의 오차 1초를 수정할 기회가 안타깝게도 단 한번도 주어지 지 않는 것이다.
지구촌은 2000년 1월1일을 기해 세 번째 밀레니엄을 요란스럽게 맞이했다.
그 러나 두 번째 밀레니엄은 당연히 2000년 12월31일에 끝나야 한다.로마 신학 자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의
탄생에서 시작되는 그레고리력을 생각 해낸 6세기 당시에는 서양에 0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서기 1년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디오니시우스가 그리스도의 생년을 제대로 계산했다면 1997년 에 이미 끝나버렸겠지만.시간 측정이란 수수께끼
는 그만큼 사람들을 허둥대 게 만든다.
다른 달력 상에는 이날이 특별한 의미가 없는 날이기도 하다.시간 을 신격화하거나 의인화한 문화는 단 두 개뿐이다.
지팡이와 복숭아를 들거나 학이나 사슴에 올라탄 중국의 장수의 신 ‘수로’(壽老) 또는 ‘수성’(壽星)과,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로마시대에는 사투르 누스). 크로노스는 중세 서구 회화에서 ‘시간 영감’으로
발전해 등에 날개 가 돋아있고 손에는 낫과 모래시계를 든 저승사자 노인으로 표현됐다.
바니타 스(덧없음)의 회화적 형상은 15세기에 처음 등장한 이래 16∼17세기에 절정 을 이뤘다.해골이 상투적으로
등장했고,‘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주장 이 강하게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4. 시간은 인류의 지배자인가 (책속으로, 안혜리기자, 중앙일보 2000.6.2.)
시간은 태초부터 있었다. 하지만 한 철학자가 '시간의 발견이야말로 인류 최대 업적' 이라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듯,
인간이 시간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종교.철학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시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호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와 예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 등 과학.예술.역사.철학.문화 같은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석학 24명이 함께 펴낸 '시간 박물관' (김석희 옮김.푸른숲)이다. 이 책은 새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영국 그리니치 천
문대와 국립해양박물관이 함께 기획한 '시간 이야기' 특별전(지난해 10월부터 오는 9월까지 전시)의 도록으로 만들
어졌다.
그런 만큼 석학의 글을 뒷받침하는 시간과 관련한 4백여점의 유물.작품 사진이 풍성하게 수록돼 있다.
옮긴이의 설명대로 '시간의 창을 통해 바라본 인류문명사' 인 이 책은 인류 문명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전개해온
'시간' 의 모든 요소를 비교문화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에코의 서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시간의 창조와 측정.묘사.
체험.종말의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시간의 창조' 에서는 문화별로 다른 시간에 대한 견해를 창조신화를 통해
살핀다.
'시간의 측정' 에서는 인류가 시간을 체계화하고 이를 삶에 적용하느라 시도한 다양한 노력과 그 결과물인 달력.시계
의 발달사를 보여준다. 세계 각국에서 모은 희귀한 시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 인도.중남미.이슬람.중국.일본
등 각 문화의 시간 개념도 알아본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시간의 묘사' . 예술가들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표현
하려 했는지를 밝힌다.
이 책에 따르면 세계 모든 문화를 통틀어 시간을 의인화한 것은 단 두 개 뿐이다. 중세를 거쳐 '시간 영감' 으로 발전
한 그리스.로마 신화의 크로노스와 중국의 '장수의 신' 인 '수로' (壽老), 혹은 '수성' (壽星)이다. 그러나 시간 개념,
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종말을 다룬 미술작품은 많다.
대표적인 작품이 르네상스시대 화가 티치아노의 '분별의 알레고리' 다. 인생의 노년.중년.청년의 세 단계를 한 캔버스
안에 표현한 것. 각 시기를 나타내는 얼굴을 그리면서 표현양식도 달리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과거.현재.미래의 세
부분으로 이해했던 시간을 세 얼굴로 표현하는 전통은 이전부터 있기는 했다.
한편 덧없음을 의미하는 '바니타스' 의 형상화도 눈여겨볼 만 하다. '바니타스' 는 시간의 종말에 대한 의식을 형상화
할 때 자주 나오는 소재. 15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정물화 안에 인간의 해골이나 까맣게 탄 초 심지 등을 그려넣는다.
16세기에는 피테르 브뢰헬의 '죽음의 승리' 처럼 개인적 형태만이 아니라 웅장한 서사적 형태도 취한다.
17세기에 이르면 '바니타스' 가 죽음을 직접 묘사하는 형식으로 바뀐다. 죽음을 눈앞에 둔 모델을 완벽하게 그려 겉
모습이나마 영원히 남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예술은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시간의 체험'
은 삶을 지배하는 또 다른 유형의 시간을 분석한다. 다양한 통과의례 문화나 노령.죽음이 그것. 의학에서 시간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다.
근대 초기까지 노령 문제는 의학자보다 철학자들의 문제로 다뤄졌다. 마지막인 '시간의 종말' 은 지구상 여러 문화가
시간의 종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시간은 인간을 뛰어넘는 대상이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발명했고 이를 토대로 전혀 새로운 문명을 창조했다는 점을 이 책은 상기하게 한다.
5. 시간에 관한 모든 것 담은 백과사전 (이영미기자, 국민일보 2000.5.15.)
2000년 1월1일은 새 밀레니엄의 시작인가.정답은 “아니다” 1∼10이 한쌍을 이루는 십진법에 따르면 2001년이
새 천년의 첫 해가 된다.벌써 4년 전에 21세기가 시작됐다는 의견도 있다. 많은 종교사학자들은 기원전 4년
헤롯왕의 죽음에 비춰 그리스도가 기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따지자면 B.C 4세기가 A.D 1세기가 돼야 하므로 인류는 97년 1월1일 이미 21세기를 맞았
다는 것이다. 혼란은 이제부터다.이 모든 논란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 발표한 그레고리력에서
비롯된다.당시 교황은 율리우스력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10월4일 다음 11일을 달력에서 지워버리고 새 달력을
선포했다.
하지만 인류의 모든 시간이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흘렀던 건 아니다.그레고리력 2000년 1월1일은 율리우스력
으로는 1999년 12월19일,유대력으로는 5760년 4월23일,이슬람력으로는 1420년 9월24일이며,중국력으로는
기묘년(己卯年) 11월25일이 된다.그레고리력이 일반화된 건 고작 100년이 채 안된다.
중국에서는 1912년 그레고리력이 공식 도입됐고 터키는 1927년 이래 그레고리력과 이슬람력을 병용하고 있다.
우리 역시 아직도 많은 기념일을 음력에 의존하고 있다.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시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시간은 직선인가,둥근 고리인가.24시간,7일,12달로 이루어진 시간의 조직은 인류의 발명품에 불과한가.
‘시간 박물관(The Story of Time·푸른숲)’은 새 밀레니엄이 인류에게 던진 이 많은 의문들에 답하기 위해 영국 그
리니치 천문대와 국립해양박물관이 함께 내놓은 시간에 관한 백과사전이다.지난해 10월에서 올 9월까지 세계
각국의 박물관,도서관,미술관이 소장한 시간 관련 유물 및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시간 이야기 특별전’의 도록으로
410여장의 사진이 충실한 설명글과 함께 소개됐다.
또 움베르토 에코,에른스트 곰브리치,마틴 러드윅,론 캠벨 등 세계적인 학자 24명이 철학,역사,음악,미술 등 분야
별로 각자의 시간관을 정리했다.저자들은 시간의 체계가 만들어진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인들은 19세기까지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여겼고,유대력과 이슬람력 역시 일몰을 0시로 계산했다.
하루의 길이와 시작이 통일된 것은 1884년 10월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자오선회의에서부터다.
책은 인류가 다양한 시간을 가졌음을 설명하기 위해 인도와 중남미 문명,이슬람,이집트,중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등 역사상 존재했던 갖가지 시간관을 상세하게 소개했다.음악과 시간,초상화와 시간,의학과 시간 등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본 시간 이야기도 읽을 거리.
화려한 도판과 함께 정리한 시계의 발달사는 시계의 보급이 어떻게 인류의 삶을 바꿔놓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우리가 체화한 서구 산업사회의 시간 개념이 얼마나 ‘특수한 것’인지 웅변한 일화가 재미있다.
캐나다 정부의 한 관리가 이누이트족(에스키모족의 한 갈래)을 모아놓고 능률의 중요성을 강의하다 “시간은 돈이다”
라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통역자는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했다.“시계는 비싸다”.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불평하는 바쁜 현대인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6. 시간은 문명을 만들고... (책의 향기, 정은령기자, 동아일보 2000.6.3.)
초기 기독교도들을 ‘시험에 들게 한’ 문제는 다름아닌 시간의 창조였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시간 속에서
창조했을까, 아니면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공간과 시간의 모체를 먼저 창조했을까’. 수세기간 지속된 이 논쟁의
답이 궁금한가? 그러나 서둘러 답을 찾기 전에 질문 자체를 되물어보자. 왜 서양인들에게는 그렇게 ‘순서’를 부여
하는 일이 중요했을까? 만약 당신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알티에렝게 (Altyerrenge)’의 시간관으로 유체
이동할 수 있다면 기독교인들의 이 직선적인 시간관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이 된다. 영어로는 ‘드림타임
(Dream Time)’으로 해석되는 알티에렝게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다. 드림타임 시대의 선조들은 살아있는 사람
들을 위해 선례를 마련해주었고 현재의 삶은 그 선조들을 길잡이 삼아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
이 책 ‘시간박물관’은 이처럼 인류가 시간을 지각한 이래 문화권별로 당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 다양한 시간관과
시간의 측정, 묘사, 체험등을 311장의 사진 그림과 함께 소개한 책. 역사학 미술학 박물관학뿐만 아니라 천문학
의학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시각으로 접근했다. 밀레니엄 전환기를 앞두고 1999년 영국 그리니치천문대와 국립
해양박물관이 공동전시회를 기획하며 도록 성격으로 기획한 책이다.
인간이 그토록 시간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페리에의 동판화 ‘큐피드의 날개를 붙잡고
있는 시간 영감’속에 압축될 것이다. 시간을 관장하는 늙은 시간영감이 사랑의 신 큐피드의 날개를 잘라버리는 장면.
페리에는 그림 밑에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하지만 시간은 사랑을 정복한다’는 글을 덧붙였다.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은 ‘영생(永生)’을 꿈꾸다 이카루스처럼 추락한 숱한 인물들을 통해
증언된다.
이제 인류는 유전공학으로 시간의 지배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수리물리학자와 양자우주론자들의 지적 모험을 통해 ‘태초’, 즉 우주생성의 빅뱅(Big Bang)이 있었던 플랑크타임
(10-⁴³의 1초)부터 첫 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까지의 시간까지 추적하게 됐다. 그것은 이 우주가 과연 언제
어떻게 종말을 맞이할 것인지 미래에 관한 답을 풀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굳이 앞에서 뒤로 읽어갈 필요가
없다. ‘의학과 시간’ ‘지질학자의 시간’등 한 장씩 골라읽는 게 무난하다.
긴 사진설명만 따로 꼼꼼히 읽는 것도 책을 즐기는 방법. 에코, 곰브리치, 론 캠벨, 크리스틴 리핀콧 등 쟁쟁한 학자
24인이 필진으로 참여해 문화상대주의적인 태도로 ‘시간의 집대성’을 시도했지만 아시아 남미 오세아니아의 시간
관에 대한 기술이 평면적이라 전체적으로는 ‘서구 기독교 중심의 시간박물관’에 머무른다.
올컬러 특수양장. 책값을 4만9000원으로 책정해 기획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7. 시간은 네 마음속에 있어라 (책과 사람, 노형석기자, 한겨레신문 2000.6.5.)
현대인에게 시간은 부와 가치를 창출하는 귀중한 재원이다. 많은 이들은 분, 초 단위로 세분된 시간에 쫓기며 일상
속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으려 애쓴다. 시간이 본질을 잃은 채 수단으로 성격이 뒤바뀐 격이랄까.
영국판 원서를 번역한 [시간 박물관](푸른숲 펴냄)은 이 고고한 시간의 강물 위에서 무수한 인간들이 유랑했던
흔적을 되돌아본 문화사적 기록이다. 그리니치 왕립천문대와 영국 국립해양박물관이 밀레니엄을 기념해 지난해
12월1일부터 오는 9월24일까지 열고 있는 `시간이야기 특별전'의 전시도록이지만 인문학적 교양서에 걸맞는 풍성한
담론과 사료들을 채우고 있다.
책에 실린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와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 등 석학 24명의 글들은 시간이라는 야릇하고도
모호한 존재를 캐기 위해 문명이 쏟은 노력들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비춰본다.
그래서 △시간의 창조 △시간의 측정 △시간의 묘사 △시간의 체험 △시간의 종말로 나뉘어진 5개의 장은 인간과
시간의 불가사의한 모순관계를 사료분석과 철학적 추론 등을 중심으로 글밭을 펼쳐나간다. 제1장과 2장은 문명사의
본바탕이 된 시간의 창조와 측정에 얽힌 이야기다.
지구상의 여러 문화권에서 시간에 대해 가진 믿음과 견해를 여러 창조신화를 통해 제시하고 이런 생각들이 우주
운행에 대한 여러 민족의 폭넓은 인식을 어떻게 뒷받침하는지를 살피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존재하는 마오리족의 시간 개념과 미래중심적인 기독교적 종말개념을 대비시킨 것이 그런
예다. 시간의 체계화를 위한 발명품인 시계·달력의 역사를 조목조목 뜯어본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시계발달을
다룬 숱한 연구서 가운데 시계를 만든 근본이유를 다룬 책이 거의 없다는 지적은 신화에서 일상의 욕망으로 내달
려온 문명사의 전개양상을 절묘한 지점에서 드러낸다.
시간의 체계화로 일상과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력 욕망을 달력발명의 배경으로 끌어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힌다.
시간의 흐름을 예술가들이 어떻게 표현했는지(3장)는 1, 2장과 대칭되는 중요한 탐구대상이다.
로마신화의 제왕신 사투르누스가 자식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잡아먹는 이야기를 시간의 상징으로 해석한 로마시대
저술가들에 대한 언급은 전능한 권위로 군림한 고대 시간의 이미지를 암시한다. 뒤이어 종교예술과 바로크를 거쳐
찰나적 시간을 사랑했던 19세기 인상파, 공간과 시간의 불안정한 관계를 유추해낸 20세기 초현실·표현주의에까지
이르는 예술사의 흐름읽기는 제단에서 의식내면의 밑바닥으로 내려온 시간개념의 인간화를 보여준다.
노화 같은 생물학적 시계를 다룬 `시간의 체험'편은 자연과학과 인류학의 영역에 가깝다. 시간의 종말에 대한 생각
들을 정리한 마지막장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시간의 끝을 모든 종말로 보지않는 인류문화 공통의 특색이 종교제의
들과 가계보존에 대한 애착을 만들어냈다는 추론을 끌어낸다. 3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박물관 여행의 끝자리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인간실존에 대한 사랑이다. 저술에 나온 여러 사료와 담론들은 시간 자체에 대한 덧없는
입씨름보다 시간을 삶 속에 끌어들이는 인식과 행위의 가치가 더욱 요긴함을 웅변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달력부터
허블 망원경의 우주사진에 이르는 400여 개의 풍성한 도판들은 책의 향기를 드높이기에 충분하다.
빼어난 교양서지만 값(4만9천원)이 비싸다는 게 흠이다.
8. 시간은 인류문명의 처음과 끝 (허연기자, 매일경제신문 2000.6.3.)
어느 철학자는 시간을 발견한 것이야 말로 인류최대의 업적 이라고 말했다. 인간에게 시간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간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세상만물을 변화시 키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였다.
최근 출간된 `시간박물관(The Story of Time)'(푸른숲 펴냄)은 움 베르토 에코, 에른스트 곰브리치 등 내로라 하는
세계적인 석학 24인 이 시간을 정복하기 위해 기울였던 인간의 노력과 과정을 문화사적으 로 탐구한 책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간이 아직도 시간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한다. 인간은 1년을 정확한 날수로
나누는 것도 인간의 전 역 사를 놓고 봤을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지난 수천년 동안 믿을 만한 시계는 수탉의
울음소리뿐이었고, 농경 사회에서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을 조정하는 데 필요한 척도는 태양의 출몰과 계절의 변화뿐
이었다. 시간 개념역시 극히 미약해서 규칙적인 에배나 종소리를 통해 하루를 몇토막으로 나눈게 고작이었다.
지금도 인간은 미약하나마 얼마간의 오차가 있는 시간을 믿으며 산다. 또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이 2000년인가
2001년인가를 놓고 논쟁 을 벌이기도 한다.
에코는 시간은 언제나 불가항력적인 요소로 인간과 함께 있었다고 지적한다. 티벳에서는 길다란 막대기에 눈금을
표시하고 매일 달라지는 낮의 길 이에 따라 눈금의 간격을 다르게 표시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측정했고 남아메리카의
마야족은 태양을 기준으로 지금과 거의 비슷하게 1년을 360일로 계산해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보시기에 달의
수는 열둘이다.
알라는 천지를 창조하신 날 그렇게 정하셨다"는 코란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초승달을 기준으로 1년을 12달로 나눈
달력을 사용했다.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는 각 달마다 상징동물을 정하는 십이간지로 달력을 만들었고 달을 기준
으로 33개월마다 윤달을 집어 넣는 과학적 방법까지 동원했다.
시간이 흘러 상업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에게는 더욱 빡빡한 시 간관리가 필요하게 됐고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계의 발명이 뒤 따랐다. 처음 발명된 시계들은 대부분 해시계나 물시계, 모래시계 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정확성에는 못미쳤고 대중적으로 활용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때 발명된 것이 동력을 톱니바퀴에 전달해
톱니바퀴가 시계의 침을 옮기는 기계시계였다. 신기한 시계가 발명되자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수도원과 관청등에
대형 시계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휴대용 시계는 16세기에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시계산업은 유럽국가들에게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시계 는 장식품의 역할까지 하게됐다. 20세기 들어 전자시계가 출현하면서 시계는 신발이나
옷처럼 당연히 인간곁에 있는 생필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인간은 지나간 시간까지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 은 끝없는 탐구와 테크놀러지의 위력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이다. 이 방법으로 인간은 수천만년전의 시간이 남긴 흔 적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책으로된 하나의 `박물관'이다. 인류 역사가 시간에 관해 남긴 모든 흔적들을 망라하고
있으며 이것들을 사진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책을 번역한 김석희씨의 말처럼 `시간'이라는 창을 통해서 본 인류
문명 백서인 셈이다.
9. '시간' 통해 본 문명사 (교양, 구본형 변화관리전문가, 조선일보 2000.6.3.)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 (답) 그처럼 심오한 수수
께끼를 꼬치꼬치 파고들려는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마련하고 있었다.” 엄숙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책 「고백」
에서 시간이 가지는 미스터리에 도전하면서 인용한 유서 깊은 농담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현대의 첨단
물리학자에 이르기까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의문이 바로 ‘시간’이다.
「시간 박물관」은 인류 문명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세 번째 밀레니엄이 도래한 순간까지 전지구를 무대로 ‘시간’의
모든 요소를 여러 분야에 걸쳐 비교문화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세계 본초자오선의 기점이며 뉴 밀레니엄이 시작
되는 바로 그 지점인 영국 그리니치 왕립천문대와 국립해양박물관이 새 천 년을 맞이하여 움베르토 에코, 에른스트
곰브리치 등 전세계 석학 24인으로 하여금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달력과 시계, 주요 문명과 그 의례, 예술, 음악,
과학, 예언―에 시간이 미친 영향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남기도록 한 것이다.
문화에 따라 시간은 직선적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순환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처럼 신에 의한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되는 문화권에서는 시간의 직선적 성질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신을 인간 세계와 분리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는 시간의 순환적 성질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즉, 달의 차고
이지러짐, 낮와 밤의 연속, 계절의 변화 같은 순환적 개념이 지배적이다. 그런가하면 시간은 전혀 물리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 성경 속에서 여호수아는 “오오, 태양아 멈추어라”라고 외친다.
태양과 별들이 멈추어 섰지만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때 흐른 시간은 무엇일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의식의
시간 혹은 영혼의 확장이라고 가정한다. 후에 베르그송은 의식의 시간을 계량적 시간에 대비시켜 ‘내적 지속성’으로
규정했다. 지루하면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반면에 너무 즐거워서 한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의식의
시간을 잴 때 우리는 이처럼 비계량적인 내적 척도를 사용하게 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처럼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적 창의력은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힘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을 멈추는 또다른 방법은 ‘기억력’이다.
화려하고 진귀한 유물과 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시간 박물관」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소박한 흑백사진들.
한 독일인 부부가 아직 어린티를 못 벗은 신혼 시절부터 둘 중 하나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45년 동안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찍은 사진이다. 그것에는 하나하나 늘어가는 세간들과 궁핍을 겪고 다시 번영이 돌아오고 백발이
되어가는 평범한 인간의 시간이 포착되어 있다. 책값이 비싼 책의 서평을 쓴다는 것은 마음이 편한 일이 아니다.
사서 한 번 보고 버리는 책도 있고, 한 번 사서 평생을 뒤적거리는 책도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다행스럽게 후자에
속한다. 운동화 한 켤레를 구입하는 마음으로 사서, 태양이 깊게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날, 고양이 한 마리를
안 듯 무릎 위에 책을 얹고 뒤적이는 한가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책이다.
10. 마지막 미디어 서평 (김종락 기자, 문화일보 2000.6.7.)
"30년쯤 전, 캐나다 정부의 경제개발담당 관리가 에스키모족의 하나인 이누이트족 주민들에게 노동과 능률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 관리는 얌전히 듣고 있는 주민들에게 열변을 토하다가 어느 순간 '시간은 돈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통역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본주의적 지혜가 담긴 이 금언을 '시계는
비싸다!'고 통역했다.
이누이트 족의 언어에는 적어도 서구 산업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조직적 의미의 시간에 해당하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답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이 질문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인도, 중국 등 이른바 문명권의 주요 철학책은 물론, 마야나 아즈텍, 아프리카의 고문명에서 새천년
맞이를 하느라 소동을 벌이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등장하는 질문이다. 시간이란 말 자체가 워낙 다양하고
이질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나라나 문화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시간 개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신간 <시간 박물관>은 시간과 관련해 전개된 인간의 탐구와 측정기기, 각종 묘사와 상상력
등을 한 곳에 놓고 시간에 관한 동서고금 인류의 생각을 살핀다. 또 인간과 시간에 얽힌 다양한 견해와 함께 소재를
다룬 책의 속성상 달력과 시계, 주요 문명과 그 의례, 예술, 음악, 과학, 예언 등 시간과 관련한 각종 내용을 풍성하게
담고 있다.
책의 저자는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를 비롯, 영국 런던대학 와버그 연구소의 에른스트
곰브리치 교수, 영국 그리니치 왕립천문대의 크리스틴 리핀콧 박사 등 24인.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
을 하고 있었을까…. 그처럼 심오한 수수께끼를 심오하게 파고 들려는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마련하고 있었다."
책의 서문을 쓴 움베르토 에코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에 등장하는 이 유서깊은 우스갯소리로 글을 시작하지만,
이런 농담이 유효한 것은 오늘날의 빅뱅 이론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대폭발'이 일어나는 어느 한 순간 탄생
했고, 시간이 탄생하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를 묻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에코가 전해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에 대한 성찰을 좀 더 따라가보자. "영원 속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인데, 시간
속에서 과거의 모든 것이 미래에서 내쫓긴 듯이 없어지고, 미래의 모든 것은 과거에 뒤이어 일어나고, 과거와 미래는
둘 다 현재에서 흘러나오니 시간이란 참 묘한 현상이다. 과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다면, 과거와 미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로마의 가톨릭 교부에게서 마치 중국 선불교의 화두를 연상케 하는
시간에 대한 숙고를 발견하는 것은 책에서 느끼는 뜻밖의 재미다.
책에서는 이어 기독교의 천지창조 신화를 중심으로, 그리스와 로마, 메소포타미아, 인도, 아즈텍 등 여러 문화 속에
산재한,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견해를 각 문화의 창조신화를 통해 살펴본다. 대부분의 창조신화는 과거로
밀려났지만, 현존하는 과거의 일부로 존재하는 문화도 없지 않다. 그리고 창조신화에서 드러난 나름의 시간관이야
말로 각 문명이 인간과 우주의 운행에 대한 인식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된다.
시계와 달력 등 `시간의 측정'과 관련한 내용은 `박물학적 소재'를 통해 접근하는 책의 속성상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
하고 있는 부분이다. 문화권마다 독특한 달력과 시계를 발명했는데, 이를 촉진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책에 따르면
사람은 정확한 시계를 만들려는 원초적인 열망이 있었겠지만, 이에 대한 진정한 자극은 아마도 사회적 요구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세 문자판없이 기도시간만 알려주던 자명종이 르네상스 이후 상업과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정확한 것으로 발달해온 역사가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율리우스력이나 그레고리력 등 달력에 얽힌 정치, 사회적
함의도 눈길을 끌지만 태음력을 쓰는 이누이트족이 `캄캄한 어둠' `해를 볼 수 있다' `해가 점점 높아진다' `
미숙한 물개새끼가 태어난다' `정상적인 물개새끼가 태어난다' 등으로 각 달(月)에 붙인 명칭도 흥미롭다.
이어지는 `시간의 묘사'장에서 주로 예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썼다면 그 다음 `시간의 체험'장은 다분히 철학 및 역사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다. 책의 마지막 `시간의 종말'장에서는 지구상의 여러 문화가 시간의 종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생각들을 정리한다. 이에 대한 각 문화권의 생각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결론은 시간의 종말을 모든 것의 종말로
보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 시간이 끝난 뒤에도 무언가는 살아 남을 거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
들이니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픈 욕망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있다. 가장 손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것이다. 책은 시간의 다양한 측면, 즉 기계적
시간, 물리적 시간, 심리적 시간, 철학적 시간, 그리고 역사, 사회적으로 재구성된 시간 등을 살피면서 시간이란 인간
의 한계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개념이지만, 그럼에도 그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인간임을 상기시킨다.
스피드화로도 요약될 수 있는 현대 문명의 시간 개념에 휩쓸려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현대인이 일상에서 주체적인
시간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책의 또다른 미덕이다.
(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