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Καὶ εἶδον ἄλλο σημεῖον ἐν τῷ οὐρανῷ μέγα καὶ θαυμαστόν, ἀγγέλους ἑπτὰ ἔχοντας πληγὰς ἑπτὰ τὰς ἐσχάτας, ὅτι ἐν αὐταῖς ἐτελέσθη ὁ θυμὸς τοῦ θεοῦ.
『하늘에 크고 이상한(다우마스톤) 다른 이적(세메이온)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플래가스)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개역개정)
『또 내가 하늘에 있는 크고 놀라운 다른 이적을 보니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졌더라.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들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무대는 하늘이다. 단수의 하늘이므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단수의 하늘에서도 관사가 없으면, 눈으로 보는 하늘이고, 정관사가 있으면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복수의 하늘은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다우마스톤(θαυμαστόν)은 놀라운 이라는 의미다. 세메이온은 표적을 의미한다. 표적은 어떤 싸인(메시지)을 의미한다. 이적은 기적을 의미한다. 일곱 천사가 가진 일곱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끝이 나는 것을 말해준다. 천사는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이다. 그래서 재앙(플래게)은 복음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래가스(πληγὰς 기본형은 플레게 4128)는 편평하게 때리다 라는 의미다. 빚다, 주물을 만들다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서에서는 이 개념을 야차르라고 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와이차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와이체르(기본형:야차르)라는 동사가 등장한다. 야차르가 토기를 진흙으로 빚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재앙이란 한 성도의 경우 옛사람이 부숴지고(재앙)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애굽 재앙은 열가지가 등장하는데, 애굽 땅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빚어내기 위한 재앙이라는 것이다. 마탄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도 일곱 재앙으로 나타난다. 세상에 살고 있는 존재들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기 위한 재앙인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의 속성에 대한 죽음을 의미한다. 일곱 쟁앙은 재앙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이루기 위함이다. 옛성전이 파괴되고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이 구원의 복음이다.
일곱 심판 이야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첫째는 숫자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다. 하나님의 심판이 일곱이라는 숫자로 통일성을 가지는데, 이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완전수로서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함을 의미하며, 일곱 개의 심판 중 처음 네 개는 통일성을 가지는데, 이는 4라는 숫자가 심판의 대상인 피조물 전체임을 의미하기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출애굽 열가지 재앙의 배경이 되는 출애굽 사건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즉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에 담긴 심판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우박, 불, 피로 변함, 쓴물, 어둠, 황충, 독종, 개구리의 등장과 같은 출애굽 열가지 재앙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심판의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다. 일곱 인에 담긴 심판에서는 그 심판이 피조물의 1/4에게 임하는데, 일곱 나팔에 담긴 심판에서는 피조물의 1/3에게 임하며, 일곱 대접에 담김 심판에서는 심판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일곱 심판 이야기는 결국 성도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타스 에스카타스(τὰς ἐσχάτας 기본형은 에스카토)는 종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세상 끝의 종말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무나짐을 의미하고, 나아가 성도의 심령 속에 옛성전(예사람)의 무너짐을 의미한다. 종말에는 성도가 성전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ἐτελέσθη ὁ θυμὸς τοῦ θεοῦ』에테레스데(ἐτελέσθη 기본형은 텔레오)는 성취하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구원의 열정은 성취된다 라는 말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지성소)이기 때문이다.
2. Καὶ εἶδον ὡς θάλασσαν ὑαλίνην μεμιγμένην πυρὶ καὶ τοὺς νικῶντας ἐκ τοῦ θηρίου καὶ ἐκ τῆς εἰκόνος αὐτοῦ καὶ ἐκ τοῦ ἀριθμοῦ τοῦ ὀνόματος αὐτοῦ ἑστῶτας ἐπὶ τὴν θάλασσαν τὴν ὑαλίνην ἔχοντας κιθάρας τοῦ θεοῦ.
『또 내가 보니 불(퓌리)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개역개정)
『또 내가 보니 불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는데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서서』(헬라어 번역성경)
퓌리(πυρὶ)는 성령의 불로서 심판을 상징한다. 유리바다(달라싼 θάλασσαν 휘아리넨 ὑαλίνην)는 투명한 바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보좌를(하나님 나라)의미한다. 궁창 위의 물에 해당된다. 세상 바다는 궁창 아래 물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4장 6절에서『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출애굽기 24장 10절에서『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에스겔 1장 26절에서『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청옥, 남보석, 둘다 푸른 색으로 표현했다. 요한계시록 4장 6절에서는 수정 같은 유리바다에서 15장 1절에서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로 전환되었다. 16장에서 심판이 곧 시행되므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표현되었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는 출애굽에 있어서 홍해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물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을 한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는『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에이스)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즉 죄에 대해서 죽은 자(물세례받은 자)는 육체로부터 비롯된 혼(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이게 불과 성령세례이며, 그 결과 혼의 부활이 된다. 에이스는 합하기 라는 의미보다 ~안으로 들어가는 의미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홍해를 건넌 자들은 출애굽의 기쁨을 건넌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홍해를 건넌 후에 출애굽기 15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부활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들을『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용)을 의미하며, 우상은 짐승의 우상이다. 이름은 짐승의 이름(육육육)이다. 그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찬양을 하는 모습이다. 에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성도들이 죄에 대해서 죽고혼에 대해서 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먼저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συνταφέντες αὐτῷ ἐν τῷ βαπτισμῷ, ἐν ᾧ καὶ συνηγέρθητε διὰ τῆς πίστεως τῆς ἐνεργείας τοῦ θεοῦ τοῦ ἐγείραντος αὐτὸν ἐκ νεκρῶν·
토 밮티스모(τῷ βαπτισμῷ)는 성령세례를 의미한다. 세례는 두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결과로서 인정하는 의식이다. 하나는 육의 몸(옛혼)이 죽고, 다른 하나는 영의 몸(새로운 혼)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디아 διὰ)』 번역은 잘못되었다. 디아는 통하여 라는 말로서,『하나님의 효력있는 능력의 믿음을 통하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고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낸다. 그 일하심이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십자가의 사역과 성부 하나님께서 부활시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