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페이스북에 그동안 차마 내놓지못했던 학생과의 작별의 편지를 올렸습니다. 눈물을 지우며 글을 고치고 두 손을 끌어안으며 글을 마쳤습니다. 저를 치료하는 솔직한 고백이 우리 모두를(효천중 학생들) 위로하고 치료하는 속삭임이기를 기원합니다. 부디!
사랑하는 벗들, 형제들이여~.
작년 7월18일, 여름방학을 맞아 여러분과 헤어졌으니, 어느덧 13개월 보름이 되었네요.
중학교에 입학한 여러분을 교실에서 맞아 인사하고 함께 도덕공부를 나누었으나 어쩌지 못한 사연으로 제대로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채 여러분과 헤어졌네요.
2018년 함께 했던 중1, 여러분이 배움에 대한 열의와 지순한 마음으로 다가왔을때, 삶을 성찰하고 인간관계의 이치를 탐구하자며 알듯 모를듯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시작되었지요. 2학기 자유학기제로 도덕수업은 반쪽이 되고, 중2병을 앓았을 2학년 1학기는 넉넉한 소통이 쉽지 않았지만 인권과 성평등, 평화적 갈등해결, 폭력 등을 이야기하며 2학기를 기약하고 한학기 마무리 인사를 하며 여러분과 헤어졌지요.
그리고 우리의 만남은 끊겼어요. 방학 1주일전 무엇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불미스런 신고 소식을 들었고 어쩌면 여러분과 만남이 송두리째 부정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지닌 채 여름방학을 잘보내라며 방학인사를 하였지요.
1989년 교직에 들어와서 여러분을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30년동안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제자들과 함께 한 교실을 빼앗긴 것은 단 두 번의 기억이며, 내 스스로가 푸르고 젊기만 했던 그때와 달리 작년 여러분과 헤어지고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는 지금의 사연은 내게 훨씬 아픈 기억으로, 여러분을 향하는 그리움과 미안함이 30년전보다 훨씬 무겁게 저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먼저 작년 2학기 여러분의 교실에 다가가지 못했던 미안함을 고백합니다. 교실수업의 갈등과 오해였기에 여러분과 얼굴을 맞대고 해명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더욱 깊어지는 수업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학교는 결국 교육청으로부터 시작하는 커다란 제도이고, 규칙과 명령으로 움직여지는 시스템이기에 나는 학교에서 더 이상 나를 해명할 수 없었고, 여러분에게 사실을 확인해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시교육청을 상대로 저의 수업에 성범죄가 없었음을 밝혀달라 요청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범죄라며 신고된 교사들이 오랜 기간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도 여러분과 결별해야하는 상황을 할 수만 있다면 2학기 첫날에라도 여러분에게 직접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웠습니다. 그러한 인사는 여러분에게 어리석은 어른들의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더더욱 두려웠던 것은 그러한 작별인사가 여러분끼리의 갈등과 반목을 불러 일으키는 불씨가 되어질 것에 대한 염려였습니다.
마음을 접었습니다. 우리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스쳤지만, 카톡이나 페북으로 '왜 안오느냐고? ', '언제 오시냐?'는 궁금한 질문들이 다가오고 스쳤지만 무거운 마음을 감추고 또 가슴 깊숙히 접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도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어쩌면 알았을 것입니다. 단지 침묵으로, 그리고 다시 여러분의 침묵을 요청했던 13개월의 시간들이 정말이지 미안하고 죄송합니다.혹시는 여러분 중 누군가 제게 미안하다고도 했지만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탓이 아니며, 함께 하는 친구들의 탓도 물론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어리석은 어른들의 탓이며,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미안함입니다. 갈등과 오해, 미숙함을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피부의 상처를 치료한답시고 생살을 찢고 뜯어내며 더 큰 고통을 마취했던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며, 우리 교육자들이 돌아보며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정말이지 여러분에게 사과드립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혹시는 서로를 의심하게 하며, 어른들의 세상사를 냉소하게 했던 것들에 대해 정말이지 저 역시 뭐라 입을 열기 어렵습니다. 죄송한 심정을 마음 깊이 고백합니다. 어른들의 불합리한 정의까지 여러분의 현실이 되게 하고 그것에 대해 침묵하며 '가만히 있으라.' 했습니다. 일체의 질문을 봉했던 그 시간들에 대해 정말이지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여러분의 용서를 구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무려 13개월이 지나 사법기관은 저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늦었지만 광주시교육청이 효천중학교 배움터를 위해 현명한 마무리를 할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13개월전에 여러분과 만나 해명하고 이해를 구했을 이야기들은 아무 것도 펼쳐지지 않은 채로 제가 여러분에게 가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엄중한 코로나 시국으로 학교의 문은 닫혀 있고 그 가운데 저는 9월1일자로 지역의 다른 학교로 인사발령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과 마음을 열고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있기를 그려봅니다.
학교는 작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여러분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세상의 무수하고 다양한 시민들을 대표합니다. 그곳은 숱한 차이로 갈등의 씨앗들을 반복하여 잉태하지만 공감과 배려, 소통으로 정의로운 시민지성을 체험하는 아름다운 창조의 산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믿음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의지요, 우리 자신의 결단이며 작은 목소리를 수많은 울림으로 키워가는 여러분의 노력입니다.제가 기억하는 아픔과 그리움이 여러분의 기억 가운데서는 상처와 냉소, 패배의 기억으로 남지않기를 염치불구하고 당부합니다.
13개월의 찝찝한 기억을 시원스레 정리하고 나누는 만남이 아직 우리에게 주어진 바 없으나 여러분을 향해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불편한 13개월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이 역시 우리에게 귀한 교훈으로 기억되고, 미래를 헤쳐가는 더욱 단단한 시민지성의 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두 손 모아 되뇌이는 저의 기도입니다.
끝으로 미안함만큼이나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이 작지 않음을 전합니다.
2018년 학교축제때 당시 1-1반 친구들이 비틀즈의 렛잇비를 개사하여 부르면서 도덕시간을 '인생공부, 인생공부'라고 반복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무겁고 진지했을 도덕선생의 부족하고 미숙함을 참아주며 이해했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미흡한 교사를 그래도 응원하고 신뢰해준 여러분께 그리움의 눈물로 쉽지않은 작별인사를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2019. 9. 2.
아름다운 만남은 다시 이어진다는 진실을 떠올리며
부끄러운 교사 배이상헌이 남깁니다.
(아래 사진은 효천중학교 개교시에 제가 담당하여 학생,학부모,선생님들과 여러차례 의논으로 만든 학교 교훈 사진입니다. 덧붙여 부탁드립니다. 학생들에게 남긴 이야기이니 댓글에 어른들의 아픈 이야기일랑 남기지않았으면 합니다. 혹여 제가 숨기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용서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