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에서 배우는 성공비결 108가지】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보현보살은 선재동자에게 부처님의 공덕은 모든 한 세대가 다 가도록 말해도 그 공덕을 다 말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고 하셨다.
보현보살은 공덕 세계에 들어가지 전에 익혀야 할 중요한 열 가지 행원(行願)을 말씀하셨다. 보현보살은 열 가지 행원을 닦아나가면 세상의 모든 일은 쉽게 풀린다고 하였다.
열 가지 행원이란 일체 부처님을 공경하고 예배하며(禮敬諸佛),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고 칭찬하며(稱讚如來), 부처님께 널리 공양하고(廣修供養), 업장을 참회하며(懺悔業障), 다른 이들의 공덕을 같이 기뻐하고 따르며(隨喜功德), 법문을 청하며(請轉法輪), 부처님이 오래 이 세상에 머무르시기를 청하며(請佛主世), 언제나 부처님의 모든 것을 따라 배우며(常隨佛學), 언제나 중생의 뜻을 따라주며(隨順衆生), 지금까지의 모든 공덕을 일체 중생에게 되돌리는 것(普皆回向)이다.
나폴레옹(1769~1821)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라는 공덕 행원을 지켜 성공했지만, 욕망의 교만 때문에 망하였다. 나폴레옹은 지중해의 프랑스령 코르시카 섬에서 자산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코르시카 독립운동 투사였다가 실패하여 프랑스로 귀화하였고, 나폴레옹은 신분상승을 위해 가출하여 프랑스 사관학교에 들어갔으나 키가 작고 코르시카에서 온 촌놈이라고 괄시를 받았다. 그는 사관학교에서 왕따였다. 강의실 구석에 앉아 입술을 수천 번 깨물며 복수를 다짐하였다.
그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 장교가 되었으나 5척 단신의 작은 체구 때문에 늘 부하들과 동료 장교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두고 보자. 머잖아 작은 체구의 내가 세상을 지배할 날이 있을 것이다.’ 라는 포부를 가졌다. 그는 대단한 야심가였다. 그런데 운좋게 젊은 장교시절에 프랑스혁명을 맞게 되었다. 그는 톨롱반도 진압에서 공을 세워 혁명군의 자코뱅당에 가입하였다. 천운의 기회였다. 운좋게 호기를 포착한 그는 혁명군에서 두각을 발휘하였다. 자코뱅당의 세력을 업은 그는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혁명군인 자코뱅당이 몰락하자 불운이 찾아왔다. 나폴레옹은 와신상담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1795년 10월 왕당파의 반란을 진압하여 공을 세워 일확 명성을 떨쳤고, 참정에 관계하여 세력을 키웠다. 차츰 그 명성이 높아지자 혁명정부의 중책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공덕이 회향으로 돌아오는 시기였다. 그는 정략적으로 연상의 왕족인 조세핀과 결혼하여 이탈리아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가서 승전한다. 다시 1797년 오스트리아를 제압하여 10월 캄포포르미오 조약을 체결하고 오스트리아를 프랑스 속국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1798년에는 ‘부르메르 18일’ 의 쿠데타를 감행하여 총재 정부를 타도하고 무력으로 집정관이 된다. 1802년엔 종신 총통에 임명되었고, 1804년 황제가 되었다. 1805년 대불 동맹을 만들어 주변국인 러시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폴란드를 정복하여 프랑스 대제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영국과의 전쟁 그리고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그는 작위를 박탈당하고 전쟁 도발자로 낙인찍혀 엘바 섬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유배지인 엘바 섬을 탈출하여 백일천하를 만들려다가 다시 실패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 가서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작은 거인인 그가 프랑스와 유럽을 정복한 황제가 된 것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키가 작다는 콤플렉스를 의지의 힘으로 이겨낸 입지적 인물이었다. 상상만 해도 엄청난 개가였다. 감히 프랑스가 유럽을 정복한 역사를 만든 것이다. 그는 사전에서 불가능이라는 말을 지워버렸다.
-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