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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하는 사람들 (고린도후서 4:7-15)
1. 이지선이라는 아가씨가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썼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 때인 2000년 7월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다가 21살의 나이에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전신 55%에 3도의 화상을 입고 40번 가까이 수술을 받았습니다. 손가락은 모두 녹아졌고 겨우 엄지손가락만 남았습니다.
그를 보는 사람마다 “어떻게 살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 소리가 듣기 싫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말을 다른 말로 바꾸었습니다.
“살맛 난다. 백 번 살맛 난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의미에서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우연히 홈페이지에 “공부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는데 그것이 기회가 되어서 미국에 어학연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미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면서, 토플을 공부하고 GRE를 공부해서 보스턴 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고, 드디어 UCLA에서 지난 해에 사회복지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올해부터 한동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인터뷰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냐고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대단해서 해낸 것이 아닙니다. 저도 해냈으니 누구든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지난해 힐링 캠프에 나와서 사회자인 이경규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순간 순간이 행복합니다. 숨 쉬고 있는 것부터 감사합니다.”
찌그러진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순간 TV를 시청하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었을 것입니다.
2. 믿음으로 말하는 것은 말할 수 없거나, 말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에 담대한 것입니다. 믿음은 말을 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월남 전쟁에서 미국이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월남사람이든 월맹사람이든 그들은 호치민을 존경하였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국민들은 호치민을 호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그리고 죽을 때에도 입은 옷 한 벌만 남겼습니다.
전쟁 중에도 호치민의 생일이 되면, 호치민이 북쪽의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쪽 국민들이 가게문을 닫고 호치민의 생일을 기념할 정도였습니다.
호치민에게는 <3꿍>이라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것은 <꿍아, 꿍안, 꿍땀>입니다. “꿍아는 함께 산다, 꿍안은 함께 먹는다, 꿍땀은 함께 일한다”입니다. (live together, eat together, work together)
그는 그렇게 믿었기에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였기에 모든 베트남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베트남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말할 때, 자신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3. 다니엘의 3명의 친구들은 금으로 만든 왕의 신상에 절을 하지 않음으로 불타는 풀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좋아하는 느부갓네살 왕이 찾아와서 그들을 회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느브갓네살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들은 믿음으로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 그렇게 말을 하게 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믿음 속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권력자들이 이렇게 겁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는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 한 순간만 말하지 않고 넘어갔으면 공회원들을 화나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결코 사람의 말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 속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 속에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은 살아 있는 것이고 믿음으로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 속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인 것입니다.
4. 믿음이 있으면 믿음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믿음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빛이 있으면 빛이 빛나게 마련인 것과 같습니다.
오늘 성경은 믿음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믿음을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있는 보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보물은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이 보물이 있음으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것입니다.
시편 129편 1-2절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려 나갈 때마다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어릴 때부터 괴롭힘을 당하였다는 말은 인생의 고통이 어렸을 적부터 계속되었다는 말입니다. 또 어렸을 적의 안 좋은 경험들이 우리를 괴롭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를 이기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적부터 하나님을 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해야 악에게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해야 사탄이 침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으며, 거꾸러트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보배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 안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6. 오늘 성경 말씀은 믿음에 관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이 있다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는 중요한 두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Jesus life also may be seen in our bodies) 예수의 생명이 내 몸에 나타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예수의 이름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To have belief is to be Jesus life) 그래서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이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있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예수님의 부활을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의 생명이 어떻게 우리 속에 생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이라고 하였습니다. 짊어진다는 말은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옮겨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무엇인가요?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마음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의 죄로 인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누구도 나의 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만이 죄를 씻어줍니다. 죄를 가려줍니다. 죄를 덮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고마워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바로 예수의 생명이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속에 있기에 <새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7. 둘째로 믿음은 가만히 있지 않고 믿음으로 말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것이지요. 믿음이 있기에 믿음으로 말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1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믿었으므로 말한다”는 구절이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I spoke because I believed. We also speak because we believe)
하나는 구약 시편 116편 10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다윗의 노래입니다.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일지라도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고통을 말하는 그 순간에도 구원하여 주실 분은 하나님이라고 믿었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믿음이 없이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통을 당한다고 말을 한다고 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말을 하는 것은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의 소리를 듣고자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의 말을 들으시고,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그 믿음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8. 사람이 말을 하는 데는 묘한 이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말한 대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하면 그 말이 나를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도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은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팔자가 왜 이 모양이야”라고 하면,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팔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전하려 하지도 않고, 믿음으로 이기려고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기를 “저 사람은 과거가 안 좋은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긍정적인 말이나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의 말을 하는 그 순간에 믿음이 속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말하는 믿음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을 하는 것은 내 주변 여건을 하나님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에 믿음의 말을 하므로, 내가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고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믿음의 말이 연약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한번 실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속상한 경우나, 괴로운 경우에 믿음의 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한 믿음의 말이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9. <피톤치드 효과 phytoncide effect>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산에서 느끼는 놀라운 효과를 말합니다.
산에 가면 누구나 상쾌한 기분을 느낍니다. 이 느낌은 단순히 산속에 왔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산속의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라는 특수 물질의 효과 때문입니다.
피톤치드는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고, 상처를 통하여 침입하는 병균을 막기 위하여 방출하는 휘발성 물질입니다. 피톤치드는 식물성 소독제라고 할 수 있으며 삼림욕의 치료약입니다.
산속의 나무들이 자연 본래의 상태에서 방출하는 피톤치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테라핀입니다. 소나무, 잣나무, 측백나무 같은 침엽수의 잎을 비비면 맡을 수 있는 상큼한 향기가 바로 테라핀입니다.
산속의 수많은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인체에 부담을 부는 항생제와는 달리 인체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식물성 천연물질입니다. 인체에 침입하는 병균을 죽이고, 피부의 염증을 방지하고, 소염 작용, 소독 작용, 정신피로 해소능력이 있습니다.
산림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침엽수가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보내고, 시간상으로는 오전에, 지형적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산 중턱이라고 합니다.
산속에서 이리저리 걷고 등산하며 보내는 것이 삼림욕입니다. 삼림욕은 그린샤워(green shower)라고 합니다. 그린샤워란 산속을 거닐며 인체에 직접적으로 유익한 피톤치드를 마시고, 정신과 몸이 안정되고 건강하게 되는 자연 건강법을 말합니다.
10. 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가 자연이 주는 치유약이라면, 믿음의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의 말이 또한 영혼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치료약인 것입니다.
에스겔서 47장 12절에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로 자란 나무의 잎사귀가 약 재료가 되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나무의 잎사귀가 약재료가 되는 것처럼,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믿음의 말이 세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운을 내 보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므로 내 영혼도 살아있게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영혼에도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알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에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 믿음으로 항상 말씀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의 마지막 구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말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