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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무게
이 홍사
꿈이었다.
생시같이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잠결에도 이건 꿈이야, 꿈! 이라고 하면서도 그는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꿈속에서 그는 난데없이 포클레인 기사가 되어 옛날에 살던 집을 마구 부수었다. 그 집은 바로 그가 나서 자란 고향집이다. 방안에는 가구와 살림살이가 들어있는데 기와지붕을 포클레인으로 내려 앉히고 대들보와 서까래를 마구 부수는 꿈이었다. 부서진 기왓장과 먼지가 풀풀 내려 앉아 가구와 살림살이 위에 떨어져 쌓이고 있었다. 꿈은 언제나 논리적이지 못하지만 왜 집을 부수고 있는지 그도 모르고 그저 집을 내려 앉히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그의 아버지가 고함을 질렀다. 젊었을 때의 무게가 실린 정정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포클레인 조종석으로 뛰어 올라와 그렇게 집을 부수고 있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에 멱살이 잡힌 채 완강하게 버티다가 결국은 떨어졌는데 포클레인 밖은 이상하게 천길만길 낭떠러지였다. 그는 갑자기 생긴 낭떠러지로 아버지를 껴안고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 추락은 끝이 없었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끝없이 낭떠러지로 빨려 들어가다가 벌떡 깨었다.
이마에는 진땀이 배어 있었다. 깨어보니 낭떠러지가 아니라 그의 방이었다. 불도 끄지 않고 술기운에 잠이 든 모양이다. 꿈치고는 참 요상한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열한 시가 좀 넘었다. 그는 오늘도 거리를 헤매다가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씻지도 않고 누웠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겨우 한 시간을 자다가 악몽에 잠이 깨었다. 거실로 나와 아버지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바람만 가득한 빈 방이었다. 식도염을 심하게 앓고 있는 아내는 딸아이 방에서 자고 있다. 가냘픈 고양이 신음을 내며 곯아떨어졌다. 거실에도 불이 켜져 집안은 환하다. 거실의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와 앉아 담배를 빼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요상한 꿈을 짚어보니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생각하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오늘도 아버지 생각에 밤을 꼬박 세워야할 것 만 같았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낼까? 누구의 손에 이끌려 어디 무의탁 요양시설에라도 들어가 있으면 좋으련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그런 행운을 간절히 빌었다.
이 시대의 아버지란 존재는 무엇인가? 식구들의 밥을 만드는 견고한 기계? 그러나 경제력에 힘줄이 풀리면 그 기계도 낡은 고철덩이가 되어 세상의 뒷전에 방치된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도 그렇게 퇴물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니 견디기 힘들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먹을 쥐는 것은 그의 버릇이다. 결국은 요양시설이나 그 형편도 안 되면 갖다버려야 할 존재로 퇴락하는 것이 이 시대의 아버지다. 중절모를 쓰고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헛기침으로 집안을 군림하던 가부장의 시대는 핵가족 시대 앞에서 꼬리를 바짝 내리고 경제력의 뒤안길에 내몰린 아버지란 위치는 빨지 않은 걸레짝이나 고장 난 기계로 추락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아버지의 위상이나 무게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힘줄이 풀리면 아버지란 존재는 폐기처분해야 할 대상으로 가벼워진다.
실제로 일이 그렇게 되었다. 그는 분명 아버지를 이 시대의 고물상에 내다버렸다. 그는 자신이 가벼워진 아버지를 내다 버린 것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가 아버지를 차에 태워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에 갔었다는 사실을. 대전에 사는 하나뿐인 혈육, 여동생 숙경이와 정서방은 매일 전화를 한다. 어쩌다가 와서 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코를 싸쥐고 손끝도 까딱하지 않던 년이 아버지가 사라지자 세상에 없는 효녀로 변해 매일 전화질을 해댄다. 아버지를 찾았냐고, 어디에서 무슨 소식이 없느냐고? 매몰차게 묻지만 매번 대답은 ‘아직.......’ 이다. 도움이 안 되는 그 년의 전화가 올까봐 이젠 두렵기까지 하다.
보름이 넘었다. 생각 없이 나선 길이고 일을 그렇게 잘못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를 내다버린 곳에 몇 번이고 가보았다. 갈 때마다 아버지가 그곳에 앉아 기다릴 것 같았지만 늘 빈자리였다. 숙경이와 정서방은 아버지가 바람 쐬러 나갔다가 집을 찾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의 짧은 소갈머리가 아버지를 내다버린 것이라 자책하며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아버지를 내다버린 지 사흘 후에야 전단지를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돌리고 전봇대와 아버지를 내다버린 공원에 서있는 나무와 화장실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곤 했다. 전단지에는 아버지의 사진과 특이사항 그리고 그의 연락처와 제보를 주시는 분에게 후사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서에도 실종신고를 했다. 신고를 접수받는 경찰은 애비가 없는 놈인지 매우 사무적이었다. 사무적인 표정을 넘어서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이런 신고는 한 달에 수십 건을 받지만 찾았다고 오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제 발로 뛰면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특히나 치매현상을 보이면 찾기가 더 어렵다는 건 알고 계시죠? 실종된 자가 찾아올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더 어렵구요.
-아, 예! 그렇겠지요.
경찰은 그가 아버지를 내다버린 사실을 알아채고 하는 말 같아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 되어 말까지 더듬었다. 실종신고는 했지만 경찰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가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명퇴를 하던 날부터 아버지가 치매를 보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우연의 일치다. 명퇴를 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가 치매를 앓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명퇴는 참으로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날은 개기일식이 있는 날이었다. 60년 만에 가장 짙게 달이 해를 가리는 개기일식이었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자 세상이 컴컴할 정도로 달이 해를 가렸다. 어둠에 달이 해를 가리는 현상을 보며 신기해하고 우주의 현상에 대해서 삼삼오오 앉아서 저마다 지닌 우주현상에 대한 잡학을 입으로 풀어가고 있을 때 구조조정이 발표되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노닥거리던 사원들의 화제는 급격하게 개기일식에서 구조조정으로 바뀌었다. 암암리에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얘기가 사내에 돌았지만 생산직에 있던 그가 그렇게 쉽게 지목될 줄은 전혀 예측도 못했다. 그가 명퇴 대상으로 지목되었다는 말에 개기일식을 당하는 지구처럼 어두컴컴한 가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나이는 있지만 그는 생산직이었고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우량 레벨이 마빡에 붙은 사원이었다. 회사에서도 그 점을 인정한다. 이십칠 년을 다니던 회사였지만 단칼에, 아무른 통보도 없이 목이 날아갔다. 원가절감이라는 꼬리표를 이유로 달고 그가 조장으로 있던 공정의 라인이 다른 라인과 합병되면서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날 아내가 더 아프다고 전화가 왔지만 집으로 바로 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명퇴를 당해서 일찍 못 들어간다고 자랑스럽게 늘어놓을 입장도 아니었다. 명퇴를 당한 생산직 여섯 명이서 낮술부터 시작해서 잔뜩 마시고 취했다. 혼자 당한 게 아니라 여섯 명이서 같이 당했으니 노동부로 가서 무슨 수를 찾아보자는 의견도 분분했고 실업급여 얘기도 나왔다. 멀건 대낮에 그렇게 여섯 명이서 술좌석에 둘러앉으니 명퇴자의 비애가 아니라 잔칫집 기분이 들었고 비로소 돈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그깟 회사 아니면 밥 빌어먹을 데가 없겠냐고 큰소리치며 만용을 부렸다. 잔뜩 취해 열 시가 넘어서 집으로 들어오니 아버지가 누구시냐고 아주 정중하게 그에게 물었다.
-누구시죠? 얘 어멈아! 손님 오셨다.
매일 보던 아들인데,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뒤통수를 맞고 오니 아버지가 이마빡을 내리친 것이었다. 내리막에 가속도가 붙으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집안은 내리막을 타고 있었다. 일흔일곱, 치매현상을 보이기에는 이른 나이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그 동안 너무 건강했었다. 그런데 치매현상은 전조증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다음날부터 아버지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명퇴를 당한 그는 집안의 기둥이기에 일거리를 찾아야했지만 아내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아버지의 시중을 들 수가 없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버지 옆에만 가면 비위가 상해 헛구역질을 하고 억지로 조금 먹은 것을 토해버리는 고약한 병이었다. 아버지의 시중은 고스란히 그의 몫으로 굳어졌다. 어쩌면 회사에서 아버지의 시중을 들라고 명퇴를 때맞추어 시킨 것 같았다.
일 년을 놀면서 아버지의 치매와 씨름하고 나니 집안에 쌀이 떨어졌다. 그는 대학에 들어간 아들 경수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미경이의 학비가 숙제처럼 여겨졌다. 궁리 끝에 지난 학기를 마치고 경수를 군에 보냈다. 녀석은 눈치가 있어서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군에 보내기는 했지만 수입이 전혀 없는 집안의 앞날이 막막했다. 전혀 숨통이 트일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일 년 넘게 손을 놓고 앉아 아내를 세 번이나 입원시키고 나니 집안은 기울대로 기울었다. 어쩔 수 없이 살던 아파트를 팔고 외풍이 심한 단독주택 이층에 전세로 내려앉았다. 일 년이 넘게 세가 나가지 않아 구석구석 곰팡이가 터를 잡은 집이었지만 집주인은 치매든 노인이 있는 것을 알고 전세 주기를 꺼려했다. 심사가 뒤틀렸지만 방이 세 칸짜리라 사정사정하여 집은 얻었다. 이젠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때 같이 실직당한 동료중의 하나가 재취업한 정밀회사 경비자리를 소개시켜 주었다. 하루 여덟 시간 삼교대로 근무하는 자리지만 이 나이에 그게 어디냐? 구미가 당겼지만 아버지 때문에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아니,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자꾸만 병이 깊어가는 아내 때문이라 해야겠다. 아내가 아버지를 맡아주면 좋으련만 아내에게 아버지를 맡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종일 정신이 방전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 꼴이 되어서 너희들을 고생 시키는구나. 빨리 죽으면 좋을 터인데.......
간간히 한 번씩 정신이 돌아오면 마땅히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그런 소릴 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치매가 도지면 옷을 갈아입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한번 입으면 언제나 그 옷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꼬질꼬질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옷을 갈아입히려고 어쩌다가 아내가 들어가면 당신 며느리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려 들고 심지어 사타구니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다. 아내는 기겁을 하고 옷을 갈아입히려다 방을 차고 나오고, 그의 손으로 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힐 수밖에 없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나면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그 옷을 마구 쥐어뜯는 것이다. 정신이 들었나 싶으면 그게 아니고 치매란 참으로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떤 날은 정신이 멀쩡한 것 같은데 아내의 장롱을 뒤져서 아내의 속옷을 몽땅 꺼내 욕조에 담가 두는 날도 있었고 아내의 팬티를 뒤집어 모자처럼 쓰고 마당을 거니는 날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래층 주인집의 마당에 늘어놓은 빨래 중에서 속옷만 골라다가 아버지의 방으로 가져가서 쥐어뜯는 일도 종종 있었다. 주인댁 아주머니가 그야말로 방방 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가 죄인이 되어 사죄를 해야 했다. 무게를 읽은 아버지의 치매는 하필이면 속옷 집착증이었다. 아버지가 벌이는 일은 예측이 불가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는 아버지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달아보았다. 아버지의 무게에 대해서.
아버지에겐 이제 무게가 없다. 사실이지 체면이고 명예고 존재가치에 대한 무게마저도 없었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아버지가 이젠 조용히, 깨끗하게 죽어주시면 좋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보내기로 맘을 먹고 아내와 상의 끝에 요양병원 여기저기를 알아보았다. 사실 이 시대의 고려장이나 다름없는 시설인 것 같아 그가 고개를 돌리고 애써 외면하고 있던 곳이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갇혀 마음을 먹고 찾아보니 고려장이 아닌 사설요양병원은 너무 비쌌다. 그가 경비로 근무한다면 받는 월급 전액을 털어 넣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다른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가 아버지를 부담 없이 보낼 수 있는 곳은 무의탁노인요양시설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직계가족이 버젓이 있으니 병원마다 자격이 안 된다는 일관된 대답만 귀가 닳도록 들었다. 세상살이가 실로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를 무의탁 노인으로 만들려면 그가 죽든가 아니면 아버지 주민등록을 독거노인으로 되게끔 따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에 관한 배려는 정부나 사회단체 어느 곳에도 없었다. 완전 사각지역에 갇힌 것만 같았다.
-씨부랄.......
노인복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그렇게 욕설을 뱉는 사이, 자정이 넘어서고 있다. 그는 괜히 휴대폰을 눌러 혹시라도 부재중 전화가 온 데 없는지 또 확인을 했다.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요상한 꿈은 너무나 생생했고, 오늘 밤도 어제처럼 홀딱 밝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는 매일 밤 아버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 속에서 웅크리고 잤다. 편안한 잠이 결코 아니었다. 오늘도 빨리 자고 내일 또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싶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아내의 신음소리만 빼면 집안은 정물처럼 고요하다. 그는 그 고요함을 박차고 일어나 냉장고를 뒤졌다. 냉장고를 뒤져 어제 마시다가 둔 반병의 소주를 꺼내고 김치접시를 꺼내 방으로 가져왔다. 잔도 없이 벌컥벌컥 소주를 서너 모금 마셨다.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알코올 성분이 짜릿하게 그의 내장을 전율시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짜릿함 속에 아우성치는 무엇이 있었다. 분노, 좌절, 비애, 절망, 그 어떤 이름을 붙여도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는 아버지의 무게를 호명하며 천천히 김치 한 조각을 손으로 찢어 안주 삼았다. 초저녁에 마신 술기운은 말짱하게 날아간 상태였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담배를 또 꺼내 물었다. 아내가 담배연기를 죽도록 싫어했기 때문에 창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는 게 습관화되었다. 어쩌다가 창을 열지 않고 담배연기를 방안에 채워놓으면 아내는 기겁을 한다.
-작은방에는 똥구린내가 나고 큰방에는 담배연기 때문에 숨조차 쉴 수가 없으니 이게 집이냐고, 담뱃값도 못하는 주제에.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하소연을 마구 뱉어낸다. 가급적이면 마당으로 이용하는 옥상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지만 아내는 담배연기 때문이라며 딸애의 방에서 잔다. 담배연기 때문이 아니라 정이 떨어진 것이라는 걸 그는 안다. 그는 반쯤 피우던 담배를 끄고 나머지 소주를 병나발을 불어 마셨다. 그리고 김치 한 조각을 씹으며 아버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환갑이 넘어 철이 들었다.
어머니가 죽고 나자 철이 든 것이다. 아버지는 환갑까지 아버지의 손으로는 단 한 푼도 벌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농토를 잠식하듯이 야금야금 팔아 생활했다. 그 동안 농사는 지었다고 하나 모두가 남의 손을 빌려 세경을 주고 지었으며 삽자루 한 번 쥐지 않았고 쟁기를 한 번 잡은 적이 없었다. 남의 손을 빌려 논을 갈고 밭을 매는 동안 아버지는 강둑에 서서 강으로 날아드는 철새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강둑에 앉은 한 마리 왜가리처럼 보였다. 그 한 마리의 왜가리가 어머니가 죽고 나자 철이 든 것이다. 농사일을 나가면서도 복장은 절대 농사일 나가는 옷이 아니라 장에 나들이 가는 옷을 입고 다니던 철새가 짝을 잃자 제가 날아야 할 계절을 인식했다고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아버지는 그랬다. 밭일을 나가도 옷은 작업복이 아니라 외출복이었다. 심지어 중절모에 백구두를 신고 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남에게 일만 시켜놓고 면소에 들렀다가 다방으로 외출을 하는 날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덕분에 그의 유년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저렴하게 자랐다. 그는 싸구려로 자랐지만 아버지에겐 무게가 있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근엄함의 무게였고 아버지 존재의 무게였다. 심지어 헛기침에도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그 과중한 무게에 그는 가끔 가위가 눌렸다.
아버지는 돈이 안 되는 마을 이장을 하며 근방에서는 걸어 다니는 복덕방으로 통했다. 동네 누가 땅을 팔고 사면 모두가 아버지의 거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는 관리를 못해도 남의 가산을 늘리는 데는 도가 텄다. 그런 일을 어머니는 영 못마땅해 했다. 어머니는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환갑 이틀을 앞두고 죽었다. 어머니는 참으로 어머니답게 죽었다. 그 뜨거운 여름날 한낮에 참깨 밭에서 김을 매다가 실신했다. 그게 어머니의 마침표였다. 어머니는 생의 마침표를 호미로 참깨 밭이랑에 찍었다. 아버지의 환갑잔치는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환갑이자 어머니의 장례식 날 아침에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어머니가 집에서 돌아가셨으니 그때만 해도 전문장례식장도 없었고 마땅히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발인하는 날 아침에 보니 빈소를 마련한 작은 방 앞, 마루 끝에 놓아둔 부의함이 없어진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부의함에 날개가 달린 것이고 밤사이 어디론가 날아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누가 남의 상가에 와서 부의함을 들고 가겠는가? 밤늦게까지 마당의 차양 밑에는 조문객들이 술을 마시고 또 동네 청년회에서 상가의 밤을 꼬박 밝히고 있었는데 사람의 소행은 아니었다. 틀림없이 농협에서 빌려다 놓은 그 부의함에 날개가 돋지 않고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손님이 많았다. 남면 백구두로 불리는 아버지는 발이 넓어 근동 삼면三面 남의 경조사에 부지런히 쫓아 다녔으니 문상객이 줄을 이었다. 이틀 동안 부의함은 자물쇠가 채워진 채 마루에 버티고 있던, 봉투가 다 들어가기 않아 나중에는 봉투를 쑤셔 넣던 부의함이 날개를 달아버린 것이다. 아니면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를 시켜 어머니의 안식처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이라고 선수금으로 미리 가져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염라대왕의 직인이 찍힌 영수증이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영수증도 없이 부의함은 행방이 묘연했다. 그것을 안 아버지는 그 돈이 들어있을 부의금보다 부의록을 작성하지 못한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 사흘 후, 삼우제를 지내고 장례 사업까지 겸하고 있던 농협에 갚아야할 장례비는 인감도장을 들고 가서 대출로 대신해야했다.
들일을 몽땅 맡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죽자 남면 백구두로 통하는 아버지는 갑자기 철이 든 것이다. 서툴지만 농사일에 나서서 밭일이고 논일이고 사사건건 간섭하다가 안 되면 직접 삽자루를 잡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 중에서 물 좋고 토질 좋은 상답은 이미 남의 손으로 넘어간 뒤여서 그렇게 크게 수익을 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농사를 지은 지 삼 년이 넘었을까? 아버지는 삽자루를 잡을 팔자가 아니었나 보다. 아버지가 잡은 삽날에 페인트가 채 벗겨지기 전에 남은 땅은 모두가 경매로 날아갔다. 아버지가 손이 크게 한판의 도박을 한 게 아니다. 그 때만해도 고향마을은 이웃 간에 상호 보증을 서주고 농협 돈을 빌리고 심지어 농기계마저 연대보증으로 구입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취업에 연대보증을 선 옆집 아들이 잘못되면 우리 집이 박살나고 우리 아들이 부도를 내면 옆집 재산이 날아가던 시절. 축협에 다니던 그의 육촌 동생이 공금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를 했던 모양이다. 그게 사단이었다. 작은집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취업보증을 섰던 아버지의 재산까지 압류되었다. 입에만 무게를 실었지 이미 아버지에겐 압류를 풀 만한 재력이 없었다. 아버지는 육촌동생이나 자신의 사촌형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재산이 날아가는 것보다 알토란같은 작은집 재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걸 못견뎌했다. 결국 남은 자갈밭과 물이 잘 안 들어오는 논조차 경매로 날아가고 근 이 년을 수입 없이 고향집을 지켰다. 집은 죽은 어머니 앞으로 등기가 되어 있어서 경매에서 제외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금 그 촌집은 폐가로 변해가고 있다. 헛간은 이미 내려앉았고 본체는 십 년 가까이 비어 있었으니 폐허가 되어가는 걸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이백 평정도의 집터만 남았다. 언젠가 그의 앞으로 상속을 해야 하지만 돈 되는 물건이 아니라서 이래저래 상속을 미루고 있다. 아버지의 수입은 오로지 그가 가끔 드리는 용돈과 숙경이나 정서방이 주는 용돈으로 버티고 먹을거리는 집성촌인 동네의 일가친척들이 주는 것으로 해결하다가 하나뿐인 아들, 그의 아파트로 살림을 합친 것이다. 그에게 얹혀살았지만 용돈까지 받아쓰기는 뭣했던지 아파트단지에 나오는 종이박스와 빈병을 아파트단지 뒤편의 공터에 모아다가 팔아서 용돈으로 썼다. 지금이야 그런 노인이 지천으로 깔렸지만 남다른 안목을 지닌 아버지가 그때 아파트 단지의 고물을 선점한 것이다.
남면 백구두로 불리던 아버지의 체면이 걸린 일이거니와 아버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며칠만 하면 그만둘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예측을 하고 있던 그를 여지없이 실망시켰다. 한 달, 두 달, 일 년이 넘어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너무 신기했다. 고향사람들 말마따나 아버지는 철이 든 것인가? 그는 아버지가 하고 있는 그 일이 그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고향에서 마을 이장을 오래 하셨던 아버지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천이백 세대가 사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노인 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파트단지의 경비나 관리소에서는 쌓아둔 종이박스에 불이 날까봐 걱정을 했지만 노인회장이 하는 일이고 또 아파트 단지 밖의 공터를 이용하는 터라 마다할 구실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의 종이박스와 빈병에 대한 수입을 그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나 모은 박스를 고물을 싣는 집게가 달린 차가 와서 싣고 가는 날은 아이들에게 용돈까지 두둑이 집어 주었다. 돈이 안 되는 일만 하던 아버지 평생 벌이 중에서는 가장 짭짤한 시절이었다. 근 십 년이 넘게 아버지는 백구두가 아니었다. 부지런하고 알뜰한 노인회의 회장으로 변해있었다. 집에서 밥과 빨래만 해결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혼자 버거웠던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인 한 분을 더 구해서 같이 그 종이박스 사업을 하였다. 분명히 사업이었다. 사업자등록증은 없지만 시세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그 업종은 분명 사업이라고 칭할 만했다. 물론 아버지는 시키는 입장이고 그 노인은 아버지에게 얼마를 배당받는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건강하던 아버지가 덜컥 정신력이 방전되며 회로가 꼬인 것이다. 생각하니 치매란 참으로 무서운 병이었다. 한사람의 보호자가 꼭 붙어 앉아 지켜야하는 그런 병이었다. 그가 집을 비우거나 볼일로 밖에 잠깐 나가면 집안에서 아버지가 무슨 일을 저지를까 노심초사 하곤 했다. 노심초사로 가슴을 졸이며 살아온 날이 일 년이 넘게 흘러갔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없다. 그렇지만 가슴을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아니다. 정신의 회로가 꼬이고 방전된 채 집에 계실 때보다 더 가슴을 졸이고 있다.
그는 자다가 일어나서 반병의 소주를 마셨지만 취하지 않는다. 전주가 있었지만 정신이 너무 말짱했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간다. 새벽이 오는 그 시간은 한 잔의 소주처럼 너무나 투명하고 고요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버지를 생각하며 피운 담배가 재떨이 가득 꽁초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다시 거실로 나가서 주방의 냉장고를 뒤졌다. 말라비틀어진 밑반찬 통 뿐이고 소주는 없다. 술기운을 빌어 잠을 청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냉장고는 집안의 경제력을 대변하듯이 비어 있었다. 고양이 신음을 내며 잠든 아내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거실 문을 열고 나섰다. 이층에서는 일층 대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문이 집 뒤편에 따로 달려있다. 삐거덕거리는 일층 대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설 수가 있었다. 가을이 오고 있는 밖은 트레이닝 바지에 반팔 티셔츠만 걸치기에는 바람이 쌀쌀했다. 빈 골목길에 이는 바람을 걷어차며 아버지가 입고 나간 옷에 대한 생각을 했다. 여름옷인데 너무 얇지 않을까? 이 쌀쌀한 바람에 어떻게 견디고 계실까? 그의 머리에는 아버지로 가득차서 다른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갈 큼이 없었다. 골목 끝에 있는 슈퍼는 불이 꺼져있다. 네거리 24시 편의점까지 가서 소주를 두 병과 담배를 사들고 들어와 콸콸 병나발을 한 번 불고 김치 한쪽을 씹고 또 병나발을 한 번 불고 김치한쪽을 씹으니 소주 한 병이 바닥났다. 다시 담배를 무니 조금 취기가 올랐다. 새벽 세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김치접시와 소주병을 윗목으로 밀쳐놓고 누웠다. 그렇게 누웠지만 그는 어느새 또 아버지 속으로 들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보름 전, 아버지를 내다 버린 날은 아내가 세 번째로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완치된 건 아니지만 아내는 병원생활이 갑갑하다고 퇴원을 하겠다고 그를 졸랐다. 그는 아내를 태우러 병원에 가야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집에 혼자 두고 가기가 맘에 걸렸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아버지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집에만 있어서 갑갑한 아버지를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고 싶은 마음도 한 몫을 했다. 병원으로 가면서 아버지를 고물이 된 승용차에 모셨다. 그때 아버지는 본정신이 돌아왔던 모양이다.
-얘야! 에미도 아프고 고생이 많쟈? 전에 살던 아파트단지 뒤편에 있는 해마루 공원에 가보고 싶구나. 거기에 한 번 데려다다오.
병원에 갈 시간이 빠듯한데 아버지는 근엄한 무게를 실은 목소리로 제의를 했다. 얼마 전까지 살던 아파트 단지 뒤, 야산에 있는 체육공원에 가보고 싶다고 멀쩡하게, 구체적으로 제안을 하셨다. 거기에 가면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는 차를 돌려 아파트단지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오랜만에 목욕을 한 아버지는 말쑥한 얼굴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몇 달 전까지 살던 아파트는 작은 도시지만 저쪽에 있어서 가는 데만 사십 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아버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정신이 초롱같구나. 사람들도 그립고.......
그는 군소리 없이 그 쪽으로 차를 몰아 살던 아파트 단지에 차를 세우고 아버지를 부축하여 해마루 공원으로 올라갔다. 그때 아버지 정신은 거짓말처럼 쨍하고 해가 떴다. 누구하고 누가 공원에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같은 아파트에 살던 노인의 이름을 들먹였다. 정신에 무게를 싣고 아버지란 존재로 돌아온 아버지를 보니 그의 기분도 좋아졌다. 해마루 공원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으며 조금 떨어진 비탈에 현대식 화장실까지 있어서 노인들이 즐겨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노인들이 정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노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반겼다. 집에만 계시던 아버지의 표정은 천국에 온 듯이 밝아져 있었다. 아버지와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아버지는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며 그에게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범아! 볼일 보고 느긋하게 태우러 오거라.
-아버지 다른 데는 가지 마시고 여기 어르신들과 노시고 계세요.
아버지의 정신이 언제 방전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아내가 기다리는 병원으로 갔다. 보름을 넘게 입원했던 아내는 잡다한 병원살림을 벌써 챙겨서 보퉁이에 싸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생활이 어지간히 지겨웠던 모양이었다. 그는 재바르게 퇴원수속을 했다. 아내가 집에서 먹을 약을 타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지체 없이 아내의 잡다한 병원살림을 챙겨 싣고 집으로 왔다. 아내는 주방이며 거실, 아버지의 방을 둘러보고는 이게 사람 사는 집이냐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자들만 사는 집이 그렇지 뭐! 아내의 잔소리를 들은 척도 않고 병원에서 쓰던 물건들을 거실에 올려놓고 아버지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해마루 공원을 향해 고물차의 엑셀을 밟았다.
아버지를 해마루 공원에 모셔다 놓은 지 서너 시간이 지났다. 아뿔싸! 그 사이에 아버지의 정신은 방전이 되고 회로가 다시 꼬인 모양이다.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그가 가고 삼십분 쯤 같이 있다가 아들이 차에서 기다릴 거라며 멀쩡하게 내려갔다고 했다. 노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아파트 어느 구석에 계실 거 같아서 아파트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관리원이나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박스를 거두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하나같이 보지 못했다는 대답이었다. 차를 몰아 집으로 달려왔다. 아버지는 집으로 오지 않았다. 집안은 치우던 아내는 뜨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작정을 했구먼! 아버님을 내다 버리려고 단단히 작정을 했구먼!
아내의 말아 맞다. 해마루 공원으로 데려다 달라던 아버지의 말을 무시했어야 했다. 그는 아버지를 내다 버린 것이다. 다시 해마루 공원으로 가며 인도와 횡단보도를 유심히 살피며 공원을 향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해마루 공원을 두 번이나 오가며 길을 살피고 나니 어둠살이 내리는 저녁이 되었다. 그는 공원 팔각정에 앉아 홀로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노인들은 모두가 돌아간 뒤였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시면 아내가 전화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가로등이 켜진 해마루 공원으로 어딘가를 돌아다니던 아버지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아홉 시가 넘어 열 시가 되어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공원에서 내려와 집으로 왔다. 자신이 아버지를 내다버린 것이라고 가슴을 치며 소주를 마시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그 다음날은 시장골목을 찾아다니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인쇄소에 들러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고 전봇대에도 붙이고 공원의 나무, 화장실 벽에 붙였다. 그러나 전단지의 효과는 전무했다. 어디에고 소식이 오는 데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불안만 가중될 뿐, 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점점 침몰되고 있었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다.
아버지가 사라진 날부터 불면의 밤은 지속되고 그의 회로마저도 엉기고 꼬이는 듯했다.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잠이 들지 못했다. 술이 취하면 아버지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고 깨고 나면 가슴에 찬바람이 일었다. 허탈, 말 그대로 허탈했다. 이대로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을 건지지 못하고 있다. 새벽 세 시가 넘어서 소주 한 병을 비운 그는 아버지 속에 웅크리고 잠이 든 모양이다. 머리맡에 둔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 새벽에, 혹시 아버지에 대한 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자 전화를 받는 손이 후들거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아버지의 제보에 대한 전화였다.
잠이 들깬 목소리로 상대를 두드리자 경찰서의 무슨 지구대라고 밝히고는 오늘 새벽에 무성천 체육공원에서 죽은 노인이 발견되었는데 인상착의가 신고한 내용과 비슷하니 와서 확인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술기운이 남은 그의 뇌리에 한차례 번개가 후리치고 지나갔다. 직감적으로 아버지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압도했다.
-어디....... 어디로 가야 되는 거죠?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리고 있었다.
-시신은 119에서 재건병원 안치실로 옮겨 놓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담담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일단 아내를 깨웠다.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후딱 가서 확인하고 아버지가 맞으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는 바지만 꿰어 차고는 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새벽이라 차는 그리 밀리지 않았다. 두어 군데 신호를 위반하고 병원 병원마당에 도착했다. 급한 김에 고물차를 주차통로에 삐딱하게 세워놓고 키를 꽂아둔 채 영안실을 찾았다. 경찰이 이 병원 어디로 오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일단 지하에 있는 영안실로 들어갔다. 경찰들은 보이지 않고 그곳을 지키던 직원이 급하게 들어서는 그의 차림새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사체 확인하러 오셨습니까?
그렇다고 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직원이 앞장섰다. 영안실에서 화장실 옆에 달린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긴 복도가 연결되어 있었다. 앞장 선 직원은 복도 중간쯤에 있는 철문을 열었다. 사체는 아직 냉동고에 넣지 않고 바퀴가 달린 침대에 눕혀져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부친이 맞는지 보세요.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말을 하며 직원은 사체의 얼굴 부분에 가린 흰 천을 들추어 주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한눈에 보아도 아니다. 아버지가 아니다. 죽은 노인은 백발이 성성하고 머리카락이 길다. 그의 아버지는 얼마 전에 머리를 깎았다. 목욕시키기도 번거로워 전동면도기로 숱이 적은 아버지의 머리를 박박 밀었다. 그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라고 직원은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말을 하며 흰 천으로 사체를 다시 덮었다. 그는 옹골차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이다. 정정하자. 그건 실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아버지가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의 한숨,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는 전단지에 아버지가 머리를 밀지 않았을 때의 사진이 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치실에서 나와 병원마당에 급하게 주차해둔 차에 올라앉았다. 우선 담배부터 한 대 물고 생각했다. 머리를 깎은 모습의 사진이 찍힌 전단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가? 아버지는 머리를 깎고 찍은 사진이 없다. 그 사진을 찍으려면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아버지를 찾으면 전단지를 만들 필요가 없다. 뭐가 이래? 그때 주머니에 든 전화벨이 울렸다. 성질이 급한 아내가 전화를 한 모양이다. 담배를 문 채로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시시오.
아내가 아니었다.
-어디시죠?
-여, 여기 말바우, 희, 희식이 전화가 맞, 맞지요.
말을 심하게 더듬는 상대방은 말바우의 재종숙이었다. 말을 더듬는 걸 듣고 말바우의 재종숙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말바우는 그가 나고 자란 고향마을이다. 아직 그가 나서 자란 집이 비어 있지만 그곳에 들른 지가 몇 년이나 되었다. 당숙이 돌아가시고 문상차 가고는 한 번도 들른 적이 없었다. 재종숙의 목소리를 들으니 고향을 너무 등한시 한 것 같아 죄스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 제가 희식입니다. 근데 아재가 어쩐 일이세요. 이 새벽에.......
-아따! 이 사람아! 자네 전, 전, 전화번호를 몰라서 애를 먹었네. 그건 그렇고 자네 아, 아, 아버지를 어, 어, 어쩔 심산인가?
아버지를 잃어버렸다는 소문이 말바우까지 흘러들어간 모양이다. 말문이 막힌 죄인이 되었다. 그도 재종숙처럼 더듬거렸다.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지, 지금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꼭, 꼭 찾을 겁니다.
-거, 거기 아니고, 자네 아버지가 말, 말바우에 왔어. 근, 근 열흘 되었을 걸. 혼자 사는 몰골이 말이 아니여!
그는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요?
-자, 아이쿠 답답햐! 자, 자네 아버지가 말바우 빈집에 혼자 살림을 차렸다고.
끊지 않은 전화기에서 재종숙이 더듬거리며 뭐라고 했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문 채 물끄러미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무슨 정신으로 차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기까지 가셨을까? 마지막으로 남은 회귀나 귀소본능이 방전된 아버지의 정신을 이끌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마침표를 찍으러 고향을 찾은 것이 아닐까? 아니면 생의 꼭지, 정점을 향해 방전된 정신으로 걷고 또 걸었을까? 아버지의 정점은 도대체 어디일까? 가끔 정신이 드는 아버지가, 만약, 만약에 모시러 가지 않으면 마침표를 도돌이표로 바꾸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실까? 아니, 아버지가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게 도돌이표가 아닐까? 말바우 집은 폐허가 되어 사람이 기거나 할 수 있을까? 고향집을 내려 앉히던 꿈이 심상찮다고 했는데 왜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을까? 온갖 생각이 순간적으로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아버지를 찾았다. 분명히 아버지를 찾았다. 그는 조수석에 남은, 붙이고 돌리던 전단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이 전단지는 이제 필요가 없다. 머리를 깍은 아버지의 사진도 필요가 없고, 아버지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자 전단지를 힘주어 움켜쥐었다. 무게가 없이 가벼운 아버지, 구겨진 아버지가 그의 주먹 속에 들어있다.
아버지의 무게
이 홍사
꿈이었다.
생시같이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잠결에도 이건 꿈이야, 꿈! 이라고 하면서도 그는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꿈속에서 그는 난데없이 포클레인 기사가 되어 옛날에 살던 집을 마구 부수었다. 그 집은 바로 그가 나서 자란 고향집이다. 방안에는 가구와 살림살이가 들어있는데 기와지붕을 포클레인으로 내려 앉히고 대들보와 서까래를 마구 부수는 꿈이었다. 부서진 기왓장과 먼지가 풀풀 내려 앉아 가구와 살림살이 위에 떨어져 쌓이고 있었다. 꿈은 언제나 논리적이지 못하지만 왜 집을 부수고 있는지 그도 모르고 그저 집을 내려 앉히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그의 아버지가 고함을 질렀다. 젊었을 때의 무게가 실린 정정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지 포클레인 조종석으로 뛰어 올라와 그렇게 집을 부수고 있는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에 멱살이 잡힌 채 완강하게 버티다가 결국은 떨어졌는데 포클레인 밖은 이상하게 천길만길 낭떠러지였다. 그는 갑자기 생긴 낭떠러지로 아버지를 껴안고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 추락은 끝이 없었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끝없이 낭떠러지로 빨려 들어가다가 벌떡 깨었다.
이마에는 진땀이 배어 있었다. 깨어보니 낭떠러지가 아니라 그의 방이었다. 불도 끄지 않고 술기운에 잠이 든 모양이다. 꿈치고는 참 요상한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겨우 열한 시가 좀 넘었다. 그는 오늘도 거리를 헤매다가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씻지도 않고 누웠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겨우 한 시간을 자다가 악몽에 잠이 깨었다. 거실로 나와 아버지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바람만 가득한 빈 방이었다. 식도염을 심하게 앓고 있는 아내는 딸아이 방에서 자고 있다. 가냘픈 고양이 신음을 내며 곯아떨어졌다. 거실에도 불이 켜져 집안은 환하다. 거실의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와 앉아 담배를 빼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요상한 꿈을 짚어보니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생각하자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오늘도 아버지 생각에 밤을 꼬박 세워야할 것 만 같았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지낼까? 누구의 손에 이끌려 어디 무의탁 요양시설에라도 들어가 있으면 좋으련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그런 행운을 간절히 빌었다.
이 시대의 아버지란 존재는 무엇인가? 식구들의 밥을 만드는 견고한 기계? 그러나 경제력에 힘줄이 풀리면 그 기계도 낡은 고철덩이가 되어 세상의 뒷전에 방치된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도 그렇게 퇴물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하니 견디기 힘들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주먹을 쥐는 것은 그의 버릇이다. 결국은 요양시설이나 그 형편도 안 되면 갖다버려야 할 존재로 퇴락하는 것이 이 시대의 아버지다. 중절모를 쓰고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헛기침으로 집안을 군림하던 가부장의 시대는 핵가족 시대 앞에서 꼬리를 바짝 내리고 경제력의 뒤안길에 내몰린 아버지란 위치는 빨지 않은 걸레짝이나 고장 난 기계로 추락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아버지의 위상이나 무게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힘줄이 풀리면 아버지란 존재는 폐기처분해야 할 대상으로 가벼워진다.
실제로 일이 그렇게 되었다. 그는 분명 아버지를 이 시대의 고물상에 내다버렸다. 그는 자신이 가벼워진 아버지를 내다 버린 것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 그가 아버지를 차에 태워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에 갔었다는 사실을. 대전에 사는 하나뿐인 혈육, 여동생 숙경이와 정서방은 매일 전화를 한다. 어쩌다가 와서 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코를 싸쥐고 손끝도 까딱하지 않던 년이 아버지가 사라지자 세상에 없는 효녀로 변해 매일 전화질을 해댄다. 아버지를 찾았냐고, 어디에서 무슨 소식이 없느냐고? 매몰차게 묻지만 매번 대답은 ‘아직.......’ 이다. 도움이 안 되는 그 년의 전화가 올까봐 이젠 두렵기까지 하다.
보름이 넘었다. 생각 없이 나선 길이고 일을 그렇게 잘못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를 내다버린 곳에 몇 번이고 가보았다. 갈 때마다 아버지가 그곳에 앉아 기다릴 것 같았지만 늘 빈자리였다. 숙경이와 정서방은 아버지가 바람 쐬러 나갔다가 집을 찾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의 짧은 소갈머리가 아버지를 내다버린 것이라 자책하며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아버지를 내다버린 지 사흘 후에야 전단지를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돌리고 전봇대와 아버지를 내다버린 공원에 서있는 나무와 화장실 벽에 테이프로 붙여 놓곤 했다. 전단지에는 아버지의 사진과 특이사항 그리고 그의 연락처와 제보를 주시는 분에게 후사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서에도 실종신고를 했다. 신고를 접수받는 경찰은 애비가 없는 놈인지 매우 사무적이었다. 사무적인 표정을 넘어서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이런 신고는 한 달에 수십 건을 받지만 찾았다고 오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제 발로 뛰면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특히나 치매현상을 보이면 찾기가 더 어렵다는 건 알고 계시죠? 실종된 자가 찾아올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더 어렵구요.
-아, 예! 그렇겠지요.
경찰은 그가 아버지를 내다버린 사실을 알아채고 하는 말 같아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 되어 말까지 더듬었다. 실종신고는 했지만 경찰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가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명퇴를 하던 날부터 아버지가 치매를 보이기 시작했다. 참으로 우연의 일치다. 명퇴를 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가 치매를 앓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명퇴는 참으로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날은 개기일식이 있는 날이었다. 60년 만에 가장 짙게 달이 해를 가리는 개기일식이었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자 세상이 컴컴할 정도로 달이 해를 가렸다. 어둠에 달이 해를 가리는 현상을 보며 신기해하고 우주의 현상에 대해서 삼삼오오 앉아서 저마다 지닌 우주현상에 대한 잡학을 입으로 풀어가고 있을 때 구조조정이 발표되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노닥거리던 사원들의 화제는 급격하게 개기일식에서 구조조정으로 바뀌었다. 암암리에 구조조정이 있을 거라는 얘기가 사내에 돌았지만 생산직에 있던 그가 그렇게 쉽게 지목될 줄은 전혀 예측도 못했다. 그가 명퇴 대상으로 지목되었다는 말에 개기일식을 당하는 지구처럼 어두컴컴한 가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나이는 있지만 그는 생산직이었고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우량 레벨이 마빡에 붙은 사원이었다. 회사에서도 그 점을 인정한다. 이십칠 년을 다니던 회사였지만 단칼에, 아무른 통보도 없이 목이 날아갔다. 원가절감이라는 꼬리표를 이유로 달고 그가 조장으로 있던 공정의 라인이 다른 라인과 합병되면서 통째로 없어진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날 아내가 더 아프다고 전화가 왔지만 집으로 바로 올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명퇴를 당해서 일찍 못 들어간다고 자랑스럽게 늘어놓을 입장도 아니었다. 명퇴를 당한 생산직 여섯 명이서 낮술부터 시작해서 잔뜩 마시고 취했다. 혼자 당한 게 아니라 여섯 명이서 같이 당했으니 노동부로 가서 무슨 수를 찾아보자는 의견도 분분했고 실업급여 얘기도 나왔다. 멀건 대낮에 그렇게 여섯 명이서 술좌석에 둘러앉으니 명퇴자의 비애가 아니라 잔칫집 기분이 들었고 비로소 돈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그깟 회사 아니면 밥 빌어먹을 데가 없겠냐고 큰소리치며 만용을 부렸다. 잔뜩 취해 열 시가 넘어서 집으로 들어오니 아버지가 누구시냐고 아주 정중하게 그에게 물었다.
-누구시죠? 얘 어멈아! 손님 오셨다.
매일 보던 아들인데,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뒤통수를 맞고 오니 아버지가 이마빡을 내리친 것이었다. 내리막에 가속도가 붙으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집안은 내리막을 타고 있었다. 일흔일곱, 치매현상을 보이기에는 이른 나이는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그 동안 너무 건강했었다. 그런데 치매현상은 전조증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다음날부터 아버지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명퇴를 당한 그는 집안의 기둥이기에 일거리를 찾아야했지만 아내가 역류성 식도염으로 아버지의 시중을 들 수가 없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버지 옆에만 가면 비위가 상해 헛구역질을 하고 억지로 조금 먹은 것을 토해버리는 고약한 병이었다. 아버지의 시중은 고스란히 그의 몫으로 굳어졌다. 어쩌면 회사에서 아버지의 시중을 들라고 명퇴를 때맞추어 시킨 것 같았다.
일 년을 놀면서 아버지의 치매와 씨름하고 나니 집안에 쌀이 떨어졌다. 그는 대학에 들어간 아들 경수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 미경이의 학비가 숙제처럼 여겨졌다. 궁리 끝에 지난 학기를 마치고 경수를 군에 보냈다. 녀석은 눈치가 있어서 순순히 그의 말을 따랐다. 군에 보내기는 했지만 수입이 전혀 없는 집안의 앞날이 막막했다. 전혀 숨통이 트일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일 년 넘게 손을 놓고 앉아 아내를 세 번이나 입원시키고 나니 집안은 기울대로 기울었다. 어쩔 수 없이 살던 아파트를 팔고 외풍이 심한 단독주택 이층에 전세로 내려앉았다. 일 년이 넘게 세가 나가지 않아 구석구석 곰팡이가 터를 잡은 집이었지만 집주인은 치매든 노인이 있는 것을 알고 전세 주기를 꺼려했다. 심사가 뒤틀렸지만 방이 세 칸짜리라 사정사정하여 집은 얻었다. 이젠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때 같이 실직당한 동료중의 하나가 재취업한 정밀회사 경비자리를 소개시켜 주었다. 하루 여덟 시간 삼교대로 근무하는 자리지만 이 나이에 그게 어디냐? 구미가 당겼지만 아버지 때문에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아니,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자꾸만 병이 깊어가는 아내 때문이라 해야겠다. 아내가 아버지를 맡아주면 좋으련만 아내에게 아버지를 맡길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종일 정신이 방전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 꼴이 되어서 너희들을 고생 시키는구나. 빨리 죽으면 좋을 터인데.......
간간히 한 번씩 정신이 돌아오면 마땅히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그런 소릴 하곤 했다. 그러다가도 치매가 도지면 옷을 갈아입는 걸 죽도록 싫어했다. 한번 입으면 언제나 그 옷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꼬질꼬질하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옷을 갈아입히려고 어쩌다가 아내가 들어가면 당신 며느리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려 들고 심지어 사타구니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다. 아내는 기겁을 하고 옷을 갈아입히려다 방을 차고 나오고, 그의 손으로 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힐 수밖에 없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나면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그 옷을 마구 쥐어뜯는 것이다. 정신이 들었나 싶으면 그게 아니고 치매란 참으로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떤 날은 정신이 멀쩡한 것 같은데 아내의 장롱을 뒤져서 아내의 속옷을 몽땅 꺼내 욕조에 담가 두는 날도 있었고 아내의 팬티를 뒤집어 모자처럼 쓰고 마당을 거니는 날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래층 주인집의 마당에 늘어놓은 빨래 중에서 속옷만 골라다가 아버지의 방으로 가져가서 쥐어뜯는 일도 종종 있었다. 주인댁 아주머니가 그야말로 방방 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내가 죄인이 되어 사죄를 해야 했다. 무게를 읽은 아버지의 치매는 하필이면 속옷 집착증이었다. 아버지가 벌이는 일은 예측이 불가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는 아버지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달아보았다. 아버지의 무게에 대해서.
아버지에겐 이제 무게가 없다. 사실이지 체면이고 명예고 존재가치에 대한 무게마저도 없었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아버지가 이젠 조용히, 깨끗하게 죽어주시면 좋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보내기로 맘을 먹고 아내와 상의 끝에 요양병원 여기저기를 알아보았다. 사실 이 시대의 고려장이나 다름없는 시설인 것 같아 그가 고개를 돌리고 애써 외면하고 있던 곳이다. 그러나 막다른 골목에 갇혀 마음을 먹고 찾아보니 고려장이 아닌 사설요양병원은 너무 비쌌다. 그가 경비로 근무한다면 받는 월급 전액을 털어 넣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다른 병원을 찾아다녔다. 그가 아버지를 부담 없이 보낼 수 있는 곳은 무의탁노인요양시설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직계가족이 버젓이 있으니 병원마다 자격이 안 된다는 일관된 대답만 귀가 닳도록 들었다. 세상살이가 실로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를 무의탁 노인으로 만들려면 그가 죽든가 아니면 아버지 주민등록을 독거노인으로 되게끔 따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에 관한 배려는 정부나 사회단체 어느 곳에도 없었다. 완전 사각지역에 갇힌 것만 같았다.
-씨부랄.......
노인복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그렇게 욕설을 뱉는 사이, 자정이 넘어서고 있다. 그는 괜히 휴대폰을 눌러 혹시라도 부재중 전화가 온 데 없는지 또 확인을 했다.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요상한 꿈은 너무나 생생했고, 오늘 밤도 어제처럼 홀딱 밝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는 매일 밤 아버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 속에서 웅크리고 잤다. 편안한 잠이 결코 아니었다. 오늘도 빨리 자고 내일 또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싶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아내의 신음소리만 빼면 집안은 정물처럼 고요하다. 그는 그 고요함을 박차고 일어나 냉장고를 뒤졌다. 냉장고를 뒤져 어제 마시다가 둔 반병의 소주를 꺼내고 김치접시를 꺼내 방으로 가져왔다. 잔도 없이 벌컥벌컥 소주를 서너 모금 마셨다.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알코올 성분이 짜릿하게 그의 내장을 전율시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그 짜릿함 속에 아우성치는 무엇이 있었다. 분노, 좌절, 비애, 절망, 그 어떤 이름을 붙여도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는 아버지의 무게를 호명하며 천천히 김치 한 조각을 손으로 찢어 안주 삼았다. 초저녁에 마신 술기운은 말짱하게 날아간 상태였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고 담배를 또 꺼내 물었다. 아내가 담배연기를 죽도록 싫어했기 때문에 창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는 게 습관화되었다. 어쩌다가 창을 열지 않고 담배연기를 방안에 채워놓으면 아내는 기겁을 한다.
-작은방에는 똥구린내가 나고 큰방에는 담배연기 때문에 숨조차 쉴 수가 없으니 이게 집이냐고, 담뱃값도 못하는 주제에.
그의 가슴을 도려내는 하소연을 마구 뱉어낸다. 가급적이면 마당으로 이용하는 옥상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지만 아내는 담배연기 때문이라며 딸애의 방에서 잔다. 담배연기 때문이 아니라 정이 떨어진 것이라는 걸 그는 안다. 그는 반쯤 피우던 담배를 끄고 나머지 소주를 병나발을 불어 마셨다. 그리고 김치 한 조각을 씹으며 아버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환갑이 넘어 철이 들었다.
어머니가 죽고 나자 철이 든 것이다. 아버지는 환갑까지 아버지의 손으로는 단 한 푼도 벌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농토를 잠식하듯이 야금야금 팔아 생활했다. 그 동안 농사는 지었다고 하나 모두가 남의 손을 빌려 세경을 주고 지었으며 삽자루 한 번 쥐지 않았고 쟁기를 한 번 잡은 적이 없었다. 남의 손을 빌려 논을 갈고 밭을 매는 동안 아버지는 강둑에 서서 강으로 날아드는 철새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강둑에 앉은 한 마리 왜가리처럼 보였다. 그 한 마리의 왜가리가 어머니가 죽고 나자 철이 든 것이다. 농사일을 나가면서도 복장은 절대 농사일 나가는 옷이 아니라 장에 나들이 가는 옷을 입고 다니던 철새가 짝을 잃자 제가 날아야 할 계절을 인식했다고 동네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아버지는 그랬다. 밭일을 나가도 옷은 작업복이 아니라 외출복이었다. 심지어 중절모에 백구두를 신고 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남에게 일만 시켜놓고 면소에 들렀다가 다방으로 외출을 하는 날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덕분에 그의 유년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저렴하게 자랐다. 그는 싸구려로 자랐지만 아버지에겐 무게가 있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근엄함의 무게였고 아버지 존재의 무게였다. 심지어 헛기침에도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그 과중한 무게에 그는 가끔 가위가 눌렸다.
아버지는 돈이 안 되는 마을 이장을 하며 근방에서는 걸어 다니는 복덕방으로 통했다. 동네 누가 땅을 팔고 사면 모두가 아버지의 거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에 대해서는 관리를 못해도 남의 가산을 늘리는 데는 도가 텄다. 그런 일을 어머니는 영 못마땅해 했다. 어머니는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환갑 이틀을 앞두고 죽었다. 어머니는 참으로 어머니답게 죽었다. 그 뜨거운 여름날 한낮에 참깨 밭에서 김을 매다가 실신했다. 그게 어머니의 마침표였다. 어머니는 생의 마침표를 호미로 참깨 밭이랑에 찍었다. 아버지의 환갑잔치는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환갑이자 어머니의 장례식 날 아침에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어머니가 집에서 돌아가셨으니 그때만 해도 전문장례식장도 없었고 마땅히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발인하는 날 아침에 보니 빈소를 마련한 작은 방 앞, 마루 끝에 놓아둔 부의함이 없어진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부의함에 날개가 달린 것이고 밤사이 어디론가 날아간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누가 남의 상가에 와서 부의함을 들고 가겠는가? 밤늦게까지 마당의 차양 밑에는 조문객들이 술을 마시고 또 동네 청년회에서 상가의 밤을 꼬박 밝히고 있었는데 사람의 소행은 아니었다. 틀림없이 농협에서 빌려다 놓은 그 부의함에 날개가 돋지 않고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손님이 많았다. 남면 백구두로 불리는 아버지는 발이 넓어 근동 삼면三面 남의 경조사에 부지런히 쫓아 다녔으니 문상객이 줄을 이었다. 이틀 동안 부의함은 자물쇠가 채워진 채 마루에 버티고 있던, 봉투가 다 들어가기 않아 나중에는 봉투를 쑤셔 넣던 부의함이 날개를 달아버린 것이다. 아니면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를 시켜 어머니의 안식처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이라고 선수금으로 미리 가져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염라대왕의 직인이 찍힌 영수증이라도 있어야 할 터인데 영수증도 없이 부의함은 행방이 묘연했다. 그것을 안 아버지는 그 돈이 들어있을 부의금보다 부의록을 작성하지 못한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 사흘 후, 삼우제를 지내고 장례 사업까지 겸하고 있던 농협에 갚아야할 장례비는 인감도장을 들고 가서 대출로 대신해야했다.
들일을 몽땅 맡고 있던 그의 어머니가 죽자 남면 백구두로 통하는 아버지는 갑자기 철이 든 것이다. 서툴지만 농사일에 나서서 밭일이고 논일이고 사사건건 간섭하다가 안 되면 직접 삽자루를 잡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 중에서 물 좋고 토질 좋은 상답은 이미 남의 손으로 넘어간 뒤여서 그렇게 크게 수익을 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농사를 지은 지 삼 년이 넘었을까? 아버지는 삽자루를 잡을 팔자가 아니었나 보다. 아버지가 잡은 삽날에 페인트가 채 벗겨지기 전에 남은 땅은 모두가 경매로 날아갔다. 아버지가 손이 크게 한판의 도박을 한 게 아니다. 그 때만해도 고향마을은 이웃 간에 상호 보증을 서주고 농협 돈을 빌리고 심지어 농기계마저 연대보증으로 구입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취업에 연대보증을 선 옆집 아들이 잘못되면 우리 집이 박살나고 우리 아들이 부도를 내면 옆집 재산이 날아가던 시절. 축협에 다니던 그의 육촌 동생이 공금을 빼돌려 주식에 투자를 했던 모양이다. 그게 사단이었다. 작은집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취업보증을 섰던 아버지의 재산까지 압류되었다. 입에만 무게를 실었지 이미 아버지에겐 압류를 풀 만한 재력이 없었다. 아버지는 육촌동생이나 자신의 사촌형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재산이 날아가는 것보다 알토란같은 작은집 재산이 경매로 넘어가는 걸 못견뎌했다. 결국 남은 자갈밭과 물이 잘 안 들어오는 논조차 경매로 날아가고 근 이 년을 수입 없이 고향집을 지켰다. 집은 죽은 어머니 앞으로 등기가 되어 있어서 경매에서 제외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금 그 촌집은 폐가로 변해가고 있다. 헛간은 이미 내려앉았고 본체는 십 년 가까이 비어 있었으니 폐허가 되어가는 걸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이백 평정도의 집터만 남았다. 언젠가 그의 앞으로 상속을 해야 하지만 돈 되는 물건이 아니라서 이래저래 상속을 미루고 있다. 아버지의 수입은 오로지 그가 가끔 드리는 용돈과 숙경이나 정서방이 주는 용돈으로 버티고 먹을거리는 집성촌인 동네의 일가친척들이 주는 것으로 해결하다가 하나뿐인 아들, 그의 아파트로 살림을 합친 것이다. 그에게 얹혀살았지만 용돈까지 받아쓰기는 뭣했던지 아파트단지에 나오는 종이박스와 빈병을 아파트단지 뒤편의 공터에 모아다가 팔아서 용돈으로 썼다. 지금이야 그런 노인이 지천으로 깔렸지만 남다른 안목을 지닌 아버지가 그때 아파트 단지의 고물을 선점한 것이다.
남면 백구두로 불리던 아버지의 체면이 걸린 일이거니와 아버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며칠만 하면 그만둘 것 같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예측을 하고 있던 그를 여지없이 실망시켰다. 한 달, 두 달, 일 년이 넘어도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너무 신기했다. 고향사람들 말마따나 아버지는 철이 든 것인가? 그는 아버지가 하고 있는 그 일이 그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고향에서 마을 이장을 오래 하셨던 아버지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온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천이백 세대가 사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노인 회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아파트단지의 경비나 관리소에서는 쌓아둔 종이박스에 불이 날까봐 걱정을 했지만 노인회장이 하는 일이고 또 아파트 단지 밖의 공터를 이용하는 터라 마다할 구실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의 종이박스와 빈병에 대한 수입을 그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으나 모은 박스를 고물을 싣는 집게가 달린 차가 와서 싣고 가는 날은 아이들에게 용돈까지 두둑이 집어 주었다. 돈이 안 되는 일만 하던 아버지 평생 벌이 중에서는 가장 짭짤한 시절이었다. 근 십 년이 넘게 아버지는 백구두가 아니었다. 부지런하고 알뜰한 노인회의 회장으로 변해있었다. 집에서 밥과 빨래만 해결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혼자 버거웠던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인 한 분을 더 구해서 같이 그 종이박스 사업을 하였다. 분명히 사업이었다. 사업자등록증은 없지만 시세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그 업종은 분명 사업이라고 칭할 만했다. 물론 아버지는 시키는 입장이고 그 노인은 아버지에게 얼마를 배당받는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건강하던 아버지가 덜컥 정신력이 방전되며 회로가 꼬인 것이다. 생각하니 치매란 참으로 무서운 병이었다. 한사람의 보호자가 꼭 붙어 앉아 지켜야하는 그런 병이었다. 그가 집을 비우거나 볼일로 밖에 잠깐 나가면 집안에서 아버지가 무슨 일을 저지를까 노심초사 하곤 했다. 노심초사로 가슴을 졸이며 살아온 날이 일 년이 넘게 흘러갔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없다. 그렇지만 가슴을 졸이기는 마찬가지다. 아니다. 정신의 회로가 꼬이고 방전된 채 집에 계실 때보다 더 가슴을 졸이고 있다.
그는 자다가 일어나서 반병의 소주를 마셨지만 취하지 않는다. 전주가 있었지만 정신이 너무 말짱했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간다. 새벽이 오는 그 시간은 한 잔의 소주처럼 너무나 투명하고 고요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버지를 생각하며 피운 담배가 재떨이 가득 꽁초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다시 거실로 나가서 주방의 냉장고를 뒤졌다. 말라비틀어진 밑반찬 통 뿐이고 소주는 없다. 술기운을 빌어 잠을 청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냉장고는 집안의 경제력을 대변하듯이 비어 있었다. 고양이 신음을 내며 잠든 아내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거실 문을 열고 나섰다. 이층에서는 일층 대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문이 집 뒤편에 따로 달려있다. 삐거덕거리는 일층 대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설 수가 있었다. 가을이 오고 있는 밖은 트레이닝 바지에 반팔 티셔츠만 걸치기에는 바람이 쌀쌀했다. 빈 골목길에 이는 바람을 걷어차며 아버지가 입고 나간 옷에 대한 생각을 했다. 여름옷인데 너무 얇지 않을까? 이 쌀쌀한 바람에 어떻게 견디고 계실까? 그의 머리에는 아버지로 가득차서 다른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갈 큼이 없었다. 골목 끝에 있는 슈퍼는 불이 꺼져있다. 네거리 24시 편의점까지 가서 소주를 두 병과 담배를 사들고 들어와 콸콸 병나발을 한 번 불고 김치 한쪽을 씹고 또 병나발을 한 번 불고 김치한쪽을 씹으니 소주 한 병이 바닥났다. 다시 담배를 무니 조금 취기가 올랐다. 새벽 세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김치접시와 소주병을 윗목으로 밀쳐놓고 누웠다. 그렇게 누웠지만 그는 어느새 또 아버지 속으로 들어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보름 전, 아버지를 내다 버린 날은 아내가 세 번째로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날이었다. 완치된 건 아니지만 아내는 병원생활이 갑갑하다고 퇴원을 하겠다고 그를 졸랐다. 그는 아내를 태우러 병원에 가야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집에 혼자 두고 가기가 맘에 걸렸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아버지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집에만 있어서 갑갑한 아버지를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고 싶은 마음도 한 몫을 했다. 병원으로 가면서 아버지를 고물이 된 승용차에 모셨다. 그때 아버지는 본정신이 돌아왔던 모양이다.
-얘야! 에미도 아프고 고생이 많쟈? 전에 살던 아파트단지 뒤편에 있는 해마루 공원에 가보고 싶구나. 거기에 한 번 데려다다오.
병원에 갈 시간이 빠듯한데 아버지는 근엄한 무게를 실은 목소리로 제의를 했다. 얼마 전까지 살던 아파트 단지 뒤, 야산에 있는 체육공원에 가보고 싶다고 멀쩡하게, 구체적으로 제안을 하셨다. 거기에 가면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는 차를 돌려 아파트단지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오랜만에 목욕을 한 아버지는 말쑥한 얼굴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몇 달 전까지 살던 아파트는 작은 도시지만 저쪽에 있어서 가는 데만 사십 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다.
-아버지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정신이 초롱같구나. 사람들도 그립고.......
그는 군소리 없이 그 쪽으로 차를 몰아 살던 아파트 단지에 차를 세우고 아버지를 부축하여 해마루 공원으로 올라갔다. 그때 아버지 정신은 거짓말처럼 쨍하고 해가 떴다. 누구하고 누가 공원에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같은 아파트에 살던 노인의 이름을 들먹였다. 정신에 무게를 싣고 아버지란 존재로 돌아온 아버지를 보니 그의 기분도 좋아졌다. 해마루 공원 정상에는 팔각정이 있으며 조금 떨어진 비탈에 현대식 화장실까지 있어서 노인들이 즐겨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노인들이 정자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노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반겼다. 집에만 계시던 아버지의 표정은 천국에 온 듯이 밝아져 있었다. 아버지와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아버지는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며 그에게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다.
-아범아! 볼일 보고 느긋하게 태우러 오거라.
-아버지 다른 데는 가지 마시고 여기 어르신들과 노시고 계세요.
아버지의 정신이 언제 방전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아내가 기다리는 병원으로 갔다. 보름을 넘게 입원했던 아내는 잡다한 병원살림을 벌써 챙겨서 보퉁이에 싸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생활이 어지간히 지겨웠던 모양이었다. 그는 재바르게 퇴원수속을 했다. 아내가 집에서 먹을 약을 타는 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 지체 없이 아내의 잡다한 병원살림을 챙겨 싣고 집으로 왔다. 아내는 주방이며 거실, 아버지의 방을 둘러보고는 이게 사람 사는 집이냐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자들만 사는 집이 그렇지 뭐! 아내의 잔소리를 들은 척도 않고 병원에서 쓰던 물건들을 거실에 올려놓고 아버지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해마루 공원을 향해 고물차의 엑셀을 밟았다.
아버지를 해마루 공원에 모셔다 놓은 지 서너 시간이 지났다. 아뿔싸! 그 사이에 아버지의 정신은 방전이 되고 회로가 다시 꼬인 모양이다.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그가 가고 삼십분 쯤 같이 있다가 아들이 차에서 기다릴 거라며 멀쩡하게 내려갔다고 했다. 노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아파트 어느 구석에 계실 거 같아서 아파트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관리원이나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박스를 거두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하나같이 보지 못했다는 대답이었다. 차를 몰아 집으로 달려왔다. 아버지는 집으로 오지 않았다. 집안은 치우던 아내는 뜨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작정을 했구먼! 아버님을 내다 버리려고 단단히 작정을 했구먼!
아내의 말아 맞다. 해마루 공원으로 데려다 달라던 아버지의 말을 무시했어야 했다. 그는 아버지를 내다 버린 것이다. 다시 해마루 공원으로 가며 인도와 횡단보도를 유심히 살피며 공원을 향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해마루 공원을 두 번이나 오가며 길을 살피고 나니 어둠살이 내리는 저녁이 되었다. 그는 공원 팔각정에 앉아 홀로 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노인들은 모두가 돌아간 뒤였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시면 아내가 전화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가로등이 켜진 해마루 공원으로 어딘가를 돌아다니던 아버지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아홉 시가 넘어 열 시가 되어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공원에서 내려와 집으로 왔다. 자신이 아버지를 내다버린 것이라고 가슴을 치며 소주를 마시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그 다음날은 시장골목을 찾아다니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인쇄소에 들러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고 전봇대에도 붙이고 공원의 나무, 화장실 벽에 붙였다. 그러나 전단지의 효과는 전무했다. 어디에고 소식이 오는 데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불안만 가중될 뿐, 아버지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점점 침몰되고 있었다. 그렇게 보름이 흘렀다.
아버지가 사라진 날부터 불면의 밤은 지속되고 그의 회로마저도 엉기고 꼬이는 듯했다.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잠이 들지 못했다. 술이 취하면 아버지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고 깨고 나면 가슴에 찬바람이 일었다. 허탈, 말 그대로 허탈했다. 이대로 아버지를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해답을 건지지 못하고 있다. 새벽 세 시가 넘어서 소주 한 병을 비운 그는 아버지 속에 웅크리고 잠이 든 모양이다. 머리맡에 둔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 새벽에, 혹시 아버지에 대한 전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자 전화를 받는 손이 후들거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아버지의 제보에 대한 전화였다.
잠이 들깬 목소리로 상대를 두드리자 경찰서의 무슨 지구대라고 밝히고는 오늘 새벽에 무성천 체육공원에서 죽은 노인이 발견되었는데 인상착의가 신고한 내용과 비슷하니 와서 확인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술기운이 남은 그의 뇌리에 한차례 번개가 후리치고 지나갔다. 직감적으로 아버지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압도했다.
-어디....... 어디로 가야 되는 거죠?
자신도 모르게 더듬거리고 있었다.
-시신은 119에서 재건병원 안치실로 옮겨 놓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담담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일단 아내를 깨웠다.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후딱 가서 확인하고 아버지가 맞으면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고는 바지만 꿰어 차고는 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새벽이라 차는 그리 밀리지 않았다. 두어 군데 신호를 위반하고 병원 병원마당에 도착했다. 급한 김에 고물차를 주차통로에 삐딱하게 세워놓고 키를 꽂아둔 채 영안실을 찾았다. 경찰이 이 병원 어디로 오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일단 지하에 있는 영안실로 들어갔다. 경찰들은 보이지 않고 그곳을 지키던 직원이 급하게 들어서는 그의 차림새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말했다.
-사체 확인하러 오셨습니까?
그렇다고 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직원이 앞장섰다. 영안실에서 화장실 옆에 달린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긴 복도가 연결되어 있었다. 앞장 선 직원은 복도 중간쯤에 있는 철문을 열었다. 사체는 아직 냉동고에 넣지 않고 바퀴가 달린 침대에 눕혀져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부친이 맞는지 보세요.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말을 하며 직원은 사체의 얼굴 부분에 가린 흰 천을 들추어 주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한눈에 보아도 아니다. 아버지가 아니다. 죽은 노인은 백발이 성성하고 머리카락이 길다. 그의 아버지는 얼마 전에 머리를 깎았다. 목욕시키기도 번거로워 전동면도기로 숱이 적은 아버지의 머리를 박박 밀었다. 그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라고 직원은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말을 하며 흰 천으로 사체를 다시 덮었다. 그는 옹골차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망이다. 정정하자. 그건 실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아버지가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의 한숨, 안도의 한숨이었다. 그는 전단지에 아버지가 머리를 밀지 않았을 때의 사진이 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치실에서 나와 병원마당에 급하게 주차해둔 차에 올라앉았다. 우선 담배부터 한 대 물고 생각했다. 머리를 깎은 모습의 사진이 찍힌 전단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가? 아버지는 머리를 깎고 찍은 사진이 없다. 그 사진을 찍으려면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아버지를 찾으면 전단지를 만들 필요가 없다. 뭐가 이래? 그때 주머니에 든 전화벨이 울렸다. 성질이 급한 아내가 전화를 한 모양이다. 담배를 문 채로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시시오.
아내가 아니었다.
-어디시죠?
-여, 여기 말바우, 희, 희식이 전화가 맞, 맞지요.
말을 심하게 더듬는 상대방은 말바우의 재종숙이었다. 말을 더듬는 걸 듣고 말바우의 재종숙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말바우는 그가 나고 자란 고향마을이다. 아직 그가 나서 자란 집이 비어 있지만 그곳에 들른 지가 몇 년이나 되었다. 당숙이 돌아가시고 문상차 가고는 한 번도 들른 적이 없었다. 재종숙의 목소리를 들으니 고향을 너무 등한시 한 것 같아 죄스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예! 제가 희식입니다. 근데 아재가 어쩐 일이세요. 이 새벽에.......
-아따! 이 사람아! 자네 전, 전, 전화번호를 몰라서 애를 먹었네. 그건 그렇고 자네 아, 아, 아버지를 어, 어, 어쩔 심산인가?
아버지를 잃어버렸다는 소문이 말바우까지 흘러들어간 모양이다. 말문이 막힌 죄인이 되었다. 그도 재종숙처럼 더듬거렸다.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지, 지금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꼭, 꼭 찾을 겁니다.
-거, 거기 아니고, 자네 아버지가 말, 말바우에 왔어. 근, 근 열흘 되었을 걸. 혼자 사는 몰골이 말이 아니여!
그는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요?
-자, 아이쿠 답답햐! 자, 자네 아버지가 말바우 빈집에 혼자 살림을 차렸다고.
끊지 않은 전화기에서 재종숙이 더듬거리며 뭐라고 했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담배를 문 채 물끄러미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무슨 정신으로 차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기까지 가셨을까? 마지막으로 남은 회귀나 귀소본능이 방전된 아버지의 정신을 이끌었던 것일까? 아버지는 마침표를 찍으러 고향을 찾은 것이 아닐까? 아니면 생의 꼭지, 정점을 향해 방전된 정신으로 걷고 또 걸었을까? 아버지의 정점은 도대체 어디일까? 가끔 정신이 드는 아버지가, 만약, 만약에 모시러 가지 않으면 마침표를 도돌이표로 바꾸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실까? 아니, 아버지가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게 도돌이표가 아닐까? 말바우 집은 폐허가 되어 사람이 기거나 할 수 있을까? 고향집을 내려 앉히던 꿈이 심상찮다고 했는데 왜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을까? 온갖 생각이 순간적으로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훑고 지나갔다. 아버지를 찾았다. 분명히 아버지를 찾았다. 그는 조수석에 남은, 붙이고 돌리던 전단지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이 전단지는 이제 필요가 없다. 머리를 깍은 아버지의 사진도 필요가 없고, 아버지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자 전단지를 힘주어 움켜쥐었다. 무게가 없이 가벼운 아버지, 구겨진 아버지가 그의 주먹 속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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