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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초대교회 시대 6 – 고린도전서.
서 론
1.역사상 인류 최대의 선교사는 사도 바울이었다.
과거에는 바리새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던 이 사도는 3차에 걸쳐 전도 여행을 하였으며 그동안에 신약성서에 나오는 12개의 지역 교회를 세웠다. 이리하려 과거에는 양떼를 진키는 훌륭한 경비견이 되었다.
2.신약성서가 기본적으로는 바울이 세운 교회들 중 몇 교회와 그곳의 목회자에게 보낸 편지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서신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로마에 보내는 편지(로마서)
(2)에베소에 보내는 편지(에베소서)
(3)골로새에 보내는 편지(골로새서)
(4)빌립보에 보내는 편지(필립보서)
(5)갈라디아에 보내는 편지(갈라디아서)
(6)데살로니가에 보내는 두 통의 편지(데살로니가전.후서)
(7)디모데라 하는 목자에게 보내는 두 통의 편지(디모데전.후서)
(8)디도라 하는 목자에게 보내는 편지(디도서)
(9)고린도에 보내는 두 통의 편지(고린도전.후서)
그런데 바로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다. 즉 27권의 신약성서 가운데 적어도 12권은 바울이 그의 사랑하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이라는 것이다.
3.바울은 소위 현대의 '기독교 운동'들과 같은 것을 할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현대의 기독교 운동은 지역 교회에 대한 선교와 그것들의 중요성을 인정치 않고 깔보며 공공연히 무시하고 있다.
4.그가 교회에 보낸 서신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로마서이며, 고린도전서는 아마 그 다음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고린도전서가 그리스도와 믿는 자들의 부활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며(고전 15장),다른이유가없다고 할지라도 바울이 쓴 것 가운데 가장 장문의 편지로써 엄청나게 큰 분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5.현대의 지역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중 고린도전서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문제는 거의 없다. 고린도 교회는 다음과 같은 신학 및 인간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1)세례에 관한 교리 왜곡(고전 1장)
(2)그들이소유한지극히 작은 인간의 지혜를 자랑함(고전 1장)
(3)철저하게세속적임(고전 3:1)
(4)자신을 기만함(고전 3:18)
(5)육체를 더럽힘(고전 3:17)
(6)자만에 빠짐(고전 4:18)
(7)소름끼치는 비도덕적 사건을 용납함(고전 5:1)
(8)이방 법정에 서로를 고소함(고전 6:1)
(9)결혼관의 혼란(고전 7:1)
(10)그리스도의 자유에 관한 가르침을 남용함(고전 8:9)
(11)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복을 제대로 갖추지 않음(고전 11:6)
(12)주의 만찬을 우로함(고전 11:30)
(13)성령의 은사, 특히 방언의 은사를 타락시킴(고전 14장)
(14)부활문제에대한 그릇된 인식(고전 15장)
(15)연보를제때에 하지 않음(고전 16장)
예컨대죄가말이라고 한다면 이 교회는 여물통으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의 설립 배경
1.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에 설립하였다.
2.사도행전 18장은 "개척"예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전도 여행을 떠났다(행 15:40).
(2)루스드라에서 그들은 디모데를 선발하였다(고전 16:1).
(3)드로아에서 바울은 마게도냐인에 관한 환상을 보았다(행 16:9).
(4)빌립보에서 '루디아'라 하는 여인과 귀신 들린 소녀 그리고 간수 등 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행 16:14-34).
(5)빌립보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건너갔다(행 17:1).
(6)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갔다(행 17:10).
(7)베뢰아에서 아덴으로 갔다(행 17:15).
(8)아덴에서 마침내 고린도로 갔다(행 18:1).
3.고린도에서 바울은 곧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났다.
4.회당장 그리스보가 구원을 받았다(행 18:8).
5.하나님이 환상 중에 바울을 위로하셨다(행 18:9).
6.바울은 고린도를 떠나기 전에 적어도 18개월 간 그곳에 체류하였다(행 18:11).
7.그 다음에 고린도 교회의 목회자는 '아볼로'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게 된 배경
1.주후 53년 여름에 바울은 틀림없이 홀로 제3차 전도 여행을 떠났다(행 18:23).
2.그는 에베소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3년을 지냈다(행 18:10).
3.에베소에 있는 동안 그는 고린도 교회의 비극적 상황을 전해주러 온 대표자 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4.마음이 무거워진 바울은 앉아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하였다.
고린도전서의 분해
I.서언:바울의 인사(고전 1:1-10)
1.바울과 소스데네가 안부를 전한다
이 소스데네는 사도행전 18:17에 언급된 소스데네와 동일 인물인 듯하다. 그는 에베소 회당의 책임자였고 바울을 대적하여 소요를 일으켰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였고 그 자신이 성난 헬라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이로 인하여 그가 구원을 받게 된 것 같다.
2.바울은 "각처에서......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편지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2).
따라서 이 서신은 그로 인하여 믿게 된 다른 곳의 성도들을 포함한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기록된 것이었다(참조, 살전 5:27; 골 4:16).
3. "주 예수 그리스도"(고전 1:3)라는 위대한 이 이름은 고린도전서 1:1-10 사이에서만 무려 여섯 번 언급되고 있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고린도 교회가 숭고한 이 이름을 높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지역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가 있다.
4."너희가......모든 구변과 지식에 풍족하므로 ......"(고전 1:5).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진리를 알았고 또한 진리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를 전혀 실천하지 않았다.
5."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성서에는 18개의 은사가 기록되어 있다. 확실히 고린도 교회는 이 모든 은사를 다 받았던 것 같다.
6.고린도 전서 1:8은 성서 전체를 통하여 "믿는 자들의 안전"에 관한 가장 위대한 선언 가운데 하나이다. 거기에 사용된 말씀을 살펴보자.
1."견고케 함."
이것은 확고히 서게 하여 절대적으로 안전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한 동사가 로마서 15:8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구약성서에 나타난 약속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셨다고 하였다.
2."책망할 것이 없는."
이것은 법률용어로서 '법정에 소환되지 않는, 고소를 당하지 않는, 비난당하지 않는' 등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죄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소당할 것이 없음을 뜻한다.
3."그리스도의 날에......끝까지."
이것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을 의미한다.
결론:바울은 기록상 가장 세속적이고 혼란스럽고 이기적이며 타락에 빠진 교회들 가운데 한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들이 불행한 처지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보호 때문에 그들은 마침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었다.
7."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하나님의 실실하심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함에 있어서 신실하시다.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 나의 거룩한 기름을 부었도다......나의 성실함......이 저와 함께 하리니 원수가 저에게서 강포치 못하며 악한 자가 저를 곤고케 못하리로다"(시 89:20,22,24).
2.하나님은 시험 당할 때에 신실하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3.하나님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을 지켜주심에 있어서 신실하시다.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리라"(살전 5:23-24).
4.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징계하심에 있어서 신실하시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았음이니이다"(시 119:75).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 12:6).
5.하나님은 자백한 죄를 용서해 주심에 있어서 신실하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6.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심에 있어서 신실하시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시 143:1).
이처럼 그들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또한 그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는 구원은 확실한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이 이 편지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바울이(다른 교회에 보내는 서신들과는 다르게) 고린도 교인들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과거와 미래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8."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고전 1:9).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교제에 대해 전세계를 향하여 말하고 쓰고 노래하기를 좋아하며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에 깊이 새겨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교제에는 또한 고난이 따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 3:10).
우리들은 죽으심을 본받지 않고 앞의 것들을 누리기 원하는 때가 너무 흔한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부활의 권능이란 있을 수 없다.
9."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고전 1:10).
그리이스의 학자 바인(W.E.Vine)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 공동체의 통일성이 비극적인 분열을 겪게 될 수 있는 네 가지 단계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열거하였다.
1.스타시스(stasis)-강한의견대립, 불일치(참조, 행 15:2;행23:7,10).
2.디코스타시아(Dichostasia)-지속적인 대립(참조, 갈 5:20; 롬 16:17).
3.쉬스마(Schisma)-심각한 분열, 갈라짐(참조, 고전 11:18; 요 7:43;요9:16;요10:19).
4.하이레시스(Hairesis)-완전히 고착된 분열(참조, 행 5:17;행24:5,14;행26:5; 벧후 2:1; 딛 3:10).
바울이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세 번째의 '쉬스마'이다. 그러므로 이는 고린도 교회가 완전한 분열의 위기에 처해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10."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이 표현은 헬라어의 카타르티조(katartizo)를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이외에도 신약성서에서 세 번 사용되고 있다.
1."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3).여기에서 katartizo는 '지어진'으로 번역되어 있다.
2."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 여기에서 그 말은 '예비하셨다'로 번역되어 있다.
3."거기서 더 가시다가......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마 4:21) 이 마지막 구절에서 그것은 '깁다'로 번역되어 있다.
위의 세 경우가 보여주는 요점은 바로 이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교회의 성도들이 다음과 같이 서로 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1)해, 달 및 별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완전하게 합해야 한다(히 11:3).
(2)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입을 몸을 만드신 것처럼 온전하게 되어야 한다(히 10:5).
(3)기워진 그물처럼 온전하게 되어야 한다. 여러 가지 문제들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교회에서는 영혼들이 구원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단지 그물이 찢어져 있어서 그들이 도망갈 수 있다고 하는 한 가지 사실 때문이다.
II.보고(고전 1:11-6:20). 바울은 교회에 관한 보고에 답변하고 있다.
관한 보고에 답변하고 있다.
1.그들은 인간 지도자들을 추종하고 있었다(고전 1:11-17).
바울은 그가 받은 정보의 출처를 밝힘으로써 서두를 시작한다."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고전 1:11).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서명이 없는 비판적 편지를 매우 자주 받곤 하였는데 그것들은 목회자나 교우 중 어느 사람을 헐뜯는 내용의 것들이었다. 이름도 없고(줏대도 없는) 교인들의 입에서 나온 험담들 때문에 그들 자신의 교회가 파멸에 이르게 되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었던가!
고린도전서 1:12에서부터 17절에 이르기까지에서 바울은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세례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하여 쓰고 있다. 그 이후로 참으로 많은 교회들이 세례 문제 때문에 양분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그 형식이나 목적이 아니라, 이들 고린도 교인들에게 세례를 준 서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1.바울은(실제로 극소수의 사람이기는 하였지만)그가 고린도 교회를 세웠을 때 몇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2.후에 아볼로가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였고 또한 일부의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3.베드로(게바)도 몇 명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이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4.이러한 명단 중에는 그리스도도 또한 포함되어 있다. 베드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실제로 세례를 주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때와 장소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여하튼 신약성서에 나오는 이 지역 교회는 네 개의 파로 분열되어 있으면서, 그들에게 세례를 준자로 인하여 다른 세 파보다 자기 파가 더욱 우월하다고 서로 주장하는 절망적 상태에 있었다.
5.바울파:이 파의 '주장' 근거는 이렇다. "우리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그러므로 너희보다 우월하다. 바울이 위대한 교리 설교자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유의한 것이다.
6.아볼로파:이들은 아마 이렇게 반박했을 것이다. "우리는 아볼로에게 속한다. 그리고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볼로는 유창한 설교자이며 언제든지 바울 주변의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7.게바파:그 다음에 이들은 다음과 같이 응수했을 것이다. "우리는 게바에게 속한다. 너희들은 교리와 유창함에 대해 마음대로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만큼 현실적이며 실천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8.그리스도파:이들 네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교만한 영적 기원을 자랑하고 다른 세 파의 사람들을 멸시하며 짐짓 경건하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지도하고 먹여줄 인간적 설교자를 전혀 의지하지 않는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뇨"(고전 1:13). 우리는 바울이 맨먼저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어떤 그룹이 잘못을 범하였다면, 특히 그들이 어떠한 모양으로든 당신과 대립하고 있다면, 그들을 책망하기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당신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자들을 혹독하게 비난한다는 것은 매우어려운 일이다. 바울이야 말로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진정으로 다 팔아버린 자였다!
제임스 보이어(James Boyer)박사는 고린도전서 1:16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고린도전서 1:16에는 아주 흥미있는 예외가 소개되고 있다. 바울은 갑자기 그가 세례를 준다른 사람, 곧 스데바나가 있음을 기억해 낸다. 고린도전서 16:15, 17에서 우리는 스데바나가 고린도에서 바로 얼마 전에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바울이 이 편지를 구술하였을 때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스데바나는 바울을 자극하여 바울이 그에게 세례를 주었음을 상기시켰으리라. 만일 바울이 스데바나를 거의 잊고 있었다면, 그가 세례를 베푼 다른 사람들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다른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고 하여 그것이 영감의 교리를 반증하는 것은 아니다. 영감이란 각 저자의 독특한 문체와 성격을 방해하지도 않으며 또한 영감으로 인하여 전지(全知)해 지는 것도 아니다. 영감이란 기록된 것이 주께서 기록되기를 원하신 것임을 보증하는 것이다"([우리와 같은 세계를 위하여],p.32).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라"(고전 1:17). 아마도 이 구절은 성서 가운데서(구원 받으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비성서적으로 가르치는) 세례에 의한 중생 교리를 가장 강력하게 반박하는 말씀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세례주는 것을 금하셨다고 바울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때때로 그로 인해 회심한 자들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행 16:15,33;18:8;19:5). 여기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세례란 그리스도 복음의 본질이 아니라는 바로 그것이다. 이 편지 후반부에서 바울은 복음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은......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1,3,4). 그렇다면 이것만이
유일한 복음이다.
2.그들은 세상 지혜를 좋아하고 있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러한 것의 어리석음을 지적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랜 전에 인간의 지혜를 거부하셨기 때문이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을 폐하리라"(고전 1:19;참조, 욥 5:12사 29:14).
고린도전서 3:19에서 바울이 "(하나님께서)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계에 빠지게 하셨다"라고 쓰고 있음을 주목하라. 이러한 궤계에 대한 신약성서의 전형적인 세 가지 예를 들어보자(요한의 세례에 관한) 마태복음 21:23-27,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에 대한) 요한복음 8:1-11 등이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하신 지혜에 따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오히려 십자가를 택하셨다.
1.하나님의 계회에 대한 반응
(1)"그것은 어리석은 자의 계획이다."(이는 구원받지 못한 자의 결론이다.참조. 고전 1:18)
(2)"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이다."(이는 구원받은 자의 결론이다. 참조, 고전 1:18).
.주(註):헬라어 원문에 따라 그것은 직역하면, 불신자들은 '멸망해가고 있으며'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즉 구원과 저주가 모두 '현재 시제'로 표현되어 있다(구원받지 못한자에 대해서는 요 3:18,26을 참조). 구원받은 자에 대해 신약성서에서는 그들의 구원을 세 가지 시제로 나타내고 있다.
1)과거시제-고전 1:18(칭의, Justification).
2)현재시제-롬 5:29(성화, sanctification).
3)미래시제-롬 5:9(영화, glorification).
해리 아이런사이드(Harry Ironside) 박사는 어떤 낯선 사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유명한 목사님은 답하기를 "물론이지요, 나는 과거에 구원받았고, 현재도 구원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구원받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2.하나님의 계획의 결과
(1)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걸림돌이었다(고전 1:22-23;참조, 마 12:38;마16:1; 눅 2:34).
.주(註):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어떤 표적들을 그들에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거절하였던 것이다(참조, 요 3:2;20:30; 행 2:19,43 행5:12).
(2)'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 그것은 분별없는 것이었다(고전1:22-23;참조,행17:21,32)
(3)단순히 받아들이고(다른 것을 구하지는 않는)모든 성도들에게 그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고전 1:30).
3.하나님의 계획의 이유(고전 1:29).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하심이라."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심에 있어 다음의 것들을 택하시기를 기뻐하셨다.
(1)세상의 어리석은 것들
1)피흘리는 어린양(출 12장)
2)갈라진바위(출 17장)
3)놋뱀(민21장)
(2)세상의약한것들
1)애굽인들을 물리친 지팡이(출 4장)
2)힘센거인을굴복시킨 물매(삼상 17장)
3)블레셋군대를격퇴시킨 나귀뼈(삿 15장)
(3)세상의천한것들
1)능력의 사사가 된 한 창녀의 아들(삿 11장)
2)다윗의증조모가 된 이방 여인(룻 4장)
3)위대한구령자가 된 불륜의 여인(요 4장)
-주(註):바울은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와 명성을 선택하지 않으셨음이 좋은 일임을 적절하게 상기시키고 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아니하며 분별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위대한 요한 웨슬레는 그가 선교를 하는 동안에 레이디 헌팅턴(Lady Huntington)이라는 영국 상류 사회의 귀부인에게서 때때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그리스도에게 자기의 시간, 재능 및 재산을 매우 많이 바쳤던 이 아름다운 여인은 종종 이렇게 증거하곤 하였다.
"나는 M이라는 글자 때문에 가까스로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 바울이 귀족들은 누구(any)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소수의(not many) 귀족들이 부름을 받았다고 말한 것을 나는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리하여 나는 M이라는 글자 때문에 겨우 하는 나라로 가고 있는 것이다!"
4.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회고(고전 2:1-13)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기간 중 그가 고린도로 여행한 것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바로 그때 그는 거기에 교회를 세웠던 것이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다음의 사실들을 회상하게 한다.
(1)십자가의 메시지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고전 2:1-6).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도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1-4).
고린도를 방문하기에 앞서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헬라 철학자들과 논쟁을 하였었다(행 17:16-34). 여기에서 그는 철학, 시 및 역사를 성서의 위대한 진리와 함께 사용하여 유창하고 힘있게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그렇지만 그 설교는 거의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물론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즉 고린도전서 2:1-4에서 사도 바울은 그 이후로 항상 성령만을 의지하여 웅변, 철학 등은 절대로 의지하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체적인 것이며 그것은 분명히 신경쇠약의 결과라고 생가하기도 한다(참조, 고후 7:5).
(2)십자가의 메시지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정해진 것이었다(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3)십자가의 메시지는 이 세상에 있는 후사들을 위해 예비되었다(고전 2:9-13).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3.그들은 육신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고전 2:14-3:7).
이 유명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을 영적 상태에 따라 아래와 같이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1.육에 속한 사람(자연인, 고전 2:14):프슈키코스(psuchikos)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전 2:14).
(1)(그는 매우 악할 지도 모르나) 완전히 타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 하는데 있어서는 완전히 무력하다(행 8:31).
(2)따라서 그는 성서가 무의미한 책이라고 결론을 내린다(참조, 행 17:18,32;행 26:24).
(3)그는 죽은자이며 반드시 부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소생될 수 없기 때문이다(참조, 롬 5:12; 엡 2:1).
2.젖먹이(육신에 속한 사람, 고전 3:1-4):사르키코스(sarkikos).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 3:1). 육신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그는 신생아와 같아서 힘이 없다. 여기에 사용된 '갓난아이'(한글 개역에는 '어린아이')
의 헬라어는'네피오스'(nepios)인데 그 말에는 언어 능력도 없으며 미숙하고 서툴다는 악함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상태는 에베소서 4:14에서도 묘사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참조, 갈 4:3; 벧후 1:9)
(2)그는 젖 외에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다(고전 3:2). 이러한 상태는 언제나 그들의 유치함 또는 연약함을 나타내고 있다. '젖'이란 잠시동안만 유용한 것이며(벧전 2:2), "단단한 식물은 성장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한다"(히 5:14;참조, 히 5:11-13).
(3)그는 마치 구원받지 못한 사람처럼 행하고 말한다.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믿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날카로운 물음을 당연히 고려해 보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체포당하고 고소 당한다면, 유죄로 선고받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당신에게 있는가?" 고린도 교인들은 대부분이 무죄로 판명되어 석방되었을 것이다.
(4)그들은 영적 진리들이 아닌 영적 지도자들을 비교하였다(고전 3:4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고전 2:13을 참조하라). 바울은 이러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니은 자라게 하셨나니"(고전 3:6). 오직 하나님만이 이를 행하실 수 있다(참조, 왕상 18:30-38).
3.정복자(영적인 사람, 고전 2:15):프뉴마티코스(pneumatikos)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아니하느니라."
영적인 사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경건한체 하지 않음
(2)(두뇌, 체력, 배경, 경제력 등에서)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음
(3)선풍적 인기를 끌지 않음
(4)설탕과 같이 달콤하지 않음
(5)(예의 범절에) 엄격하지 않음
(6)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하지 않음
(7)피상적이 아님
(8)줏대없는 자가 아님
(9)영적임. 영적이라 함은(하나님의 율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과 조활르 이루는 것이다(롬 7:14). 따라서 신령한 자는 성령이 지시하는 대로 행하고 성령의 통제를 받는 자를 말한다(참조, 고전 15:46; 갈 5:16,25). 따라서 그는 "모든 것을" 홇게 판단할 수 있다(고전 2:15;참조, 딤전 2:15;이는 베드로후서 3:14-17과 상반되는 것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라고 선언한다(고전 2:16). 모든 성도들이 신분상으로는 이를 소유하고 향유할 수 있으나(고후 5:17), 실제로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은 신령한 자이다(빌 2:5)
4.그들은 미래에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고전 3:8-23).
1.베마(bema)심판의 의미.(베마는 흠정역에서 심판대, 심판석 등으로 번역됨) '베마'라는 헬라어는 바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것이었다 레만 스트라우스(Lehman Strauss) 박사릐 설명을 들엉보자.
"올림픽 대경기장에는 대회의 심판관이 앉는 높은 좌석이 있었다. 경주가 끝난 후에 승리자들은 상 또는 월계관을 받기 위해 베마 앞에 정열할 것이다. 베마는 어떤 사람을 정죄하기 위한 재판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시상대였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재판석이 아니다......그리스도인의 삶은 경주와 같은것이며 거룩한 심판관은 모든 경주자들을 지켜보고 계신다. 교회가 달려갈 길을 다 마친 후에, 그리스도는 각 사람을 시험하고 각자에게 합당한 상을 주기 위해 모든 경주자들을 베마 앞에 모을 것이다"([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p111).
2.베마 심판의 사실성. 신약성서 가운데에는 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내게 끓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0-12).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3).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3.베마 심판의 목적
(1)소극적 측면
1)베마 심판의 목적은 특정 개인이 천국에 들어가는가 못들어가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영원한 운명은 이미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2)베마 심판의 목적은 믿는 자들이 구원받기전이나 구원받은 후에 번한 죄에 대해 그들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자녀는 이 땅위에서의 삶 이후에는 그가 범한 죄에 대해 전혀 책임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0-12).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
"내가 네 허물을......네 죄를 도말하였으니......"(사 44:22).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히 8:12).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2)적극적 측면. 그렇다면 베마 심판의 목적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4:2에서 바울이 말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로서 행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후에 사도 베드로도 일와 유사한 말을 한 바가 있다.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봉사하라"(벧전 4:10).
신약시대에 청지기란 대저택 혹은 재산을 관리하는 자였다. 주인은 그를 임명하고 재산을 원만하게 경영하도록 위임하였다. 그에게는 고용 및 해고, 소비 및 절약의 권한이 있었으며, 그는 오직 주인에게만 책임을 질 뿐이었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주인과의 정기적 만남이었다. 왜냐하면 이 때 그는 그때까지의 재산 관리 상태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염두에 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심판대에서 모든 청지기들은 주님 앞에 서게 되고 그들이 회심한 때로부터 자신들의 특권과 책임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대해 설혐해야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과거에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으로서 대하셨다(엡 2:1-3; 고전 6:9-11; 롬 5:6-8).
2)현재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로서 대하신다(롬 8:14; 히 12:5-11; 요일 3:1-2).
3)미래에 하나님은 우리를 청지기로서 대하실 것이다.
4.베마 심판에서 시험받을 소재들.
고린도전서 3:11에서 사도 바울은 영광스러운 사실, 즉 구원받는 순간에 회개한 죄인은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과 장사, 그리고 부활의 기초 위에 견고하게 서게 된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바울이 구원받은 후에 계속해여 가르친 것은 일어나 이토대 위에 굳게 서라는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터를 닦아두매 다른 이가......어떻게 그 위에 세우는가를 조심할찌니라......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0,12,13).
(1)소극적 측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본문이 연옥설로 알려진 그릇된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은 믿는 자의 공력이지 믿는 자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2)적극적 측면. 이 구절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행한 일을 여섯가지 종류 즉 금, 은, 보석, 나무,풀, 짚 중의 하나로 분류하신다는 것이다. 하는 나라에서 금과 은을 이루게 될 땅 위에서의 공력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러나 위의 여섯가지는 크게 두 개의 범주로 분류될 수 있음을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불 가운데서 타지 않고 남아 더욱 번성하게 될 불멸의 귀중한 것들. 여기에 속하는 것은 금과 은과 보석이다.
2)불에 완전히 타 없어져 소멸될 무가치한 것들. 여기에 속하는 것은 나무, 풀 그리고 짚이다.
(3)무엇이 '금과 같은 일'이고 무엇이 '짚과 같은 일'인지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 영역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
1)우리가 다른 믿음의 형제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1-42).
2)우리의 권위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행사하는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히 13:17).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약 3:1).
3)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능력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그러므로 내가......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라"(딤후 1:6).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4.11).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이 구절들 외에도 예수님의 열 므나의 비유(눅 19:11-26)와 달란트의 비유(마 25:14-29)의 교훈이 있다.
4)우리의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매주일 첫 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라"(고전 16:1).
5)예수님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는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1-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중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6)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헵 5:16).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롤 4:5).
"외모로 보시기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7)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특별한 경주를 달렸는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14).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함이라"(빌 2:16).
8)우리의 옛 사람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어했는가?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5-27).
9)얼마나 많은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했으며 또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였는가?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 11:3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10)시험받을 때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11)주의 재림의 교리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8).
12)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양떼들에 대해 얼마나 신실하였는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2-4).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딤후 4:1-2).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6-28).
5.그리스도의 베마 심판의 결과.
(1)어떤 사람들은 상급을 받을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으리라"(고전 3:14).
성서는 적어도 다섯 종류의 살급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앞 장에서 이미 간략하게 기술한 바가 있다. 상급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1)썩지 아니할 면류관-옛 사람을 벗어버린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고전 9:25-27).
2)기쁨의 면류관-구령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잠 11:30; 살전 2:19-20).
3)생명의 면류관-유혹을 잘 이겨낸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약 1:2-3; 계 2:10).
4)의의 면류관-특별히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딤후 4:8).
5)영광의 면류관-신실한 교사와 전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벧전 5:2-4; 딤후 4:1-2; 행 20:26-28).
이러한 "면류관들"은 실제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할 수 있는 재능과 능력일 것이라고 생각되어져왔다. 따라서 받을 상급이 크면 클수록 재능도 더욱 커진다.
(2)어떤 사람들은 버림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고전 3:15).
'받는다'는 말은 헬라어로 제미로(zemioo)이며, 그 말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다시 한번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구원받기 이전의 그에게 가장 큰 자랑거리였던 모든 것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5-6).
그러나 회심한 이후에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고전 3:8)라고 하였다. 이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즉 심판에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바울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성취한 많은 것들을 잃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대한 예외가 하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를 받았기 때문에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타버린 나무, 풀, 짚을 대신할 것을 아무 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이 장을 끝맺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땅 위에서 어떤 보상을 받은 사람이 육신에 속했다고 해서 그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혹자는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근거로 이러한 일이 비극적이기는 하지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리"(요이 8)
"내가속히임하리니내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누구든지 (너를 미혹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롬:18).
(3)고린도전서 3:14-17에는 실제로 세 종류의 건축자 명단이 열거되어 있다.
1)지혜로운 건축자(고전 3:14).
2)세속적인 건축자(고전 3:15).
3)악한 건축자(고전 3:17).
물론 악한 건축자는 심판대 앞에 서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크고 힌 심판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이다(계 20:11-15). 고린도전서 3:17의 '멸한다'는 말은 헤라어로 프테이로(phtheiro)이며, 신약성서에서는 거짓 교훈과 타락한 교사들에 대하여 종종 사용된다(참조,고전 15:33;엡 4:22;벧후 2:12;계19:2). 또한 여기에서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은 우리들은 비단 우리가 행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하려고 했다면 할 수 있었던 것(계 3:1-3;눅 12:48;고전 4:1)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행해야 했던 것(마 26:41;왕상 8:18)에 대해서도 해명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6.구약성서는 그리스도의 베마 심판의 전조이다. 교회라는 말은 구약성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나, 베마 심판에 아주 쉽게 적용시킬 수 있는 구절들이 있다. 이러한 것을(그리스도의 그림자인) 보아스가(교회의 그림자인) 룻에게 한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말하기를 "......네가......행한 모든 것이......내게 분명히 들렸느리라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 2:11-12).
5. 그들은 스스로 교만하였다(고전 4:1-21).
고린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지역 교회에서 그들이 갖는 권위 때문에 교만에 사로잡힌 것 같다. 바울이 아래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여 이처럼 죄악된 태도를 시정하려고 하였다.
1.여섯 개의 회화적 예증들
고린도전서 3장과 4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 해야 할 일을 말하고 있다.
(1)농부(고전 3:6):경작해야 함.
(2)건축자(고전 3:10):집을 지어야 함.
(3)청지기(고전 4:1):관리해야 함.
(4)아버지(고전 4:15):권면해야 함.
(5)교사(고전 4:17):가르쳐야 함.
(6)엄격한 훈련사(고전 4:21):바르게 잡아야 함.
2.두 개의 예언적 예증들
(1)베마 심판에 대한 예언(고전 4:3-5)
교만하게도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판단할 자유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1)남을 판단하는 일
2)자신을 판단하는 일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을"것이기 때문이다(고전 4:5).
(2)천년왕국에 대한 예언(고전 4:8-10).
바울은 여기에서 성서 전체를 통하여 가장 훌륭한 풍자 가운데 하나를 말하고 있다. 그는 말하기를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이 자랑하는 대로 천년왕국에서 실제로 다스리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확신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3.바울 자신의 삶에 대한 예증
(1)구세주를 위해 그가 받은 고난
1)그는 맞기도 하고(이는 주먹을 굳게 쥐고 때리는 것을 가리킴), 멸시를 당했으며, 욕을 먹었고 박해를 받으며 중상을 당하엿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한 그의 태도가 "후욕을 당한 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 즉 권면하니......"(고전 4:12-13)임을 주목하라.
2)그는 굶주림, 갈증, 헐벗음 등을 겪었으며 거처할 "정처가 없었다."
3)그는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고린도전서 4:12의 '수고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코피아오(kopiao) 인데 이는 피곤하여지칠때까지 일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생계비를 버는 것이 아니라 손이 닳도록 일하여 생계비를 버는 것이다(참조, 살전2:9;고후11:7).
4)그는 이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로 간주되었다.
5)그는 로마를 향한 승리의 행진 끝에 체포되어정죄받은 죄수로서 모든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말해두어야 할 것은 현재 우리 나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이란 아무도 그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것이다.
(2)성도들에 대한 그의 관심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 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 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 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4:14-16).
우리는 바울이 그들에게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권고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은 요청을 적어도 세 번에 걸쳐 하고 있다(참조, 고전11:1-2;살전3:9;빌3:17). 이러한 것에 비추어 볼 때, 목회자나 지도자가 그에게 속한 교인들에게 '내 생활을 닮으려고 하지 마라, 내 행동과 말을 본받지 마라, 사람으로 당신의 모범을 절대로 삼지마라,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라"라고 권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신실하다고 할지라도 이는 비성서적이다. 마태복음 5:13-16에서 예수님이 이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보라, 또한 "내가 너희를 낳았음"(고전4:15)이라는 바울의 말도 주목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말은 갈라디아서 4:19와 데살로니가전서 2:11의 말씀과 비교될 수도 있을 것이다.
6.그들은 징계하지 않았다(고전5:1-13).
1.징계의 필요성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잇다"(고전5:1).
음행은 헬라어로 포르네이아(porneia)이다. (이 말에서 영어의 pornograpy(음화)가 파생되었다). 바울은 그의 서신 가운데서 이 말을 17회나 사용하고 있다. 이중 고린도전서에서만 11회 사용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음란 죄에는 계모와의 성적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1)그는 교인이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1)그와 범죄한 상대자는 책망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에서 오직 교인이 범한 죄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 여인은 교인이 아니었던 것 같다.
2)바울이 그를 교회 공동체에서 쫓아내라고 명하였기 때문이다.
(2)그는 고소당한 대로의 죄를 범하였다. "......있다함을 들으니......"(고전5:1).
2.징계를 하지 않았음.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총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전5:2).그들이 교만하게 된 것은 죄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관용과 자랑 때문이었다. 때때로 관용이 곧바로 반역이 될 수가 있다.
바울은 그들이 이러한 비극을 보고도 애통해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였다. 공허한 고린도 교인들이 다음과 같은 성경의 충고에 얼마나 더 잘 귀를 기울였겠는가?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약4:9).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그러나 그들의 뻔뻔스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교회의 타락은 온유한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고 결국 그로 하여금 후에 다음과 같이 쓰게 하였다.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고후2:4).
3.징계할 수 있는 권위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함께 모여서"(고전5:4).
그리스도인 각자는 이웃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지말라고 경고를 받고 있지만(고전4:5),개인이 모인 교회는 참으로 이러한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참조, 마18:20).
4.징계의 절차.
신약성서는 징계를 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구체적 단계를 규정해 놓고 있다.
(1)1단계:"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마18:15). 첫 번째 단계에 있어서는 갈라디아서 6:1의 정신으로 행해야 한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2단계:"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마18:16).
(3)3단계:"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마18:17).
(4)4단계:"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돠 같이 여기라"(마18:17).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살후3:15).
5.징계의 중요성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함이라"(고전5:5).
이렇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서의 '멸하고'는 헬라어로 올레트로스(olethros)이며, 이는 어떤 것을 망치거나 훼손시키는 것을 말한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인 것 같다. "만일 이 친구가 즐겨 죄를 범한다면, 그때에는 그를 잠시 난폭하게 다루도록 하라. 그리하여 지역 교회의 기도와 말씀이 없는 이방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그로 하여금 맛보게 하라!"
따라서 성서를 믿는 지역 교회가 한 사람을 이처럼 내쫓는다면, 그것은 욥기 2:6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을 글자 그대로 성취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바울은 훗날 다른 두 사람에 대해 이처럼 단호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네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않는 것을 배우게 하려 함이니라"(딤전1:19-20).
6.징계의 이유
(1)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되돌아 오게하려는 것이다. 이 목적은 이루어졌으니 그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였기 때문이다(참조, 고후 2:6-8).
(2)죄가 교회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5:6). 누룩은 성서에서 악의 상징이다(참조, 마16:6;갈5:9).
(3)그리스도가 세운 기준을 신자를 지켜보는 세상에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참조, 행5:1-13).교회가 현대 세계에서 영향력을 별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세상이 교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7.징계의 정도
(1)소극적인 징계-교회는 외부 세계를 심판해서는 안된다. 즉 불신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카드놀이를 한다고 잔소리를 하거나 책망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한다.
(2)적극적인 징계-신약성서는 지역 교회의 공동체에서 내쫓아야 할 사람들이 적어도 세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1)항상 말썽을 피우는 사람9잠6:19;살후3:6,11,14).
2)비도덕적인 사람(예, 고린도전서 5장에 나오는 사람의 경우).
3)이단(즉 동정녀 탄생 등을 부정하는 사람. 딛3:10; 롬16:17-18).
7.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전6:1).
1.하나님 보시기에 이러한 행위는 합당치 못한 것이었다(고전6:1-7).
(1)그 이유는 그들이 당시에 재판에 회부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같은 성도들이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제도러서의 이곳 법정 체제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법정을 이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참조, 행25:10-11).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로 반목하는 성도들은 자신들의 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방 법정에 고소하지 말고 가능한한 그들 자신의 모든 수단들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그들이 장차 심판하게 될 자들은 곧 세상과 천사들이기 때문이다!(참조, 단7:18,22;마19:28;벧후2:4;삿6장;계20:4).
2.하나님 조시기에 이러한 행위는 불법적인 것이었다(고전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형제로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사소한 문제를 법정 밖에서 해결하려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법정에서 서로를 속이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3.하나님 보시기에 이러한 행위는 무절제한 것이었다(고전6:9-14).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고전6:12).
"모든 것"이라고 할 때 바울이 가리키는 것은 물론 모든 도덕적 일이다.'유익한'은 헬라어로 '숨페로'(sumphero)이며 그것의 문자적 의미는 '소집하다'이다(참조, 요11:50;16:7;여기에서도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고린도전서 6:9-10은 여러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한 고민거리가 되어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강조점은 9절의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11절의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이다(참조,엡2:1-2;엡5:5;딛3:3).
4.하나님 보시기에 이러한 행위는 부도덕한 것이었다9고전6:15-20).
(1)이는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렇게 자문자답한다.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전6:15).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불의한 세계 체제에 비성서적으로 자신을 관련시켜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부정한 성관계(고전6:18;딤후2:22), 돈(딤전6:10-11) 및 사회(고전10:14)에서 탈피해야 한다.
(2)우리의 몸은 성령의 거룩한 전이기 때문이다9고전6:19-20;참조, 벧전1:18-19).
III. 답 변(고전7-16장)
바울은고린도교회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다. 이들 나머지 장들에서 바울은 적어도 6개의 물음에 답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결혼이란 어떠한 것인가?(고전 7장)
1.이장의해석에는 여러가지 난점들이 있다.
약 100장에달하는바울서신 가운데 고린도 전서 7장의 이 부분 만큼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도 없다. 이 부분을 읽은 후에 다음과 같이 잘못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1.바울은 결혼 자체, 특히 여인들을 혐오하였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다(히 13:4;엡5:25-33;딤전 4:1-5;딤전5:14 등에서 그가 하고 있는 말을 참조하라).
2.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미혼자들이 기혼자들보다 항상 더 낫다고 가르쳤다. 물론 이것도 전혀 타당치 않은 것이다!(참조, 딤전 3:2,11).
3. 바울은 이 장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믿받침하는 증거로서 다음의 네 구절이 제시된다.
(1)"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고전 7:6).
(2)"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고전 7:12).
(3)"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고전 7:25).
(4)"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전 7:40).
4.이제 이 구절들을 간단히 하나하나 살펴 보기로 하자.
(1)'권도'라고 번역된 말의 문자적 의미는 '공동 의견'이며, 이는 아마 영감을 받은 바울과 소스데네의 '일치된 견해'를 말하는 것 같다. 여하튼 바울이 참으로 말하는 것은 이 의견이 명령이 아니라 신령한 견해라는 것이다(비교,롬 12:1).
(2)고린도전서 7:12는 7:10과 비교해 봄으로 잘 설명될 수 있다. 10절에서 바울은 주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친히 말씀하신 명령을 인용한다(참조, 마 19:6). 그러나 이 장에서는(한편은 구원받은 자들이고 다른 한편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인) 남편과 아내에 대한 권고가 나타난다. 이들에 대해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는 동안 아무런 명령도 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 하늘에서 영감을 받은 바울의 글을 통해 명령하시는 것이다.
(3)고린도전서 7:12에 대해 주어진 것과 동일한 답변은 고린도전서 7:25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4)여기서 '생각한다'는 말은 '확신한다'로 번역될 수 있다(고전 7:40;마 22:42;고전 8:2를 보라. 여기에서도 동일한 헬라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딤전 3:16;고전 2:4에 있는 바울의 말도 참조하라).
2.고린도전서 7장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
고린도전서 7장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난해한 장이다. 여하튼 다음 몇 가지 사실들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1.고린도전서 7장에서 16장까지는 고린도 교회가 바울에게 제기한 물음들에 대한 그의 답변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여기에는 답변들만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물을 질문의 내용을 알 수 있다면 그의 답변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리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알지 못할 어떠한 이유에서 하나님은 이러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시해 주지 않으셨다.
2.이 장의 어떤 구절들은 사도 바울이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교회에게 특정한 조언을 하고 잇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이 구절들 중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도 있으나 적용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특별히 고린도전서 7:7,26,29,38 등을 보라).
3.이 장에 나오는 여러 가지 내용들.
이것은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1.구원받은 자들끼리의 결혼(고전 7:1-11)
(1)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합당한 덕행"(한글개역에는 '분방(分房)하지 말라'로 되어 있음-역주) 문맥상 이것은 성적 권리에 대한 언급인 것 같다. 바울은 부부에게 상기시키시를 어느 누구도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는 결혼 후에는 자신에 대한 소유권이 자기에게만 있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한 편이 상대에 대하여 마태복음 20:15의 말, 즉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는 구절을 인용한다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배우자에 대하여 성적 권리를 속이는(즉 부정하는)것은 사탄의 유혹을 자초하는 것이다(참조, 고후 2:11; 벧전 5:8).
2.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자인 결혼(고전 7:12-24). 바울은 여기에서 한 가지 기본적인 권고를 하고 있으며, 그것은 성도가 불신자와 결혼한 경우 그는 가능하면 그 불신자와 함께 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하는 당위성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1)결혼이란 제도 자체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제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2)믿지 아니하는 자가 믿는 배우자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
3.미혼자들(고전 7:25-40)
(1)결혼하지 않은 채로 잠시 지나는 것이 최선일 경우가 있다(고전 7:27).
(2)결혼해서보다 독신으로서 그리스도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전 7:32-34).
(3)항상 그리스도인은 결혼할 것인가 아니면 독신으로 있을 것인가에 대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참조, 7:23-24).
두 번째 질문: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어떠한 것인가?(고전8-10)하나님의자녀로서 나는 죄와 죽음의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이것을 나는 내가 바라는 임의의 율법적인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바울은 이에 대해 세 가지를 예를 들어 답변한다.
1.세상 풍조의 에-고린도 교인들(고전8:1-13)
1.그들의 혼란 상태-고린도에는 많은 이방 신전들이 있었고 거기에서는 매일 수많은 고기들이 희생제물로 바쳐졌다. 이 고기 중 일부는 제사장들이 소비하였고 나머지는 여러 시장의 정육점을 통하여 판매되었다. 아마 그것을 한 번 사용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보다 싼값에 팔렸던 것 같다. 이렇게 팔리는 것임을 알면서도 믿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 고기를 사서 음식을 만들어 먹은 것 같다. 이러한 것을 보고 다른 여러 그리스도인들이 충격을 받았다. 이 때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되었다. 즉 구원받은 사람들은 전에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라는 것이다.
2.바울의 훈계
"식물은 우리를ㄹ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고전8:8;참조, 마15:11;롬14:17).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8:4).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3.결 론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그 다음에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래와 같이 권고한다.
(10걸림돌이 되는지 시험하라(고전8:1)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세운다'는 말의 헬라어는 '오이코도메오'(Oikodomeo)이며 이것은 집을 짓는 행위를 말한다(참조, 요2:20;마7:24). 신약성서가 가르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건축자는 자신을 세워야 한다(참조, 유1:20).
2)그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세워야 한다(참조, 살전5:11;롬14:19).
3)그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고전4:12).
'교만하게 한다'는 말은 신약성서에서 7회 나타나는데 그 중 여섯 번이 고린도전서에서 사용되고 있다(고전4:6,18,19,고전5:2;고전8:1;고전12:4). 각 경우에 있어 이는 세상 지식과 결부되어 있다. 다음의 세 인용문들을 주목해보라.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8:2).
"지식이란 무의식적 무지의 상태에서 의식적 무지의 상태로 옮겨 가는 것이다"채퍼(L.S.Chafer).
"나는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 자신에게있어서 나는 마치 바닷가에서 뛰놀며 즐거워하고 가끔 보통 것들보다 부드러운 조약돌이나 아름다운 조개를 찾는 소년과 같아 보인다. 반면에 진리의 대양은 미지의 것인 채로 내 앞에 펼쳐져 있다"-아이작 뉴우톤(Lssac Newton)
(2)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
성서는 그리스도인이란 적어도 다섯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1)세상 사람들 전체에 대하여(마5:16;딤전3:7).
2)직계 가족에 대하여(엡5-6장).
3)믿는자전체에 대하여(엡4:32).
4)특별히 약한 성도들에 대하여(롬1:1). 그러므로 성도는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한다.
ㄱ)약한 형제들이 자신들의 양심을 더럽히지 않도록 할 것(고전9:7,10).
ㄴ)약한 형제들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범죄하지 않도록 할 것(고전8:12).
5)지역 교회에 대하여(딤전3:10;고전10:32).
(3)그렇지만 사람이 옳고 그름을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성서는 우리의 행위가 다음의 두 가지 측면에서 그릇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
1)내적으로 이미 죄의 요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그릇된 것이다. 예를 들면 살인, 거짓, 간음, 도적질, 우상숭배 등이다.
2)죄의 요인을 후에 획득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들은 그 자체로서는 무해하지만 시대와 관습에 따라 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의 한 예는 화장품의 사용일 것이다. 그것은 과거에는 죄악된 것으로 간주되었으나,현재는(적절히 사용되기만 한다면)여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첫 번째 요소는 본질적인 죄이며, 두 번째 요소는 관습적인 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양자를 모두 피해야 한다.
2.사도 바울 자신을 예로 듦(고전9:1-27).
여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자기보다 더 많이 행사할 권한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지적한다.
1.그의 권리의 근거
(1)그는 사도이며 그리스도를 만나보았다(고전9:1;참조, 행9:17;고전15:18).
(2)그가 고린도에 고린도 교인들을 위한 교회를 세웠다(고전9:1-2).
2.그의 권리의 범위
(1)정당한 것은 무엇이든 먹고 마실 수 있음(고전9:4).
(2)결혼하여 가정 생활을 누릴 수 있음(고전9:5).
(3)그가 세운 교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음(고전9:6-11,13-14). 이것은 타당하고 적절한 것이었다.
1)'군사'는 돈을 받고 싸운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투사였다.
2)'농부'는 포도나무의 열매를 소유한다. 그런데 그는 많은 포도원을 경작하였다.
3)'목자"는 양떼의 젖을 나누어 먹는다. 그런데 바울은 수많은 어린 양을 양육하였다.
4)거룩한 일에 봉사하는 '제사장'은 성전내의 식물을 먹고 산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성직자였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14).
3.그의 권리의 사용 여부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고전9:12).
뒤이어 바울은 그가 왜 그의 모든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그런즉......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며......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은 구원받고자 함이니"(고전9:12,15,18,19,22).
그의 삶은 이러한 증언들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였다. 즉 다음과 같은 면에 있어서 그렇다.
(1)유대인들을 섬김에 있어서(고전9:20).
그는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는데 이는 그 지역의 유대인들이 그 청년의 아버지가 헬라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에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 군중들 앞에서 히브리어로 복음을 전하였다(행16,22장).
(2)이방인들을 섬김에 있어서(고전9:21).
그는 안디옥에서 메시지를 선포할 때 서서 하였는데 이는 이방인들의 관례였다. 또한 그는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몇몇 헬라인들과 이야기할 때 헬라의 문학 작품을 인용하였다.
(3)약한 성도들을 섬김에 있어서(고전 9:22)
그는 스스로 고기 먹는 것을 삼가고 약한 성도들은 어디에서나 온전한 교제 가운데로 인도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참조, 고전 8:13;롬 14:1;롬15:1).
(4)자신을 다스림에 있어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여기에서 '버림'이라는 말의 헬라어는 '아도키모스'(adokimos)인데, 그 뜻은 '비난받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은 디모데후서 2:15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3.구약성서의 이스라엘 민족을 예로 듦(고전 10:1-33).
1.역사(고전 10:1-10). 세계 역사에 있어서 어느 민족도 이스라엘 민족 만큼 해방, 자유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모든 것을 남용하였고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1)자유에 대한 회고(고전 10:1-4).
1)하나님은 그들을 영광의 구름으로 인도하였다(출 13:21-22).
2)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게 하였다(출 14:22).
3)하나님은 그들에게 식량과 식수를 공급하였다(출 16:15,;출17:6).
(2)자유에 대한 반역(고전 10:5-10).
1)그들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였다(출 32:3-4).
2)그들은 부도덕의 죄를 범하였다(출 32:6;민 25:1).
3)그들은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다(민 21:5).
(3)자유의 상실
1)그들은 우상숭배로 인하여 검에 의한 심판을 받았다(출 32:28).
2)그들은 부도덕 때문에 질병에 의한 심판을 받았다(민 25:9).
-주:여기에는 상위점이 있다고 생각되어 왔다. 즉 모세는 이 재앙으로 24,000명이 죽었다(민 25:9)고 말한 반면에 바울은 2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고전 10:8)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말한 사람 수는 "하루에 죽은" 자들에 한한 숫자이고, 한편 모세는 전기간에 걸친 사망자 수를 말하고 있음을 유의하라.
3)그들은 불순종으로 인하여 독사에 의한 심판을 받았다(민 21:6).
2.적용(고전 10:11-13). 이스라엘의 실패와 관련된 이 끔찍한 사건들을 기록한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들은 어떻게 현재의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아주 명확하고 간결하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1)그것들은 우리의 연약에 대하여 우리를 권고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참조, 고전 9:27;갈6:1). 특별히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조심하라"는 바울의 말이다. 성서에서 하나님이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말(시 39:1)
2)과신(고전 10:12)
3)속임당하는 것(마 24:4)
4)그리스도인의 자유(고전 8:9)
5)타인에 대한 봉사(행 20:28;딤전 4:16;골 4:17).
(2)그것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우리를 확신시키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여기서 시험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돌이켜 본다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1)시험의 정의
ㄱ)악을 행하도록 부추기는 것
사탄은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유혹했었고 또 그리스도인들을 현재 유혹하고 있다(차조, 마 4:1;히 2:18;히4:15;약 1:13)
ㄴ)어떤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들 의도로 시험하는 것,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이렇게 '시험'하신다(참조, 창 22:1).
2)시험의 근원
ㄱ)세상(참조, 마 13:22;요 16:33;딛 2:12;벧후 1:4;갈 1:4;딤후 4:10;요일 2:15).
ㄴ)육신(참조, 마 26:41;롬 7:18;갈 5:19-21).
ㄷ)사탄(참조, 대상 21:1;엡 4:27;엡6:11;딤전 3:6-7;약 4:7).
3)시험의 목적
이미 살펴본대로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시험당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참조, 벧전 4:19;벧후 2:9).
3.최종 결론(고전 10:14-33).
그리스도인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세 개의 중요한 예를 든 후에 사도 바울은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린다.
(1)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시장에서 음식물을 살 때 남의 눈을 피해 정육점을 출입하면 안된다(고전 10:25).
(2)구원받지 못한 자의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부엌을 조사해서는 안된다(고전 10:27).
(3)그렇지만 신앙이 성숙치 못한 약한 성도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우상에게 드린 제물 먹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전 10:28).
(4)그는 자신이 다른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동일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고전 10:16-17).
(5)그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고전 10:32).
세 번째 질문:교회의 행위는 어떠해야 하는가?(고전 11장).
1.옷을입는것에 대한 규율(고전 11:1-6).
성서 전체를 통하여 남녀의 머리 길이를 규정한 곳은 없다. 그런데 이 장에서 바울은 성도의 외모, 특히 하나님의 집 안에서의 그것을 규정하는 일련의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1.남자의 용모.
(1)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써서는 안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증명한다.
1)그의 구세주와의 관계.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고전 11:3).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고전 11:7).
2)그의 배우자와의 관계,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 11:3).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 11:7).
따라서 기독교 예배에 있어서 어떤 남자도 모자를 써서는 않된다. 그런데 로마 교회의 신부들이나 유대교의 랍비들은 탈리스(tallis)라고 하는 모자를 쓴다. 이러한 관습은 모세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것을 잘못 해석한데서 비롯되었다(출 34:33과 고후 3:13을 비교해 보라).
(2)남자는 여자보다 머리를 짧게 깍아야 한다. 이러한 규칙이 세워진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1)일반적인 의미 때문이다.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고전 11:14). 바울 당시에 남자의 긴머리는 여성적인 것과 결부되어 있었다. 오늘날 그것은(어느 정도는) 권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2)특별히 거룩한 서원 때문이다. 긴머리는 구약성서의 나실인 서원이었다(참조, 민 6:1-22;삿 13:4-5;삼상 1:11;눅 1:15).
2.여인의 용모
(1)여인의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남편에 대한 복종
2)세상에 대한 모법. 바울 당시에 창기들과 노예들은 머리를 짧게 깍았다. 그리스도를 믿는 여인은 그 중 어느 하나도 결코 아니다!
(2)여인은 머리에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 이는 "천사들을 인한"것이다(고전 11:10).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은 교인들이 천사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참조, 시 138:1;엡 3:10;딤전 5:21;히 1:14;벧전 1:10,12).
2.성찬에 관한 규율(고전 11:17-34).
1.주제(고전 11:23-25). 이 구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주의 만찬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만찬의 주님이다. 그것은 주님의 만찬석이다. 주님이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고 그것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
(2)바울은 그가 알고 있는 최후 만찬에 대한 역사적 내용을 거기 참석했던 어떤 사도들에게서 전수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구세주의 선포, 죽음 및 부활에 관한 내용들에 대해서도 해당된다(참조, 고전 15:3; 행 20:35; 갈 1:11-12).
2.성찬의 왜곡(고전 11:17-22).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인 고린도 교인들은 성찬식 때 먹는 일에만 몰두하였기 때문에 다른 성도들과 구세주를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마셨으며,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린 채 지냈던 것이다. 오순절 날 밤 다락방에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1:23에서 바울은 오직 한 가지 사실, 즉 유다의 예수님 배반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고린도 교인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무엇과 같은지를 보여주는 암시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린도전서 11:22에서 바울은 교회의 지하실에서 친료를 나누며 연회를 베푸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는 성찬 의식을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친교에만 국한시키고 있는 듯하다. "나를 기념하라"는 짤막한 구절은 이러한 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의만찬'에 관 또 다른 두 개의 오류를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1)떡과 포도주는 기념물이지 성례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자(즉 기념물)는 사람이 이미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기념하는 것이며, 후자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행해지는 것이다.
(2)떡과 포도주는 본질적으로 상징적이며 어떠한 것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카톨릭의 화체설(化體設) 교리는 제단에서 떡과 포도주가 신부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 된다는 것이다.
3.성찬의 목적(고전 11:26,28). 성찬식 때에 우리의 해야할 일은 다음과 같다.
(1)회상,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주의 죽으심을......전하는 것이니라."
(2)자기 성찰.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3)기대. "(주께서). 오실 때까지."
4.참예자. 성찬식에 초대를 받은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주의 만찬'은 오직 믿는 자을 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믿는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다. 그런데 그들이 세례를받고 기존지역 교회의 교인이 되었는지 아닌지의 여부가 문제였던 것 같다.
5.자격. 두 종류의 사람들은 떡과 잔을 받는 것이 금지되었다. 즉 부정한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었다(주께서 베푸신 첫 성찬식에 참여했던) 사도 요한은 여기에 언급된 두 종류의 사람들을 돕기 위한 확실한 조언을 해주고 있다. 그는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요한복음 3:11을, 부정한 자들(즉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요한1서 1:9를 제시하고 있다.
6.징벌(고전 11:29-30).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하찮게)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이 구절에서 특별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들이 몇 개 있다.
(1)'하찮게'(unworthily). 이 말은 부사이지 형용사가 아니가. 바울은 "만일 하찮은 사람이 먹고 마신다면"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일 사람이 하찮은 태도로 먹고 마신다면"이라고 말한다.
(2)'죄'(Damnation). 헬라어로 이 말은 크리마(krima)이며, 따라서 여기서는 그것이 '심판'(judgement)으로 번역되어야 한다(동일한 말이 사용 되고 있는 롬 11:33; 벧전 4:17; 계 20:4등을 참조하라). 이러한 심판은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해질 것이다.
1)육체적 질병을 통해서(고전 11:30).
2)육체적 죽음을 통해서-"잠자는 자도 적지 않다." 여기에 사용된 '잠'의 헬라어는 '코이마오'(koimao)이며 이것은 육체의 죽음을 말한다(참조, 요 11:11-12; 행 7:60; 고전 15:6,18,20,51).
7.간구(고전 11:31-34).
네 번째 질문:영적 은사란 무엇인가?(고전 12-14장)
1.정의(定義)
영적 은사란 믿는 자들이 구원받는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그에게 주시는 초자연적 능력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차이점을 구별하게 될 것이다.
1.성령의 선물(the gift)과 성령으로부터 주어지는 은사들(gifts)의 차이. 성령의 선물은 성령께서 그리스도가 약속한대로 성령을 보내셨던 오순절 날에 주어졌다(행 1:4-8). 한편 성령의 은사들은 오늘날에도 주어진다.
2.영적 은사들과 인간의 재능의 차이. 재능이란 출생시에 부여받은 인간적이며 자연적인 능력이다. 반면에 은사는 초자연적이며 거듭날 때에 받는 것이다.
3.영적 은사와 공적 직분의 차이.
이에 대해 챨스 라이리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 은사를 소수의 특권 계층만이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교회 내에서의 직분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은사란 평신도들이 획득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언젠가 그도 약간의 어떤 은사를 발견하고 그것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두 가지 생각은 모두 그릇된 것이다. 영적 은사란 근본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지는 능력이다. 이는 은사란 봉사하는 자리가 아님을 뜻한다. 왜냐하면 은사는 능력이지 능력이 행사되는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목회자의 은사는 보통 한 사람이 목회에서 차지할 수 있는 직분 또는 위치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은사는 사람들을 목자처럼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어디에서 행사되는지 바로 그 능력 자체를 말한다. 물론 목회자의 직분을 맡은 사람은 목회자의 은사를 받아야 하고 또 행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기독교 학교의 남학생 생활지도부장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이러한 것은 처음에는 매우 충격적인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찌하여 크리스챤 여인이라고 하여 목회자의 은사를 받아 이웃이나 주일학교 아이들 가운데서 혹은 여학생 생활지도부장으로서 그 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한 것은 여자들이 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설교를 하고 사람들은 인도하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목회의 직분 혹은 직책이란 오직 남자에게만 허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하여 그 은사 또는 능력이 여자에게 주어질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생활],pp.95-96).
2.영적 은사의 한도
1.믿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한 가지의 영적 은사는 소유하고 있다(참조, 고전 7:7;고전12:7,11; 엡 4:7; 벧전 4:10).
2.영적 은사들을 모두 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참조, 고전 12:29-30).
3.영적 은사를 주는 목적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계 4:1), 믿는 자들과 교회를 바르게 하기 위하여(엡 4:12-13) 주어진 것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예증하고자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인간의 몸을 비유로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믿는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이다.(고전 12:12-14).
2.(신체의 각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이 그 몸 안에서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전 12:14).
3.각 지체는 하나님에게 있어 똑같이 중요하다(고전 12:18).
4.각 지체는 다른 지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1)발은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전 12:15).
(2)귀는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라고 말할 수 없다(고전 12:16).
이러한 태도가 곧 '질투'이다.
(3)눈은 손에게 "내가 너를 쓸데 없다"(고전 12:21)라고 말할 수 없다.
(4)머리는 다리에서 "내가 너를 쓸데 없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도가 곧 교만이다.
5.모든 지체들은 다른 지체들과 함께 고통당하고 기뻐한다(고전 11:26).
4.영적 은사의 남용
1.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참조, 딤전 4:14; 딤후 1:6).
2.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은 은사들을 사용하려 하는 것(참조, 민 16:1-3; 행 8:18-20).
5.영적 은사의 종류
세 개의 중요한 구절에서 바울은 약 18개의은사들을열거하고 있다(이 구절들은 롬 12:6-8; 고전 12:4-10,28; 엡 4:7-8이다).
6.영적 은사들의 시대적 구분
1.표적의 은사들.(1세기에 주어졌다가 그 후에는 사라진) 이 은사들 가운데에는 사도직, 예언, 치유, 기적, 지식, 방언 및 방언의 통역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표적의 은사들은 다음의 두 가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주어졌다.
(1)사도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권위를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참조, 고전 12:12; 히 2:4; 롬 15:19; 요 3:2;요20:30-31; 미 10:5-8).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용된 은사들은 치유와 기적 행하는 것이다(참조, 마 10:5-8;마11:4-5).
(2)새로운 계시와 신령한 지식을 널리 전하기 위한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된 은사들은 예언, 지식 및 방언일 것이다.
그러나 주후 95년에 정경(canon)이 완성됨으로써 표적의 은사들은 필요없게 되었다(딤후 3:14-17; 벧후 1:16-21).
.주(註):우리는 놀라운 위의 두 구절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알게 된다.
(3)문자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 줄 수 있고 또한 확실히 채워 준다.
(4)기록된 이 성경이 하나님의 사업을 성취함에 있어서 시몬 베드로가 증언한 바와 같은 기적적인 그리스도의 변화에 대한 설명보다도 훨씬 더 적합하다.
2.항구적인 은사들.(교회사의 전기간에 걸쳐 계속적으로 주어진) 이것들은 지혜, 믿음, 영의 분별, 봉사, 가르침, 권면, 주는 것, 다스리는 것, 자비를 베푸는 것, 전도 및 목회(교사)의 은사 등이다.
7.영적 은사에 대한 설명
1.사도직(참조, 엡 4:11; 고전 12:18).
이는 그리스도에 의해 친히 부름을 받고(요 15:16) 초대 교회의 정식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는 특권을 부여받은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1)자격. 베드로(행 1:22)와 바울(고전 9:1)에 의하면, 사도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반드시 목격한 자라야 한다.
(2)사도로 부름받은 자들
1)원래의 12제자들(눅 6:13).
2)맛디아(행 1:26).
3)바울(롬 1:1).
4)바나바(행 14:14; 갈 2:9).
5)야고보(고전 15:7; 갈 1:19).
2.예언(참조, 롬 12:6; 고전 12:10;고전14:1,3-6; 엡 4:11).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 특히 미래의 사건들과 관련된 계시를 받고 전달하는 초자연적 능력을 가리킨다(참조, 마13:14; 벧후 1:20-21; 계 1:3; 행 11:27-28;행21:10-11).
3.기적(참조, 고전 12:28).
이는 자연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을 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성서에는 기적이 특히 많이 행해졌던 세 시대가 있다.
(1)모세로부터 여호수아에 이르는 시대
(2)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
(3)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
4.치유(참조, 고전 12:9,28,30)
이는 신체적, 정신적 또는 귀신에 의한 질병을 막론하고 인간의 질병을 고치는 초자연적 능력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서가 완성되던 1세기 후반기에는 표적의 능력들은 소멸되었다는 확증이 있다. 바울은 분명히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 행 14:10;16:18;19:12;20:10;28:8-9).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는 그의 선교 마지막 몇 달 동안에는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참조, 빌 2:26;빌27:1; 딤전 5:23; 딤후 4:20).
여기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표적의 은사가 사라졌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오늘날 믿는 자를 초자연적으로 고칠 수 없다거나 또 고치지 않으실 것임을 뜻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개인을 통한 치유의 은사는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치유를 위한 하나님의 현재 계획은 야고보서 5:14-16에서 찾아볼 수 있다.
5.지식(참조, 고전 12:8;고전13:8).
이 은사의 본질에 대해서는 약간의 불확실한 점이 있다. 이 은사는 단지 두 번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것은 예언의 은사와 관련되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
6.방언
성서 전체를 통해 단일 주제로서 방언의 은사 만큼 열띤 논쟁과 증오, 혼란 및 불화를 일으킨 것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비극적인 상황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던 바로 그 때에도 있었다. 오늘날 카리스마적 움직임이 기독교계 전체를 글자 그대로 휩쓸고 있다.
방언에 대한 견해들.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방언의 정확한 성격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방언 운동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내에도 없다.
(1)배우지 않고 습득되는 인간의 언어라는 견해. 이 견해에 의하면 신약 성서에 나타나는 방언에 관한 모든 설명들은 동일한 사건, 즉 전에 배운바 없는 인간의 언어들을 갑자기 말하는 초 자연적 능력을 가리킨다고 한다. 다음의 사실들은 이 견해를 지지하는 논증들이다.
1)인간의 언어와 동일한 어휘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윌보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에 대하여 동일한 말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방언이 인간의 언어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구절에서 동일한 낱말이 사용되고 있다. 즉 '랄레오'(laleo)와 '글로사(gloss)가 문법적으로 형태를 달리하며 여러 가지로 사용된다. 헬라어와 본문의 언급에 근거하여 볼 때, 아무런 차이도 발견되지 않는다"([성령론]p.183).
또 하나 지적되는 것은 '글로사'라는 말이 헬라어 신약 성서에서 50회나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 16회는 신체의 기관(참조, 약 3:5)을 가리키며, 1회는 불의 불꽃(행 2:3)을 말하며, 33회는 인간의 언어를 가리키고 있다.
2)그것은 고린도전서 14:13에서 '통역하다'로 번역된 말은 '디에르메뉴오'(diermeneuo)이며 그 뜻은 글자 그대로 '번역하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이 말이 21회 사용되고 있는데, 그중 18회는 번역을 가리키고 있음이 명백하다(참조, 행 9:36).
3)그것은 오순절의 사건을 기술하는데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행 2:6-11).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가 가이사랴에서 목격한 방언이 오순절 때 있었던 방언과 동일하다고 하였다(행 11:15).
4)황홀경에서 횡설수설하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고전 14;22).
5)예수님이중언부언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셨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6:7에 나오는 헬라어 '바타'(batta)와 '로게오'(logeo)는 쓸데 없는 말을 지껄이거나 아무 생각없이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6)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을 기록할 때 사도행전 2장을 다시 정의 하거나 해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바울은 고린도전서 14:21에서 이사야 28:11-12를 이용하였는데, 이는 인간의 언어와 명백히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28장의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ㄱ)주전 721년에 북왕국이 멸망당하였다.
ㄴ)이사야는 남왕국(유다)에게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ㄷ)그는 그의 경고를 불신하는 술취한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에게 조롱을 당하였다.
ㄹ)이사야는 그들에게 응답하여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히브리어로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적군을 통해) 앗수리아어로 말씀하실 때에 그들이 귀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신명기 28:15-68)에 있는 모세의 말, 특히 49절을 참조하라. 주후 70년에 있었도 디도(Titus)의 침략에 대해서는 예레미야 5:15를 참조하라). 그러므로 외국어로 말해지는 것을 듣는다는 것은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상징이었다.
8)18,19세기에 고등비평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서 비평학자들은 배운바 없는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는 기적을 배척하고 황홀경 상태에서 말한다는 견해를 지지함으로써 성서의 방언을 다른 고대의 신비 종교들과 동일시 하였다.
(2)비인간적(천사의?)황홀경 상태에서의 발언이라는 견해.
이 입장은 방언이란 그 구조에 있어서 분명히 지상에 속한 언어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언어하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논증들은 다음과 같다.
1)오순절에 방언으로 말한 제자들은 술 취했다는 비난을 받았다(행 2:13). 이는 그 말이 세상의 언어라면 있을 수 없는 비난이다.
2)바울은 방언이 그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전 13:8). 이는 방언의 은사가 단순히 배운 바가 없는 인간의 언어를 말하는 것이라면 터무니 없는 말이 될 것이다.
3)고린도전서 14:2에서 바울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음이니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4)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전 14:18). 그렇지만 그는 사도행전 14:11에서 루가니오아의 방언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5)고린도전서 14:14-15에서 마음과 영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거로(혹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 어떠한 계시를 주시기 위해 '마음'(mind)을 사용하시며, 인간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무엇인가를 계시하려고 할 때에는 인간의 '영'(spirit)을 이용하신다는 것이다.
6)사도행전 2:4에 "다른 방언"이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헬라어의 헤테로스(heteros)를 옮긴 말로서 "종류가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참조, 갈 1:6-7).
7)고린도전서 13:1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라는 말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주(註):여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질문은 천사는 어떠한 종류의 말을 하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때 그들은 히브리어(창 19장)와헬라어(눅1장)로 말했음이 알려져 있다. 그들이 천상의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였다(참조, 사 6장;계4-5장).
(3)방언의목적
1)소극적 목적
ㄱ)그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전 14:4,19).
ㄴ)그것은 개인의 교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말하기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나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실제로 그렇게 말하였다(고전 14:4).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만일 방언이 개인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면, 또한 만일 교회당이(고린도전서 14:23이 분명히 지시하는 대로) 방언을 말하는 자들로 가득찬다면, 그 때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이렇게 설명할 것인가? 즉 라오디게아 교회(계 3:14-18)는 차지하고라도 고린도의 이 사람들은 성서 전체를 통하여 가장 육적이고 혼란에 빠진 교회가 아니었던가? 어떠한 은사도 개인의 건덕을 위해 이기적 방식으로 사용될 수는 없다. 실제로 여기에서 바울은 그들이 이 은사를 비성서적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그들을 책망하는 것 같다.
2)적극적 목적
ㄱ)사도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권위를 확증하기 위한 것이다.
ㄴ)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ㄷ)구하기는 하나(버림받은) 유대인들 각자에게 표적릐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다.
ㄹ)정경의 완성 이전에 새로운 진리들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을 기록하였을 때에는 겨우(야고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세 권의 신약성서가 있었을 뿐이었다.
다음과 같이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유용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기록된 문서가 아직 없었다.
- 교회론(이는 후에 에베소서 및 롤로새서에서 논의된다).
- 칭의론(稱義論), 성화론(聖化論) 및 영화론(榮化論)(이는 후에 로마서에서 논의된다).
- 배교론(유다서)
- 그리스도인의 용서(빌레몬서)
- 그리스도의 제사장직(히브리서)
- 그리스도의 생애(4복음서)
-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봉사(베드로전.후서)
- 그리스도인의 사랑(요한 1,2,3서)
- 목회자와 집사들에 대한 권면(디모데전.후서)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어느 누구도 디모데 후서 3:16-17에 있는 은혜의 진리가 아직 기록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 구절을 주장하거나 인용할 수는 없었다.
(4)방언에 대한 규제(고전 14장)
1)방언으로말하는 것은 교회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전 14:3-4).
2)방언이란 악기와 같아서 듣고 분명하게 이해될 수 없다면 무익한 것이다(고전 14:7).
3)이미 알려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전 14:3-4).
4)이러한 차이는 때때로 삶과 죽음의 차이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전 14:8).
5)바울은 방언으로 말을 하기는 하였지만(고전 14:8; 벨릭스와 아그립빠 앞에서와 같이) 그가 증거하거나 선교 여행을 하는 중에 이에 대하여 전혀 강조하지 않았다. 그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특별히 하라고 권면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 당시에 있어서 조차도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이 은사를 받을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고전 12:30;14:39).
6)바울은 가르치기를 교회에서(예언과 예견을 포함하여) 가르치는 것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하였다(고전 14:19).
7)교회 전원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전14:23).
8)잃은 자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지 방언이 아니다.
9)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수에 있어서 제한되었다. 즉 각자 돌아가며 말해야 한다.
10)여자들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금지되었다(고전 14:34). 고린도전서 11:3-10에서 바울은 여자가 자신의 모국어로 말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여자가 외국어(방언)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11)하나님의 집에서는 모든 것을 질서를 따라 품위있게 행해져야 한다(고전 14:40).
7.방언 통역의 은사(참조, 고전 12:10).
이것은 방언으로 전해진 메시지를 해명하고 통역하는 초자연적 능력이다.
8.지혜의 말씀의 은사(참조, 고전 12:8).
이것은 인간적 및 신적 지식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초자연적 능력이다.
9.영분별의 은사(참조, 고전 12:10;요일 4:1) 이것은 사탄, 인간 및 하나님의 역사를 구별하는 능력이다. 베드로(행 8:23)와 바울(행 13:10;16:16-18)은 모두 이 은사를 소유하였다.
10.구제하는 은사(참조, 롬 12:8).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많은 돈을 모으고 그것을 나누어 주는 능력이다(참조, 행 4:32-37;갈 4:15;빌 4:10-18;고후 8:1-5;눅 21:1-4).
11.위로의 은사(참조, 롬 12:8)
이는 책망의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신약성서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은사를 소유하였다.
(1)바나바(행 11:22-24)
(2)(가룟인 아닌)유다와 실라(행 15:32)
(3)"창으로......멍에를 같이 한 자"(빌 4:3)
12.섬기는(혹은 돕는) 은사(참조, 롬 12:7;고전 12:28;엡 4:12)
이는 육체적 및 영적 일에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능력이다. 이러한 은사를 가진 자들을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도르가(행 9:36-39)
(2)뵈뵈(롬 16:1-2)
13.긍휼을 베푸는 은사(참조, 롬 12:8)
이는 병들고 상처를 입은 자들을 섬기는 능력이다.
14.다스리는(또는 관리하는) 은사(참조, 롬 12:8;고전 12:28)
이는 사람들 혹은 계획들을 조직하고 관리하여 추진하는 능력이다(참조, 딛 1:4-5;느헤미야서).
15.믿음(신앙)의 은사
성서는 믿음의 유형을 기본적으로 다음의 셋으로 구분한다.
(1)구원의 믿음-이는 회개하는 모든 죄인이게 주어진다(행 16:31;롬 4:5;롬5:1;롬10:7).
(2)거룩하게 하는 믿음-모든 성도에게 주어질 수 있는 믿음이다(갈 2:20;갈3:11;갈5:22;엡 6:16;롬 1:17;히 10:38).
(3)청지기직의 믿음-일부의 성도에게 주어지는 믿음이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큰 일들을 믿고 기대하는 초자연적 능력이다.
16.교사의(가르치는) 은사(참조, 롬 12:7;고전 12:28;엡 4:11)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전달해 주는 능력이다. 이러한 은사의 소유자는 다음과 같다.
(1)아볼로(행 18:24-25)
(2)아굴라와 브리스길라(행 18:26)
17.복음을 전하는 은사(참조, 엡 4:11)
이는 죄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영혼 구원의 책임을 지게 하는 능력이다. 물론 모든 성도들은 그들이 특별한 이 은사를 소유했던 안했던 간에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딤후 4:5). 사도행전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빌립이 이 은사를 받았다(행 8:5-12;26:40).
18.목사 - 교사의 은사(참조, 엡 4:11)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고 인도하는 초자연적 능력이다(참조, 벧전 5:1-4;행 20:28). 이것이 18개의 은사 가운데 유일하게 '두 몫'의(혹은 이중의)은사이다. 따라서 모든 교사들은 목사라고 부를 수는 없으나 목사들은 누구나 교사인 것이다.
8.성령의 은사를 가운데 없어서는 안될 요소(고전 13장)
18개의은사들은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땅 위에 세울 때 사용되는 그의 신령한 벽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자비(사랑)'는 그 벽돌들을 굳게 결합시키는 "하늘의 시멘트"역할을 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을 다음의 말로 끝맺고 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이 곧 '제일 좋은' 그 길인 것이다.
이밖에도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위대한 신학자 바울로 하여금 세계사에 있어서 사랑에 관한 가장 위대한 시를 쓰게 하였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매년 전국 안전위원회(National Safety Coyuncil)는 다음과 같은 권고문을 발표한다. "음부를 했을 경우 운전하지 마시오. 알콜과 휘발유는 섞이지 않습니다." 혹자는 신학과 사랑에 대해서도 똑같은 결론을 맺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둘을 분리시키지 말라고 명하셨다(참조, 계 2:1-4). 사랑이 없는 신학은 죽은 정통주의를 낳고, 신학이 없는 사랑은 명백한 이단을 낳는다.
1.사랑의 중요성(고전 13:1-3)
사랑이 없으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1)방언의 은사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가리와 같아진다.
(2)예언의 은사가 아무 것도 아니다.
(3)모든 비밀을 깨닫는다해도 쓸모가 없다.
(4)모든 지식을 소유한다해도 유익이 되지 못한다.
(5)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그것은 헛되다.
(6)자신의 목표를 포기한다해도 의미가 없다.
(7)자신의 몸을 희생할지라도 그것은 전혀 무익하다.
2.사랑의 완벽성(고전 13:4-7)
(1)사랑은 오래 참는다. 즉 사랑은 인내한다.
(2)사랑은 친절하다. 즉 사랑은 거칠거나 무뚝뚝하지 않다.
(3)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다.
(4)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 즉 사랑은 자만하지 않는다.
(5)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 즉 사랑은 건방지지 않다.
(6)사랑은 부당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즉 사랑은 무례하게 행치 않는다.
(7)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즉 사랑은 자기중심적이 아니다.
(8)사랑은 성내지 않는다. 즉 사랑은 온순하다.
(9)사랑은 악을 꾀하지 않는다. 즉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입은 해에 대해 복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10)사랑은 악을 즉거워하지 않는다. 즉 사랑은 악에서 기쁨을 찾지 않는다.
(11)사랑은 진리를 기뻐한다. 즉 사랑은 선에서 기쁨을 찾는다.
(12)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 즉 사랑은(글자 그대로) 모든 것을 감싸준다.
(13)사랑은 모든 것을 바란다. 즉 사랑은 정복될 수 없다.
3.사랑의 불멸성(고전 13:8-13)
(1)예언, 방언 및 지식과는 달리 사랑은 언제까지나 지속된다(고전 13:8).
(2)믿음과 소망과 비교하여 볼 때, 사랑이 그 중에서 제일이다(고전 13:13).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바울은 사랑이 믿음과 소망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랑이 그것들 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우리들은 천국에 가서도 이들 세 가지 덕목을 계속하여 신령한 방식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사랑이 더욱 위대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1)사랑은 믿음과 소망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2)사랑은 타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믿음과 소망은 주로 개인적인 것이다.
3)사랑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질문:부활이란 무엇인가?(고전 15장)말할것도없이이장은(로마서 8장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장 중에 하나로 간주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을 대하게 된다.
1.부활의 탁월성(고전 15:1-4)
1.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성:"그리스도께서......다시 살아나사"(고전 15:4).
2.그리스도의 부활의 시기:"사흘만에"(고전 15:4) 이 표현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그리스도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유대인들의 관습은 하루의 일부를 전체 하루로 계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금요일 일부(즉 오후 3시에서 6시까지)와 토요일 전체 그리고 일요일 일부를 무덤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2)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은 수요일이었다. 만일 마태복음 12:40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때에는 수요일이 밤낮으로 3일을 무덤에 있던 유일한 날이 된다.
3.그리스도의 부활의 이유:"우리를 죄를 위하여"(고전 15:3). 그리스도는 자기의 신앙 때문에 죽임당한 순교자가 아니라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구세주이시다. 그는 "나는 끝났다"라고 말하지 않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삼위의 세 위격이 모두 그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되어 있다.
(1)성부(요3:16;행2:24)
(2)성자(요10:11,18
(3)성령(히9:14;롬1:4)
4.그리스도의 부활의 결과:"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15:2).
2.부활의 증거(고전15:5-11).
바울은 여기에서 그 증거에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신약성서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신 것 가운데 중요한 것 10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자들에게 나타나셨다.
(1)막달라 마리아(요20:11-18)
(2)다른 여인(마28:9-10)
(3)두 제자들(눅24:13-32)
(4)시몬 베드로(눅 24:33:35)
(5)사도들(눅 24:34-36)
-주 : 위의 5번에 걸친 나타나심은 모두 부활 후 첫날에 있었다.
(6)열 한 사도들(요 20:26-31)
(7)일곱 사도들(요 21:1-14)
(8)오백명의 제자들(고전 15:6)
(9)그의 형제 야고보(고전 15:7)
(10)감람산 위의 열 사도들(눅 24:44-49;고전 15:7). 후반부의 다섯 번은 40일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다.
2.바울은 뒤이어 구세주께서 친히 그를 찾아오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로 예수님은 적어도 다섯 차례에 걸쳐 사도 바울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1)다메섹 도상에서(행 9:1-9;22:6-11;26:12-19).
(2)고린도에서(행 18:9)
(3)예루살렘에서(행 23:11)
(4)난파선에서(행 27:23)
(5)기록되지 않은 어떤 지점에서('루스드라'인 것 같음, 고후 12:1-4).
3.부활의 중요성(고전 15:12-19)
바울 당시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부활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대의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여러 가지 이론들을 주장하고 있다.
1.협잡설-이는 제자들이 이 모든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설이다.
2.기절설-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단지 기절했을 뿐이며 따라서 후에 무덤의 냉기 때문에 다시 깨어났다고 하는 설이다.
3.환상설-이는 제자들이 그를 보았다고 상상했을 뿐이라는 설이다.
4.영혼설-이는 오직 그의 영혼만이 부활했다고 하는 설이다. 이에 대한 반증은 누가복음 24:39에서 찾아볼 수 있다.
5.마음설-이는 그가 그의 친구들 마음 속에서만 부활했다고 하는 설이다. 그러나 바울은 위의 본문에서 만일 부활의 교리가 부정된다면 그때에는 다음과 같은 아홉 가지의 끔찍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분명히 지적한다.
6.모든 복음의 가르침은 쓸모없는 것이었으며 또한 계속 그럴 것이다.
8.살아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
9.죽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지옥에 있게 된다.
10.삶 자체의 이유와 목적이 모두 사라진다.
11.구세주 자신이 중동 지방의 어느 무덤에서 썩고 있을 것이다.
12.기독교의 예식은 웃음거리가 된다. 고린도전서 15:29를 유의하여 보라.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받은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이 구절은 이제까지 약간 문제가 되어 왔는데 이에 대한 견해에는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1)부정적 견해. 그 의미가 무엇이든지, 그것은 산자가 죽은 자를 위하여 대리로 세례를 받는 몰몬교의 전적으로 비성서적인 예식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버림받은 자로 죽는다면 그는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 자인 것이다(참조, 눅 16:19-32; 히 2:3; 계 22:11).
(2)긍정적 견해. 세례는 '동일시'(ideptification)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바는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살아있는 성도가 죽은 성도의 남겨놓은 표준을 택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13.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은 어리석고 분별 없는 일이다(고전 15:30,32).
14.관능적인 생활이 삶의 유일한 길이 된다. 즉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라고 말하게 된다.
4.부활의 대열(고전 15:20-28)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여기에서 바울은 레위기 23장에 언급된 유대의 일곱 명절 가운데 세 번째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초실절(Feast the first fruits)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이에 관하여 다음 사실에 특히 유의하라.
1.첫째날. 선발된 대표들이 곡식단을 베어낼 지점을 곡식밭에 표시한다.
2.둘째 날. 그곳의 곡식단을 베어 성전으로 가져 온다.
3.세째 날 . 서약의 표시로 그것을 하나님께 바친다.
이제 고린도전서 15:23-24를 자세히 살펴보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차례'를 나타내는 헬라어는 '타그마'(tagma)이다. 이것은 군사용어로 행군시에 계급의 순서대로 도열한 부대를 가리킨다. 따라서 우리들은 다음의 사실들을 알게 된다.
(1)그리스도의 부활(막 16:2-8; 마 25:5-8; 눅 24:1-8).
그의 부활은 행열의 선두를 이룬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러한 부활의 첫 번째이기 때문이다.그리스도가 나사로에게 행한 기적을 말하자면 참된 부활이 아니라 단순히 죽은 인간의 몸이 산 인간의 몸으로 회복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후에 나사로는 다시 죽었다. 그러나 궁극적인 부활이란 영원불멸을 수반한다.
(2)죽은 자의 부활.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3). 이 '군대'가 행열의 선두에 서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른다(참조, 고전 15:53; 살전 4:16).
(3)천년왕국 이전의 구약 성도와 환난당한 성도의 부활. "그 후에는 나중이니"(고전 15:24; 참조, 요 5:24; 단 12:2; 계 20:5-6).
5.부활이 요구하는 것(고전 15:33-34).
1.우리는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한다(고전 15:34).
2.우리는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고전 15:33).
6.부활의 방법(고전 15:35-38).
"주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라"(고전 15:35).
바울은 죽은 자를 일으킬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방법에 대해 말하지 않고 오히려 훌륭한 '밀알'의 예를 들고 있다(고전 15:37).
이 예증으로부터 우리는 놀라운 몇 가지 결론들을 끌어낼 수 있다.
1.옛 육체의 밀알처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밀을 자라게 하시며 죽은 자를 일으키실 수 있다.
2.옛 육체가 밀알처럼 변화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
이처럼 죽음은 밀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해방시키는 것일 뿐이다.
3.새 육체는 밀알처럼 그 정체서(正體性, identity)을 상실하지 않는다. 양자는 계속하여 처음 상태와 닮은 어떠한 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고전 13:12).
7.부활의 완전성(고전 15:39-49)
1.죄에 속한 옛 육체의 속성
(1)썩을 것(즉 죽을 육체)으로 심음(고전 15:42).
(2)(부질없는 세상에) 욕된 것으로 심음(고전 15:43).
(3)(질병 및 각종 질환을 겪는) 약한 것으로 심음(고전 15:43).
(4)(자연의 법칙에 얽매인) 육(肉)의 몸으로 심음(고전 15:44).
2.죄없는 새 육체의 속성
(1)썩지 아니할 것(곧 죽지 않을 몸)으로 일으킴을 받음(고전 15:42).
(2)(완전한 세계에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게됨(고전 15:43)
(3)(질병과 각종 질환에 정복되지 않는) 강한 것으로 다시 살게 됨(고전 15:43)
(4)(자연 법칙의 구속을 받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됨(고전15:44)
고린도전서 15:44에서 바울은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말한다. 양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안에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은 순전한 백지들로 가득차 있는 한 책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이 예증에서 책은 사람의 육체이며 백지는 그의 영혼이다. 이제까지 계속 그 책은 영혼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결정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중력과 시간에 대한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육의 몸'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 백지를 책에서 떼어 내고 그것을 표지처럼 사용하여 책을 둘러 싸보라. 그러면 백지(즉 영혼)가 위에 있게 된다. 이제는 영혼이 결정적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곧 신령한 몸이며 그 몸은 중력이나 시간에 관한 물리적 법칙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영원한 축복들을 누리게 된다.
고린도전서 15:39-41 사이에서 바울은 신령한 새 몸이 육에 속한 옛 몸보다 우월함을 다음과 같이 예를 들어 설명한다.
1)인간의 몸이 동물의 몸보다 뛰어나다(고전 15:39).
2)하늘에 속한 자가 땅에 속한 자보다 뛰어나다(고전 15:40).
3)태양이 달보다 뛰어나다(고전 15:41).
8.부활의 약속(고전 15:50-53).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1-53).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표현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이것은 어떤 비밀인가? 여러분이 창세기 1장을 읽기 사작하여 고린도전서 14장까지 통독을 하였다고 가정해 보라. 바로 여기에서 읽기를 멈추었다고 하면 여러분은 이미 중요한 여러 가지 사실들, 즉 창조, 인간의 범죄, 홍수, 베들레헴, 갈보리, 부활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실재 등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라도 육체가 죽은 후에야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여러분은 에녹(창 5:24)과 엘리야(왕하 2:11)의 두 예외가 있었음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하면, 성도들일지라도 영광의 목표에 도달하려면 죽음의 길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비밀은 분명히 밝혀졌고 그것은 바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거치지 않고 언젠가는 천국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다 변화하리라"(고전 15:51). 그렇다면 바로 이것이 성도들의 들리움(휴거)의 비밀이다.
2."우리도(모두) 변화하리라." '모두'(all)라는 말에 특히 유의하라. 성서에는 '부분적 휴거설'을 뒷 받침해주는 근거가 전혀 없다.
3."순식간에." 위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빛이 눈에 지각되는 시간, 즉 약 1/5초정도의지극히짧은 순간이다.
4."이 썩은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것은 죽은 성도들의 육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5."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이는 살아있는 성도들의 육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참조, 살전 4:16-17).
9.부활의 목적(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킴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참조, 사 25:8; 호 13:14).
부활의 목적을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현세계가 물질주의적 세계라고 하는 사실은 대단히 비극적인 일이다. 물질주의는 모든 사물의 가치를 알아내는 기술이라고 정의되지만 실제로는 어느 것의 가치도 알아내지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철학을 피하려고 시도할 때, 성도들은 종종 또 다른 극단으로 치달아 하나님은 오로지 빗물질적 일에만 관심을 두신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오류를 현재 교회들의 집사 및 재정관리위원회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때로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재정관리위원들보다 집사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부여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영적인'일이 '물질적인 것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육체에 '대단히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것이다!(참조, 고전 6:19-20; 고후 6:16; 엡 5:28-29; 롬 12:1-2).
그렇다면 무엇이 부활의 목적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인간의 궁극적인 대적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앞에서 이렇게 기록한 바가 있다.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 인간에게는 육에 속한 5가지 원수들이 있다.
1.세상(갈 1:4; 요일 2:15; 약 4:4).
2.육신(롬 7:18,8:8; 갈 5:17; 요일 2:16).
3.마귀(마 13:39; 엡 6:11).
4.영적 죽음(요 5:24;8:51 계 2:11).
5.육체적 죽음(시 55:4; 히 2:15).
10.부활의 능력(고전 15:55-58)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여기에서 죽음은 독사로 묘사되고 그것의 독아(毒牙)는 죄이다. 그러나 언젠가 하나님은 뱀과 그것의 독이빨은 모두 멸망시킬 것이다. 다음과 같은 유사한 표현을 유의하여 보라.
1."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육체의 죽음을 맛보지 않게 될 살아있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2."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것은 죽은 성도들을 가리키는데, 무덤은 그들의 육체를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처럼 위대하고 장엄하며 영광스러운 장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고 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
여섯째 질문:연보란 무엇인가?(고전 16장)
1.헌금의장소
"갈라디아 교회들"(고전 16:1). 이 말은 특별히 주의를 요한다. 신약성서에는 어느 국가나 지역교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현대의 여러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공인 "국가 교회"제도는 성서와 전혀 무관한 것이다.
2.헌금의 원천
"녀희 각 사람"(고전 16:2). 지역 교회는 그 교인들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교회가 모든 사람에 의해 지원받아야 했음을 알게 된다.
3.헌금의 시기
"매주일 첫날"(고전 16:2). 이것은 물론 일요일을 말한다(참조, 막 16:2,9; 눅 24:1; 요 20:1,19; 행 20:7).
4.헌금의 액수
"이(利)를 얻은 대로"(흠정역의 번역은 "하나님께서 흥하게 하신대로"이다). 실제적인 비율이 규정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성도가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 식당에서 그가 웨이터에게 팁을 주는 것보다 적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5.헌금의 목적
"성도를 위하는"(고전 16:1). 이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의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특별 헌금이었다(참조, 롬 15:26).
6.헌금 관리인
"너희의 인정할 사람"(고전 16:3). 교회의 재정 관리에 있어서 그 책임은 반드시 두 사람 이상에게 맡겨야 한다. 이는 아무리 사소하다 할지라도 부정한 취급의 혐의를 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은 개인적인 의견과 강력한 권면의 말로써 이 서신을 끝맺는다.
1.개인적인 의견
1.그는 곧 다시 그들을 방문할 예정이다(고전 16:5-9).
2.디모데 역시 이곳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고전 16:10-11).
3.그는 아볼로에게도 이곳으로 오도록 강권했으나 하나님께서 이를 잠시 허락지 않으셨다(고전 16:12).
4.그는 그들에게 스데바나의 영적인 충고를 따르라고 촉구한다. 스데바나는 그가 헬라에 체류하는 동안에 얻은 첫 회심자였다(고전 16:15-16).
5.에베소의 여러 성도들이 바울과 함께 그들에게 문안하였다(고전 16:17-20).
2.권면의 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3-14).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 16:22).
1.'저주'(anathema)라는 말은 '멸망당하기에 족한'이라는 뜻이다(참조, 롬 9:3; 갈 1:8-9).
2.'마라나다'(maranatha)는 '주께서 임하신다'라는 뜻이다(참조, 빌 4:5; 약 5:7-8; 계 1:7;계3:11).
– 데살로니가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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