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태평스런 사형수 석존께서 라자가하성의 영취산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법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어느 곳에 한 사람의 사형수가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는 사형을 당할 만큼의 큰 죄를 저질렀는데 머지않아 닥쳐올 단두대의 고뇌를 생각하니 너무나 죽는다는 것이 무서워서 탈옥을 결심하고 기어이 도망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당시의 국법은 탈옥한 사형수는 미친 코끼리로 하여금 뒤쫓게 하여 밟아 죽이도록 되어있었다. 그의 탈옥이 발각되자 미친 코끼리는 무서운 힘으로 그의 뒤를 쫓았다. 뒤에서 쫓아오는 미친 코끼리를 피하여 사형수는 큰 우물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두 발 내려가다가 문득 밑을 내려다보니까 거기에는 큰 독룡이 입을 딱 벌리고 한입에 삼켜 버릴 듯이 도사리고 있었다. 기가 질려서 우물의 사방을 돌아보니 거기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동서남북으로 진을 치고 입에서는 독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돌아서기에는 미친 코끼리가 너무 가까이 쫓아오고 있었으므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곳에 있는 풀뿌리를 움켜잡고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진땀을 흘리며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잡고 있는 목숨이 생명선인 풀뿌리를 두 마리의 흰 쥐가 열심히 갉아 먹고 있지 않은가! 그는 일단 미친 코끼리는 피한 셈이지만 이 쥐가 풀뿌리를 다 갉아 먹으면 그때는 물속으로 떨어져서 독룡의 밥이 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산란할 대로 산란해져서 세상의 무상함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는 풀뿌리에 매달려서 문득 위를 쳐다보니까 우물 옆에 서 있는 큰 나무가 가지와 잎을 뻗혀서 푸른 하늘을 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는 하루에 한 방울씩 감로(甘露)같은 꿀을 사형수의 입 속으로 떨어뜨려 주는 것이었다. 사형수는 위험한 우물곁의 풀뿌리에 매달려 있으면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꿀 때문에 굶주림과 목마름은 면하고 있었을뿐더러 어느 사이에 그 생활에 익숙해져서 다시는 우물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그의 마음은 하루 한 방울의 그 꿀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감옥은 삼계(三界)에, 사형수는 중생(衆生)에, 미친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독룡은 지옥에, 네 마리의 독사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대(四大)에, 풀뿌리는 인명(人命)에, 흰 쥐는 일월(日月)에 비유한 것이다. 흰 쥐인 일월은 사람의 생명을 먹으면서 나날이 소멸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사형수인 중생은 한 방울의 꿀과 같은 세상의 환락에 집착하여 무상의 고통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중경찬잡비유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