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6일 하늘언어교회
성경봉독: 마가복음 10장 51절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제목: ‘보기를 원합니다.’ 조영찬 전도사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에 갔다가 떠나려고 할 때 바디매오라는 시각장애인이 큰소리로 외치면서 나타났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눈총을 주는데도 아랑곳없이 자기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러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눈뜨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보장제도가 없었습니다. 특히 바디매오처럼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돌봄을 받거나 구걸을 하는 일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평생의 한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라도 좋으니 아주 잠깐만이라도 눈을 떠보고 싶다는 소원이 가슴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현실 세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라는 청년이 나타나서 수많은 이들의 병과 장애를 고쳐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가 바로 자기가 사는 마을을 지나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달려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셨고 바디매오는 눈을 크게 뜨고 눈부신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찬란한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바디매오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바디매오 이야기의 서막일 뿐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비록 바디매오 자신은 무대 뒤로 사라졌지만 이어지는 예수님의 행적들은 바디매오 이야기의 연장선입니다. 바디매오 이야기는 단순히 그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대관절 누군지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알지만 예비지식이 전혀 없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한없는 미스테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선지자인지, 메시아인지, 미친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한다고 여러번 말씀을 하셨는데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바디매오처럼 눈이 가려져 있어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부활하고 나서야 그들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서도 그 의미를 다 깨달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모두 모여서 합심기도를 할 때 성령님이 강림하시고 나서 제자들은 비로소 눈을 제대로 뜨고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에게 눈을 떴습니다. 바울이 눈뜨고 디모데가 눈떴습니다.
결국 바디매오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향해 눈을 떠가는 여정을 압축해서 그려낸 한폭의 그림입니다. 만일 그 이야기가 특정 개인이 기적을 체험한 일화에 불과하다면 그건 우리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바디매오처럼 눈먼 상태에서 예수님을 통해 진리를 올바로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청사진을 극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바디매오의 이 말은 단순히 육신의 눈을 의미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열명의 한센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는데 단 한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단순히 육신만 고침받고 감사도, 감격도 없다면 그것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눈을 뜬다는 것도 단순히 육안만 눈뜨고 아무런 감사나 감격이 없다면 전혀 눈뜬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황폐한 상태로 눈을 뜬다면 자유가 아니라 방종과 방탕의 노예가 되어 눈을 뜨기전보다 더 비참한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한다고 말한 진정한 뜻은 전체적이고 완전하게 눈뜨기를 원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눈도 뜨고, 영혼도 온전해져서 완전한 구원을 받고 싶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도 여러가지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갈급한 것이 많습니다. 육신의 눈과 귀가 가리워져 있어서 보고, 듣고 싶다는 열망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외롭고 육체도 노쇠해져 가고... 그러니 갈급하고 목마른 것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갈망이 채워진다 해도 완전한 만족에 이를 수 없습니다. 완전한 만족은 우주 전체보다 크시고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충족시켜주실 수 있습니다. 결국 보기를 원한다는 말의 궁극적 의미는 하나님 보기를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향해 눈을 떠야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모든 것이 풍성하게 생동하고 있습니다. 참된 행복, 진정한 기쁨, 완전한 사랑, 영원한 빛 등 세상이 줄 수 없는 모든 보화와 궁극의 빛이 그분 안에 완비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고 무한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단번에 궁극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순차적으로 예수님을 알아갔고 그리스도인들이 수천년을 통해 주님을 배워 왔습니다. 하나님께 눈뜨고 완전한 구원을 맛보는 일은 부단한 기다림과 기도와 배움의 연속입니다. 주님 보기를 원합니다! 온몸과 온 영혼으로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향해 눈뜨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염원을 가슴에 품고 주님과 동행하는 하늘나라 사람들에게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의 빛이 모든 어둠을 밝히고 모든 갈증을 해소해주는 날이 속히 올 것입니다.
공동체소식
1. 예배순서를 디자인 중입니다. 하늘인목사님의 조언 등을 참작해서 예배가 보다 은혜롭고 예배답게 안착될 수 있도록 고심하고 있습니다.
2. 성경 함께 읽기는 간식 후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3. 송남수집사님이 쇼다운대제전에 참가하십니다.
대회일은 9월 27-29일이고 장소는 유성 JH레전드호텔입니다.
집사님이 참가하는 날자와 시간입니다.
1) 27일 오후 4시 2) 28일 오전 9시입니다.
4. 다음주 대표기도는 김흥신 성도입니다.
5. 오늘 예배후에 읽을 말씀은 시편 11편-17편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