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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김미경<2023년 전남매일 신춘문예>(감상 홍정식)
요즘 뒤에 있는 것들이 좋아집니다
당신처럼, M에게도 빈티지 공간 하나 있었죠, 그때 M은 무척 어렸고, M을 업었던 등은 순하고 따뜻한 조도를 갖고 있었어요 잠투정하던 M이 눈물 콧물 번진 얼굴로, 그곳에다 새근새근 잠을 기대놓으면, 달빛도 베이지색 커튼을 수직으로 드리웠죠
그거 아세요
이 세상 어린 잠들은 모두 수직이 키웠다는 거
비밀스런 달의 뒤뜰도, 사다리타고 내려오듯 위에서 아래로 점점 깨어나고, 이따금 놀다가던 천왕성도, 목련꽃 켜 둔 그녀의 뒤란까지 따라왔던 초록 이파리도, 명지바람이 업어 키웠죠 달이 지구 그림자를 컬러로 인화해 준다는 뉴스가 뛰어다니던 날, M은 쓰러진 그녀를 업고 응급실로 달리던 중이었다는데요
건초처럼 가벼워진 그녀 몸이
M의 등에서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렸다는데요
그동안, 들판과 벼랑마다 피는 꽃이 달랐던 것도 다 그 이유였을까요 늙은 수직은 어린 수직 위에서 온전히 잠들기 어려웠을까요 그 등에는, 당신의 위급한 잠조차 기대기 아까웠던 걸까요
의사선생님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응급실에 불안한 숨을 눕혀놓고서, 시든 파 같은 그녀 등이, 그믐달보다 어둡게 식어가는 걸 보았다는 M, 어떻게 알았는지 공중을 열고 문병 온 태양도, 가로보다는 세로의 언어로 토닥이다 가고, 달도 허공에 벽지처럼 서서 회복을 기다렸다는데요
M의 빈티지 침대는
꿈속에서, 울고 보채던 어린 벼랑을 등에 업은 채
신음하다 눈 감았고요 숨진 침대를 상여가 어영차 수거해갔죠
우리는 따뜻한 수직의 잠을 기억하는 족속들,
M을 본 건 며칠 후였습니다
잔뜩 웅크린 어깨로, 사망진단서 팔랑이는 손을 데리고 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그 앞을 스친 버스 안에는, 흔들리는 손잡이에 오늘 태어난 졸음을 기대놓은 사람들,
사람들이 저녁마다 집으로 향하는 것은, 자신의 등 어디쯤에 있는 벼랑 하나가, 어리거나 늙은 주인들을 애타게 부르기 때문, 당신이 퇴근하는 골목이 가끔씩 캄캄한 것도, 등에 업은 아기 깰까봐 가로등도 자는 척 눈 감았기 때문이죠
요즘 뒤에 있는 것들이 좋아집니다
시의 시작이 눈길을 확 당깁니다. 누구나 앞만 보고 가는 세상에 뒤에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는 말은 거꾸로 뒤집어 보자는 말과도 같습니다. 모든 시의 시작이 이 정도로 고퀄리티를 보인다면 당연히 신춘문예에서는 심사위원들이 머뭇거릴 수 밖에 없겠지요.
당신처럼, M에게도 빈티지 공간 하나 있었죠, 그때 M은 무척 어렸고, M을 업었던 등은 순하고 따뜻한 조도를 갖고 있었어요 잠투정하던 M이 눈물 콧물 번진 얼굴로, 그곳에다 새근새근 잠을 기대놓으면, 달빛도 베이지색 커튼을 수직으로 드리웠죠
당신처럼이라고 누군가를 지칭합니다. 이때 당신은 우리 모두입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일을 말하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돋보입니다. M은 아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앞에서 당신처럼이라고 했으니, M은 보편적인 사람이며 세상의 모든 아들딸을 말합니다. 아들이나 딸을 업은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그거 아세요
이 세상 어린 잠들은 모두 수직이 키웠다는 거
어머니를 '수직'으로 표현합니다. 어머니의 상징입니다. 앉으실 겨를이 없었던 세상의 어머니들이죠.
비밀스런 달의 뒤뜰도, 사다리타고 내려오듯 위에서 아래로 점점 깨어나고, 이따금 놀다가던 천왕성도, 목련꽃 켜 둔 그녀의 뒤란까지 따라왔던 초록 이파리도, 명지바람이 업어 키웠죠 달이 지구 그림자를 컬러로 인화해 준다는 뉴스가 뛰어다니던 날, M은 쓰러진 그녀를 업고 응급실로 달리던 중이었다는데요
앞 연에서 '수직'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구체적인 수직의 예를 들어야겠지요. 수직이 어떻게 세상을 키웠는지 말합니다. 하지만 장면 전환이 이 연에서 이루어집니다. 영화에서 보면 바람 속을 달리던 아이가, 혹은 빗속을 달리던 아이가 순식간에 어른으로 변하는 것처럼, 묘사가 기가 막히는 연입니다.
건초처럼 가벼워진 그녀 몸이
M의 등에서 자꾸만 아래로 흘러내렸다는데요
어머니의 가벼워진 몸이 떠오릅니다. 아들은 병든 어머니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들판과 벼랑마다 피는 꽃이 달랐던 것도 다 그 이유였을까요 늙은 수직은 어린 수직 위에서 온전히 잠들기 어려웠을까요 그 등에는, 당신의 위급한 잠조차 기대기 아까웠던 걸까요
아무래도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의 아들 사랑에 못 미칩니다. 그러니 내리사랑이라고들 하잖아요.
의사선생님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아들은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나 봅니다.
응급실에 불안한 숨을 눕혀놓고서, 시든 파 같은 그녀 등이, 그믐달보다 어둡게 식어가는 걸 보았다는 M, 어떻게 알았는지 공중을 열고 문병 온 태양도, 가로보다는 세로의 언어로 토닥이다 가고, 달도 허공에 벽지처럼 서서 회복을 기다렸다는데요
처음에 수직을 불러왔으므로 시인은 '세로의 언어'와 '서서'라는 단어로 다시 한번 더 수직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M의 빈티지 침대는
꿈속에서, 울고 보채던 어린 벼랑을 등에 업은 채
신음하다 눈 감았고요 숨진 침대를 상여가 어영차 수거해갔죠
어머니의 쓸쓸한 삶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희생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따뜻한 수직의 잠을 기억하는 족속들,
M을 본 건 며칠 후였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잠들었던 수직의 잠을 기억합니다.
잔뜩 웅크린 어깨로, 사망진단서 팔랑이는 손을 데리고 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그 앞을 스친 버스 안에는, 흔들리는 손잡이에 오늘 태어난 졸음을 기대놓은 사람들,
사람들이 저녁마다 집으로 향하는 것은, 자신의 등 어디쯤에 있는 벼랑 하나가, 어리거나 늙은 주인들을 애타게 부르기 때문, 당신이 퇴근하는 골목이 가끔씩 캄캄한 것도, 등에 업은 아기 깰까봐 가로등도 자는 척 눈 감았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당신이 보입니다. 우리가 집으로 가는 이유는 우리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죠.
시인은 태어나서 죽는 인간의 삶을 '수직'이라는 단어로 불러왔습니다. 한 편의 생명의 대서사시가 펼쳐집니다. 어머니에게서 아들에게로 또 아들에게서 다시 아들로 이어지는 보편적인 삶의 흐름을 마치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냥 이야기하듯 전달합니다. 전혀 감정이 실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시어 하나하나에서 그의 울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의 수직은 바로 우리 어머니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알려줍니다. 이런 시를 어떻게 신춘에서 마다할까요? 비가 옵니다. 겨울인데 마치 장마철처럼 추적추적 비가 옵니다. 수직으로 내리는 비를 맞습니다. 비를 막아주는 우산처럼 수직의 삶을 다시 되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