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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목욕탕의 `탕`- 카타르시스형 사물
한국형 여름 날씨에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습기다. 순전한 더위보다 몸에 끈적끈적하게 스며드는 습기가 불쾌지수를 크게 높인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날씨 때문에 생긴 습기가 몸에서 솟아나는 열기와 뒤범벅이 되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땀이 된다. 이제는 도시인의 여름 필수품이 된 에어컨이 더위만큼이나 습기가 야기하는 불쾌감을 제거함으로써 쾌적함을 만든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런데 무더위 습기 제거에 더 깔끔하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습기를 더 강한 습기로 제거하는 것이다. 땀을 더 강력한 땀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바로 `목욕`을 하는 것이다.
공중목욕탕에 가면 두 가지 과정으로 목욕을 하게 된다. 우선은 샤워다. 몸 표면에 흐르는 땀을 물로 닦아내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몸의 불쾌감은 진정된다. 그러나 공중목욕탕의 핵심은 그다음 과정에 있다.
목욕탕 중간에는 커다란 사물이 놓여 있다. 흔히 `탕(湯)`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공동 욕조`다. 커다란 탕에 들어가 앉으면 이마부터 시작해서 얼굴과 두피와 손발과 가슴에 이르기까지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마치 우리 몸속이 그 자체로 `물통`이기라도 하다는 듯이.
샤워기와는 반대로 목욕탕 욕조는 땀을 닦아내는 것이 아니라 땀을 오히려 생성함으로써 노폐물을 원천적으로 제거한다. 더위에 지친 몸은 시원한 물로 샤워할 때보다 뜨거운 물로 뜨거운 몸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시원함`을 느낀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poietike)`에서 사용하여 문학의 고전 이론이 된 `카타르시스(katharsis)`, 즉 `배설`이라는 말도 본래는 고대 그리스 시대 명의인 히포크라테스가 즐겨 사용했던 의술이다. 병을 앓아서 열이 나는 사람에게 몸을 뜨겁게 만들어서 열을 `배설(배출)`하게 한다는 착상이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7월 24일)
욕조. *철학자의 사물들(장석주)
욕조는 텅 비어있는 것의 실재이다. 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이다. 후각이 발달한 개와 늑대는 냄새로 세계를 인지하고 구축해낸다. 반면에 사람은 시지각으로 세계를 인지하고 그 바탕에서 세계를 공간으로 나누며 재구축한다. 시지각의 분류법에 따르면, 욕조는 깊이를 가진 사물이다. 욕조의 깊이를 심오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단순한 삼차원적 사물이다.
재질이나 형태가 다양하지만 욕조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움푹 팬 깊이를 가졌다는 점,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모든 제품들이 그렇듯이 욕조의 깊이는 노골적이다. 진짜로 중요한 깊이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욕조의 깊이는 "높이의 차원과 너비의 차원에서 파생된 제3의 차원" (모리스 메를로-퐁티, 《눈과 마음》)이다. 물론 욕조에 물만 채우라는 법은 없다. 욕조에 우유를 채워 목욕을 해서 유명해진 여자들이 있다. 로마의 저 악명 높
은 네로 황제의 아내 포파이아, 나폴레옹의 누이인 폴린 보나파르트 보르게세 같은 여성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