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산 산행 후기
글/김덕길
구름은 저마다의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둠을 뿌리치며 아침을 맞는다. 그러나 아침에 맞는 빗방울은 어둠이 생명인양 그 사슬을 더 옭죄기에 바쁘다.
아파트 베란다 난간을 부여잡고 우는 빗방울의 환청을 듣는다. 서둘러 물을 끓여 담고 커피를 챙긴다. 컵라면을 챙긴 후, 새벽을 달린다.
휴일 새벽의 43번 국도는 도로에 흠뻑 젖는다. 새벽 아침의 국도는 빗물에 침잠되어 젖은 채 침묵한다. 나는 침묵을 깨우며 도로를 달린다.
풍덕천 사거리에서 수원을 향하는 신호등에 녹색불이 켜질 때 차는 질주했고 위도우 브러시는 쉴 틈이 없다. 나는 반항하는 바람을 다독이며 바람의 방향을 틀어보려 애쓴다. 내가 액셀에 힘을 줄 때 바람은 비켜갔고 내가 윈도우 브러시를 작동시킬 때 유리창을 때리던 빗물은 젖은 탁구공처럼 허겁지겁 달아난다.
바퀴를 맴돌며 데구루루 구르는 앞차의 뒷바퀴에서 빗물이 터진다. 빗물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도로바닥에 부서졌고 부서진 빗물은 다시 나의 차량에 짓밟힌다. 빗물은 밟혀도 아픈 표정이 없다. 그저 바퀴가 구르면 구르는 바퀴에 부서지기만 했을 뿐, 그저 부서진 채 흐르기만 했을 뿐, 그저 흐르다 골 낮은 곳을 향해 몸을 낮추기만 했을 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물길에 밟히는 돌멩이에 졸졸졸 소리 한 번 질렀을 뿐인데, 나는 비가 온다고 비를 미워한 것은 아닌지, 비에 내 몸이 젖는다고 비를 피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비 젖는 새벽 도로를 달리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해 본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시간이 지체된다. 시계를 본다. 아차! 늦었다. 화서 역에 차를 세우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수원 역에 가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나는 액셀을 밟는다. 차는 콜록콜록 비음을 토하며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무섭게 질주한다. 바퀴에서 터지는 포말이 어지럽다.
수원역 지하통로를 막 나오려는데 누가 뒤에서 부른다.
“덕길아!”
낯익은 이름이다. 나는 얼떨결에 뒤돌아본다.
“어라? 세븐!”
반갑다.
일분 늦어서 전화할까 하던 참인데 나를 부른 것이다. 나는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친구를 환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금세 미소가 머문다. 재담이의 눈도 어느덧 싱글벙글 이다.
세븐은 마트에서 우유와 빵을 산다. 나는 갑자기 세븐 이를 따라서 들어간다.
“저번에 보니까 커피 우유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
지난번에 친구들이 커피우유를 찾는 것을 보고 대장한테 말한다.
“알았어. 그렇잖아도 골구로 사려고 생각중이야. 하하”
차에 오르니 반가운 모던아트 태영이와 처음 온다는 용궁아씨가 보인다.
“안녕? 나 그리운 섬이야. 반가워.”
나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안녕 난 용궁아씨야. 호호”
대장이 묻는다.
“용궁아씨면 직업이 뭐야? 용궁?”
“용궁식당 아닐까?”
내가 얼떨결에 짐작해본다. 그녀는 끝내 직업을 비밀에 붙인다.
같은 시각 영남에선 영남 친구들 23명이 가지산을 향해 시동을 걸었다는 정보가 들어온다. 남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들었기에 걱정이 되어 그곳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 상황을 전달 받는다. 다행이 가지산도 햇살이 싱그러워 아주 좋은 산행이 되었다는 말에 안심이 된다.
차는 빗속을 뚫고 사당으로 향했고 에어컨은 빈 좌석의 더운 공기를 식힌다.
어느덧 반가운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은비라는 대명처럼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실버랜, 자칭 하늘의 아들이라고 후기는 꼭 내가 쓰라고 강요하던 초콜릿복근의 소유자 천자, 산을 잘 아는 훈훈한 남자 훈이, 쌍둥이 딸 두 명을 데리고 올라와 딸보다는 자기를 더 챙겨달라는 분위기 메이커 은서나무, 뒤풀이에 참석한 뚝섬사랑, 고귀한 친구 금싸라기, 생업을 열심히 하면서도 배낭이 너무 작다고 푸념하는 사루비아, 시종 점잖은 로티보이, 멋쟁이 정민, “왜 오늘은 자네가 좀 조용하네?”라고 묻자 술을 마셔서 그런다는 참새와 방앗간, 이유 없이 그저 고향의 친구가 고향에서 알아주는 것이 왜 그리 반갑느냐며 정읍에 자랑거리라고 좋아해주는 새봄, 다시 봐도 늘 든든하고 바람 앞에 당당한 여자 쟈스민 짱, 자칭 남자라고 우기는 날라리천사 총무, 아이 셋을 낳은 친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도록 가녀린 친구 햇살 한 모금, 멋진 친구 전국구, 후미대장을 맡아 수고해준 로보껌, 밀짚모자가 인상적인 목소리 큰 남자 황보, 힘들다고 하면서도 산행만 잘 하는 제인에어, 오학년인 어린 나이에도 누구보다 씩씩하게 산행해준 귀여운 두 은서나무의 딸, 누구 한사람 멋쟁이 아닌 사람 없고 누구 한 사람 예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들이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땀방울의 소중함을 아는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고생 없이 이루어지는 보답이 있던가? 우리들이 흘리는 땀방울의 값진 경험이 훗날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든든한 의지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공작산 까지는 거리가 2.7km. 높이가 약 887m다. 그런데 산은 생각보다 험했다. 비가 멎으면서 부는 바람은 시원했다. 땀방울은 바람에 날렸고 산행하기엔 딱 좋은 날씨다. 조금 힘주어 오르니 바로 능선길이다. 능선을 치고 막 오르자 눈앞에 나타나는 운해, 구름의 바다, 나는 순간 이곳이 섬인가 바다인가 분간이 서지 않는다.
자갈길을 밀고 허공을 밟고 진흙길을 밀고 허공을 누르고 우리는 허공과 바닥을 교차로 밟으며 길을 끌어당긴다.
내 보폭이 작으면 길은 더디게 밀려났고 내 보폭이 힘을 내면 길은 성큼성큼 뒤로 밀렸다. 밀리는 만큼 거리는 좁혀져 좁혀진 만큼 오름은 숨 가쁘다. 용궁아씨의 힘들어 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실버랜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황보는 아예 드러눕는다. 그래도 조금 쉬고 나면 힘이 나는지 다시 앞장선다. 자주 참석 못하는 친구들의 면면이 눈에 밟히는 것은 나도 한때는 저 친구들보다 더 산을 타지 못했다는 동질감 때문이다.
다시 산길은 진흙길로 이어진다.
진흙길을 밟는 사람이 모여 진흙길 투성이인 공작산을 오른다. 마침내 정상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결박된 구름을 풀어놓아 저기 산야에 쏟아놓고 산은 허리마다 뭉게뭉게 구름을 안고 조금씩만 구름 사이로 산의 속살을 비추어준다.
오늘 공작산은 에로티시즘이다.
구름은 가녀린 산허리를 안고 구름의 입술로 산을 입맞춤하며 부풀어 오른 산의 봉긋한 봉우리들을 마치 제 것인 양 흡입한다. 봉긋한 봉우리가 일순 부끄러워 숨는다.
산과 하늘과 구름이 한 몸이 되어 저기 광야에서 사랑의 세레네다를 부른다. 우린 다만 관객일 뿐,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와!’ 이 한마디 감탄사만 연발하면 된다.
점심은 라면과 빵 밥 간식등 진수성찬이 따로없다. 특히 라면의 뜨거운 국물과 즉석 찌개도 일품이다. 늘 바리바리 싸오는 친구들의 정성이 고맙고 아름답다.
산을 오르려면 그만큼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 최소한 산행하기 이틀 전에는 한 시간정도 걷기나 뛰기를 해주는 게 좋다. 그래야 근육이 엉키지 않는다.
추위가 몰려오는 지금부터는 도시락도 보온도시락으로 가져오고 바람막이 옷 정도는 챙기기를 바란다. 온수도 꼭 필요하다. 산행은 자기 페이스가 중요하다. 페이스를 오버하게 되면 다리의 근육이 뭉치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낙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에 오르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다.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니 건강해지면 병원에 갈일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돈 버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집중 호우로 공작산으로 산을 바꾸어 산행했지만,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세븐대장이 있었기에 오늘의 후기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부러 어제 공작산을 미리 올라갔다는 대장의 노력에 나는 감동한다. 내가 산행 대장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서울에 돌아와 감자탕의 뒤풀이도 좋았다.
함께여서 늘 좋은 사람들 이들을 나는 친구라고 부른다.
후기가 또 길어졌다. 천성이 남을 웃길 줄 모르는 것도 병인것 같다.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하고 마치겠다.
며칠 전, 친구 두 명이 민속 주점에 가서 음식을 시키며 말했어.
“우리 이럴게 아니라, 여기가 민속주점이니 만큼 우리도 음식을 조선시대 선비처럼 시켜 먹으면 어쩌겠나?”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럼 가지.”
민속주점에 들어간 친구가 말했어.
“이보게 친구! 뭘 그리 망설이는가. 어서 좌정하시게.”
“그러세.”
잠시 후, 막걸리와 파전이 나왔어. 친구가 말했어.
“자! 그럼 우리 씹세!”
우스워 죽겠는데 다시 어떤 할아버지가 뜬금없이 나타나서는 그러는 거야.
“노루가 다니는 길은?”
내가 답을 몰라 헤매고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그러는 거야.
“그것도 모르나? 노루가 다니는 길은? 노르웨이.”
내가 깔깔깔 웃자. 할아버지가 다시.
“달걀이 좋아하는 돈은? 에그머니, 마지막으로 도둑이 좋아하는 돈은?”
내가 고개를 흔들자 그 할아버지가 막 외치고 가는 거야.
“정답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