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어가는 이야기>(2)
영어로 'wine and dine'이라 하면 음식에 곁들여 와인을 낸다는 뜻입니다. 즉 나름 제대로 음식을 낸다는 뜻이겠지요.
'Enjoy wine'이라 하면 음식이 있든 말든 와인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즉 와인 자체를 즐기는데 중점을 둔다는 뜻이겠지요.
茶를 마실 때도 비슷한 차이를 떠올리게 하는 한자어들이 있습니다.
'얌차'로 읽히기도 하는 광동 일대의 음차(飮茶)라는 말은 음식과 거기에 어울리는 차를 함께 즐길 때 주로 쓰는 표현입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얌차는 대체적으로 음식과 차를 나란히 즐길 때 자주 쓰는 표현이지요.
'츠차'로 읽히는 끽차(喫茶)라는 말은 음식과 상관없이 차를 위주로 마실 때 곧잘 쓰는 표현입니다.
이밖에도 차를 마시는 표현에는 다양한 한자 동사들이 쓰입니다.
차를 즐김(玩茶), 차를 맛봄(嘗茶), 차를 헤아림(品茶), 차로 목을 축임 (喝茶), 차를 머금어 마심(啜茶) 등이 그 가운데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들은 문학적 서사의 차이를 넘어 실제로 차를 먹는 다양한 방법과 태도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방법과 태도를 알맞게 적용하지 않고 그냥 물 마시듯 국수 들이키듯 차를 마시면, 차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차를 마시면 식도나 위를 다친다거나, 차를 마시면 미네랄 성분이 몸에서 빠져나간다거나, 차를 마시면 몸이 차가와진다거나, 차를 마시면 기력이 소모된다는 등 엉뚱한 이야기가 모두 차를 제대로 마실 줄 모르는 데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밥도 잘못 섭취하면, 식도와 위가 크게 손상되거나 급속도로 나빠지고, 간이 손상되며, 신장과 심장이 훼손되고, 몸이 체하여 기력이 크게 손상되며, 독소가 적체되어 큰 병이 생기거나, 기혈의 흐름이 혼탁해져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밥의 부작용이라고 하면서 밥을 비난하고 밥을 끊지는 않습니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소치라고 할 따름이지요.
그런 식으로 문제를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대상에게서 찾을 바에야, 이런 우스개말도 가능합니다.
"세상에 아파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 물을 마신 사람들이다."
걸터앉기 변조에 앉을 때, 두 발을 11자로 가지런히 하지 않고, V자로 벌려 앉거나 다리에 힘을 거의 빼고 앉아서 치질이 생겼을 때, 자기를 탓하지 않고 변조를 탓한다면 과연 옳은 일일까요?
茶!
알맞은 방법으로 적절하게 마시지 않으면, 위나 식도를 다칠 수도 있고, 몸이 차가와질 수도 있습니다.
글을 한 번 더 쪼개어 다음 번에 그 방법을 간략하게 올려볼까 합니다.
함께 올린 사진은 제가 공부방에서 정신 좀 다잡을까 싶어 녹차나 황차를 마실 때 쓰려고 준비해둔 작은 찻자리입니다. 찻자리 유리판 아래 도자기에는 산차 15근이 들어 있어, 늘 은은한 차향을 냅니다. 뿐만 아니라 유리에 비친 금빛 새가 산차 위로 날아다닙니다.
문제는 올해들어 아직까지 한번도 거기 앉아보진 못했다는 점이고요...
<쉬어가는 이야기>3
입이 마르면 물을 찾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뱃속이 뻑뻑해도 물을 찾습니다.
목이 막힌 듯해도 물을 찾습니다.
피곤하거나 졸려도 물을 찾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사실 물을 알맞게 마시는 방법은 같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뱃속이 뻑뻑해서 물을 마시더라도 삼키듯 벌컥벌컥 마시는 것은 몸과 마음상태에 모두 해롭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답답함과 뻑뻑함이 제대로 풀리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벌컥벌컥 마시는 것은 사냥하는 동물의 습이나 전쟁터의 습과 비슷합니다.
사실 저에게도 아주 가끔 그런 습이 나오지만 말입니다.
목이 메이는 듯해서 물을 마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벌컥벌컥 마시면 목메임이 풀리지도 않고 심지어 목을 다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피곤하거나 졸릴 때에도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좀 깨는 듯하다가 곧 더 졸리고 더 피곤해집니다.
조금씩 몇차례 꾸준히 마시면 오히려 피곤과 졸림이 그 사이에 슬그머니 풀리게 됩니다.
그래서 물을 마실 때는 원칙적으로 모두 입이 마를 때 마시는 것처럼 하면 좋습니다.
입이 마르다는 것은 입속에서 침이 나오지 않아서 혀가 입안에서 쩍쩍 붙고 입술도 마르는 듯한 느낌을 가리킵니다.
그럴 때에는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입을 축축하게 해서 침샘에서 침이 나오게 할 정도의 양이면 됩니다.
비유컨대 옛날 펌프식으로 우물물을 끌어올릴 때, 처음에 물을 한 바가지 부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하면 됩니다.
다만 펌프식으로 우물물 끌어올릴 때에는 한 바가지를 한 차례 부으면 되는데, 입이 마를 때에는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한 차례가 아니라 몇차례 마시는 게 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차를 마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몇잔은 입에 조금 넣어 입속을 두루 적시듯 하는게 좋습니다.
그렇게 차를 마실 때는 목젖이 한 번 이상 움직이지 않는게 특징입니다. 꿀꺽꿀꺽 두 번 이상 목젖이 움직였다면, 그것은 차를 마신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치게 삼킨 것입니다.
찻잎의 성질은 조금 차갑다고 합니다. 차나무는 그 키에 견주어 뿌리가 깊어서 그 체관과 수관에 흐르는 성분들이 시금치나 무우처럼 표토층을 터미널로 하는게 아니고, 표토층 아래의 핵토층을 터미널로 삼음으로써 성질이 좀 차가운(寒)데다, 적정 찻잎 또한 광합성작용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오후에 따지 않고 야기(夜氣)가 부분적으로 남은 오전에 주로 따서 그 기리(氣理)가 기양정음(氣陽精陰, 기운은 양하고 물질요소는 음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찻잎으로 차를 만들 때 불이나 햇빛이나 비비기를 해서 차가운 기운을 가라앉힙니다.
그래서 차의 종류에 따라 그 한기(寒氣)는 조금 남거나 거의 사라지거나 미미한 온기(溫氣)로 바뀌게 됩니다.
물론 온기로 바뀐 경우에도 기양정음(氣陽精陰)의 본성은 바뀌지 않는게 차이긴 합니다.
아무튼 차를 마시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과 비슷합니다.
음식을 삼키지 않고 씹어서 먹는 것은 입에서 침과 섞는 공정입니다. 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씹는 것이 아니라, 간과 쓸개와 지라에서 즙이 나와서 위로 모여들어 합일(合一)을 해야 위가 제대로 소화를 하듯, 음식에 침을 섞어서 들여보내야 그 합일이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씹을 필요가 없는 듯한 죽도 씹어서 침과 섞은 다음 들여보내야 합니다. 침과 섞지 않고 들여보낸 죽은 조금 씹어 침이 섞인 딱딱한 음식보다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즉 죽은 막 넘기는 음식이 이니라 침과 섞어 흘려넘기는 음식입니다.
물도 그래야 하고, 차도 그래야 합니다.
아이고...이미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번 더 늘여야 하겠습니다.
함께 올린 사진은 윈난성 이우 지역에 있는 작은 차장에서 만궁(彎弓)마을의 찻잎으로 만들었다는 보이차의 내비입니다.
옛 동창호의 외손들이 25년 전에 만들었다 하는데, 저로서야 그 진위를 알아낼 길은 없지요.
차만 좋으면 그만일 뿐...
본래 입은 옷은 잘 보지 않는지라..
<쉬어가는 이야기>4(끝)
사람이 처음 태어났을 때 먹을 수 있는 것은 공기와 액체입니다.
그때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 가운데 자음(子音)은 '생성의 자음'인 'ㅇ'과 'ㄴ'과 'ㄹ' 밖에 없습니다.
아직 혀뿌리의 힘이 거기까지인 탓입니다.
이 자음을 낼 때 혀의 높낮이는 각각 가운데와 아래와 위로 다르지만, 혀의 길이 위치는 구강의 뒷부분에 있게 됩니다.
그러다가 7~8개월이 지나 잇빨이 나기 시작하고 건더기를 먹을 수 있을 준비가 되어가면 혀뿌리의 힘도 커져서 혀의 길이 위치를 구강의 가운데 부분에 두고도 소리를 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성장의 자음'인 'ㅁ'과 'ㄱ'과 'ㄷ'을 낼 수 있게 되는데, 각각 혀의 높이를 가운데와 아래와 위로 옮겨가며 소리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몇주일 차이를 두고 'ㄲ'과 'ㄸ'의 된소리(경음)도 낼 수 있게 됩니다.
이 단계는 이른바 공기와 액체를 지나 건더기를 먹어갈 준비를 하는 단계, 즉 이유식의 단계이기도 합니다.
이제 잇몸에 힘이 생겨 건더기를 씹을 수 있게 되면 직립이 되고, 깨끼발 직립보행을 지나 안정 보행을 하게 되면, 혀의 길이 위치도 구강의 앞에 두고 '완성의 자음'인 ' 'ㅅ계'와 'ㅂ계'와 'ㅎ계'의 소리를 내게 됩니다.
또 된소리에 이어 센소리도 차츰 다 내게 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비록 낮은 수준이지만, 원칙적으로는 모든 것을 먹어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현실적으로 먹을 수 있으려면 자음을 첫소리(초성)가 아닌 끝소리(종성)까지 낼 수 있고, 모음도 조합해서 중모음이 완전해져야 하지만 말입니다.
茶는 이 가운데, 이유식 단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물건, 즉 물(젖)과 건더기의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물건입니다.
그래서 차를 입에 넣을 경우, 자기도 모르게 혀의 길이 위치가 뒤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렇게 마시는 것을 '차 들이키기' 즉 갈차(喝茶)라고 합니다.
갈차 단계에서 혀의 길이 위치가 뒤로 가면 갈수록 차의 맛은 덜 느끼게 됩니다. 사람이 느끼는 온전한 맛은 혀를 늘였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혀를 늘리고 맛을 보다가 그 맛이 싫어서 피하고 싶을 때도 혀는 저절로 당겨져 옮겨집니다. 물론 생활에서 잔머리의 길이 든 뒤에는 일부러 혀를 길게 빼서 공기와 맞닿게 해서 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문화본능이지 신체본능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차와 차의 맛과 차의 유익함에 익숙해지면 차를 입에 넣고 '씹어마시게' 됩니다. 즉 혀의 길이 위치가 건더기를 씹을 때처럼 앞까지 옮겨지게 됩니다.
그렇게 茶를 먹는 것을 형태상으로는 '끽차'(喫茶), 방법상으로는 '철차'(啜茶)라고 합니다.
그렇게 차를 먹는 끽차는 결국 침반차반(唾半茶半) 즉 벽하입실옥장향(碧霞入室玉漿香, 차가 입에 들어오니 침에서 향기가 난다)을 만듭니다. 문학적 표현으로는 '차반향초'(茶半香初)나 수류화개(水流花開)를 만들게 됩니다.
이와 관련된 茶를 마시는 이야기에도 더 붙여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았지만,여기에서 일단 줄이겠습니다.
차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길 빕니다.
함께 붙이는 사진은 어느 산골 차예관의 뒷모습입니다.
5<잠시 다른 이야기>
끓는 물에 무엇인가를 넣어 삶는 것을 한자어로는 팽(烹)이라고 합니다.
물에 무엇인가를 넣어서 끓이는 것을 한자어로는 자(煮)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물이 끓을 때 거기에 茶를 넣어서 삶아낸 다음 그 삶은 물을 마시는 것은 팽차(烹茶)입니다.
통상적으로 팽(烹)은 삶아낸 물보다는 삶은 내용물을 주로 섭취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샤브샤브나 수육을 대개 그렇게 끓이는데, 그건 샤브샤브나 수육이 국물보다 내용물 또는 고기를 주로 섭취하는 음식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삶는 정도에 따라서 데친다고도 합니다. 산나물이나 샤브샤브를 떠올리게 됩니다.
자(煮)는 내용물보다 그 물을 주로 섭취하려고 할 때 쓰는 방법입니다.
곰탕이나 스튜 등을 그렇게 끓이는데, 그건 곰탕이나 스튜가 건더기보다 국물을 주로 섭취하는 음식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팽(烹)한다고 반드시 국물을 섭취하지 않고 버리는 것은 아니며, 자(煮)한다고 반드시 건더기를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찻잎은 주로 烹이 아니라 煮를 합니다. 즉 茶는 일반적으로 차탕(茶湯)을 목표로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煮를 하는 불의 강도나 속도 등의 문제는 여기서 별개의 문제입니다.
烹이나 煮 이외에 탕포(湯泡) 또는 탕침(湯浸)이라고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미 끓인 물에 내용물을 담그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고온에서 이루어지는 우려내기 즉 고온 침출(浸出)이나 고온 포출(泡出)로서, 이 사이에도 뜻의 차이가 있습니다.
담그는 내용물에 중점을 두는 것은 포출이고, 담궈서 나오는 액체에 중점을 두는 것은 침출입니다.
즉 김치류는 포출에 가깝고 액젖은 침출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茶는 사실 포출하는 물건이 아니라 침출해서 우려내는 물건이라고 봐야 합니다.
즉 많은 차는 포출차류가 아니라 침출차류인 것이죠.
다만 관행적으로 포차라고 많이 부르므로 저도 그 관행을 굳이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茶의 경우 煮를 하든 泡浸(포침)을 하든 모두 고온에서 하거나 또는 고온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온에서 달여내거나 우려낼 수 없다면, 근본적으로 돌아볼 바가 많은 茶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언제 다른 기회에 말씀 올리겠습니다)
덧붙인 사진에 구름인지 산인지 분간이 쉽지 않은 산자락이 멀리 보입니다. 반야봉 자락입니다.
반야봉 계곡에서 타고 내린 물길 따라 많은 茶낭기 자라고 그 차나무에서 딴 찻잎으로 많은 하동 분들이 차를 만듭니다.
그 가운데는 자출(煮出)을 하든 고온에서 침출(浸出)을 하든 당당하게 "나는 茶요"를 외치는 소중한 高麗茶(Korea Tea)도 생산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차는 우리차의 미래일 것입니다.
그 차를 축복하는 기도로 오늘 아침을 맞이해봅니다.
(몆 가지 글은 최근 박현 선생님이 지방 출장을 다니시는 길에 올린 글이기도 합니다)
|
첫댓글 근취 제신의 정밀함 아마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