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한 편의 비디오를 보던 중, 깊은 전율과 감동으로 어떤 한 여교사를 만났다. 마치 뜻이 같아 오래 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사람처럼 나는 지금 뜨거운 동지애를 가지고 그 여성을 소개하고 싶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의 주인공 캐서린 왓슨 교수
그녀는 1953년 가을, 미국에서 보수와 전통으로 상징되는 명문 사립인 웰슬리 여자대학교에 부임한다. 이 학교에는 축제 중 경기에서 이긴 학생이 제일 먼저 결혼한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또 결혼할 학생이 아기 낳기를 빈다는 의미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전통이 있다. 하바드에 다니는 남친의 숙제까지 해 주는, 전 과목 A인 우수한 학생도 인생의 최고 목표는 오직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주부이다. 교육 과정에는 남편에게 내조하는 방법과 식사법, 몸가짐, 심지어는 남편 직장 상사를 초대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에 이르기까지 현모양처를 길러내는 산실로서 모자람이 없는 학교이다.
‘미술 100년사’ 첫 시간에 학생들은 부러울(?) 정도로 태도가 반듯하고, 수업 준비를 얼마나 잘 해 왔는지 주교재, 부교재까지 달달달... 대답이 청산유수이다. 틀에 박힌 모범적인 정답에 기존의 기법과 기준, 주제가 있어야 그것이 예술이라는 이 똑똑한 학생들에게 교수는 교과서 밖의 것을 가지고 다가간다. 순간 당황하는 학생들에게 정답에 구애받지 않은 자기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라고 한다. 답안을 미리 작성해 오지 않도록 현장에서 바로 두 작품을 10분씩 보여주고 비교 분석하라는 과제를 내리는가 하면, 자기 생각이 드러나지 않은 답안지에는 가차 없이 C를 매긴다. 생전에는 이름도 없다가 후대에 인정받은 고호나 피카소를 이야기하고,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한 천재 화가 잭슨 폴락의 그림을 ‘그냥 보기만 하라!’고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끌어내기도 한다.
이러한 캐서린의 수업 방식에 대하여 학교는 당연히 ‘전통을 존중하라!’는 경고를 주지만, 오히려 학생이 결혼을 하면 얼마 동안은 결석이 묵인되는 학교 전통에 강하게 반기를 든다.
“아예 1학년 때 결혼하지. 그럼 출석 한 번 안 해도 졸업장은 딸 수 있잖아?”
“결혼이라는 전통을 무시하지 마세요.“”
“결혼했다고 수업을 무시하지 마.”
“결혼 안 하셨다고 저를 무시하면 안 되죠.”
“출석 확실히 해. 안 그럼 낙제야.”
“결과를 감당 못 하실 텐데요?”
“협박이니?”
“가르쳐 드리는 거죠.”
“그건 내 일(job)이야."
교실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캐서린의 교육 방식은 학교뿐만 아니라 학생 사이에서도 저항이 만만치 않다. 자신들의 평생의 목표와 가치가 하잘 것 없이 여겨지는 이 교수 앞에서 특히 편집장이며 동문회 회장의 딸인 베티는 학교 신문에,
“진정 여성이 해야 할 일은 가정을 굳건히 지키며 전통을 계승할 아이를 낳는 것이거늘, 왓슨 교수는 신성한 결혼에 반기를 든다. 그녀의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은 여성의 타고난 역할을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기고한다.
분노와 실망으로 가득 찬 캐서린의 다음 날 수업은 격앙된 어조로 사뭇 뜨겁다.
“미래의 학자들이 우리를 알기 위해 무엇을 연구하겠는가?”
열변을 토해내는 그 앞에서 광고 슬라이드가 한 장씩 숨가쁘게 넘어간다. 코르셋을 한 채 예쁘게 차려 입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하며, 새 가전제품 앞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들. 이를 ‘여성의 타고난 역할’이라 부르는, 이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인 이 학생들에게 격분한 캐서린이 나가 버린 뒤 교실은 숨막히는 침묵만이 감돈다.
학생의 반이 결혼했고, 나머지 반도 곧 결혼하게 될, 오직 결혼만이 목표이고 학교는 장식품으로 다니는 이 학교 학생들의 행태에 분개하는 캐서린에게 ‘여자들이 100년 전만 해도 대학은 꿈도 못 꿨는데, 세월 좋아졌다.‘며 어디나 규율은 필요하다는 말로 총장은 꾸짖는다..
또한 캐서린은 ‘될 성 부를 듯’한 학생에게 대학원 원서까지 직접 가져다 주며 일과 결혼을 병행할 수 있음을 권하여 기껏 합격했음에도 남편을 뒷바라지한다는 이유로 진학할 수 없다는 우등생 제자로부터 맹공격 당한다.
“선생님은 자기가 원하는 걸 하라고 했잖아요? 저는 가정을 원해요. 아내와 엄마 되는 게 더 좋아요. 왜 선생님은 우리에겐 고정관념을 깨라고 하면서 선생님의 편견은 못 깨세요?”
제자의 이런 모질고 야무진 지적이라니! 교단에서 오랜 세월 동안 뭔가 뜻을 세워 보겠노라고 혼신의 힘을 바친 교사치고 이런 소리 한두 번쯤 안 들어 본 교사는 없을 것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할 터인데, 나는 절로 눈물이 나왔는데 캐서린은 애써 웃으며 결혼을 축하한다며 행복을 빌어 주었다. 성숙함의 차이인가..?
결국 캐서린은 운영위원회에서 재임용이 거부되지만, 개교 이래 학생들의 수강 신청이 개교 이래 최고의 등록률을 보이자 조건부로 재임용된다. 그 조건이란,
1. 학과장이 정한 수업 진도표에 따른다.
2. 학기 초에 강의 계획서를 제출하고 승인 받는다.
3. 강의 주제를 벗어난 학생과의 상담은 허용되지 않는다.
4. 다른 교직원과는 엄격한 직업적 관계만을 유지한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유럽으로 떠나는 캐서린을 향해 그동안 가장 강한 저항과 반발을 보였던 편집장 베티는,
“나의 선생님, 캐슬린 왓슨은 자신의 길을 고집하며 윌슬리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었던 아주 특별한 여성에게 이 글을 바친다‘며 마지막 사설을 남기고 졸업을 한다.
졸업식 날, 학교를 떠나가는 캐서린의 차를 졸업 가운을 입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따라온다. 그들 중 화려했으나 불행했던 정략 결혼을 청산하고 이혼 수속을 시작한 동시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베티가 마지막까지 창가로 내미는 캐서린의 손을 잡으며 오래 오래 손을 흔드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는 처음 두어 장면부터 이미 ‘죽은 시인의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키팅 선생님은 남자 고등학교의 남자 선생님이고, 캐서린은 여자 대학교의 여자 선생님이다. 둘 다 자신의 교과 수업을 통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실천하며 가르치는 교사이다. 아이들은 처음 낯설어 하고 때로 저항도 하지만, 서서히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달아 가고, 그런 과정에서 키팅의 제자는 자살로, 캐서린의 제자는 이혼이라는 아픔과 상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일반적인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넘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여학생과 여교사’를 본다. 여학생에게 여교사의 존재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직도 초, 중, 고,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학생들은 착한 여자가 되어 전통적으로 좋은 남자를 만나 사랑받으며 결혼으로 이르는 길을 행복한 인생 그림으로 그리는 데서 크게 멀지 않기 때문이다. 여교사는 같은 여성으로서 같은 역사와 질곡을 겪은 자로서 남교사와는 또 다르게 가슴 저 깊은 곳에서 포효하는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여학생들 앞에 선 여교사들이 어떤 자세로 우리의 이 여성 동지요 후배들을 대하고 있는지 한 번쯤 오래도록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이다.
첫댓글 좋은 영화 1편을 감상한 그 느낌이 제 느낌으로 이동된 듯하네요. 고마워요^*^
꼭 한 번 보고 싶네요.
느낌이 있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다 못읽었는데,,, ㅎㅎ 큰애 방정리하고 나서, 조용한 시간에 다시 한번더 감상할께요,,,,,
선구자인 키팅선생님과 캐서린선생님, 이런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듯 합니다. 이런 학교는 이제 없겠죠? 남성이 아니고 여성이라서 더 자랑스런 사회가 미래에 꼭 오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남자이니 뭐...^^ 그러나 꼭 찾아서 보겠습니다.
좋은글감상하고갑니다..
좀 어려운 영화 감상이군요.
현실에 만 집착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 옵니다.
정가네님의 '나는 남자이니 뭐..'가 못내 아쉽습니다. 저는 좋은 주제일 듯 싶어서 우리 바람재의 교육 동지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ㅎㅎ. 결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농담이었지만 실망하셨다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