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4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70년대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80년대에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 인구가 급증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외환위기(IMF)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가 급속하게 확대됐으며, 2000년대에는 IT 및
서비스 산업이 발전했다.
직업병 문제를 비롯한 노동자 건강권 문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60~70년대는 진폐증과
난청만이 유일하게 직업병으로 인정받았다. 제5공화국 때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됐지만, 1980년대는 여전히 직업병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국가 이익에 반하는 행위로 여기는 암울한 시기였다.
1988년에는 15세 소년 문송면의 수은중독 사건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원진레이온의
집단 이황화탄소(CS2) 중독 사건이 사회에 알려졌다. 비로소 직업병 문제가 사회 문제로 이슈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90년대 후반에는 IMF를 거치면서 노동자에게
근골격계 질환과 심혈관계
질환이 급증했고,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로 대표되는 소외된 노동자층이 확대되는 등 다양한 산업보건 문제가 새롭게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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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의 수은중독을 보도한 1988년 5월11자 동아일보 기사. 온도계 공장에서 일한 15세 소년이 두 달만에 수은에 중독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blog.ohmynews.com/hum21 |
산업보건 정책 및 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1981년 처음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이후 3차례의 커다란 변화 과정을 거친다. 1989년에는 정부의 산재예방 책무 신설, 산업재해 예방기금
설치, 노사 동수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산재예방교육 의무화 등의 정책 변화가 있었다. 1995년에는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과 물질안전 보건자료(MSDS) 제도로 대표되는 노동자의 알권리, 그리고 산업의학 전문의 제도 등이 신설되었다. 2002년에는
근골격계질환,
스트레스,
실내 공기질 등에 대한 사업주 의무사항을 법으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직업병 문제를 풀어보려는 정책 범위가 확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 15세 소년 문송면의 수은중독 사망 사건과 원진레이온 집단 직업병 인정투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안전보건운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1988년 7월 2일, 15살 소년의 죽음은 올림픽으로 들떠있던 시점에서 산재추방운동을 시작하게 만든 중요한 시발점이 됐다. 문송면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87년 12월 중학교 졸업식도 마치지 못하고 서울의
공장에 취직했다. 야간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에 꿈 많은 어린 소년이 노동현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은 많은 사람을
가슴 아프게 했다.
공장에서 수은을
온도계에 집어넣는 일을 했던 문송면은 일한 지 두 달 만에 손발이 마비되는 등 수은 중독을 겪다가 숨졌다. 당시 우리나라 노동보건의 현실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열악했다. 문송면의 죽음은
대학병원을 전전해도 직업병을 밝혀내지 못했던 후진적 전문성, 회사의
산재신청 날인거부, 사업주 날인이 없이 직업병을
진단한
서울대병원이
산재보험 미지정
의료기관이라는 이유로 요양
신청서를 반려한
노동부 등 제도가 가진 한계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산업재해나 직업병에 무관심했던 시민들에게 한국사회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 직업병 문제의 심각함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이 일어나는 발화점이 됐다.
문송면 수은 중독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피해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를 <한겨레>가 보도하면서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이 사회에 알려졌다.
자연스럽게 당시 '고(故) 문송면 산업재해노동자
장례위원회'에 모였던 노동운동가, 진보적 보건의료인, 사회단체들이 곧바로 관련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뒤이어 피해자
조직이 만들어졌다. 여론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에 분노했다. 이 힘은 각계의 힘이 모인 연대투쟁으로 이어져 피해자와
전문가, 사회단체들이 노동자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열정을 다하고 헌신하는 모범을 만들어갔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1999년까지 기나긴 싸움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안전보건제도 개선은 물론, 직업병을 치료(녹색병원)하고
연구(노동환경건강연구소)하는 전문기관
설립으로 이어졌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직업병 투쟁의 표본이 되었다. 문송면 수은중독과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과 성과들은 과연 어떤 의미로 평가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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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집단 직업병 문제를 처음 알린 한겨레신문의 1988년 7월22일자 기사. 원진레이온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신경독성물질인 이황화탄소의 유해성을 전혀 모른 채 일했다. 기사는 이황화탄소에 쉽게 중독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을 지적하고 있다. ⓒ일과건강 |
첫째, 산업재해 추방운동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산재추방운동은 1986년 구로의원과
상담실의 설립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계의 모금으로 설립된 구로의원은 산업재해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산재
환자 진료 및 상담, 교육활동을 전개했다. 이와 같은 진보적인 보건의료인들의 참여는 이후 중요한 직업병 사건을 사회문제화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문송면 수은중독과 원진레이온 싸움은 산재추방운동 참여 폭을 노동단체,
시민단체, 나아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둘째, 노동안전보건 분야의 정책 변화와 발전을 이끌었다. 1981년 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또 다른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확보하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최소한의 보장만 하던 수준이었다.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사건으로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심각한 직업병 문제가 알려지면서 제도개선 요구가 있었고, 결국 1989년 12월 법이 개정되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 때 산업재해예방기금 설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한 노동자대표의 참여권 보장, 산재예방교육 의무화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겼다. 이후 제도개선 투쟁은 1995년 작업중지권과 노동자의 알권리, 산업의학 전문의 제도 등의 신설로 이어진다.
셋째, 우리나라 직업병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직업병은 진폐와
소음성난청(특히 진폐 비중이 90% 이상)으로 전체 직업병의 99% 이상을 차지했다.
기타 직업병은 연간 10여 명 미만으로 극소수에 불과했다. 1985년 직업병
통계를 보면 연간 직업병자가 2905명이었는데, 이중 진폐가 2900명, 난청이 3명,
중금속중독이 2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왜곡되었던 직업병 통계가 문송면, 원진레이온 사건을 계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문송면은 중금속 중독이었고, 원진레이온은 유기용제 중독인 관계로 이 분야의 직업병 환자수가 점차 늘어났다. 1991년 통계를 보면 연간 직업병환자 1567명 중에서 진폐증 1228명, 난청 178명, 중금속중독 61명, 유기용제중독 60명, 기타 10명으로 직업병 종류가 다양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90년 중반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뇌심혈관계 및
근골격계질환자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진다.
넷째,
노동조합이 비로소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지금은 대부분 노동조합에 노동안전보건부가 조직되어 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담당부서가 그 어디에도 없었다. 1988년 문송면의 죽음과 원진레이온 사례가 이슈화되면서 노동조합이 스스로의 건강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88년 경원세기노동조합, 1989년 대우조선노동조합과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두 사건이 노동조합, 노동자 스스로가 직업병을 인식하고 직업병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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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의 기일인 7월2일 즈음에 해마다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가 열린다. 1988년 7월의 죽음과 아픔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자리이다. 사진은 2010년 6월27일 열린 합동추모제에서 문송면의 유가족이 나와서 인사를 하는 모습. ⓒ일과건강 |
해마다 7월이면 사람들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문송면 묘소에 모여 '죽지 않고, 다치거나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자 권리'를
생각하곤 한다. 1988년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송면이와 원진레이온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대상이
반도체공장으로, 다양한 직업성 암 문제로, 또 다른 노동현장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역사를
교훈 삼는 것은 똑같은 불행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2012 송면이를 만나러 지금, 갑니다
7월 2일 고(故) 문송면 기일을 맞아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일과건강에서는 6월30일(토)~7월1일(일) 포럼 '2012 송면이를 만나러 지금, 갑니다'를 개최합니다.
1988년 7월은 산업재해 추방운동이 뜨겁게 시작된 해였습니다. 좁은 공간, 미흡한 환기시설에서 수은을 다뤘던 소년 문송면의 수은중독과 사망, 유독가스의 위험성을 몰라 술 때문에 아픈 줄만 알았던 원진레이온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문제는 '직업병 예방'이라는 본질은 해결되지 않은 채 모습과 대상을 바꾸며 2012년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은 직업병 예방을 위해 필요한 노력과 역할을 찾아보는 자리입니다.
□ 프로그램 □ <세션1. 지역사회와 노동안전보건운동 6월30일(토) 15:00~18:00> - 발 제 : 노동안전보건으로 말하는 지역운동(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토론1 : 웅상지역 노동자의 더 나은 복지를 위한 사업현황과 시사점(임영국, 화학섬유연맹) 토론2 : 발암물질로부터 안전한 여수·광양만들기 사업본부 사업현황과 시사점(한인임, 일과건강) 토론3 : 안전한 성동만들기 사업현황과 시사점(이창식, 성동근로자복지센터) 토론4 : 대구 성서공단 사업현황과 시사점(김은미, 산업보건연구회) - 종합토론
<세션2. 직업병 수난사와 현시기 과제 6월30일(토) 19:00~21:30> - 발 제 : 지난 30년, 직업병 일지 읽어내기(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토론1 : 현 산업안전보건법이 보여주는 직업병 예방의 한계(주영수, 한림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노동건강연대) 토론2 : 숨겨진 직업병을 드러내기 위한 활동전략(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토론3 : 예방으로 이어지는 직업병 투쟁, 이렇게 하자(문길주, 전남지역 노동안전보건활동가) - 종합토론
<2012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 참가, 7월1일(일) 10:30>
□ 포럼 : 2012. 6. 30(토) 15시~7.1(일) 10시 북한강 연수원(경기 남양주시) 추모제 : 2012. 7. 1(일) 10시30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위령탑 앞 참가문의 : 일과건강 ☎(02)490~2091, 2096 / http://safedu.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