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계 1구간
2012. 11.20 (화) 산길 : 장석재~어석재 사람 : 객꾼 조은산 거리 : 21.2km
구간거리 대곡면설매리 장석재(1013번R)~0.7~△216.7~1.9~자릿대재~1.6~△257.9~2.9~대곡리 남강변~남강(6km)~지수면 장박교~2.3~방어산(△530.4)~4.5~괘방산(△457)~1.3~어석재(1004번R) / 21.2km
Cartographic Length = 24.2km Total Time: 08:50
2만5천 지형도 위에 진주시계를 나름대로 꼼꼼히 그어보니 167.7km가 나온다. 이를 20km씩 자른다면 여덟구간이 되겠는데, 진주시계는 대간, 정맥처럼 마루금으로만 이어지는것이 아니라 남강을 끼고 도는 구간이 여러군데 있다. 즉, 강이 인접지역과의 경계가 되어 지도상 경계선은 강의 한가운데로 그어져 있다. 그렇다고 배를 타고 갈수는 없는 일이라 최대한 인접한 제방 둑 같은데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구간에서는 산길과 달라 20km 이상 진행할 수도 있으므로 여덟 번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계획이고, 실행은 한 구간 한 구간 해 나가면서 단축될 수도 혹은 늘어날 수도 있겠다.
인터넷에 ‘진주시계’ 검색을 하니 진주로 만든 시계 ‘珍珠時計’만 나온다. 모르긴 해도 ‘최초로 진구시계 종주’라 이름을 걸면 시건방일까. 최초니 개척이니 하는 타이틀은 원래부터 거부감을 느껴오던 바 이니 내걸 입장도 아니다만, 어쨌거나 나로써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지도상의 선을 따라 가는 것이니 만큼 그 의미는 상당하다.
발동은 객꾼이 걸었다. 벌써 수년전부터 불러댔는데 내가 진주사람도 아니면서 남의 동네 경계에 무슨 관심이 있겠나. 객꾼은 이번에 ‘딸내미랑 백두대간’을 끝냈다. 2009.3.14에 초등학생 딸내미만 있는 두 딸딸이 아빠(객꾼과 뚜버기)가 지리산을 출발하여 2012.11.3.에 진부령에 도착했다. 중간 두어 구간 지원을 나간적도 있긴 하지만 처음에는 ‘중간에 포기한다’에 걸었었는데, 보란듯이 해내고야 말았다.
말하자면 ‘딸내미랑 백두대간’ 완주 축하 산행인 셈이 된다. 겸해서 수년 전 청을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나 역시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은 불감청고소원이다. 집에서 한 시간이면 접근이 되는 진주라 크게 부담되는 것도 없다.
천하의 길치인 객꾼한테 ‘니 혼자 해라’는 얘기는 하지마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나 역시 독도보다는 GPS가 있으므로 자신을 하는 것이다만, 여지껏 GPS운용은 대부분 선답자의 트랙을 참고 또는 복사하여 따라가기 정도였는데 진주시계는 온전히 독자적으로 트랙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GPS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 내 두 발로 진주시계 트랙을 만들어 볼 것이다.
집에 갖다 줄 물건도 있어 6시 반에 객꾸이 집으로 갔다. 중앙시장 제일식당 해장국을 사먹고 시장에서 파는 김밥 세 줄에 떡 한봉다리 사 넣었다. 곧바로 장석재로 올라가니 골짜기라 그런지 아직 해도 안 뜬거 같다. 소공원에 정자와 휴게소가 있는데 장사를 안하는지, 문열 시간이 멀었는지 모르겠다.
07:26 장석재 07:40 △216.7m 08:12 임도 안부 08:25 자릿대재 09:20 △257.9m 10:27 남강변 도로 10:53 1040번도로 11:09 상일제 (남강제방길) 11:43 1040번도로 (상이배수문) 11:57 장박교 12:07 남해고속도로 (청담3교) 13:09 관음사 갈림길 13:42 ×486 13:54 방어산 14:27 마애사 갈림길 14:50 ×470 15:15 ×503 15:47 괘방산 16:10 어석재
장석재 (137m) 진주시 대곡면과 의령군 화정면의 경계로 1013번 도로가 넘어간다. 대곡면 설매리에서 올라가면 여러바퀴 굽이치며 제법 높게 올라간다만 해발은 137밖에 안된다. 대곡면의 평지가 그만큼 낮은 탓일게라. 장석재라는 고개이름은 대곡면의 지명유래를 찾다가 겨우 찾아 낸거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름은 아닌 모양이다.
장석재 설매 동쪽 의령군 화정면으로 가는 고개로 말머리 형태라 하여 말머리재라고 한다. 진주-의령간 국도가 개통된 후 군 경계표시가 세워진 후부터 고개이름을 장석재라 하였다. 현재는 소공원을 조성하여 휴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대동여지도에 설매현(雪梅峴)이 보이는데, 설매마을 이름이 현재 남아 있으니 그대로 인용했으면 더 좋을뻔 했다. '설매현'
장석재
우리가 들어갈 반대방향에 등산안내도가 먼저 눈에 띈다. 안내도만 있는게 아니라 잘 닦인 계단길의 등산로가 고개로 내려오고, [천황산등산안내도]에 방갓산, 천황산에 망룡산까지 표시가 되어 있는데 지형도의 망룡산을 망왕산이라 표기했다. 망룡인지 망왕인지는 다음에 짚어 보기로 하고 어쨌든, 우리가 진주시계 다 돌고 마지막 내려 올 길이 훤하게 뚫려있음에 만족하자. 천황산까지는 7.2km다.
방갓산, 천황산까지 등산로가 있는 모양이다...!
출발부터 임도사랑~
준비운동(!) 마치고 비로소 진주시계 첫발을 딛게 되는데, 들머리부터 널널한 임도가 환영이라도 하는 듯 열려있다. 지도에 표시없는 이 임도는 묘터로 가는 길이었다. 들어서자 말자 우측 비탈 위에 봉긋한 봉분 두 개 있는데 뒷꿈치 바딱 들고 상석을 보니 경산김공(慶山金公)이시다. 패인 길바닥에 고인 물은 살얼음이 덮혔다.
왼쪽으로 휘돌면 다음 묘터에서 임도는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는데 희미하지만 길은 있다. 고도를 조금 높이다가 문득 돌아보니 지리산 상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우측 앞쪽에 보이는 능선은 아마도 진주시계인 집현산쯤 되지 싶다.
지리산천왕봉
216.7m (△삼가470)
쌀쌀한 날씨에 적응을 위해서라도 부지런히 발을 굴려 15분에 첫봉에 올라섰다. 납딱하게 문드러진 삼각점인데 옆에 삼각점 안내문을 보고야 번호를 알 수 있다. 의령 삼가면에 속한 도엽이라. 숲에 싸여 눈에 뵈는거는 없다. 조금 더 높은 다음봉에는 너른 바위가 있어 올라서 보지만 역시나 보이는건 없다. 왼쪽으로 살짝 내렸다가 올라서면 묘가 있는 ×248봉이다.
후지산(富士山)에서 가져 온 작대기다.
×248봉에 강릉최공
봉우리 올라서니 갑자기 앞이 탁 트이는 공터에 자리잡은 묘는 학생강릉최공이다. 북향이지만 조망 하나는 좋다. 화정면 석천리 골짜기 끝에 솟은 봉은 의령의 벽화산(×522)이다.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 한잔 마시고 내려가니 녹이 쓴 TV안테나가 버려져 있다.
벽화산(×522m)
임도를 마다할까...
×248봉에서 내려서니 예상못한 임도가 나온다. 왼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임도인데 지도에 표기는 없다. 정면 산길은 갑갑하게 막혀있고, 임도파의 예리한 통빡으로 보건데 가까이 해도 좋을 임도라는 판단이라 임도를 따라간다. 역시나 임도는 약간 벌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능선에 붙으면서 고갯마루로 이어진다.
자릿대재
자릿대재
자릿대재(125m) 대곡에서 장석재로 가다가 와룡리에서 우틀하면 이 고개로 올라 오겠다. 새주소 도로명은 [대화로]다. 이 길에 들어서면 대화가 필요한 갑따. [자릿대재유래비] 뒷면에 빽빽하게 적힌 유래를 읽어봐도 '자릿대'의 어원과는 관계없는 내용이다. '산적들이 장삿꾼을 목졸라 죽였다고 자릿대재라...'
산적들이 지키고 있다가 자릿세를 받았다고 자릿대재라 했으면 그런가보다 하겠다만, 지도를 보면 북쪽 너머에 '자르테소류지' 지명이 보이는데, 산적이나 소장수와는 상관없는 다른 이름이 아닐까. 자르테, 자릿대... ?
도둑님들이 소장수들을 노렸다는...자릿대재 유래 건너편에 철책 울타리가 희한하게 열려있다. 우리같은 사람들을 배려라도 했듯이 사람 하나 빠져나갈 틈을 내놓은 것이다. 고갯길의 이런 철책은 토사나 낙석방지는 물론 산짐승이 내려오는걸 막기 위함도 고려되었을텐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딱 한마리의 틈을 내놨다.
울타리 비탈을 올라서니 또 임도가 나오고 별 생각없이 우측으로 가는데 객꾼이 부른다. "이쪽 아잉교?" 방향을 확인하니 뒷쪽이 맞다. 세상에나~!, 길치라 얕봤던 객꾸이가 길을 바로 잡아줄 줄이야.
자릿대재에서 10수분 오름길 후에 ×202에 올랐다. 소나무가 빽빽해 조망은 없고 바닥에 갈비만 푹신하다. 산행 출발 한 시간이 넘었기로 쉬었다가며 삶은 고구마와 커피를 나누어 먹었다. 202봉에서는 우측으로 꺾어 내려갔다가 크게 U자를 그리며 남강으로 내려가는 그림이다.
257.9m
257.9m (△삼가471) 202봉에서 정남향으로 살짝 내렸다가 다시 올라가면 아까와 같은 납작한 삼각점과 안내문이 있다. 준희님 팻말 [257.9m]이 걸려있고, 삼각점 안내문의 표기가 실제와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높이, 좌표가 다 틀리는데 아마도 지점을 잘 못 찍은 모양이라. 객꾼은 지리원에 신고해야겠다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여러번 신고했었지만 제대로 된 성의있는 조치를 못봤다.
왼쪽으로 꺾으면 비스듬히 오르는 산길인데 우측 멀리로 대곡벌판의 비닐하우스와 그 너머로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15분 후 320쯤 되는 봉에서 다시 왼쪽인데, 능선이 지연스레 왼쪽으로 굽어간다.
진주시가지가 아련히...
지저분한 ×305봉
갈수록 길 흔적은 없어지고 가시달린 딸기줄기 같은 넝쿨이 밭을 이루다가 ×305봉을 넘으면 잡목이 더 거세진다. 자빠진 고목을 피하고 가시덤불을 우회하며 나아가다가 칡넝쿨 군락에 포위되기도 한다. 전지가위를 가져 왔어야 하는건데.
우측으로 나무사이로 남강이 언뜻언뜻 보일 즈음에 방향을 잘 잡아야겠다. 뚜렷하지 않은 능선에서 시경계는 우측 비탈로 내려간다. 나무가 빽빽해 보이지도 않으니 더 어렵다.
작전상 후퇴,
바로 아래로 도로가 보일 즈음 산에서 처음 만나는 창산조공(昌山曺氏) 묘를 지나고, 급비탈을 줄줄 미끄러져 내리면 임도에 떨어지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남강변이다.
남강 왼쪽은 의령군 화정면, 우측은 진주시 지수면. 멀리 희미한 방어산이다.
남강변에 내려왔다. 도면상 시계(市界)는 남강물 한 가운데를 가르지만 물 위를 걸을 재주는 없고, 가능하면 진주영역을 밟는게 좋겠다만, 지수쪽 강변은 (건너 갈 수도 없고) 길이 없거나 벼랑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남해고속도로 옆 장박교까지는 별 수없이 의령 영역을 침범하는 수밖에 없겠다.
방갓산에서 발원한 상정천이 남강으로 흘러드는 합수부라 상정천을 건너려면 도로를 따라 금동교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는데, 도중에 건너기 만만한 곳이 있더라.
상정천 건너 제방으로 진행 (남강이 진주시계. 의령군 화정면 도로를 따라간다)
상정천을 건너,
상정천 도랑을 건너가면 의령군 화정면 상정리다. 남강변 제방 둑을 따라가면 1040번도로를 만난다. .
요새는 어디든 제방에는 자전거길이 만들어져 있고, 정자도 많다.
1040 도로변에 있는 통정대부 비석과 제각
[有明朝鮮國通政大夫行龍...南副護軍孝子曺公墓碣] 판독이 어렵다.
남강에도 자전거길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15분 걷고, 상2리 작은골 앞에서 제방으로 우회전, '상일제'는 제방(堤)을 말하는 모양이라. 남강변을 따라 자전거길이 남강둑까지 연결이 될 모양이다. 사대강사업 = 자전거길내기사업
장박마을까지 4km 가량 도로를 따라가는 길이라 딱딱한 아스팔트를 피해 강변으로 가는 둑(제방)을 염두에 두고 왔었는데, 강둑이란게 상상속의 그런 둑이 아니라 아스팔트 보다 더 야문 콘크리트 바닥이다. 객꾼이야 자전거 타고 국토종주를 하고 또 남강댐까지 연결이 되는지 마는지 관심이 많다마는 나같은 맨발스타일은 발바닥 아파 죽을 지경이다.
사대강사업으로 자전거길 내는거는 좋은데, 4대강만 하면 됐지 10대강까지 콘크리트 도배를 할라카나? 아까 건넜던 상정천 제방도 포장이 되어 있었으니 10대강 아니라 강이나 천이나 도랑이란 도랑길은 다 덮어 씌울 모양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것이, 오데 자전거 못타서 환장한 놈 있나?
평일이라 그렇겠지만 -휴일이라고 별 다르랴- 자전거타고 지나가는 사람 딱 한 사람 봤다. 그것도 동네 어르신 한 분. 그 몇 사람을 위해 이렇게 돈을 갖다 발라도 되는것가. 지 돈이라면 이리 하것나... 그 옛날 소 풀어놓고 딩굴던 그런 강둑의 추억들은 이제 영원히 잊혀 질 그림이 되고 말았다.
남강제방, 정면에 방어산이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딱딱한 콘크리트 길을 40분 걸어 다시 상이배수문에서 1040번 아스팔트 도로에 나왔다. 이럴줄 알았으면 차가 좀 지나 다녀도 곧장 아스팔트길로 오는게 나았지 싶다. 화양양수장을 지나 10분 더 가면 장박마을이다.
장박삼거리에서 직진은 함안 의령, 우회전은 진주 지수라는 도로 이정표가 있는데, 장박마을 들어가기 전에 장박교로 곧장 질러가는 길이 있다. 역시 콘크리트 포장된 자전거길이다.
화양양수장을 지나 장박삼거리로,
장박마을 입구에서 우측으로 질러간다.
장박마을 화정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십리가 넘는 강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장배기」는 옛날부터 염창이 나루터가 있는 강변마을이다. 옛날 육로길이 어렵고 뱃길이 좋았던 시절 낙동강과 남강을 이용하여 부산 삼랑진등으로부터 이곳「염챙이」나루로 생필품과 곡물의 교역이 빈번했을 때 큰 배가 강언덕에 줄을 지어 대놓고 물물교환의 작은 장터를 이루었다해서 박주지(泊舟地) 장박나루(長泊津)로 부르게 되었다. 뒷산이「갓먼당」이고 앞산이 진양과 함안을 경계짓는 빼죽한 산이 방아의 고처럼 생긴「방아산」, 염챙이란 말도 잊혀졌고 지금은 민물낚시터로 더 소문이 나있다.
의령군 화정면에서는, 방어산 정상에 있는 유래의 내용과는 다른 방아의 고 처럼 생겼다고 '방아산'이다 .
장박교를 건너면 지수면이다.
장박교에서 보는 남강
진주 지수면으로,
진주 지수면과 의령 화정면을 연결하는 남강다리 장박교 (1037번도로)를 건너고, 왼편에 신축중인 공장 마당을 통해 고속도로에 접근한다.
남해고속도로 굴다리 [청담3교]
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 되기 전에 정체를 피해 지수IC에서 함안IC까지 국도를 이용하면서 많이 다녔던 길이다. 고속도로를 이리저리 관통하며 남강휴게소 뒤로 돌아 가던 길이었는데 휴게소도 없어졌고, 길도 변형되거 같다. 굴다리를 지나니 바로 앞에 산길 들머리가 보인다. 점심시간이라 밥을 먹고 가잔다.
길바닥에서 청승...
방어산 들머리
정확한 시계(市界)능선은 북으로 한칸 다음 능선인데, 그리 가려면 고속도로변을 걸어가든가, 억지로 넘어가면 되겠지만 그럴 필요까지 있겠나. 300m만 올라가면 시계능선을 만난다. 진주시계 왼쪽이 장박교를 넘어서면서 의령군에서 함안군으로 바뀐다.
고속도로에서 들머리는 시계능선이 아니다.
8차선으로 확장된 남해고속도로
의외로 길은 뚜렷하게 나있다. 잠깐 올라가면 청송심공묘가 있고 안쪽에 관을 쓴 비석이 있어 들어가보니 벽진이공이라. 창녕쪽에 우리 일가가 많은걸 아는데 지수에서도 문중 어르신을 뵙게된다. 맨 아랫쪽 묘비석을 살펴보니 바로 할아버지 항렬이시다.
3단묘로 되어 있는데 맨 위쪽에는 통덕랑벽진이공과 열부공인김해김씨 합묘다. 通德郞은 현재로 치면 사무관쯤 되는 벼슬이다. 양지쪽에 자리는 잘 잡았는데 고속도로가 확장되면서 소음이 너무크다.
조은가문
고속도로변의 해발이 꼴랑 20m이고, 방어산이 530m니 꼬빡 500을 올려야 하는 비탈이다. 백두대간에서도 500을 쳐 올리는데는 흔치 않은데, 오늘 제대로 용을 써야 하는 구간이다.
그나마 길이라도 뚜렷하게 열려있으니 다행이다. 삭녕최공(朔寧崔氏)을 지나 40분 걸려 관음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문패없는 묘가 있고 위에서 내려오다보면 시계 길은 잘 보지 못하고 관음사로 내려가겠다. 묘 앞에 철퍼덕 퍼져 앉았다. 고도는 350m
관음사 갈림길에 문패없는 묘
관음사에서 올라 온 길과 합류하고, 15분 더 올라가면 로프가 걸린 난간 기둥이 보이고, 올라가니 우측에 넓은 마당바위가 나온다. 방어산 등산지도에 표기된 마당바위로 알았는데, 진짜(!) 마당바위는 정상 바로 아래 있다.
작은 마당바위
와룡산, 금오산...백운산까지
멋진 전망대다. 남강 물굽이와 지수면 들판, 멀리 하늘과 맞닿은 봉우리는 와룡산, 금오산... 백운산 억불봉인가... 산경도 지도를 꺼내놓고 방향을 맞춰본다.
지수면(智水面)은 우리나라 3대 재벌 창업자들이 태어난 곳이다.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효성 조홍제. 세 사람은 지수국민학교 1회 졸업생이라 한다.
산경도 펴놓고 산이름 맞추기
우측 강따라 왔다.
전위봉인 ×486
이정표의 [남강휴게소] 방향이 가덕마을에서 올라 온 등산로다. 정상은 400m.
방어산 정상부가 바로 코 앞에 다가왔고,
큰 마당바위
가야할 능선이 다 보인다. 두 봉우리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가 마지막 봉인 괘방산. 평수는 더 넓으나 조망은 아랫쪽 작은 마당바위가 더 좋더라. 이 마당바위 바로 위에 방어산 정상이다.
방어산... 멀리 천왕봉이다.
대동여지도에서 방어산
집현산, 광제산, 둔철산, 벽화산.... 여항산도 보인다
정상부
유래를 이해하기에는 사실 다소 많이 좀... 어렵고, 정상부가 편편하고 넓고, 조망 또한 뛰어나다. 남강변에 이만한 조망대가 또 있을까. 가까이 이리 조은산 놔두고 맨날 먼데로만 돌아댕겼다니. 일반 안내산악회 코스로도 아주 좋겠다.
함안쪽 비탈에 있는 마애사에는 일전에도 한번 가 본적이 있는데, 매년 봄이면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방어산 동편 기슭에는 통일신라 애장왕 2년(801)에 조성된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咸安防禦山 磨崖藥師如來三尊立像)이 있다. 보물 제159호.
어석재로 차를 가지고 우리를 회수하러 올 친구가 있어 전화를 하면서 한 시간 반이면 가지않겠나 싶어 약속을 그리 했는데, 막상 가보니 보기보다 멀었다. 기다리는걸 의식하며 바삐 움직였는데 방어산에서 어석재까지 두 시간이 모자란다. 길 또한 편편한 능선길만 있는게 아니라 뚝 떨어졌다가 오르는 굴곡이 제법 큰 산길이다.
좌 마애사, 우 관음사
더 여유롭다면 왼쪽 [마애불 0.34km] 이정표를 따라 잠깐 내려갔다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애불은 괘방산 가는 길에서 보였는데 마애사보다는 훨씬 윗쪽에, 능선에서 얼마 내려가지 않은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왼쪽 마애사에 오른쪽 관음사,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 마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지형도의 '방어산고개'는 어딘지도 모르고 지났고, 정상에 있는 등산안내도의 '희망이고개' 역시 위치를 모르겠더라.
쉼없는 부지런한 걸음으로 40분 걸려 잡풀이 수북한 헬기장인 ×470봉에 도착하고, 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마주보는 ×503봉은 푹 꺼졌다가 다시 솟아있다.
×503봉은 푹 꺼졌다가 다시 올라야...
삼천포 와룡산인가...
괘방산으로 가는 산길은 아직도 한참 남았다.
×470봉에서 뚝 떨어지면 사거리 갈림길이 있는 안부. 긴급구조 표지목만 있고 이정표는 없지만 왼쪽은 마애사로 가겠다. 다시 내려선 이상으로 100m 가량 낑낑대며 올라가면 바위벼랑을 이룬 ×503봉이다. 왼쪽(동)으로 [군북 하림]을 가리키고 괘방산은 아직도 1.5km 남았다.
움푹꺼진데 묘가 있다. 비오면 수장되는... 문무왕릉?
×443봉과 × 408봉 사이의 안부는 마치 땅이 움푹 꺼진 지형이 웅덩이 처럼 보이기도 한다. 강원도 영월 등지에서의 석회석이 녹으면서 땅이 함몰되는 돌리네와 같은 형상이다. 그 가운데 묘가 있는게 신기하다. 비가 오기라도 하면 물이 고이지 않을까. 그러면 저 묘는 수장묘가 되는가.
괘방산
괘방산 (掛傍山 457m △함안21) 귀하신 2등 삼각점을 모신, 계방산도 괘관산도 아니고 괘방산이다. 반쯤 무너진 돌탑이 분위기를 더 어수선하게 한다. 조망도 없고 머무를 여유도 없어 곧바로 넘어간다. 괘방산에서 내려서면서 우측으로 지수면을 이별하고 사봉면을 만난다.
×414봉에는 사각형태의 포개진 바위가 시선을 끈다. 넘어 내려가면 중턱까지 포크레인이 올라와 있고 아래로는 임도가 S코스로 내려가는데, 이 임도는 군북 새작골로 내려가므로, 임도 우측으로 난 등로를 따라야 한다.
임도를 외면하고,
송전철탑 뒤쪽은 어석재 절개지라, 왼쪽으로 내려간다
어석재 방어산(괘방산) 들머리
방어산 군립공원이다.
어석재
어석재 (190m) 진주 사봉면에서 함안 군북으로 넘어가는 1004번 지방도로. 이 길 역시 전에 남해고속도로 정체가 심할 때 많이들 넘어 다녔던 길이라 눈에 익다. 2만5천 지도에는 '어시재', 5만 지형도에는 '어색재'로 표기되고 현지 이정표는 어석재다. 임금이 쉬었다 갔다는 유래도 보이긴 하나, 남동쪽으로 229봉 너머에 경전선 철길이 지나가는 터널이 '어석굴'이다.
어석령 함안군과 진양군의 경계지점에 있는 고분군(古墳群)이다. 옛날 인조대왕이 쉬었다 간 곳이라 하여 어석고개라고 하였다 한다. 주변에는 5 ~ 6세기경의 고분군이 있는데 곳곳을 살펴보면 도굴된 구덩이가 여러 곳에 보인다. 이 곳에서 발굴된 굽다리접시 3점과 뚜껑 1점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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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은산 원문보기 글쓴이: 조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