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점] 계단
처마 밑에 가느다란 고드름이 유리로 만든 발처럼 죽 늘어져서 반짝이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 게이조는 거실에서 고드름을 바라보며 요코의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해 냈다. 요코가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른 한밤중에 뜰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마루의 장지문을 약간 열어 보았었다. 그러자 수북히 쌓인 눈에 깊이 발이 빠진 채 열심히 고드름을 따서 세면기에 담고 있는 나쓰에의 모습이 보였다. 그 무렵 게이조는 나쓰에를 무척 원망했으나, 추위가 심한 한밤중에 요코를 위해 고드름을 따는 아내의 모습을 보자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아픔이 느껴졌다.
“푸딩이 다 되었어요.”
나쓰에가 게이조 앞에 흰 푸딩을 갖다 놓으며 말했다.
“고마워.”
게이조는 부드럽게 말했다. 옛날 일을 상기하다 보니 나쓰에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보.”
나쓰에는 게이조의 그런 심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쓰에는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 문득 하나마쓰리가 다가왔다는 생각을 했다. 나쓰에는 자기가 결혼할 때 갖고 온 히나 인형과 루리코의 첫돌에 산 히나 인형이 있었지만, 요코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된 후로는 마치 깨끗이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히나 인형을 장식하지 않게 되었다.
세심한 게이조도 거기까지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나쓰에는 히나마쓰리 때마다 장식하지 않고 치워둔 히나 인형을 생각하고는 속이 부글부글 끓이면서 게이조와 요코를 미워했다. 루리코를 위해 산 인형을 요코를 위해 장식했던 것이 너무도 분했다. 해마다 히나마쓰리가 가까워질 무렵이면 나쓰에는 그것을 떠올리곤 했다.
올해는 특히 요코가 미웠다. 누가 그 이유를 묻는다면 대답할 수는 없었다.
정월 이후로 가끔 기타하라에게서 요코 앞으로 두툼한 편지가 날아들곤 했다. 그런 편지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나쓰에는 자신이 무시당하고 모욕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삿포로의 다방에서 기타하라가 갑자기 자리를 떴을 때의 일을 나쓰에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기타하라의 젊은이다운 싱싱한 매력에 이끌렸던 나쓰에로서는 그것은 커다란 모욕이었다. 그런데 기타하라는 요코를 사랑하는 듯 때때로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쓰에를 크게 자극했다. 그리고 편지를 절대로 자신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는 요코의 태도에도 나쓰에는 화가 났다.
“보여줄 수 없는 편지예요.”
요코는 이렇게 말하면서 나쓰에에게 기타하라의 편지를 보여주는 것을 거절해 왔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되푸링되는 히나마쓰리에 대한 씁쓸한 기억이 올해는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지금 게이조가 자신에게 부드러운 말을 건넨 것도 그녀는 자기 생각에 골몰해 있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보, 요코도 이제는 골치 아픈 나이가 되었어요.”
나쓰에는 스푼으로 푸딩을 가득 뜨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소?”
게이조는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나쓰에를 바라보았다.
“남자하고 편지질을 하고 있지 뭐예요?”
나쓰에는 잘생긴 입 속으로 푸딩을 집어넣었다.
“남자라니, 도오루의 친구라는 기타하라 군 말이오?”
“네.”
“기타하라 군이라면 나쁠 거 없잖소?”
게이조는 한시름 놓인 듯이 말했다.
“하지만 기타하라 씨가 가엾어요.”
나쓰에는 게이조를 바라보았다. 게이조는 나쓰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지 못했다.
“가없어? 뭐가 말이오? 기타하라 군이라면 인상이 꽤 좋은 청년이던데.”
“.........”
“요코도 나쁜 애가 아니겠다, 뭣하면 지금부터 슬슬 혼담을 꺼내도 좋지 않소.”
게이조는 도오루와 요코가 결혼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기타하라와 혼담이 성사된다면 자기가 요코를 맡아서 기른 것도 해피 엔드로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신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진심이고 말고. 왜?”
“당신이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요코를 기타하라 씨에게 떠넘길 거예요?”
나쓰에는 싸늘하게 말했다.
“아, 당신이 말하고 싶었던 건 요코의 그 일이었소?”
게이조는 요코가 시내에 쇼핑을 나가 집에 없는 줄 알고 말을 이었다.
“요코는 역시 우리 자식이오. 그 애는 제 엄마의 뱃속에서 열 달, 태어난 후 한 달 동안 제 부모와 있었을 뿐이오. 그런데 우리 집에선 17년 동안이나 살았소. 그러니 우리 아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소?”
“그럴까요?”
“비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도리요. 그렇다고 해서 그 애를 기타하라 군에게 억지로 떠맡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요코는 아주 좋은 애요. 우리 자식이라도 그렇게 훌륭하게 키우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나쓰에는 게이조의 말이 비위에 거슬렸다.
“저는 요코를 지독한 애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어깨에 돌팔매를 맞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나쓰에는 중학교 졸업실날의 답사 사건을 떠올리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명랑하고 상냥한 애라고 봐.”
“하지만 지나치게 강한 건 사실이에요. 다쓰코도 남에게 속을 주지 않는 애라고 말했어요.”
나쓰에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게이조는 말없이 난로의 재를 부젓가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쓰에에게 요코를 키우게 하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쓰코 씨의 말이 나와서 생각났는데, 어차피 요코도 2,3년 후에는 우리 집에서 나가게 될 테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기한테 요코를 맡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던데.”
게이조는 나쓰에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다쓰코가요?”
“응.”
“다쓰코가 그런 말을 했어요, 아니면 당신이 부탁했어요?”
나쓰에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다쓰코 씨가 꺼낸 말이오.”
“언제요?”
“글쎄, 언제였더라. 아, 그래그래, 바로 기타하라 군이 우리 집에 묵고 있을 무렵이었소.”
“어머, 그렇다면 벌써 반 년이나 지났네요.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저한테 바로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나쓰에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어째서라고 따질 건덕지도 없지 않소?”
“다쓰코는 너무해요. 나한테는 한 번도 그런 말을 비치지 않았는데.......”
나쓰에는 불쾌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다쓰코 씨는 요코가 진학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대학에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소.”
게이조는 나쓰에의 불쾌해하는 태도를 무시하는 듯이 말했다. 그는 일단 입밖에 낸 말이니 유야무야가 되는 것이 싫었다.
“다쓰코는 아무것도 몰라요. 요코는 진학하기보다는 고등학교를 마치면 곧 결혼하고 싶어하는데.”
‘요코가 대학에 가다니!’
요즘은 여자도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것을 나쓰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쓰에는 요코를 대학에 보낼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요코의 의향을 물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쓰에는 자신도 구제(舊制) 여학교를 나왔을 뿐이었다. 요코가 자기보다 높은 학력을 갖는다는 것은 나쓰에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코를 다쓰코에게 줄 수는 없어.’
나쓰에는 다쓰코의 재산을 생각했다. 물욕에 집착하지 않는 다쓰코는 요코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할 것이다. 요코가 쓰지구치 집의 딸로서 호적에 올라 있는 이상 쓰지구치 가의 재산도 요코에게 나눠줘야 한다. 두 집 몫을 합치면 요코는 자기보다도 많은 재산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이 살인범 사이시의 딸의 운명이라니.......’
나쓰에는 죽임을 당한 루리코의 일을 생각하자 다쓰코의 제의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은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그럼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경우에 따라서는 다쓰코 씨한테 맡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그러는 편이 요코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 지독한 양반. 그렇다면 마치 제가 요코를 키우는 것을 힘겨워하는 것처럼 보일 게 아녜요. 전 싫어요. 오늘까지 애써서 키워온 걸요. 이제 신부 차림으로 이 집에서 내보내고 싶은 것이 인정이 아니겠어요?”
나쓰에의 말은 그럴 듯하게 들렸다.
“알겠소. 내가 잘못했소.”
게이조는 처마 밑의 고드름을 바라보았다. 갓난아이였던 요코를 지금가지 키운 것이 나쓰에에게 얼마나 벅찬 일이었을까 하고 게이조는 생각했다.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다 키우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요코는 얻어온 아이가 아닌가. 게다가 나쓰에는 사이시의 자식인 줄 알고도 여전히 요코를 키워야만 했다.
‘요코를 볼 때마다 나쓰에는 속이 상했을 것이다. 그 출생의 비밀을 지키는 것만 해도 정신적으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는 얼마나 지독한 일을 저질렀는가?’
요코를 신부 차림으로 이 집에서 내보내고 싶다는 나쓰에의 말을 게이조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게이조는 나쓰에를 도저히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이조는 서재로 들어가 무슨 책을 읽을까 하고 책장 앞으로 다가갔다. 마침 눈앞에 아베 지로의 <산타로의 일기>가 꽂혀 있었다. 대학 시절에 읽은 후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책이었다. 게이조는 그것을 꺼내 책장을 넘겼다.
“여기 한 사람의 바보가 있다.”
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다음 페이지에서는,
“너의 생활에는 뭐니뭐니해도 아직 내용이 모자란다.”
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페이지를 앞으로 넘기니,
“삶이란 무엇인가? 평범과 비범이 모두 공허하다.”라고 씌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글자마다 자신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 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게이조는 입밖에 내어 말해 보았다. 그는 퇴원하기 전날 자살한 마사키 지로를 생각했다. 마사키는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고 죽었다.
게이조는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 보고 이것이 삶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도야마루 사건이 있는 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게이조는 피곤하면 바닷물에 빠져 들어가는 듯한 꿈을 꾸는 때가 있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러 차례 이런 내용의 바다 꿈을 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진실하게 살자’고 새삼스럽게 다짐한 결심은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미무어하고 질투하고 사랑하고 성내고......이것이 삶이라는 것일까?’
‘이 책은 정말로 나에게 새로운 생활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도야마루에서 태풍을 만났을 때 자신의 구명대를 젊은 여자에게 선뜻 내어주고 죽어 간 선교사를 생각했다.
‘나도 그 사람처럼 살고 싶다.’
두 눈으로 분명히 본 그 존귀한 삶의 태도를 어째서 자신은 본받으려고도, 추구하려고도 하지 않고 10년 가까이 어물어물 살아왔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자신이 너무도 게으르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는 성경을 펼쳤다.
펼쳐진 곳을 들여다보고, 게이조는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남편은 집에 없었다. 손에 돈주머니를 들고 멀리 여행을 떠났다. 달이 찰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여자가 여러 가지 달콤한 말로 그를 미혹하고 간사한 입술로 교묘히 유인하자 젊은이는 곧 여자의 말에 따랐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말이었다. 구약이라면 적어도 예수가 태어나기 몇백 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3,4천 년 전에도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딴 사나이를 끌어들인 여자가 있었단 말인가?’
간통은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되풀이되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게이조는 놀랐다. 아니, 앞으로 몇만 년에 걸쳐 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미워하고 저주했을 수많은 남자들을 생각해 보았다.
‘아니, 남편을 배신한 여자보다 아내를 배신한 남자 쪽이 몇십 배, 몇백 배 더 많을 것이다.’
게이조는 신문의 신상 상담코너에서 남편의 바랆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여자들의 편지를 자주 보았던 것을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 괴로워한 것은 나 하나뿐이 아니구나. 몇천 년, 아니 몇만 년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아마도 인류가 이 세상에 존속한 한 부정은 되풀이될 것이다.’
얼마 전에도 증오와 질투로 말미암아 아내를 죽인 기사가 신문에 났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나처럼 아내를 미워한 나머지 자기 자식을 죽인 범인의 딸을 맡아서 기르게 한 어리석은 놈은 없었을 것이다.’
게이조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무엇 때문에 요코를 맡았는지 자기 자신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는 말로 자기 자신과 다카기를 속이고, 나쓰에에게 범인의 자식을 키우게 한 비열하고 냉혹한 인간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게이조는 싫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얼굴을 들 수 없는 짓을 하고도 나는 아직 마음 한 구석으로는 나쓰에를 탓하고 있다.’
이대로 무슨 병이라도 걸려 죽는다면 자신의 일생은 완전히 진흙투성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용기를 내어 교회에라도 가볼까? 교회에 가서 이런 어리석고 추한 사람도 앞으로는 진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목사에게 물어 볼까?’
게이조는 성경을 덮었다.
‘아무튼 일단 가보자.’
지금까지 가끔 교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지만, 게이조는 어쩐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는 성경을 보자기에 쌌다.
시계를 보니 4시를 지나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요코의 목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게이조가 말했다.
“요코, 차를 좀 불러주겠니?”
“네.”
요코가 바로 일어나 수화기를 들었다. 나쓰에가 이상한 듯이 게이조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디 가세요?”
“응, 잠깐 다녀올 데가 있소.”
게이조는 어물어물했다. 교회에 간다는 말을 하기가 쑥스러웠다. 게이조는 특별한 볼일이 없으면 저녁 식사 후에 외출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외출할 때라도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가는 경우는 없었다. 나쓰에는 의아한 얼굴로 게이조를 쳐다보았으나 말없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거들었다.
“언제쯤 돌아오시는데요?”
“글쎄, 아마 아홉 시경까지는 돌아올 거요.”
차가 오자 게이조는 도망치듯이 집을 나섰다.
‘뭐, 나쁜 데 가는 것도 아닌데.’
차안에서 게이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교회에 간다고 나쓰에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그녀가 뭐라고 말할지 알 수 없었다. 왠지 비웃을 것 같았다.
달이 떠 있어 길에 쌓인 눈이 파랗게 보이고 처마밑의 고드름이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시죠?”
큰길로 나서자 운전기사가 물었다. 게이조는 당황했다. 교회가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문득 그는 다쓰코의 집 근처에서 봤던 교회를 생각해 냈다. 몇 해 전 어느 일요일 아침에 나쓰에와 요코 셋이서 다쓰코에게 피크닉을 가자고 꾄 적이 있었다. 그때 종소리가 들려와 무슨 소리냐고 묻자 근처 교회에서 나는 종소리라고 다쓰코가 가르쳐 주었었다. 교회의 십자가가 다쓰코의 집에서 비스듬히 뒤쪽으로 보였던 것이 생각났다.
“6조 거리에 있는 교회로 가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게이조는 한시름 놓았다.
차가 교회에 가까워짐에 따라 게이조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그는 남의 집이든 어디든 찾아가는 것은 질색이었다. 게다가 처음 가는 곳은 더욱 그랬다.
차가 미도리바시 거리를 달려 시청 모퉁이를 돌았다. 시청 옆의 벌거벗은 포플러가 밤하늘에 높이 솟아 있는 것이 거무스름하지만 아름답게 보였다. 차가 멈춰 섰다. 교회 앞이었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차에서 내린 게이조는 교회를 쳐다보았다. 십자가 아래 밝게 빛나는 스테인드 글라스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고 씌어 있었다.
학생 두 명이 게이조의 옆을 스쳐 지나가 교회 계단을 올라갔다. 예배당은 이층에 있어서 밖에서 곧장 계단을 통해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게이조는 어쩐지 ㅈ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근처에 있는 석유 판매소 쪽으로 걸어갔다. 엄청나게 추운 날씨였으나 게이조는 조금도 추위를 느끼지 않았다. 다시 교회 쪽으로 가려고 했을 때 중년 부부가 게이조를 앞질러 갔다.
“여보, 춥지 않아요?”
“괜찮아.”
두 사람이 서로 감싸듯이 하고 교회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게이조는 그들에게서 자신들 부부 사이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따뜻한 분위기를 느꼈다. 게이조가 교회 문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다쓰코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교회에 다 오시고.”
“아니, 저 그게.”
게이조는 얼굴을 붉혔다.
“오늘 설교 제목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씌어 있군요. 들어가시려면 얼른 들어가세요.”
다쓰코는 이렇게 말하며 게이조를 쳐다보았다. 게이조는 갑자기 들어갈 마음이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다쓰코 씨는 교회 바로 옆에 살면서 이곳에 와본 적 없어요?”
게이조는 다시 석유 판매소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왜요, 있지요.”
“허.”
“감탄하실 것 없어요. 해마다 5월의 바자회 때 김밥이나 단팥죽을 먹으러 가는 것뿐이니까요.”
다쓰코는 피식 웃었다. 교회라는 데가 근처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게이조는 새삼 느꼈다.
“저희 집에 들렀다 가세요. 모처럼 여기까지 오셨는데.”
다쓰코의 말에 약간 마음이 움직였으나 게이조는 사양했다.
“선생님, 선생님한테는 역시 교회가 어울려요. 들어가 보세요. 집에 가실 때 들르시고요.”
다쓰코는 게이조의 마음을 읽은 듯이 이렇게 말하고 얼른 멀어져 가 버렸다. 게이조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설교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교회 앞에 가니 안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모르는 찬송가 소리를 듣자, 게이조 역시 발을 들여 놓기가 거북했다. 그는 자신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혐오스러웠다.
‘여기까지 왔는데 용기를 내어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그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들어가기가 쑥스러웠다.
‘그럼 그냥 되돌아갈까.’
그러나 게이조는 돌아갈 수도 없었다. 비로소 추위가 몸에 스며들었다. 게이조는 코트 깃을 세웠다.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란 무엇일까? 나한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게이조는 십자가를 쳐다보았다.
학창 시절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선교사에게 다닐 때는 교회가 이렇게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끝내 쭈뼛쭈뼛하다가 게이조는 교회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미도리바시 거리에 나와 택시를 잡으면서 게이조는 자신이라는 인간이 증오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래 가지고는 당분간은 교회에 절대 발을 들여놓지 못하겠구나.‘
게이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서는 엄격한 구도 생활에 절대 몸을 담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했다고 씌어 있는데, 정말 하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을까?’
게이조는 자기 자신은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기엔 너무나 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