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불교에 관심, 대학 3년 때 출가
속퇴 후 한의대 입학…보통 여인으로 살아
통찰지혜란 일종의 자기 치유력이다. 부처님께서 진실로 우리에게 전해 주시고자 했던 가르침이란 바로 자기를 치유해 나가는 방법이다. 위빠사나를 만나고 나서 내가 사회를 비판하고 다른 사람을 비판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나의 탐진치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릴 때부터 내가 옳다고 믿고 고집을 부려서 주위와 불화를 일으킨 것이나 결혼해서 시댁과 겪었던 갈등 등 이런 것들이 모두 나의 강직한 성격 때문인 줄만 알았었다.
그러나 그 성격의 근저에 자리잡은 탐욕과 성냄을 보고 나니 마치 병든 사람이 약을 먹은 것처럼 내 행동이 저절로 고쳐졌다. 이런 것을 일러 법에 의한 치유라고 하던가. 흔히 통찰에 의한 치유를 근본적인 치료법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기존의 선정 수행법을 모두 버리고 위빠사나로 전환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마음의 원리에 근거한 수행법을 발견했다는 말이다.
나는 그 빛을 오십이 다 된 나이에 만났다. 유난히 불교적인 감수성이 예민하면서도 성격이 온화하지 못했기에 사춘기 이후의 삶을 회상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고문에 가까울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굴곡 많은 과정들이 오직 한 점을 향해 돌진해 왔다는 확신이 들기도 한다. 위빠사나 수행과 묘원 법사님을 만난 것이 그것이다.
집안이 불교와는 거리가 먼데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낡은 표지의 『불교개론』을 그때 만났고, 사성제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인생이 고(苦)라는 대목을 보았다.
그 후 이렇게 말씀하신 분의 가르침이 뭔지 알아보리라는 결심을 했다. 『반야심경』을 보고, 테이프를 들으며 외우고 한자로 쓰는 것까지 2∼3일 정도 걸렸다. 그리고 혼자 도서관에 들어앉아 불교전집 같은 것을 보기도 했다. 그때 선불교를 처음 접하기도 했다.
처음 대학에 다닐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교양으로 듣는 미학수업 시간, 어수선한 시국에 대부분은 시위대열에 합류하고 남은 몇 명이 모여 교수님과 둘러앉았다. 인생의 목표를 주제로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나는 인생의 목표가 해탈이라고 했다.
다들 놀란 표정들이어서 공연히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사고방식 자체가 세속에 물들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대학 3학년인 스물 두 살 때 출가를 했다. 그리고 사미니계를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왔다. 그때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한겨울 삼천배 100일 기도를 하기도 하는 등 많은 경험을 했다.
그렇게 산을 내려와 몇 년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한의대에 입학했고, 거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지금은 평범한 주부이고 아이의 엄마이고 직장인이다. 외적인 흐름과는 달리 내면으로 추구하는 것을 놓지 않았던 덕분에 뒤늦게 나마 위빠사나 수행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처님께서는 자기의 병을 치유하면서 살라고 하셨다. 그 끝이 어디에 가 닿으리라는건 자명하지만, 우선 바르게 보고 바른 견해를 가지라고 하셨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바른 삶의 길이라는 것을 위빠사나 수행을 만나면서 알게 된 것이다.
한의사(47·서울 동대문구)
917호 [2007-09-19]